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21세기 ‘사기열전(史記列傳)’⑨

순리열전

공직자가 단순한 원칙만 지켜도 세상이 달라진다

  • 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순리열전

2/4
순리열전

조선조를 대표하는 영의정으로 꼽히는 황희. 조선시대 500여 년을 지탱했던 선비의 청렴 강직과 여유를 현대 지식인은 거울로 삼아야 한다.

관리들이 탐관오리가 되면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백성의 살림살이는 빈곤해진다. 굶주린 선량한 백성들이 도둑이 되어 사방에 돌아다닌다. 밖에 나가 일을 할 때도 집안 걱정을 하게 된다. 이러한 나라에 법질서가 제대로 설 수 없다. 집안의 기둥 같은 사내 3명을 모두 범에게 잃은 여인은 그래도 정치가 편안한 땅을 택하는 것이다. 범이야 산에서 돌아다니는 놈이니 덫이나 함정을 놓아 잡을 수 있지만, 그러나 가혹한 관리들은 ‘날개 달린 범’처럼 잡을 수가 없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직 이익 추구에만 급하고 어떻게 목민(牧民)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다. 그래서 백성들은 여위고 곤궁하고 병들어 구렁텅이에 줄을 이어 그득히 넘어졌는데도 목민관들은 아름다운 옷에, 기름진 옷에 혼자 살이 찌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금지법이 없는 나라

사마천은 우선 법령을 잘 지켜 나라를 편안하게 한 손숙오 이야기를 꺼낸다. 그가 초나라의 재상으로 재임하는 동안 관리와 백성들이 서로 화합하고 풍속이 아름다워졌으며 정치는 느슨하게 했지만 ‘금지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살기 힘든 나라는 금지법이 많은 나라다. 관리들 중에는 간사한 자가 없었고, 도둑도 생기지 않았다. 가을과 겨울 백성들에게 산에서 사냥을 하고 나무를 베도록 했고, 봄 여름에는 물고기를 잡도록 했다. 백성들은 저마다 편익을 얻게 되었고 생활은 안정되고 즐거웠다.

이렇게 시장경제가 안정되자 초나라 장왕은 화폐를 크고 무겁게 만들었다. 이 법령이 발표되자 백성들은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게 되었고 시장경제가 혼란스러워졌다. 이 소식을 들은 손숙오는 왕에게 말했다. “전날 화폐를 바꾼 것은 이전의 화폐가 가볍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령이 와서 ‘시장이 혼란해져 백성들은 편안히 있을 곳이 없고 장사를 계속할지 안 할지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이전대로 회복시켜주십시오.”



순리열전

천주교 원로 정의채 신부.

재상을 신임하는 왕이 신하의 뜻을 허락하자 다시 시장은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이후 왕이 또 수레의 높이를 높이는 법령을 내리자 손숙오는 이렇게 말했다. “법령을 자주 내리면 백성들은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 모르게 되므로 좋지 않습니다. 왕께서 꼭 수레를 높이고자 하신다면, 청컨대 그 마을의 문지방을 높이도록 하십시오. 수레를 타는 사람은 모두 군자이고, 군자는 자주 수레에서 내릴 수 없습니다.”

문지방을 높여 수레의 높이를 더 높이게 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꼭 지켜야 하는 법령보다는 백성이 스스로 알아서 하게 하는 것, 이것이 손숙오가 통치하는 방법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백성들이 문지방을 높인 뒤 반 년이 지나자 백성들 스스로 수레의 높이를 높였다. 높은 문지방에 낮은 수레가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정치가 위대한 정치

손숙오는 백성들이 스스로 움직이게 한다.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그 법령이 필요한 이유를 백성들이 스스로 알게 한다.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 움직이게 하니 불평불만이 쌓일 틈이 없는 것이다. 사마천은 그의 행적을 사실만 간단하게 적었다. 재상으로 재임하면서 그는 매우 단순하게 일을 한다. 하지만 이 단순함이 바로 위대한 정치다.

우리 현대사에서 어려웠던 시절은 각종 특별법이 만연했던 시절이다. 문지방이 낮은 곳에 높은 수레를 만들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특별한 원칙보다는 그때그때 권력을 악용하는 법을 만들어 국민을 불편하게 했다. 매우 복잡하고 강압적이고 폭력적이었다.

이러한 세상을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피해의식이 있다. 억압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자신의 삶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러다가 조그마한 피해라도 보게 되면 비분강개하고 울분을 터뜨린다. 하지만 이미 사회의 법체계는 모든 사람의 숨통을 죄고 있다.

손숙오의 몇 자 안 되는 간단한 업적은 글로 쓸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놓았다. 그는 재상을 세 번이나 역임했는데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재능을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세 번 퇴임했는데 후회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과실이 없기 때문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는 말은 그의 행적에 비유할 수 있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늘을 우러러보아 한 점 부끄러운 일이 없고 굽어보아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이 없는 것이 둘째의 즐거움이다.”

법령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이미 법체계가 견고하고 투명해야 한다. 그래서 입법부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만약 손숙오의 시대에 법체계가 어둡고 무서웠다면 그 같은 재상은 등장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어 사마천은 정나라의 재상 자산을 이야기한다. 자산이 재상으로 자리에 앉았을 때에는 전임자가 나라의 정치를 어지럽게 한 후였다. 그가 재상이 되자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1년이 지나 소인배들의 경박한 놀이가 없어졌고 반백의 늙은이들이 무거운 짐을 나르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은 밭을 갈지 않았다. 2년이 지나자 시장에서 값을 에누리하지 않았고 3년이 지나자 밤에 문을 잠그는 일이 없어졌다. 길에서 떨어진 물건을 줍는 사람도 없었다. 4년이 지나자 밭갈이하는 농기구를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고 5년이 지나자 척적(사방 1척 크기의 나무판으로 군령을 기록함)이 쓸모없게 되었고, 상복을 입는 기간은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잘 지켜졌다.

자산은 26년간 공직에 몸담고 세상을 떠난다. 대장부로 태어나 자신의 할 일을 다하고 여한 없이 삶을 마감한다. 명재상인 자산이 세상을 떠나자 백성들은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자산이 우리를 버리고 죽다니, 백성들은 누구를 믿고 산단 말인가”라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생선을 좋아하기에 받지 않는다”

정치는 권력이고 권력은 돈과 연결되어 있어 온갖 추문이 난무하는 나라는 고대의 중국에도 여럿 있었다. 권력과 돈의 관계에서 완전히 투명한 정치인을 국민은 바란다. 세 번째 등장하는 노나라의 재상 공의휴가 그러한 면을 잘 보여준다.

공의휴는 재상이 된 후 공무원들이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 않게 했다. 많은 월급을 받는 고위공직자들은 머리핀 하나도 선물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선물과 뇌물의 선이 어디인지를 놓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생선 한 마리도 공직에 있는 동안에는 받지 말도록 한 것이다. 그것이 비록 진심 어린 선물이라 할지라도 받는 순간에 뇌물이 되어버리는 권력의 속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재상으로서 백성보다 잘 먹고 잘살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2/4
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목록 닫기

순리열전

댓글 창 닫기

2021/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