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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사랑한 공간, 공간들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소설이 사랑한 공간, 공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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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는 집을 나와 천변 길을 광교로 향하여 걸어가며, 어머니에게 단 한마디 “네-”하고 대답 못했던 것을 뉘우쳐본다. (…)구보는 갑자기 걸음을 걷기로 한다. 그렇게 우두머니 다리 곁에 가 서 있는 것의 무의미함을 새삼스러이 깨달은 까닭이다. 그는 종로 네거리를 바라보고 걷는다. 구보는 종로 네거리에 아무런 사무(事務)도 갖지 않는다. 처음에 그가 아무렇게나 내어 놓았던 바른발이 공교롭게도 왼편으로 쏠렸기 때문에 지나지 않는다. (…)구보는, 약간 자신이 있는 듯싶은 걸음걸이로 전차 선로를 두 번 횡단하여 화신상회 앞으로 간다. 그리고 저도 모를 사이에 그의 발은 백화점 안으로 들어서기조차 하였다.

(박태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깊은샘)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1970년대에는 최인훈에 의해, 또 1990년대에는 주인석에 의해 각자의 시대에 맞게 패러디된다. 이들 소설의 특징은 소설가형 소설이라는 유형의 차용과 서울이라는 공간의 재현이다. 모더니스트 박태원으로부터 출발한 서울의 소설화는 염상섭의 ‘삼대’를 거쳐 2000년대에는 급기야 김종은의 ‘서울특별시’가 등장하게 된다.

소설의 승경, 저녁이 아름다운 집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곧 서울이라는 고현학(考現學)적 공간의 창출이라는 의미심장한 지점을 형성한다. 1930년대 식민지 수도 경성의 근대성, 곧 ‘현대성’의 풍경을 연구하려면 박태원의 이 소설을 피해갈 수 없다. 이는 일찍이 문학에서 현대성의 대변자들, 곧 파리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와 더블린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로 연원을 거슬러 올라갈 때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박태원 소설의 모태가 된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은 그의 모든 소설, 그러니까 소설집 ‘더블린 사람들’과 장편 ‘젊은 예술가의 초상’, 그리고 ‘율리시즈’(1914~22), ‘피네건의 경야’의 무대로 등장하고, 이 공간은 소설을 이루는 핵심 요소인 인물과 스토리를 견인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경성 산책에 앞서 조이스가 등장시킨 광고쟁이 블룸씨의 더블린 걷기는 현대소설의 새로운 탄생을 알린다.

구효서 작품들에서 보이는 것처럼 장소에 대한 사랑, 곧 장소애(愛)를 일컬어 토포필리아(Topophilia)라고 한다. 구효서의 소설들은 토포필리아의 원천이랄 수 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정서로 빚어낸 산물이다. 그는 이전에 발표했던 ‘시계가 걸렸던 자리’에서 시한부 사내를 내세워 유년기를 보낸 고향 강화도 집을 찾아 추억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소설화했다. 그러면 이번에 출간한 ‘저녁이 아름다운 집’이란 어떤 것일까. 그 집은 어디에 있어야 하며, 어떤 세계일까. 구효서는 해질녘의 숭고하고도 온화한 어조로 말한다.

지난해 그들은 강원도 횡성에다 집 지을 땅을 샀다. 땅덩이리가 커서 세 집이 함께 사서 나누었다. 나눈 한 필지에 묘지 한 동이 붙어 있었다. 다들 그 땅을 피하고 싶었지만 제비뽑기에서 걸렸다. 마땅히 이장을 해주어야 할 묘지주인은 몹시 미온적이다. (…)주말마다 내려와 농사를 지었다. 농약은 주지 않았지만 작물들은 그럭저럭 잘 자랐다. 농사를 짓느라 그의 얼굴은 새카많게 탔다. 그녀는 선크림을 바르고 수건을 두르고 커다란 챙이 있는 모자를 썼다. (…) 방치해두면 잡종지로 변해 세금이 많이 나온다는 말에 겁나 시작한 농사였다. 그러나 밭에서 맞았던 지난 사계가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나고 자라고 맺고 사라지는 이치가 그곳에 있었다.

(구효서, ‘저녁이 아름다운 집’, 랜덤하우스 코리아)



사실, 소설의 화자인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녀, 그러니까 아내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인 그와 그의 아내가 전원생활을 꿈꾸며 형제 세 집이 합작으로 산 땅덩이에 덩그러니 남의 무덤이 솟아 있다. 무덤은 제비뽑기에 의해 그들 차지가 되었다. 갑자기 무덤 문제가 그들 사이에 끼어든다. 그들은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무덤에서 자신의 죽음과 그 이후를 본다. 남편의 죽음을 감지하지 못한 채 그녀는 무덤을 이장시킬 방법을 찾다가 결국은 여러 차례 남편과 대화한 끝에 무덤과 함께 집을 짓기로 마음을 돌린다. 그가 사전에서 찾아낸 무덤의 동의어들 중 산소는 ‘그냥 산의 어떤 곳’이라는 의미를 받아들인 것이다.

구효서는 한 사람에게 죽음이 다가와 휘감고 또 풀려나가는 흐름을 강물처럼 순연하게 풀어낸다. 그의 순연함은 강화도 작가의 변하지 않는 성정이며 나아가 작가 경력 22년 차의 능숙과 세련의 경지다. 누가 남의 묘를 마당가에 품은 채 새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작가 구효서는 능청스럽게 아내가 홀로 남은, 그러나 무덤이 마당가에 놓인 석양빛 가득한 세계로 이끈다. 그리고 명명한다, 저녁이 아름다운 집이라고!

신동아 200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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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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