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신종 플루가 고전하는 까닭은?

  • 강석기 /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입력2009-12-09 16: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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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 플루가 고전하는 까닭은?

    11월2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에서 군 의료 인력이 신종 플루 예방백신을 맞고 있다.

    한동안 주춤하던 신종 플루가 10월부터 급격히 확산했다. 발병자 수가 하루 1만명을 넘어서자 정부는 11월3일 신종 플루 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그러나 신종 플루의 확산 과정은 인류가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한발 내디뎠음을 잘 보여준다. 과거 몇 차례 독감 팬데믹(대유행)은 사실상 인류가 속수무책으로 당한 경우다. 5000만명이 죽은 1918년 스페인독감은 말할 것도 없고 50만명이 사망한 1968년 홍콩독감도 바이러스의 병원성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피해가 비례했다. 당시엔 치료약도 예방백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종 플루의 경우 4월 멕시코에서 실체가 밝혀진 이후 전세계적 노력으로 불과 4~5개월 만에 백신이 만들어져 빠른 곳은 9월부터 접종을 시작했다. 한국도 10월 의료진을 시작으로 11월엔 학생들이 백신을 맞았다. 백신을 한 달 먼저 접종하는 게 뭐 큰 차이가 있겠느냐 싶지만 그 차이는 엄청나다.

    미국 ‘통계 및 정량적 전염병 센터’의 아이라 롱기니 박사팀은 ‘사이언스’ 10월30일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백신 접종의 우선순위에 따라 신종 플루 확산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신종 플루가 본격적으로 번지기 전 인구의 70%가 백신을 접종하면 인플루엔자가 사라진다. 아쉽게도 한국은 백신 접종 이전에 신종 플루가 번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인플루엔자가 확산한 뒤 30일이 지나서 접종을 시작해도 상당한 효과를 보는 걸로 나타났다. 즉 30일 뒤부터 약 100일에 걸쳐 전 국민의 70%가 백신을 맞으면 감염 인구의 비율이 15% 이하로 떨어진다. 처음 한 달은 학생들이, 그 뒤에 성인들이 접종받는 경우에 그렇다. 만일 이런 구별 없이 접종할 때는 감염 인구 비율이 20%가 조금 넘는다. 한편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을 때는 유행 기간 인구의 약 35%가 감염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신 접종 순서에 따라 이처럼 큰 차이를 보이는 건 학생들의 감염력이 높기 때문이다. 한 학생이 신종 플루에 걸리면 평균 2.4명에게 인플루엔자를 옮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위생 관리를 좀 더 철저히 하고 백신 접종을 원활히 진행할 경우 신종 플루는 감염자를 최소화하면서 사라질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별것도 아닌 일에 호들갑을 떨면서 아까운 세금만 썼다”는 불평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분명한 건 이번 신종 플루의 확산 및 수습 과정은 전세계 수많은 과학자와 의학자, 관료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실시간으로 대책을 마련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이다. 변신의 귀재인 바이러스는 인류의 저항에 직면해 고전한 싸움으로 이번 전쟁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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