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미 수행 취재 ‘대박’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대박’이었다. 방미 첫날부터 이명박 대통령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4·29 재보궐선거 참패에 따른 정국해법을 내놓았다. 무게가 엄청나게 실린 메가톤급이었다. ‘친박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 수행기자들이 옆에 있던 박 전 대표 측에 의향을 묻자 돌아온 대답은 “원내대표 경선원칙에 위배된다”는 한마디였다. 대통령과 당대표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 톱기사 감이었다. 그러자 박희태 대표가 7일 김효재 대표비서실장을 미국에 급파해 박 전 대표 설득에 나섰다. 4일 뒤면 귀국하는데도 말이다. 수행기자들로선 숨 돌릴 틈 없이 후속기사를 쏟아내야 했다.
이어 박 전 대표는 방미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 “친박이 발목 잡은 게 뭐가 있나”라는 비중 있는 발언으로 기자들에게 ‘애프터서비스’를 했다. 박 전 대표 일행의 귀국 발걸음은 가벼웠다. 박 전 대표가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를 거부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2009년 10월을 미리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아마 10월에도 경제는 여전히 어려울 것이다. 정부 여당을 향한 민심은 어떨까. 돌발변수 없이 현재의 국정기조가 유지되는 한 썩 나아지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이런 상황에서 10월 재보선은 한나라당에 또 다른 위기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문국현 의원에 대한 판결이 뒤집히지 않을 경우 친이계 좌장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서울 은평 보궐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MB정권의 상징 이재오’에 맞서 민주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창조국민당 등 야당은 후보단일화를 시도할 것이다. 심상정 전 진보신당 공동대표는 이곳 출마를 타진 중이다. 4월 재보선 때 톡톡히 재미 본 ‘MB정권 심판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박 전 대표와는 “독재자의 딸” “좌시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주고받으며 앙금이 깊은 이 전 최고위원에겐 또 다른 적(敵)이 있다. 박 전 대표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박사모’다. 박사모가 휘젓고 다니면 친박 유권자의 표심이 흔들린다. 여권 표 결집에 타격을 입는다. 2008년 총선 때 이미 박사모는 서울 은평에서, 경남 사천에서 친이계를 무던히도 괴롭혔다. 결국 이재오, 이방호라는 친이계 두 거물이 모두 낙선했다. 2012년엔 총선, 대선이 동시에 열리는 ‘큰 판’이 벌어진다. 거대 친이 계파의 수장자리에 올라 총선을 지휘하기 위해선, 차기 대선주자 킹 메이커 역할을 하기 위해선 이 전 최고위원은 반드시 10월에 국회에 입성해야 한다.
운명의 10월 재보선
판결이 달라지지 않아 경기 수원에서 보궐선거가 치러진다면 민주당의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출마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경기 안산에서 보궐선거가 실시될 경우 유권자들의 출신지역 분포상 한나라당에 녹록하지 않다.
경남 양산에서 보궐선거가 치러지면 친이계인 박희태 대표가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는 여기서 반드시 금배지를 달아야 김형오 국회의장에 이어 그토록 바라던 후반기 국회의장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친박계엔 선수(選數) 높은 의원들이 널렸지만 친이계엔 희귀해 그 어느 때보다 여건이 좋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점도 많다. 아직 낌새는 없지만, ‘친박 무소속 후보’의 출현이 그것이다. 4월 경주 재선거에서 친박 무소속 정수성 후보는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의 최측근인 정종복 한나라당 후보를 가볍게 제압했다. 영남에서 친박 무소속 후보의 막강한 파괴력은 이미 뉴스도 아니다. 10월 재보선은 이렇듯 미시적으로 분석해 들어갔을 때 어느 한 선거구도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쉽지 않다.
그런데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얼마 전 박 대표와 이 전 최고위원이 만나서 친박계 좌장 김무성 의원을 원내대표로 추대하는 방안을 합의했다고 한다. 이 전 최고위원 측은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박 대표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전 최고위원과 김무성 원내대표 문제를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다 만나서 이야기했다”고 시인했다. 이어 이 대통령과 박 대표가 청와대에서 만나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를 합의해 발표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