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을 이 나비넥타이의 신사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 밀리고 밀려 지금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다. 여권도 긴장된 마음으로 그의 운명을 지켜보고 있다. ‘천신일 뒤’에는 더 이상 방어막이 없다. ‘정권 그 자체’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박연차 게이트는 두 줄기 흐름으로 진행되는 양상이다. 하나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600만달러, 40만달러, 명품시계 등 뇌물을 제공한 의혹이다. 거의 일단락되어가고 있다. 다른 하나는 박 전 회장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피하기 위해 천 회장을 통해 현 정권에 로비를 한 의혹이다. 천 회장은 ‘전(前) 정권 패밀리’ 박 전 회장의 ‘의형제’이자 ‘멘토’이기도 하다. 언론에선 두 사람과 관련된 의혹 보도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검찰은 천 회장을 출국금지한 데 이어 계좌추적,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천신일-박연차 29년 스토리
천 회장은 검찰 소환을 앞두고 ‘신동아’에 전화를 걸어와 꽤 긴 시간 인터뷰했다. 그는 국민적 이슈의 중심인물이지만 언론과의 본격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28~29년 전 박 전 회장과의 만남에서부터 세중나모 주식 거래에 이르기까지 박연차 게이트의 서른 가지도 넘는 쟁점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의 육성은 때로는 확신에 넘쳤다. “세무조사와 관련해 10원도 받은 적 없다”면서 박연차 게이트와 무관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이 사건의 사실관계가 다소 규명됐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천 회장의 입장에선 이런 점들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요인이다. 오해인지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흔적인지는 이제 검찰이 규명해야 할 몫이다. 인터뷰 막바지 그는 “상당히 억울하다. 내가 잘못되면 친구인 대통령도 모양이 좋은 건 아니다”라고 했다.
A4 6장 분량의 서신
검찰수사는 ‘정치적 중립’이 생명이다.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를 엄단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은 ‘기계적 균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와 타당한 결론으로 입증되는 ‘품질 높은 수사’가 요구되는 이유다.
천 회장과의 인터뷰는 ‘신동아’가 그에게 A4지 6장 분량의 e메일 서신 겸 질의서를 보내면서 비롯됐다. 그간 독자적으로 취재한 내용과 주관적 소감을 적은 글이었다.
하루 뒤 천 회장에게서 응답이 왔다. 이성적 전략 차원이라기보다는 글에 이끌린 정서적 동기에 의해 인터뷰에 응한 것으로 보였다. 그는 “소설 쓰지 마세요”라며 그간의 언론보도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이어 ‘신동아’와 인터뷰한 뒤 “오늘 얘기한 그대로 쓰세요”라고 특별히 주문했다. 검찰조사를 앞두고 표현이 잘못 전달되지 않을까 신경을 쓰는 듯했다. 그가 말한 내용은 거의 미세한 차이도 없이 활자화했음을 밝혀둔다. 천 회장은 회장님, 박 전 회장은 박연차 회장으로 호칭했다.
1부 의형제:문일이 대신 동생 하겠습니다
▼ 회장님께선 박연차 회장과 어떻게 알게 되었고, 두 분의 친분은 어느 정도로 여기고 있습니까? 이 부분부터 설명해주시죠.
“우리는 오래전부터 안면이 있었는데 28~29년 전쯤 내 동생 문일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동생 장례를 치른 장지에서 (동생 친구인) 박 회장을 오랜만에 만났죠. 박 회장이 장지에서 내게 ‘형님 슬퍼하지 마십시오. 제가 문일이 대신 동생 역할하겠습니다’ 뭐 이런 얘기였죠.”
천 회장은 평소 스타일인지 긴장한 탓인지 말을 끝낼 때 마지막 발음을 지그시 누르며 끌고 갔다. ‘얘기였죠’는 ‘얘기였오~’로 말한다. ‘성대모사’ 대상이 되기에 딱 좋은 이런 점은 대화 내용의 엄청난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을 약간 탈(脫)권위적으로, 유머러스하게 보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