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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기열전(史記列傳)’⑨

순리열전

공직자가 단순한 원칙만 지켜도 세상이 달라진다

  • 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순리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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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리(循吏)는 청관(淸官)이다. 일을 투명하게 처리한다. 불의에 따르지 않고 이권을 탐하지 않는다. 오직 국민과 공익의 편에 선다. 이들의 언행은 복잡하지 않다.
순리열전
언제였던가, 장마가 져서 서울 시내 하수구가 범람한 적이 있다. 하수구 범람은 흔한 일이었지만, 그해에는 수해 피해가 커서인지 서울시의 상하수도 관리가 새삼스럽게 못마땅했다. 술자리에서 우리는 얼굴도 모르는 ‘책임자’들의 안이함을 성토했고, 조용히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선배가 이웃나라 이야기를 했다.

일본에 하수도 관리 책임자가 있었다. 그는 매우 강직한 관리였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폭우로 도쿄의 하수도가 조금 넘쳤는데, 그 사실을 안 그 관리가 할복자살을 해버렸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죗값을 스스로 치른 것이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하수도가 조금 넘쳤다고 자살까지 하는 그 관리의 이야기는 극단적이었지만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이야기의 진위는 파악하지 못했다. 순리열전을 읽으면서 나는 오래전 그 선배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선배는 그때 이런 말을 했다.

“적어도 관리로서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이 그 정도는 되어야 해.”

5명의 청관

정직한 관리들이 다스리는 마을에서 사람들은 편하게 산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고, 옛 시절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탐관오리의 학정을 견디지 못한 백성들이 참고 참다가 드디어 봉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세상에 혁명이나 폭동은 관리들 탓이기도 하다. 우리의 근현대사만 둘러보아도 이러한 탐관오리의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심지어 나라를 팔아먹은 관리들도 있다. 사마천의 ‘순리열전’이 각별한 것은 정직한 정치인, 관리들이 우리 곁에서 입법, 사법, 행정의 일을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순리를 청관(淸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맑을 청’을 쓰니 일을 맑고 투명하게 처리하는 관리를 뜻한다. 검소하고 단순해야 한다. 책임감이 강하고 사사로움이 없어야 한다.

사마천이 비교적 담담하게 기록한 고대 중국 주대의 봉건국가에서 일한 순리들의 이름을 따로 노트에 적어두었다. 손숙오, 자산, 공의휴, 석사, 이리 모두 5명이다. 사마천은 이 다섯 명의 청관 이야기를 통해 지금 이 시대에 과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이들은 국가의 절대 권력으로서 왕을 모시고 백성을 보살핀 관리들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사마천은 미리 말한다.

“법령이란 백성을 교화시키고 선도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형벌이란 간사하고 악한 짓을 금지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문(법령)과 무(형벌)가 갖추어져 있지 않을 때, 선량한 백성들이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품행을 단정히 하는 것은 관리가 법 집행을 혼란스럽게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직분을 다하고 법을 지키면 바르게 다스릴 수 있는데, 어찌 위엄이 필요하겠는가?”

백성을 억누르기 위한 위엄이나 공권력은 법령과 형벌이 올바로 집행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정치가 올바르게 되지 않는 나라에는 반드시 탐관오리가 있다. 공자는 힘없는 백성에게 정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이야기했다. 올바르지 못한 정치란 굶주린 호랑이보다도 무서운 것이다. ‘예기(禮記)’에 이러한 일화가 나온다.

공자가 태산 곁을 지나는데 어떤 부인이 무덤 앞에서 슬피 울고 있었다. 공자는 수레의 횡목을 잡고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한 다음 연유를 물었다.

“부인이 곡하시는 모양이 분명 큰 슬픔이 겹친 듯합니다.”

부인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옛날 저의 시아버님께서 범에게 물려 돌아가셨습니다. 또 제 남편도 범에게 물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 아들마저 범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어째서 다른 곳으로 가지 않으십니까?”

부인이 답하였다.

“여기는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돌아보며 말했다.

“제자들아, 명심하거라. ‘가혹한 정치는 범보다 더 사나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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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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