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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종횡무진 공간읽기 <마지막회>

모텔의 진화

하룻밤 숨어들던 곳에서 다중문화 공간으로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모텔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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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곡동 모텔이 유명한 이유

모텔의 진화

서울 강북구 수유동 모텔골목

왜 화곡동일까? 우선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인터넷의 모텔 안내 사이트들을 검색해 보면, 서울의 경우 몇 군데 거점 지역이 떠오른다. 강남, 종로, 영등포, 신촌 등은 나름의 이유가 분명하다. 강남의 신천이나 잠실은 바로 강남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유가 되고 종로는 1970년대부터 지하철 1호선과 직장인과 맥줏집으로 인해 유서가 깊은 곳이며, 신촌은 젊은 세대의 아지트라는 간명한 이유가 있다. 영등포는 기차와 지하철이 지나는데다 온갖 형태의 유흥업소와 쇼핑 공간이 즐비해 유동인구가 엄청나다. 그런데 화곡동은? 나는 화곡동 모텔촌으로 방향을 정했다.

이 일대의 모텔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의 ‘이용 후기’에 따르면, 화곡동이 개발되기 전에 큰 하천이 있었다. 그 양옆으로 허름한 주택과 논밭이 있었는데 경인고속도로가 뚫리고 하천이 복개되면서 소규모 공장이나 유통시설이 들어서고, 유흥업소와 숙박시설도 빠르게 번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 옛날 유일한 국제관문 노릇을 했던 김포공항이 인접해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아무튼 화곡사거리에서 곰달래길로 접어들면 그 전면과 이면 도로에 모텔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그중 한 곳은 널찍한 객실 안에 간이 수영장까지 있어 성탄절이나 연말이면 단체 손님의 예약 전화가 줄을 잇는다. TV 드라마 촬영장으로도 쓰였다.

그 가운데 한 곳, 차를 밀어 넣기 좋은 모텔로 핸들을 꺾자 곧 주차관리원이 마중을 나왔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이 일대의 모든 모텔은 건물 안팎에 CCTV를 설치해놓고 고객이 들고나는 것을 신속하게 파악한다. 도심에, 심지어는 주택가와 인접해 있지만 이런 공간에 방문자들이 할인매장이나 미용실에 갈 때처럼 무덤덤하게 찾아가지는 않는다. 약간의 호기심과 망설임과 기대와 주저함이 뒤섞여 있게 마련인데, 고객의 이런 일렁이는 마음을 재빨리 정중하게 안심시켜주는 것 또한 모텔이 제공해야 할 서비스의 일종인 것이다.

번호판 가리기는 범죄?



중년의 주차관리원은 단정한 차림이었다. 일급 호텔의 도어맨과 엇비슷한 차림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차이가 있다. 호텔 도어맨은 차량의 문을 익숙한 솜씨로 열어주는 반면 모텔의 주차관리원은 고객이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혹시라도 차 안에서 커플끼리의 ‘약속’이 설익어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고객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 이 업계 종사자들이 지켜야 할 불문율이다. 그것은 고객 서비스 차원이기도 하고, 평일 저녁에 모텔을 방문하는 사람과 그들의 주차 편의를 도와주는 사람 사이에 작용하는 심리적인 회피 기제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소문난 갈비집에 차를 세우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나의 경우는 조금 예외였다. 주차관리원은 혼자인 방문자를 조금은 의아하게 바라보더니, 방을 사용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는 ‘그런데 왜 혼자서?’ 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나를 대신해 주차를 했다. 현관으로 들어서기 전에 바라보니 주차장에 빼곡하게 들어찬 다른 차량들과 마찬가지로 내 차 번호판도 널찍한 판자로 가려졌다.

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이렇게 숙박업소에서 자동차의 번호판을 가리는 것은 불법이다. 2008년 10월13일, 서울 강남의 어느 모텔 종업원이 늘 하던 대로 모텔 주차장에 세워진 차들의 번호판을 직사각형 판으로 가렸는데, 이날 단속을 나온 경찰이 이 종업원을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즉결심판에 넘겼다. 자동차관리법(10조)은 ‘번호판을 가리거나 알아보기 곤란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1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이 종업원은 “고객들의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고 항변하면서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1심 재판부는 종업원의 손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번호판을 가리는 것을 무조건 처벌 대상이라고 한다면 다른 차량의 번호판을 우연히 가리고 주차한 경우나 주차장에 셔터를 설치한 경우까지 모두 처벌해야 하는데 이는 부당하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종업원이 모텔 이용자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번호판을 가린 것은 자동차의 효율적 관리나 안전 확보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판시한 것이다. 이에 검찰은 “모텔을 이용하는 범죄자들이 번호판을 가려달라고 요청할 가능성이 큰 만큼 이에 대한 단속은 정당하다”며 항소를 제기했고, 서울중앙지법이 검찰의 의견을 받아들여 모텔 종업원에게 벌금 5만원을 선고했다. 2009년 3월의 일이다. 2심 재판부는 “자동차관리법은 번호판을 가리는 금지 행위에 대해 장소적 제한을 두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법적 다툼에도 불구하고 모텔에서는 여전히 고객 차량의 번호판을 가린다. 그렇다고 이 대도시가 범죄 소굴인 건 아니고, 사랑의 공화국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범죄나 사랑이나 은밀하게 진행되기는 마찬가지다. 범죄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모든 차량의 번호판을 노출해놓는 쪽보다는 은밀한 사랑을 보호하기 위해 번호판을 살짝 가려주는 쪽으로 현실의 심정적 무게 추가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주차관리원은 홀로 찾아온 방문자를 위해서도 번호판을 말끔히 가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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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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