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심층리포트

사자, 호랑이 권력다툼 10년의 기록

피도 눈물도 없는 맹수제국의 쿠데타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사자, 호랑이 권력다툼 10년의 기록

2/5
사자, 호랑이 권력다툼 10년의 기록

시베리아호랑이 십육강이 수사자 테크노의 관자놀이를 후려치고 있다. 시베리아호랑이는 덩치가 커

비너스의 색공

비너스는 대(大)자로 누워 수컷에게 속살을 보여주며 앙탈을 부릴 때도 앙칼졌다. 사람의 눈으론 종잡을 수 없는, 맹수의 눈에만 보이는 특별한 매력을 가졌다. 수사자의 목덜미를 핥는 비너스의 혀는 능란했다. 녀석은 강한 수컷을 ‘핥고, 빠는’데 능숙한 타고난 아부꾼이었다.

아부는 DNA를 퍼뜨리고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는 전략적 행위라고 동물행동학은 가르친다.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에 각인된 본성이라는 것.

빌 클린턴이나 로널드 레이건 같은 정치가들은 유권자의 ‘엉덩이를 핥는(ass-licking)’일에 능란했다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전 편집장 리처드 스텐젤은 말한다. 사람이 성공하려면 아래·윗사람을 다독거리고(stroking) 빨아주는(sucking up) 일에 뛰어나야 한다는 것. 비너스가 그랬다.

사람과 98% 넘게 DNA를 공유하는 침팬지의 아부는 혀를 내두를 만큼 전략적이다. 동물행동학의 권위자 프랜스 드 발은 침팬지가 다른 침팬지에게 우러러보듯 인사하는 까닭은 사귀어놓으면 도움이 되는 개체의 환심을 사고픈 마음에서라고 말한다. 드 발은 침팬지가 우두머리에게 굽실거리는 행위에 ‘절(복종적인 인사·submissive greeting)’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위계급의 수컷 침팬지는 틈날 때마다 보스의 털을 골라주거나 몸을 핥아준다. 우두머리의 발에 키스하는 모습도 관찰된다. 대장에게 알랑거리는 녀석은 섹스, 먹이에서 혜택을 누린다. 보스가 비호하기 때문이다. 침팬지의 아첨은 DNA에 각인된 생존 전략이다. 보스한테 빌붙을수록 권력의 위쪽을 차지한다. 상위계급의 수컷들이 암컷과의 섹스를 분점하는 침팬지는 권력 피라미드의 위쪽을 차지할수록 DNA를 후손에게 물려줄 가능성이 커진다.

동물의 전략적 아부는 ‘위’에서 ‘아래’로도 이뤄진다. 쿠데타를 예비한 상위계급의 침팬지는 우군을 늘리고자 하위계급 침팬지의 털을 골라준다. 암컷들의 몸단장을 돕고 새끼들과 잘 놀아준 수컷이 권력투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노련한 우두머리는 쿠데타를 막고자 젊은 수컷들과 영향력 있는 암컷들에게 털고르기뿐 아니라 음식을 나눠주면서 지지를 이끌어낸다. 부하의 지지는 경쟁자와 대결할 때 상대를 찌르는 칼이 된다.

아이디는 여비의 왕위를 빼앗을 때 테크노(8세·수사자), 투스(8세·수사자)의 도움을 받았다. 합종연횡(合從連衡)은 동물의 권력다툼에서도 발견된다. 1995년 ‘호랑이 제국’을 끝장낸 수사자 포철은 동생 인철과 공동 정권을 만들었다가 인철이 천하와 손잡으면서 천하에게 왕위를 내놓아야 했다.

버빗원숭이들은 우두머리에게 빌붙음과 동시에 현재는 지위가 낮더라도 계략이 뛰어나 권력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은 개체를 짚어내 털고르기를 해준다. 미래의 권력자한테 알랑거림으로써 유대관계를 맺어놓으려는 것이다.

사자, 호랑이 권력다툼 10년의 기록

백호는 성정이 급한 벵골호랑이와 달리 싸움을 잘 하지 않는다. 수태가 가능한 ‘그날’엔 무리의 우두머리가 암컷을 독점한다. 사자 암컷은 ‘센 놈’의 씨를 받아 ‘센 놈’을 낳으려고 한다.

전설의 사자왕

비너스도 젊은 수사자로 ‘갈아타기’ 전에 버빗원숭이들의 그것과 비슷하게 행동했다. 2006년 봄 비너스는 아이디가 낮잠을 잘 때마다 갓 어른 흉내를 내기 시작한 여섯살 연하의 쿠쿠(당시 3세) 앞에서 교태를 부렸다. 여비를 몰아내고 아이디를 옹립할 때도 그랬다.

그 즈음 사자왕국의 파벌은 넷이었다. 아이디-테크노의 ‘형제 정권’(아이디가 왕이었지만 과격하기론 테크노가 으뜸이었다)과 투스(8세·수사자)가 이끄는 서울대공원파(2001년생인 투스·탤런·키바·하울은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났다), 갓 어른 흉내를 내기 시작한 쿠쿠와 비너스의 딸인 사강(6세·암사자)이 주도하는 쿠쿠파. 그리고 옛 실력자 여비가 후미진 곳에서 재기를 꿈꿨다.

아이디가 낮잠을 자면 비너스는 쿠쿠의 차지였다. 녀석은 비너스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다른 수사자나 암사자가 비너스에게 다가오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위협했다. 쿠쿠는 비너스가 다른 수사자를 향해 발을 떼면, 여제의 엉덩이를 잡고 매달렸다. 비너스가 쿠쿠를 뿌리치고 투스 앞으로 다가섰다. 쿠쿠의 질투심이 동했다. 수사자 간의 싸움. 쿠쿠는 투스의 얼굴을 앞발로 내리쳤다. 젊은 사자의 주먹질은 대단했다. 투스는 쿠쿠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비너스는 섹스를 권력 유지 도구로 활용했다. 영특한 암사자는 수사자가 자신을 공격할 기미가 보이면 흙을 깔고 누워 속살을 보여주며 앙탈을 부린다. 원숭이들도 권력자가 다가오면 겁먹은 표정을 지으면서 몸을 떨거나 싱글거린다. 알랑거리는 행동이 인간의 전유물만은 아닌 것이다.

위계는 집단을 이뤄 사는 사람을 포함한 거의 모든 동물사회에서 나타난다. 질서가 없는 사회는 멸망한다. 서열이 있는 곳에선 예외없이 아첨이 발견된다. 둘이 모이면 위·아래가 생기고, 셋만 모여도 리더가 나타나는 이치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똑같다.

침팬지 암컷에게도 섹스는 전략적 아부의 수단이다. 암컷은 실력자를 다독거리려고 엉덩이를 추켜세워 성기를 보여준다. 그런데 발정기엔 관계가 역전된다. 호의를 얻으려는 수컷이 음식을 바치고, 암컷의 털을 골라준다.

사람의 아부도 침팬지의 아첨과 마찬가지로 DNA에 아로새겨진 본성이다. 다만 언어를 사용하고, 문명을 이룬 인간의 아부는 동물의 그것보다 복잡하다. 교활한 영장류의 혈통을 이어받아 진화한 인간은 면전에서 아첨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잇속에 맞게 행동하는 데 능숙한 사람은 ‘전략적으로 찬사한다’.

2/5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사자, 호랑이 권력다툼 10년의 기록

댓글 창 닫기

2019/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