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호

벌침 미사일로 암세포 잡는다

  • 이정호 / 동아사이언스 기자 sunrise@donga.com

    입력2009-10-01 13:2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벌침 미사일로 암세포 잡는다

    암세포

    9월1일 위암 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한 영화배우 장진영씨. 서른일곱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를 두고 수많은 팬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나도 건강을 자신할 수 없다”며 충격에 빠진 이들도 있다.

    통계를 보면 암은 한국인의 삶을 앗아가는 가장 큰 위협이다. 지난해 발표된 한국인 3대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암(28.0%)은 뇌혈관질환(11.3%), 심장질환(8.7%)을 누르고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차이는 있지만 암은 다른 나라에서도 악명을 떨치고 있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많은 암 환자가 치료 효과를 보고는 있지만 한편에선 엄청난 수의 암 환자가 새로 생겨나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 ‘강한 상대’를 정복하고자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이 ‘벌침의 독(bee venom)’을 활용하는 방법을 개발해 화제다. 이 연구 결과는 임상의학연구학회지 8월호에 실렸다.

    워싱턴대 연구진이 주목한 건 ‘위험하지만 유용하다’고 평가받는 벌독의 주성분인 멜리틴이라는 물질이다. 멜리틴은 접촉하는 모든 세포를 파괴할 만큼 엄청난 힘을 갖고 있어 몸속에 넣었다가는 정상 세포까지 치명상을 입는다. 하지만 멜리틴을 ‘적’에게만 정확히 조준한다면 이만한 고성능 폭탄이 없다. 잘만 통제하면 몸속의 ‘슈퍼 경찰’ 구실을 하는 것이다.



    워싱턴대 연구진이 개발한 것은 멜리틴을 안전하게 운송하는 ‘미사일’이다. 이 미사일은 2.5cm의 600만분의 1 크기에 불과한,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단위의 동그란 공 형태의 물질. 멜리틴을 잔뜩 싣게끔 고안됐으며, 암세포에서 새어나온 혈액을 길잡이 삼아 자동 비행하도록 설계됐다.

    연구진이 밝힌 전과는 놀랍다. 실험용 쥐에 이 미사일을 4~5차례 투여한 결과 유방암의 성장 속도가 25% 더뎌졌다.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은 크기가 88%나 줄었다. 모두 멜리틴이 정상 세포 사이를 유유히 지나 암세포에 정확히 투하돼 나타난 결과다.

    이 미사일은 정상 세포까지 한꺼번에 손상시키는 현재의 항암 치료 방식을 개선하는 데도 한몫할 것으로 기대된다. 항암 치료 뒤 나타나는 구토와 같은 부작용이 암세포만을 골라 공격하는 치료 방식을 통해 해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벌에 쏘여본 사람은 대개 그 기억을 쉽게 잊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엄청나게 아파서다. 그렇다 보니 ‘벌침 맛’을 본 사람은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불안을 느낀다. 최근 주택가 처마 밑에 잇따라 등장한 벌집에 주민들이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벌이 지닌 독을 정확히 투하하는 연구진의 기술이 암 치료의 새 장을 연다면 그보다 반가운 일도 없을 것이다. 벌이 사람을 구하는 일등공신이 되는 것이다. 이번 연구가 인류를 괴롭혀온 암에 카운터펀치를 날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