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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괴짜들 ④

“변호사 출신 꼬리표 떼고 남우주연상 한번 받고 싶다”

배우로 불리고 싶은 사나이 홍승기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변호사 출신 꼬리표 떼고 남우주연상 한번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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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출신 꼬리표 떼고 남우주연상 한번 받고 싶다”

영화 데뷔작 ‘아주 특별한 변신’에서 손창민의 선배 변호사 역을 연기하는 ‘홍 배우’(오른쪽).

▼ 연기에 소질은 있었고요?

“애들 연기라는 게 대사 암기만 잘하면 되잖아요. 제가 대사는 잘 외웠어요. 모든 배역 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우니까 칭찬을 많이 받았죠. 또 무엇보다 무대가 좋았습니다. 피드백이 바로 오잖아요. 내 동작 하나하나마다 반응이 달라지니까 그 느낌이 참 좋았어요.”

▼ 그래서 ‘이게 내 길이다’ 생각한 거군요.

“하고 싶었죠.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직업으로 삼기엔 문제가 있어 보였어요. 연극하는 인간들이 너무 궁핍하니까. 하나같이 다음날 연탄 걱정하고 쌀값 걱정하고, 지갑엔 전당표만 수북했지요. 나한테 담배 사오라고 심부름 시키면서 담뱃값 다 안 주는 이상한 놈들도 있고.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건 학교 선생님들이었어요. 지방 연극인은 두 부류로 나뉘는데, 대학극 하다가 교사 돼서 동호인처럼 참여하는 사람과 생존이 어려운 전업 연극인이에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뭔가 먹고 살 일은 있어야겠다. 그래, 변호사 좋다. 변호사 하면서 연극하자. 그렇게 마음먹었습니다.”

▼ 왜 갑자기 변호사입니까.



“뭔지 모르지만 폼 나 보이잖아요. ‘변호사 하면서 연극하고 대학 강의도 한 강좌 정도씩 해야지’ 그랬습니다. 열세 살 때 아닙니까.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을 줄 아는 나이지요.”

▼ 부모님이 허황된 꿈 버리고 공부나 하라고 하지는 않던가요.

“워낙 자유로운 분위기였어요. 세 살 터울로 아들만 다섯 형제라 부모가 일일이 관여하기 힘든 환경이었습니다. 그 덕에 다들 개성대로 컸어요. 큰형은 야구선수를 했는데, 스포츠를 다 좋아해서 올림픽처럼 큰 대회가 있을 때는 라디오로 중계 듣는다고 아예 학교를 안 갔습니다. 둘째형(홍승목 주 네팔대사)은 중학교 때 벌써 음반 700장을 모을 만큼 클래식 마니아였고요. 법대를 나왔는데, 법전은 안 보고 음악대사전만 빨간 줄 쳐가며 읽는 괴짜였지요. 막내(홍승엽 댄스씨어터온 대표)는 공대에 들어갔는데, 어느 날 보니 무용을 하고 있데요. 대학 3학년 때 동아무용콩쿠르에 나가서 대상을 탔어요. 출전자 48명 가운데 유일한 비전공자여서 화제가 됐지요. 대략 그런 분위기였으니 저야 뭐 특별히 튀지도 않았죠. 크면서 누구한테 공부하라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잘못 끼운 단추

‘꼬마 스타’의 삶은 그가 중2 때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 오면서 끝났다. ‘불러주는 무대가 없고,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 땅에서 그는 명동 국립극장과 엘칸토 예술극장을 드나들며 연기자의 꿈을 키웠다. 두 극장에 걸리는 작품은 모조리 봤다. 아마추어 무대에 서기도 했다. 경동고 재학 시절, 경기 서울 경복 숙명 진명고 학생들이 모인 농촌봉사서클 회원들과 ‘철부지들’을 공연한 건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국립극장에서 연극 ‘철부지들’을 보고는 대본을 사왔어요. 연기가 너무 하고 싶어서 그걸 배역 수만큼 필사해 친구들한테 돌렸지요. 연말에 OB 선배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연출 겸 주연을 맡아 무대에 올렸는데, 난리가 났습니다. ‘너는 이걸로 밥 먹고 살겠다’고 한마디씩 했지요.”

▼ 우쭐했겠네요.

“그 소문이 나서 학교 서클에서도 공연 올릴 때면 저한테 연출을 부탁했습니다. 연극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야전에서 잔뼈가 굵었어요.”

▼ 연극영화과에 지원할 생각은 안 했습니까.

“어릴 때 꿈을 보세요. 제가 좀 약은 구석이 있지요. 집안 환경이 넉넉한 편이 아니라 먹고살 궁리로 법대에 갔습니다. 거기서도 연극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래저래 환경이 안 됐죠.”

▼ 바로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한 겁니까.

“아니 그보다는 시대가 저를…(웃음). 79학번인데, 1학년 가을에 10·26이 났어요. 세상이 뒤흔들렸지요. 기본적으로 감성적인 인간이다보니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공부한 기억이 거의 없어요. 고대 법대 학생회장을 하며 몇 달씩 피해 있기도 하고…. 그랬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어요. 형님은 외무고시에 붙어 막 공직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그 무렵 학생처에서 ‘학교 나오지 마라. 학교만 안 나오면 졸업은 시켜주겠다’고 하더군요.”

그가 고시공부를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이때의 선택은 지금도 그에게 콤플렉스로 남았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어쩔 수 없었을 거 같다고 한다.

▼ 어쨌든 배우의 꿈은 뒤로 밀렸겠군요.

“마음속에는 늘 연기가 있었지만 방법이 없었죠. 대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 ‘제3영상그룹’이라는 영화모임에서 신인배우 공모를 한 적이 있습니다. ‘타도 전두환’을 외치며 돌팔매질하다 그 광고 보고는 살짝 빠져나가서 접수처에 갔어요. 심사위원석에 있던 정지우 감독이 ‘배우가 되고 싶냐, 사법시험은 어쩔 거냐’고 물으시는데, 지금 이 시대에 내가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싶더군요. 결국 이런저런 대화만 나누다 돌아왔지요.”

‘고시공부’를 핑계삼아 운동 그룹에서 빠져나온 뒤로는 연극판에 눈길을 주기도 어려웠다. 어쨌든 빨리 시험에 붙어야 했다. 결국 제대로 된 배우가 되기 전, 변호사가 되고 말았다. 그는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취미로 연기하는 얼치기 배우’ 이미지를 만들어 두고두고 발목을 잡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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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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