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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시네마 테라피 ⑨

국가대표급 낙오자들이 선사하는 웃음과 눈물

  • 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국가대표급 낙오자들이 선사하는 웃음과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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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급  낙오자들이 선사하는 웃음과 눈물

시골마을 소녀들이 역도선수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영화 ‘킹콩을 들다’ 역시 주변부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관객에게 감동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

촌구석의 소녀들, 세상을 놀래다

소녀의 이름은 영자다. 촌스러운 이름만큼이나 모습도 초라하고 버려진 우유곽을 뒤져 남은 우유를 마실 만큼 가난하다.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영자는 당장의 끼니가 걱정인 소녀다. 찌질하다고 말하기에는 가슴 아프지만 모습 자체로는 영락없는 사회적 낙오자다. 그런 소녀가 서울에서 온 엉뚱한 선생님 덕분에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역기를 들면서 소녀의 삶은 달라진다.

운동 하나 잘하면 학교의 명예가 드높아지던 시기, 비인기 종목인 역도는 보성여중을 새롭게 빛내줄 스포츠로 각광받는다. 하지만 우락부락하니 위험하기도 하고, 남성적인 스포츠라 가난하고 힘든 여학생들만 하나둘 모여든다.

‘킹콩을 들다’는 전형적인 비주류 스포츠 드라마의 계보에 속한다. 최근의 비주류 스포츠 드라마들은 스포츠라는 각본 없는 드라마 위에 루저들의 삶을 겹쳐놓는다. 사회적으로 낙오된 인물들은 스포츠를 통해 새로운 인물들로 거듭난다. ‘킹콩을 들다’에서는 가난하고 살기 힘들던 소녀들이 ‘역도’를 통해 미래를 만나고 선생님과의 새로운 유대감을 갖게 된다.

‘거북이 달리다’가 예산이라는 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면 영화 ‘킹콩을 들다’는 전남 보성이라는 다른 시골에서 시작된다. 걸쭉한 사투리를 쓰는 교장선생님은 역도부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솜털이 보송보송한 여중생들도 천연덕스럽게 사투리를 내뱉는다. 사투리의 발랄함 위에 가난하지만 천진한 아이들의 시선이 보태진다. 1994년으로 되돌아간 시간은 운동이 미래가 되기도 했던 한 시절을 추억으로 되돌려주며 덤으로 운동에 목숨을 걸어야 했던 가난한 아이들의 삶을 얹어준다. 그러니까 ‘킹콩을 들다’는 단순히 감동적인 드라마가 아니라 드라마틱한 코미디인 셈이다.



최근의 많은 영화가 ‘촌’을 수색한다. 예산, 보성 이런 촌의 정서에는 대도시의 팍팍한 삶에 결여된 또 다른 질감이 놓여 있다. 비인기 스포츠 종목에 대한 관심도 또 다른 질감이 주는 훈훈함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연봉이나 계약조건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순수한 의미의 멘탈 스포츠, ‘킹콩을 들다’의 감동은 그 순수함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우,생,순’에서 시작된 마이너리티 취향은 ‘킹콩을 들다’‘해운대’를 거쳐 ‘국가대표’로 이어진다.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는 한국형 스포츠 영화의 계보를 따라간다. 줄거리는 이렇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스키점프팀이 급조된다. 스키는 알지만 점프는 모르는 열외인간들이 군대나 면제받겠다는 생각으로 하나둘 모인다. 조금 다른 이유로 국가대표가 된 차헌택은 해외입양아다. 그는 자신을 버린 엄마가 ‘차헌택’을 찾도록 하기 위해 무주로 향한다.

‘국가대표급’ 낙오자들과 비주류 스포츠의 만남

영화 ‘국가대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낙오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말하듯이 그들은 이른바 ‘쓰레기’들이다. 흥철은 스키선수였지만 약물 상용혐의로 메달을 박탈당하고 야간업소 웨이터로 살아간다. 그나마도 술 취한 여자 손님들 치마나 들추고 여자들 엉덩이나 졸졸 따라다니는 생각없는 녀석인 걸 보면 루저 중의 루저라고 할 수 있다. 칠구 봉구 형제는 사고로 부모를 잃고 졸지에 고아가 되었다. 게다가 동생 봉구는 정신이 온전치도 못하다. 부모님이 계시던 시절 탔던 스키는 이제 사치품에 불과하다. 부모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온 차헌택은 미국 국적을 가진 입양아이니 그 역시 마이너리티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이 주변부 인물들이 모여 한다는 운동이 폼나는 인기 스포츠가 아니라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스키점프다. 사회적 낙오자들이 비인기 스포츠 종목을 선택한다. 이제 이야기는 시작된다.

‘국가대표’는 비주류 스포츠에 주변부 인생을 결합시켜 즐거운 웃음을 창조해낸다. 웃음의 코드는 주로 찌질한 낙오자들의 엉뚱한 행동들, 그리고 열악한 스키점프의 환경에서 비롯된다. 여자들 뒤꽁무니 따라다니는 흥철은 간단한 영어도 못 알아듣고 정신이 온전치 않은 봉구는 두려움도 없이 몸을 쓰다 사고를 친다. 아직 공사 중인 스키점프대 때문에 다인승 승용차에 발을 고정시켜 바람에 적응하고, 후룸라이드 레일에 비닐 장판을 갈아 활강 연습을 한다. 어딘지 모자란 선수 동생과 무언지 수상한 코치 딸은 엇박자로 어설픈 낙오자들의 공간에 웃음을 보탠다. 어설픔이야말로 ‘국가대표’의 웃음을 견인하는 핵심 코드인 셈이다.

이는 영화 ‘국가대표’의 정서가 웃음에서 감동으로 바뀌는 순간이 어설픈 인간들이 멋지게 날아오르는 그때임을 짐작케 한다. 어설프다 못해 시시해 보이던 선수들은 우여곡절 끝에 제대로 된 선수로 거듭난다. 이러한 모습들은 ‘킹콩을 들다’나 ‘거북이 달리다’에서도 발견된다. 어설픈 낙오자이던 인물들이 이런저런 사연을 겪고 난 이후 멋지게 바뀐다. 이제 더는 그들을 낙오자라고 부를 수 없다. 관객은 이미 루저들이 새로운 인물로 거듭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고작 다섯 명으로 구성된 대한민국의 스키점프 대표선수들은 예상을 뒤엎고 동메달을 딸 뻔한다. 중요한 것은 동메달을 딴 게 아니라 ‘딸 뻔’했다는 점이다. 비주류 종목을 소재로 삼은 최근의 스포츠 영화들은 이기는 결말이 아닌 모르는 결말, 혹은 지는 결말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국가대표’ 역시 유사한 결말을 향해간다. 고독한 ‘록키’처럼 고생 끝에 링 위의 황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고생은 했지만 패자가 되어 돌아온다. 대수롭지 않은 사람들의,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국가대표’는 삶의 희로애락을 그려낸다. 영웅이 제공하는 환상이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의 소소한 체험에 관객의 공감이 쌓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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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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