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4대강에 물어봤나?

  • 입력2009-12-02 17: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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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 앞바다에 바다목장이 있다. 바다목장이란 가축을 기르는 목장처럼 바다에 목장을 만들어 물고기를 기르는 곳이다. 그물을 물에 쳐서 그 안에서 물고기를 기르는 가두리 양식이 울타리 있는 양식이라면, 바다목장은 울타리 없는 양식이다. 과연 울타리 없는 바다에서 물고기가 모여 살까? 산다. 왜? 살기 좋으니까. 살기 좋은지 어떻게 아나?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생물자원연구부장 명정구(55) 박사는 “물고기들에게 물어본다”고 말했다. 물고기와 대화가 가능한가? 명 박사는 “그렇다”고 했다. 그는 1998년 통영에서 바다목장사업이 시작된 이래 10년 넘게 바다에서 살았단다. 그는 말한다.

    “바다를 살리는 데 첨단기술이 꼭 필요한 건 아닙니다. 자연을 그 자체로 이해하면 그것이 가장 큰 기술이고 최첨단이니까요. 그것을 깨닫기까지 수년이 걸렸습니다. 물고기들도 그렇지요. 아무리 첨단기술로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해도 녀석들이 싫으면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물어볼 수밖에요. 어디가 불편하냐? 어떻게 바꿔주면 살겠느냐고요. 그것은 기술개발만으로는 안 됩니다. 바닷속에 들어가 물고기들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수천 번 관찰하고 물고기들이 요구하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지요. 첨단기술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의 극히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연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최첨단 기술입니다.”

    명 박사 등의 기획으로 시작된 바다목장은 이제 경남 통영의 성공사례를 기반으로 전남 여수와 제주, 서해(충남 태안)와 동해(경북 울진)로 확대됐다. 그러나 그는 “자연을 이해하고 풍요로운 바다를 만드는 노력으로 본다면 이제 막 첫 단추를 꿴 느낌”이라며, 해양연구원에서 수산과학원으로 주관 연구기관이 바뀐 바다목장사업이 “자원조성 수준을 넘어 바다를 살리는 원대한 프로젝트로 발전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울릉도와 독도의 수중생태조사를 위해 다시 바닷속으로 뛰어들 계획이다.

    지난달 말 고교동창들과 함께 했던 여행에서 운 좋게 방문할 수 있었던 통영 바다목장 얘기를 글머리에 올린 것은 “물고기에게 물어본다”는 전문가의 화두(話頭)에서 ‘4대강’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이 환경부와 국토해양부의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끝내고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했다. 환경부는 4대강 사업이 끝나면 수질은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주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다고 했다. 4대강 공사로 취수장 인근에 발생하는 흙탕물도 식수공급에는 별문제가 없는 수준으로 예측됐으며, 수질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사현장 간격을 2km 이상으로 유지하고, 흙탕물을 거르는 시설을 설치하도록 했다고 발표했다. 사업구간에 서식하는 68종의 법정보호 야생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돌무더기, 자연굴 등 대체 서식지를 조성하고 보전가치가 높은 습지는 그대로 두기로 했으며, 협의내용이 공사과정에서 제대로 이행되는지는 사후관리를 통해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국내 하천·환경전문가들로 구성된 대한하천학회와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은 4대강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는 “졸속과 부실로 점철됐다”고 비판했다. 환경부는 국립환경과학원의 모의실험결과를 토대로 4대강의 수질이 전반적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보(洑)가 물을 가둬 갇힌 물이 썩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물이 흐를 수 있도록 문이 열리고 닫히는 가동보를 설치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단 보에 갇힌 물은 유속이 느리기 때문에 오염물질의 체류시간이 길어지고 조류가 번식해 부영양화(富營養化) 현상이 발생하는 등 수질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반박했다.



    환경부의 탁수(흙탕물) 피해방지대책에 대해서도 박창근 관동대 교수는 “오탁 방지막의 효율은 30% 정도로 준설작업을 할 때 미세입자들은 전혀 걸러내지 못 한다”며 환경부가 오염방지대책을 과대포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환경부는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해 야생 동식물과 어류의 대체 서식지와 산란처, 완만한 경사의 어도(魚道) 등을 마련하도록 했다.

    그러나 “정확히 어느 종이 어디에 분포하고 어떻게 이동하는지, 사업구간이 이들 종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지, 사전조사가 전혀 돼있지 않은 상황에서 환경영향평가를 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비판이다. 이들은 또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하류로 내려가야 하는 물고기는 보로 막혀 물 흐름이 없는 저수지에서 방향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어도 자체가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동대 박 교수는 “4대강 사업처럼 큰 규모의 사업은 최소한 사계절 변화에 따라 강물의 수량과 흐름, 주변 생태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해야 하지만 이번 환경영향평가는 4개월 만에 완료됐다. 이는 2012년까지 공사를 완료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환경부가 끼워 맞추기식 조사를 진행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비전문가인 나로서는 환경부가 대통령의 뜻을 살펴 ‘영혼과 환경을 판 것’인지,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이 ‘비판을 위한 비판’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금강유역환경청은 전문가 자문회의를 아예 열지 않았고, 영산강유역환경청은 회의는 열었지만 수질예측결과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중앙일보 11월9일자)는 보도 등으로 미루어볼 때 이번 환경영향평가가 시간에 쫓겨 약식으로 졸속 진행됐으리라는 짐작은 할 수 있다. 환경부가 유독 사후관리를 강조한 것도 사전조사가 미흡했음을 인정한 것이 아닌가. 더구나 하천 환경전문가들을 몽땅 ‘반정부 좌파’로 규정하지 못할 거라면 그들이 정치적 반대를 한다고 할 수도 없을 터다.

    통영 바다목장의 명정구 박사는 수천 번 바닷속에 들어가 볼락과 감성돔 등 ‘물고기와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정착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4대강과 대화를 해보았는가? 보호대상인 야생 동식물에 새로 서식지와 알 낳을 곳을 마련해주려고 하는데 괜찮겠느냐고 물어보았는가? 해묵은 자료를 참고로 책상머리에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닌가?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자연을 정확히 이해하지도 못한 채 서둘러 그림을 그리는 데 급급했다면 환경부 스스로 자신의 존재이유를 부정한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단순히 강을 정비하는 토목사업이 아니라 전(全)지구적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일이고 문화, 관광, 에너지, 산업 등의 인프라를 구축해 일자리를 만들고 주민의 삶의 질 향상도 꾀하는 다목적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대통령 말대로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다수 전문가는 비판의견 제시의 차원을 넘어 “지역 시민·사회단체 및 피해 주민들과 함께 무효소송을 준비하고 그에 앞서 행정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대한하천학회 김정욱 대표)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국민여론도 반대가 우세하다. 야당이야 정략적으로 반대한다고 치더라도 전문가들과 다수 국민까지 그러리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4대강 사업에는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나는 ‘4대강 포기하면 대학등록금 반값’이라는 식의 포퓰리즘적 구호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4대강 예산을 민생예산으로 돌리라는 야당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돈 들어갈 데가 쌔고 쌨는데 4대강이 뭐가 그리 급하다고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22조원이나 쏟아 붓느냐는 비난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진정 강을 살려 수질을 개선하고, 홍수와 가뭄의 피해를 줄이고, 물 부족에 대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경제를 발전시키는 다목적 프로젝트라면,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언급했던 것처럼 ‘국가백년대계’를 위해 투자할 수 있다고 본다. 장기적 국익을 위해 당장의 우선순위를 뒤로 미룰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러한 정책결정이 국민의 동의를 받을 수 있느냐에 있다. 국민 다수가 찬성하게 하려면 동의를 구하려는 설득노력이 전제되고 후속돼야 한다. 이 대통령은 정운찬 총리가 대독한 국회 시정연설(11월2일)에서 “정책 추진과정에서 나타나는 오해와 갈등은 진솔한 대화를 통해 하나하나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이 말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반대하는 ‘세종시 수정’에만 적용되고 4대강 사업과는 무관한 것 같다. 민주당은 “4대강 사업을 강행하면 법적 물리적 수단을 포함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고 공세를 폈지만 이미 삽질은 시작됐다. 박재완 청와대국정기획수석은 “비판론자들의 이런 저런 지루한 공방에 사업이 늦어져선 안 되고 좀 더 빨리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를 대변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지금 4대강과 세종시에 자신의 역사적 평가를 걸고 있는지 모른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해 산업화의 동맥을 이뤘듯이, 자신이 서울시장 때 청계천을 복원해냈듯이, 절차에 다소 문제가 있고 비판과 반대에 부딪히더라도 결과가 좋으면 되지 않겠나, 역사적 업적이 되지 않겠나 하는 자기 확신에 몰입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지도자의 자기 확신’은 비민주적이란 치명적 결함을 갖고 있다. 지도자의 결단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언제나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실패할 경우 그 부담은 나라와 국민 모두가 져야 한다.

    4대강에 물어봤나?
    전진우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한성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불도저식 밀어붙이기야말로 ‘MB 본색’일지 모른다. 하지만 세종시든 4대강이든 밀어붙이기로는 안 된다. 목표의 정당성을 강조하려면 절차의 정당성부터 확보해야 한다. 방향이 뚜렷하고 목표가 정당하다면 마냥 밀어붙일 이유가 없다. 세종시 문제는 처음부터 대통령이 직접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친이(親李)-친박(親朴) 간 권력다툼의 양상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4대강 사업은 3년 안에 마쳐야 한다는 조급증부터 버려야 한다. 그래야 전문가들의 우려와 지적을 수렴하고 절차의 미비점을 보완할 수 있다. 시간이 좀 더 걸린다고 대통령의 업적이 훼손되는 건 아니잖은가. ‘MB 본색’의 연속상영을 고집한다면 관객들은 영영 극장을 떠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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