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호

‘MB 용인술’로 해부한 외교안보라인 난맥

사태수습 뛰어든 ‘소방수’들, 드리우는 ‘비선’의 그림자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9-06-05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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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 용인술’로 해부한 외교안보라인 난맥

    4월4일 북한의 로켓 발사와 관련해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열린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

    MB의 용인술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 ‘참칭(僭稱)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주변의 누군가가 일을 추진하면서 ‘이게 그분의 뜻’이라고 팔고 다녀도, 그게 정작 본인의 생각과 차이가 있어도, 일일이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라도 성과를 만들어 오면 된다는 것이다. 대신 일이 어그러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 때는 그 참칭의 책임을 호되게 묻는다. ‘내가 언제 그렇게 얘기했느냐’는 식이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잘될 때는 아무 말 없다가 일이 틀어지니 문제 삼는다고 느낄 법하다. 그러나 그게 MB 스타일이고, 지금도 그 많은 ‘측근’이 일을 해나가는 방식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캠프 참모 출신 정부 고위관계자)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조짐이 감지된 이래, PSI 전면참여는 안보부처 고위관계자들이 대응카드로 거론한, 사실상 유일한 ‘액션플랜’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남북문제를 국제적인 틀로 접근해 압박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외교부 중심 안보라인 성향과 잘 맞아떨어진 것도 이 카드가 선택된 주요 이유였을 것”이라고 평한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 의장을 맡아 최종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고,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외교부 차관을 지낸 정통파 외교관 출신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이명박 정부 안보라인의 주도권을 외교부가 장악하고 있다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외교안보라인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당시부터 안보부처 실무관계자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PSI의 의미를 북한에 맞춰 협소하게 해석하기 시작하면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 조용히 접근할 수 있는 사안을 남북관계의 주요쟁점으로 부각시키는 전임 정부의 실수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후 PSI 전면참여 발표 방침이 계속 연기되면서 이 사안이 외교안보라인의 실책을 상징하는 키워드로 떠올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발표는 4월15일에서 19일로, 21일로 미뤄졌다가, 다시 기한을 정하지 않은 채 유보됐다. 모두 남북관계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실무자들의 당초 우려가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그 와중에 유명환 장관을 비롯한 안보라인 핵심 관계자들이 하는 말의 뉘앙스도 바뀌었다. “PSI는 전세계 94개국이 가입한 상태로 이에 참여하는 것은 책임 있는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의무이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는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이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전면참여가 내부적으로 결정된 상황이었고 적절한 시기를 찾고 있었을 뿐”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그러나 이미 북측이 “PSI 전면참여는 선전포고로 간주한다”고 밝힌 상황에서 무의미한 노력이었다.



    “당초 결정은 ‘발표는 없다’였다”

    흥미로운 것은 발표일정 연기가 모두 청와대 회의를 통해 결정됐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회의였다. 4월15일 오전 안보관계장관회의와 4월21일 저녁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가 그 대표적인 사례. 유 장관은 그간의 안보부처 간 논의를 바탕으로 전면참여 발표계획을 보고했지만 대통령이 연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문제의 4월15일 회의를 두고 대부분의 언론은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유 장관이 대립했다는 관점에서 보도했다. 그간 안보라인의 척추 역할을 맡아온 외교부에 대해 대통령의 대선참모 출신인 현 장관이 남북관계 변수를 들어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들이나 현 장관과 오래 친분을 맺어온 이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단순히 ‘갈등은 없다’ 식의 의례적인 변명이 아니라, 현 장관의 노선이나 주의 깊은 성격상 ‘VIP의 시그널’ 없이 뜬금없이 나섰을 리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의 결정이 이 대통령의 직접 결심이었다는 당국자들의 설명과도 일치한다. 한마디로 현 장관은 거들었을 뿐이라는 것.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사전조율을 추측케 하는 정황도 확인된다.

    “로켓 발사 대응책으로 잘못 엮인 프레임 설정의 실수일 뿐 이미 전면참여 발표가 결정돼 있었다”는 당국자들의 사후 설명도, 지난해 정부 핵심의 PSI 관련논의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이야기와는 사뭇 차이가 난다. 정부 출범 직후 이 문제를 논의한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의 결론은 도리어 “전면참여 발표는 하지 않는다”였다는 것이다.

    당시 함께 검토된 미사일방어(MD) 체제 참여 여부와 더불어 “사실상 노무현 정부 당시의 방침을 변경하지 않는다”는 게 결정사항의 요체였다고 전해진다. 외교통상부와 청와대 일각에서 부정적인 견해가 있긴 했지만, 결정사항 자체는 대통령에게 보고되어 방침으로 확정됐다는 설명이다. 한 관계자의 말이다.

    “PSI 전면참여 여부를 언급하는 순간 북한에 대한 압박수단으로서의 의미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차라리 그때그때 PSI 훈련의 참여수준을 높이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압박카드로는 훨씬 유효 적절하다. ‘너희가 움직이면 우리는 PSI로 간다’는 식의 으름장으로는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판단을 당시 이미 내린 것이다.”

    ‘MB 용인술’로 해부한 외교안보라인 난맥

    4월21일 오후 11시45분 개성공단에서 남북 당국 간 접촉을 마친 김영탁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앞줄 오른쪽)과 김남식 남북회담본부 회담기획부장(앞줄 왼쪽) 등 남측 대표단이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귀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침이 북한의 로켓 발사 징후가 전해진 시점에서 바뀌었다는 것일까. PSI는 왜 튀어나온 것일까.

    ‘강성’이라는 참칭

    정부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이 부분을 안보라인의 ‘참칭’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견해가 강하다.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정책의 기조를 ‘전임 정부의 적폐(積弊)를 극복하는 것’으로 인식한 정책결정자들이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원칙 아닌 원칙에 집착했다는 것.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청와대와 실무부처를 막론하고 정책방향 설정을 맡은 고위관계자들은 “노무현 정부가 박아놓은 대못을 뽑는 것이 급선무”라는 언급을 자주 남겼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ABC(anything but Clinton·클린턴과는 반대)’에 빗댄 ‘ABR(anything but Roh·노무현과는 반대)’라는 용어가 실무자들 사이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강성’으로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평양의 도발에도 별다른 대응책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이명박 정부는 ‘한 대 맞으면 절대로 가만히 있는 일은 없을’ 스타일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같은 분위기는 1월17일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의 강도 높은 담화 발표로 서해북방한계선(NLL) 인근의 긴장이 고조되자 국방부가 청와대에 보고한 군사적 대응방안이 고스란히 언론에 유출되면서 정점을 찍었다.

    북한에서 억류 중인 개성공단 직원 유모씨 문제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4월 하순 유명환 장관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국제적인 노력을 통해서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이 문제를 유엔인권이사회에 제기하는 방안을 꺼내 들었다. 억류 장기화에 대한 나름의 대응방안 마련인 셈이다. 그러나 2주도 지나지 않아 이 얘기는 사실상 백지화됐다. 우선 상황 악화를 염려한 유씨 가족이 극력 반대한데다, 유엔에서 절차를 밟으려면 몇 달이 걸려 실효가 없다는 점도 뒤늦게 감안됐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북한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한몫했다. “맞대응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정밀한 사전검토 없이 내걸었던 기치가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셈이다.

    “정무가 움직였다”

    “공직사회에서는 스태프 조직 사이의 장벽이 높다. 문제가 터져도 원래 그 업무를 담당했던 팀에서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능력이 부족하다면 아예 해당 직위의 사람을 바꾸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민간회사는 다르다. 원래 담당자가 제대로 못한다는 판단이 들면 CEO는 잠시 다른 자리에 있는 인물에게 상황을 바로잡을 임무를 맡길 수 있다. 그 인물의 소속이나 직급, 공식적인 담당업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위기에 빠진 프로젝트에 자신이 믿는 사람을 ‘소방수’로 투입해 어떻게든 살려놓는 건 민간회사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당장 MB 본인이 정주영 회장 밑에서 이런 식으로 일을 배웠다.” (이 대통령과 친분이 깊은 경제계 원로인사)

    흥미로운 것은 이후 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전면에 나섰다는 점이다. 먼저 대통령 본인이 달라졌다. 혼선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것일까. 이 대통령은 4월 한 달 동안 2~3일에 한번 꼴로 안보관련 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지침을 내렸다. 외교안보라인에 속하지 않은 다른 수석실 관계자들의 움직임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수습작업에 직접 뛰어든 형국이었다.

    우선 개성공단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4월21일 열렸던 남북접촉 문제가 그 한 사례다. 당초 북측의 요구조건과 관련해 논란이 이어지자, 정부는 세부사항을 흘리며 상황 정리에 나섰다. 이때 나선 주체는 남북접촉의 당사자인 통일부 등 외교안보라인이 아니라, 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잘 알려진 청와대 고위관계자였다. 넓게 보자면 업무관련성을 주장할 수도 있는 직위에 있지만, 이전까지는 분명 안보사안에 관여한 적 없던 인물이었다.

    PSI 발표연기가 결정된 4월15일 아침 안보관계장관회의와 관련해서도 ‘다른 라인’의 개입에 관한 후문이 끊이지 않는다. 당시 이 대통령의 연기 지시가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보고를 받은 뒤 이뤄졌다는 이야기가 그 하나다. 회의석상에서 연기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진 현인택 장관이 전날 밤 늦게 급한 호출을 받고 청와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외교안보라인 이외의 참모들이 상황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부정적으로만 볼 이유는 없다.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정무는 사실상 모든 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분야에 상관없이 특정쟁점이 정치적 사안으로 비화할 여지가 있다면 이를 검토해 보고하는 것이 기본업무라는 것이다. PSI 문제나 개성 접촉과 관련해 청와대의 입장이 난처해졌던 만큼 충분히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해석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이 무렵 이 대통령의 측근이나 대선참모 그룹이 “MB는 (대북정책에 있어) 절대로 강성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강경조치를 취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복조치를 취해야 직성이 풀리는 감정적인 마인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결과적으로 이득이 되는 정책방향이 무엇인지 따져보는 ‘실용주의 마인드’가 요체라는 레퍼토리 역시 흡사 입을 맞춘 듯 반복적으로 제시됐다. 안보라인 고위 관계자들의 이전 설명과는 사뭇 차이가 있는 뉘앙스였다. 이를테면 ‘강성 참칭’의 수정작업인 셈이다.

    평양은 알고 있다

    외교안보라인의 주요인사들이 사석에서 ‘VIP와의 친분’을 유달리 강조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최근의 논란으로 대통령의 신임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의식한 듯한 태도가 역력하게 읽혔다. 이른바 ‘외교부 헤게모니’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안보사안 실무에 청와대와 측근들이 직접 개입하게 된 것을 두고 정부 안팎에서 뒷말이 오가는 데 대해 안보라인의 핵심인사들 역시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었다.

    ‘MB 용인술’로 해부한 외교안보라인 난맥

    2000년 4월8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인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오른쪽)과 송호경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중국 베이징의 차이나월드 호텔에서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반면 실무부처의 경우에는 주요쟁점을 묻는 질문에 “위에서 결정할 일”이라며 답변을 피하는 일이 눈에 띄게 늘었다. 청와대 관계자들 역시 PSI 문제 등 현안에 대해 “대통령 본인께서 판단하실 것”이라고 답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모두가 대통령만을, 혹은 실세들을 쳐다보는 형국이었다.

    이 대목에서 안보라인 이외의 인사들이 안보사안에 관여하는 패턴, 다시 말해 ‘민간회사 CEO 스타일의 용인술’이 어떤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대선캠프 참모를 지낸 한 전문가는 “라인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비선(秘線)’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경계심을 표한다. 남북문제를 다루는 정부조직은 ‘일만 성사되면 누가 총대를 메든 상관 없는’ 민간회사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 안보사안, 특히 대북문제에 공식직위 이외에 있는 측근들의 영향력이 높아지면 평양 역시 이를 모를 리 없고, 결국 ‘힘 있는 비선’을 찾아 일을 추진하려 할 개연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 여권을 중심으로 회자되는 대북특사 아이디어나 그를 바탕으로 한 정상회담 추진론은 이 같은 우려를 더욱 짙게 만든다. 교착 상태에 빠진 개성공단 억류직원 문제나 금강산 관광, 남북 간 긴장고조 등은 이미 당국 간 회담의 수준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므로, 큰 틀에서 단번에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 골자. 한 정부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북측이 요구하고 있는 10·4선언 이행을 청와대가 이제 와서 수용하겠다고 밝히고 나서기도 어려운 만큼, 아예 그와 동격의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내는 것만이 돌파구라는 논리”라고 풀이했다.

    실제로 지난 1월 정문헌 통일비서관 임명을 두고 정부 주변에서는 이를 ‘이명박식 대북라인의 복원’과 연결해 해석하는 시각이 우세했다. 17대 국회의원으로 일하는 동안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집행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남북접촉의 경험을 쌓았던 정 비서관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평양과의 대화채널 문제에 고심해왔음을 감안하면, 대통령이 그를 발탁한 것은 그가 준비하고 있는 채널을 ‘인준’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었다. 실제로 정 비서관이 청와대 입성 후에도 남북을 오가는 인사들과의 접촉을 타진했음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된다.

    “대통령이 직접 챙길 수 있나”

    “대선 준비과정에서 이 대통령을 지켜보면서 흥미로웠던 것 한 가지가 권한을 전폭적으로 위임하는 2인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전문적인 영역에 대해서는 결정권을 줄 만한데도, 다른 참모들의 질시를 염려하는지 누군가 지나치게 성장했다 싶으면 자리를 옮기게 했다. 핵심 포인트다 싶은 부분, 특히 보안이 필요한 사안은 반드시 본인이 직접 결정했고 다른 누군가가 그 전모를 아는 것을 원치 않는 듯했다. 부하직원이 전체 그림을 알면 부정을 저지르기 쉬운 건설현장에서 익힌 노하우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 대통령의 대선캠프 정책 참모를 지낸 학계 인사)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다양한 인사들이 제각기 “북측 고위인사로부터 정상회담 추진을 타진받았다”며 권력핵심 인사들의 방문을 두드렸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0년 정상회담 준비과정에 대북송금 문제가 똬리를 틀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비선 접촉의 한계였다. 2006년에는 노무현 대통령 측근이던 안희정씨가 비밀리에 정상회담을 준비하다 수포로 끝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전직 안보부처 최고위 관계자는 “남북접촉의 관건은 단일화된 창구와 정확한 판단체계, 교차 확인”이라고 말한다. 공식적으로 그 임무를 수행할 사람을 지명해, 북측에서 보냈다는 제의의 의도가 무엇인지, 과연 믿을 만한 라인인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보라인 이외의 측근들이 남북접촉에 관여하기 시작하면 이런 체계가 유지되기란 쉽지 않다. 해당 인사들이 선뜻 안보라인 담당자에게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내온 대북라인의 신뢰성을 검토받을 리는 없기 때문. 여기에 ‘보안이 필요한 사안에서는 권한을 위임하지 않는’ 이 대통령 특유의 일처리 방식이 겹치면, 결국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비선 제의를 모두 대통령 본인이 직접 판단해 결정해야 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전직 정보당국 관계자의 말이다.

    “대통령이 일일이 믿을 만한 제의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게 과연 물리적으로 가능할까. 반드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비선이 위험한 것은 그 때문이다. 2006년 안희정씨 경우는 금전이 오가지는 않았다지만, 까딱 잘못하면 청와대는 물론 대통령 본인이 사기를 당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손발’의 상황

    이 같은 우려는 그간 남북 물밑접촉의 공식-비공개 창구의 실무역할을 독점해온 국가정보원의 현재 상황으로 인해 배가된다. 이 업무를 맡고 있는 것은 국정원 3차장 산하 대북파트다. 전통적으로 당국 간 공식회담이 열리기 전에는 북한의 통일전선부와 남한의 국정원 대북파트가 사전에 의제 등을 조율하는 것이 그간의 관례.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도 북한 수뇌부의 뜻이라며 접근해오는 각종 제의가 타당성이 있는지, 과연 믿을 만한 라인인지 북측에 재확인하는 작업도 국정원 대북전략국이 맡아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 같은 작업에 경험을 가진 직원들은 상당수가 해당 자리를 떠났다. 2000년과 2007년 정상회담에 모두 관여했던 서훈 전 3차장과 C모 전 대북전략국장은 아예 옷을 벗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임명됐던 한기범 전 3차장은 북한정보분석실 출신의 분석통이었고, 지난 2월말 임명된 최종흡 현 3차장 역시 현역시절 해외 업무를 오랫동안 담당해 남북대화 업무와는 인연이 없었다.

    특히 최근에는 당국 간 물밑접촉의 중추인 대북전략국장에 국내파트 수사분야 출신이 임명됐다고 국회 정보위원회 관계자들은 귀띔한다. 업무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인사라는 비판이 여권에까지 들려오고 있다는 것. 4월 하순 개성공단 접촉이 장소와 의제 문제로 승강이하느라 22분의 짧은 해프닝 수준으로 마무리된 것도 이 때문이 아니느겠냐고 한 정보위 관계자는 말했다. 국정원 차원의 물밑 사전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전직 국정원 최고위관계자는 “정상회담 같은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으면 사람은 금세 모이게 마련”이라며 “조직 특성상 보이지 않을 뿐, 전문성을 갖춘 사람은 많다”고 말했다. 임무 우선순위가 분명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일 뿐 실제로 힘이 실리기 시작하면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대북라인도 체계가 잡히리라는 것이다.

    혼이 났다는 것은…

    분명한 것은 대통령 본인과 측근그룹이 직접 나서 소방수 역할을 하는 식의 상황을 오래 지속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안보라인 핵심인사들에게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 내려졌으면 차라리 빠른 시간 안에 교체하는 것이 정공법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꼬여버린 남북관계 등 강파른 안보환경은 당분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상황이 악화 추세에 있을 때 말을 갈아타기란 쉽지 않다는 게 공직인사의 기본법칙이다. 6월16일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 이후에 고위급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청와대 주변을 맴돌지만 실행 가능성은 장담하기 어려운 수준. 다만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시절 핵심측근이었던 한 인사의 말은 이를 가늠할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귀 기울일 만하다.

    “MB가 부하직원을 질책할 때 얼마나 가혹한지는 정평이 나 있다. 당사자가 공개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할 만큼 호되다. 그렇지만 질책을 했다는 건 아직 그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정말 감이 안 된다고 판단한다면 돌아보지도 않고 바로 업무에서 제외시켜버린다. 기본적으로 부하직원에 대한 판단이 빠르다. 그리고 사람 바꾸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시절 고위 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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