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호

캐리비안베이

리얼보다 더 리얼한 인공의 낙원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09-09-09 10: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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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렁이는 파도, 짜릿짜릿한 슬라이드, 가무잡잡하게 선탠한 비키니 미녀들과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하는 남자들…. 워터파크의 대명사 격인 ‘캐리비안베이’가 자동적으로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이다. 카리브해를 모방했다는 이 거대한 물놀이장은 실제 바다보다 더 리얼하지만 자연이 주는 불편함은 말끔히 상쇄된, 복제된 바다이자 인공의 낙원이다.
    캐리비안베이
    중세의 시인 단테는 33세 되던 해의 성(聖)금요일 전날 밤, 갑자기 길을 잃고 숲속을 헤맨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하룻밤을 보낸 뒤 마침내 아침 해가 비치는 언덕 위로 오르려 했으나 이번에는 세 마리의 야수가 길을 가로막는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단테. 이때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단테를 구해준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지옥으로 간다. 중세 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신곡’의 도입 부분이다. 마침내 지옥으로 들어가는 단테. 그 문 위에는 어두운 빛깔로 무시무시한 말이 적혀 있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온갖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향해 간신히 입을 연다. “스승이여, 저 뜻이 제겐 무섭습니다.”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 ‘만토바의 다정한 영혼’으로 불리는 현자(賢者)는 단테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넨다.

    “여기선 온갖 의심을 버려야 하고 온갖 주저함은 죽어 마땅하도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온갖 절망을 버릴지어다



    자, 이제 캐리비안베이로 떠나보자. 온갖 의심과 주저함을 버리고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을 타고 질주해보자.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 그 골짜기 안에 ‘지옥’이 아니라 ‘낙원’이 있다. 캐리비안베이는 홈페이지에 스스로를 ‘365일 즐거운 물의 나라’라고 표현한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이라든지 ‘알고 즐기면 더 재미난’ 같은 수식어가 홈페이지 구석구석을 장식한다. 이 ‘즐거운 나라’의 모국인 에버랜드도 ‘365일 꿈과 모험이 가득한 축제의 나라’로 스스로를 표현한다.

    일종의 관습적인 광고문구이지만, 만일 정색을 하고 이 문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용인시 포곡읍의 한 골짜기는 대립과 투쟁과 살벌한 생존경쟁이 엄연한 이 한반도에서 유일무이한 지상낙원이다. ‘꿈과 모험이 365일 가득한 온 가족의 즐거운 나라’, 바로 캐리비안베이다.

    캐리비안베이로 향하는 첫 번째 관문, 영동고속도로 마성톨게이트는 ‘온 가족의 즐거운 나라’로 향하는 문답게 테마파크의 조형성을 보여준다. 톨게이트의 공식 이름인 ‘마성’이라는 글씨가 투박한 서체로 찍혀 있고 그 위로 수십 년 동안 한반도의 대표적인 테마파크로 군림해온 에버랜드의 총천연색 로고(더욱이 전환사채 문제로 TV 9시뉴스에서도 자주 보았던)가 당당하게 세워져 있다. 휴가철 곳곳의 인산인해와 땡볕 아래에 꼬리를 문 고속도로 위의 자동차 행렬을 빠져나온 여행객으로서는 이 인상 깊은 톨게이트 조형물이 마치 저 중세의 시인이 기록했던 음울한 문장을 가볍게 패러디한 듯싶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온갖 절망을 버릴지어다.”

    사실 이 마성톨게이트를 빠져나가는 거의 모든 차량은 흡사 정치적 신념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이와 같은 믿음을 갖고 있다. 세상잡사 모든 번잡한 약속과 스트레스와 두려움과 절망을, 잠시나마 말갛게 잊어버린 채 ‘365일 즐거운 물의 나라’로 망명을 떠나는 것이다. 이 물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온갖 의심과 온갖 주저함’을 버려야 한다.

    문제는 비용!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그러나 이 역시 ‘숫자의 마력’ 속에 갇혀 버린다. 이 나라에 입국하는 데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만, 그 누구도 현찰을 꺼내서 입국 수속을 밟지는 않는다. 다양한 종류의 카드와 할인 방법과 쿠폰이 현찰을 대신한다. 사실 이 나라는 현실의 모든 것을 ‘대신’한 ‘유사 현실’이다. 저 중앙아메리카의 카리브해가 용인시 골짜기에 있을 리 만무하건만, 어쨌거나 신국(神國)의 명칭은 캐리비안베이다.

    현실의 바다에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도 차량으로 서너 시간을 더 달려가야 하지만 이 신국 안에는 ‘유사 바다’가 조성되어 있고 심지어 적절한 크기의 백사장도 설치되어 있다. 현찰을 대신하는 수많은 카드와 쿠폰과 할인 방법은 결국 한 달 후 날카로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건만, 입국 과정에서 그것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제의 현실과 곧 다가올 미래의 현실만 잠시 잊어버린다면, 그러니까 ‘온갖 의심과 온갖 주저함’을 버리기만 하면, 캐리비안베이는 짜릿한 쾌락의 성소로 변한다.

    “색다르고 다양한, 젊고 세련된, 그런 공간이 바로 캐리비안베이”라고 취재진을 안내한 삼성에버랜드 홍보팀 정순지 주임은 말한다. 입사 5년차인 정 주임은, 이 ‘인공낙원’에 입사하기 전, 해마다 여름이면 캐리비안베이를 찾은 마니아였다. 지금은 이 공간이 ‘직장’이 된 관계로 예전처럼 맘껏 즐길 수만은 없는 처지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캐리비안베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젊고 세련된’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고 한다. 가족 단위로 이용하는 사람이 많은 워터파크이지만 초기에 형성한 ‘젊고 세련된’ 이미지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아이들 손을 잡고 온 부모들 역시 ‘젊고 세련된’ 이미지를 일부러 선택한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최초의 테마파크는 디즈니랜드

    캐리비안베이는 1996년 개장했다. 해적들이 출몰하던 중세 시대의 카리브해라는 테마를 다양하게 변주한 물놀이시설이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는 국내 최초의 워터파크다. 연면적 3000평(9918㎡)에 약 6600t의 물을 담고 있다. 이곳의 유수풀은 550m에 달하는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강원도 홍천에 오션월드가 등장해 이 나라의 워터파크를 양분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최초’와 ‘최대’의 프리미엄은 캐리비안베이가 갖고 있다. 그 두 가지 사실이 ‘최고’를 입증하는 것이냐 하면, 이는 이용자의 주관적 기호와 인상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있으므로 잠시 배제할 수밖에 없는데, 어쨌거나 캐리비안베이가 테마파크 역사에 커다란 분기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휴양레저 문화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캐리비안베이

    캐리비안베이는 물놀이 하나로 감각의 쾌락을 극대화하는 ‘어트랙션’의 집합처다

    고전적 의미의 테마파크는 민속, 자연, 과학기술, 환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객에게 감각적 쾌락을 극대화해주는 위락시설을 말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최초의 테마파크는 1955년 만화영화 제작자 월트 디즈니가 로스앤젤레스 교외 애너하임에 만든 디즈니랜드다. 그 시작은 만화영화 속 캐릭터를 활용한 차원의 나들이 공원이었으나 곧 ‘모험의 나라’‘동화의 나라’‘미래의 나라’ 등을 구축하면서 디즈니랜드는 그 자체로 독립적 테마파크로 발전했다. 이를 바탕으로 월트 디즈니사는 1971년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LA 디즈니랜드의 100배가 넘는 월트디즈니월드를 개설해 위락레저 문화를 선도했고 이를 일본 지바현, 프랑스 마른느라발레 등으로 확장해 가히 ‘파크 아메리카나’를 완성했다. 디즈니를 비롯해 세계 곳곳의 테마파크는 민속, 건축, 우주, 역사, 만화, 산업, 식물, 유적, 전래 민담 등을 활용해 구성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 전략기획팀의 김희진씨가 ‘한국관광정책’(2002년 2호 통권 제13호)에 발표한 ‘세계 테마파크 산업 동향’에 따르면 21세기 들어 세계 테마파크 산업의 두드러진 특징은 ‘대형 테마파크 체인의 약진’과 ‘복합형 리조트 단지 개발’로 나타났다. 김씨가 이 글을 쓸 당시인 2002년 현재 디즈니 계열의 경우 11개의 테마파크에서 연간 9470만명, 38개 체인의 식스플래그스는 5120만명, 5개 파크를 보유한 유니버설 계열은 3120만명을 각각 유치했는데 이는 이 대형 체인들이 단일 테마파크에 비해 일관된 디자인, 다양한 마케팅, 막대한 투자재원 조달 등에서 앞섰기 때문이다. 또한 대형 테마파크는 기존의 시설 기반에 복수의 차별화된 테마파크를 개발하고 여기에 숙박, 쇼핑, 식사, 엔터테인먼트 등을 결합해 이용자의 체재기간 확장형으로 발전해왔다.

    김희진씨에 따르면 국내 테마파크 업계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장규모가 확대되었으며 1997년의 IMF 외환위기로 신규 개장 및 이용자 수가 일시적으로 감소했으나 곧 중소도시에까지 다양한 종류의 테마파크가 들어서는 활황세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1976년, 가족 단위 나들이 공원 개념인 ‘용인 자연농원’으로 시작한 이 공간은 1996년 ‘에버랜드’라는 브랜드로 거듭났고 바로 그해에 캐리비안베이까지 개장해 국내 테마파크 산업을 선도해왔다.

    국내 최초의 워터파크

    그러니까 캐리비안베이는 수십 년의 역사와 노하우를 가진 테마파크의 이란성 쌍생아로 ‘물놀이’ 하나만으로 감각의 쾌락을 극대화하는 ‘어트랙션’의 집합처가 되었다. ‘끌어당김’이라는 뜻을 지닌 어트랙션은 적어도 테마파크 관계자들에게는 이용자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뒤흔들어놓는 매혹적인 놀이시설이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캐리비안베이 같은 테마파크, 즉 워터파크는 ‘물’이라는 기본적인 소재 자체가 강렬한 어트랙션이 되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캐리비안베이는 개장 10주년이 되던 2006년에 워터파크 사상 최초로 누적 입장객 1000만명을 돌파했고 2007년에는 미국 테마엔터테인먼트협회와 테마파크 컨설팅업체 ERA가 공동으로 조사한 ‘세계의 워터파크 순위’ 3위로 선정되었다.

    현장의 안전과 시설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박재범 과장은 “개장 초기에는 워터파크 개념이 생소해서 이용자들이 설레면서도 조심스럽게 즐겼지만 10여 년의 역사가 흐른 이제는 좀 더 과감하면서도 짜릿한 즐거움을 원한다. 그만큼 ‘라이프가드’(현장안전요원)의 역할이 커졌다. 또한 애초의 개념을 최대한 살리되 한국형 물놀이 문화를 부분적으로 접목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사실 장년층 이용자에게 캐리비안베이는 가족들 짐을 지키면서 물끄러미 앉아 있어야 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휴가철 극성수기 때면 이 공간에는 2만명 이상이 운집하기 때문에 맘 놓고 쉴 만한 시설과 공간이 부족하기 쉽고, 그럴 때 장년층 이용자는 상당한 시간을 가족들 짐과 공간을 지키는 ‘마크맨’이 되는 것이다. 홍천의 오션월드가 후발업체의 특장을 최대한 살려 찜질방, 목욕장, 스파, 쾌적한 샤워시설 등의 ‘한국형’ 스타일을 구비한 경쟁상대로 떠오르면서 캐리비안베이도 애초의 ‘액션 워터파크’ 개념만을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기는 해도 13년 노하우와 정교한 시스템은 후발업체는 물론 세계 어디서도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게 박재범 과장의 설명이다.

    카리브해 바다의 거대한 모사품

    박 과장이 강조한 것처럼 캐리비안베이의 모든 시설이 수미(首尾)일관하게 지향하는 바는 ‘리얼보다 더 리얼한’ 가상세계의 구현이다. 이 점은 라이프가드 220여 명을 현장에서 통솔하는 박동영 대리도 특히 강조하는 부분이다. 평소에는 40명 정도가 일하지만 여름철에는 220여 명이 현장에서 활동한다. 일시적으로 이 많은 인원을 충원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무엇보다 일정한 단계와 시스템을 거쳐 원기왕성한 젊은이들을 침착한 현장 라이프가드로 교육시키는 일은 만만치 않다. 박동영 대리는 “바로 자기 앞에서 누군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이 최고의 원칙이라고 강조한다.

    “만약 바닷가로 떠났다고 상상해보자. 여러모로 불편한 게 많다. 파도는 찝찔한 소금기를 남기고 백사장에는 쓰레기도 많다. 고성방가 풍조도 여전하다. 샤워시설도 마땅치 않고 간식을 먹기도 불편하다. 그렇지만 캐리비안베이는 이 모든 불편함이나 불쾌감이 상대적으로 적다. 물론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바닷가라고 해서 요금이 덮어놓고 싼 것은 아니다.”

    박 대리의 말처럼 캐리비안베이는 중앙아메리카 바다를 흉내낸 일종의 거대한 ‘모사품’이지만 이 모사품은 적어도 시설 그 자체의 측면에서 오히려 실제보다 더 쾌적하고 편리하다. 게다가 다양하면서도 안전한 ‘어트랙션’까지 제공한다. 실제의 바다는 익사의 위험이 있지만 이곳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 실제의 바다는 찝찔하고 샤워기에서는 졸졸 물이 새는 정도지만 이곳의 시설들은 바다를 단순히 복제한 차원을 넘어선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베이 코인’이다. 요즘이야 이러한 이용요금 결제 방식을 동네 찜질방에서도 적용하고 있지만 1996년 처음 개장했을 당시, 이용자들은 베이 코인이라는 획기적인 결제 방식에서부터 ‘충격’을 먹었다. 이전에는 어떠했는가. 동네 수영장, 해변, 계곡 등지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물건은 정말 사소하게도 ‘지갑’이었다. 사실 그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어디로 여행을 떠나더라도 반드시 지갑을 챙겨야 하는데 수영복 차림에 지갑이 든 가방을 소중히 간수해야 하는 일은 여간 조심스럽고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랬는데 캐리비안베이가 그 걱정을 일거에 해결한 것이다. 이용자들은 일종의 후불 결제장치인 베이 코인을 손목에 차고 맘껏 놀 수 있었다. 지갑이며 손가방 같은 일상 소품을 비일상의 레저 공간에서도 악착같이 건사해야 했던 과거와 작별하는 순간이었다. 레저용품을 빌리거나 음료수를 마시거나 간식을 사 먹을 때마다 손목에 착용한 베이 코인을 기계에 가볍게 대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쾌락의 일관 관리시스템!

    캐리비안베이
    신성이나 자연성은 생략된 인공의 바다

    베이 코인으로 시작한 캐리비안베이의 시설물 이용은 상상 가능한 모든 물놀이의 집중적인 제공으로 압축된다. 파라솔 아래 한가로이 앉아 쉬는 것, 시원한 계류에 발을 담그는 것, 완만히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는 것,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에 몸을 던지는 것 등 모든 물놀이가 캐리비안베이에 집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어트랙션’ 시설들은 ‘집중 제공’이라는 방식으로 관철된다. 서너 가지 요소가 뒤엉켜 혼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시설들이 정교하게 연계되어 있으되 각각 독립적으로 설비되어 최고 수준의 쾌락을 집중적으로 선사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문화평론가 정준영은 계간 ‘리뷰’ 1996년 겨울호(통권 9호)에 게재한 ‘캐리비안베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에서 캐리비안베이의 조성 원리를 ‘효율성’이라는 키워드로 풀이해 쓴 바 있다. “효율성이란 하나의 감각을 순수한 형태로, 집중적으로 자극함으로써 가능해지는 만족의 극대화를 의미한다. 파도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파도타기를 가능하게 하는 최적의 조건에서 집중적으로, 또 선탠을 원한다면 역시 선탠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에서 집중적으로 선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거추장스러운 다른 여건의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만족은 극대화될 수 있다.”

    오래전, 인간이 미처 자연의 원리를 다 깨닫지 못해 천하만물의 생동에 신의 섭리가 어김없이 임재했다고 믿던 때에, 그 무렵의 삶은 신성이 인간의 일상까지 굽어보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신성이 말갛게 소멸되었다. 종교생활 여부와 상관없이 오늘날의 자연 변화는 물리적인 탐사의 세계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여름 휴가철의 일사불란한 도시 탈출은 우리가 잿빛의 콘크리트 안에서만 살 수는 없는 자연의 한 존재임을 스스로 증명하고자 하는 악착같은 행렬이다. 광막한 바다 앞에서, 담록색 계곡 사이에서, 험준한 산령 위에서 우리는 거룩한 신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자연성의 따스한 위로를 받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저 18세기의 바이마르 재상처럼 훌쩍 이탈리아로 떠나 한 시대를 뒤바꾸게 될 여행서를 집필할 정도는 되지 못한다. 19세기의 영국 학자처럼 해양 측량선을 타고 생태의 기원을 탐사할 만한 위인도 되지 못하며 20세기의 어느 인류학자처럼 현대의 시공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그 나름의 문명을 일구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재간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2박3일의 피서든 한나절의 운행이든 적어도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여정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자연성의 회복이라는 명제 하나쯤은 생각하고 떠나게 마련이다. 강화도의 시인 함민복이 갯벌에 대해‘부드러움 속엔 집들이 참 많기도 하지’라고 썼을 때, 우리는 그와 같은 자연성의 회복을 삶의 중요한 화두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 한반도 곳곳에 속속 들어서는 대규모 테마파크를 찾아나선다. 테마파크는 스스로를 현실의 불편과 불쾌를 잊게 해주는 ‘꿈과 낭만과 즐거움’으로 가득 한 공간이라고 소개한다. 여름이면 캐리비안베이나 오션월드 같은 워터파크는 짜릿한 ‘어트랙션’으로 말 그대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신성(神性)은 물론이요 자연성(自然性)마저, 사실은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는지도 모를 이 거대한 소비와 욕망의 시대에 산하 곳곳의 테마파크는, 일부러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현실의 고통이나 대립을 일시적으로나마 잊어버리고자 하는 우리들의 ‘인공낙원’임에 틀림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영동고속도로 마성톨게이트의 과장된 장식과 조형은, 거꾸로 세워진 현대의 ‘지옥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선 온갖 의심을 버려야 하고 온갖 주저함은 죽어 마땅하도다.” 이제, 거대한 일관 관리시스템으로 들어가 비용을 지급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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