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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녀들 22

박두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 부인

주식회사 대한민국 일군 내조의 여왕

  • 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박두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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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여사에 관한 공식적인 자료는 거의 없다. 호암의 일생이 자서전과 소설, 추모집 등을 통해 자세히 알려진 것과 대조적이다. 하긴 그 옛날 내조하는 아내의 전통적인 삶이란 게 이렇게 철저히 ‘그림자’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남편 호암조차 286쪽에 달하는 자서전에서 내자에 대한 언급을 단 몇 문장으로 줄였다.

‘처음 본 인상은 건강한 여성이라는 것이다. 슬하에 4남5녀를 두고 반세기여를 서로 도우면서 살아왔다. 내자 역시 유교를 숭상하는 가문에서 전통적인 부덕(婦德)을 배우고 성장해서 그런지, 바깥 활동은 되도록 삼가고 집안일에만 전심전력을 다해왔다. 예의범절에도 밝아 대소사가 두루 화목하다. 지금까지 몸치장 얼굴치장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고 사치와는 거리가 멀다. 그처럼 수신제가의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는 내자에게 언제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외가가 더 부자였다”

박 여사에 대한 기록은 맏아들 맹희씨가 쓴 책이 비교적 자세하다. 삼성그룹 후계 자리를 동생(건희)에게 내준 비운의 황태자로 알려진 그는 1993년 ‘묻어둔 이야기’라는 회상록에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놓았다.

‘아버지 집안이 의령 일대에서는 부자라고 했지만 굳이 비교해보자면 당시 경북 달성군에 있었던 외가 쪽이 더 부농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시집이라고 왔더니 집도 좁고 그렇게 가난해 보일수가 없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 집안 어른들에 따르면 친가 쪽도 물론 3000석 지기에 가까울 정도의 부를 지닌 집안이었고 서원을 세울 정도의 성리학자셨지만 외가 쪽 지체가 워낙 높아서 ‘한쪽으로 기우는 혼사’였다는 말들이 있었다. 실제 어머니는 시집 올 적에도 몸종을 비롯하여 몇 명의 하인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



박 여사는 호암이 일본 와세다대 유학 중인 1929년 12월2일 맏딸 인희(현재 한솔그룹 고문)를 낳은 데 이어 2년 터울로 맹희, 창희, 차녀 숙희를 낳고 이어 3녀 순희, 3남 건희, 4녀 명희를 차례로 순산해 슬하에 모두 3남4녀를 둔 어머니가 되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간다면, 호암자전에서 호암은 자신의 자녀수를 4남5녀라고 적시했다. 이 중 박 여사 소생은 3남4녀이고, 일본인 아내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뒀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하기로 한다.)

의령부잣집 막내아들에게 시집와 아들 딸 잘 놓고 별 어려움 없이 살던 박 여사에게 생애 최초 시련이 닥쳤다. 남편이 대학을 중퇴하더니 무위도식하며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낸 것이다. 호암의 와세다대 중퇴 이유는 건강 때문이었다. 1학년 2학기 말 심한 각기병에 걸린 것이다. 2학년이 되자 휴학원을 내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결국 학교를 단념하고 사전에 아무 연락도 없이 귀향했다.

고향에서 쉬면서 곧 건강을 회복했지만 이번에는 할 일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호암은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친구들과 노름에 빠졌다. 노름은 늘 한밤중까지 계속되었고 지칠 대로 지쳐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 무렵 호암은 실의에 빠져 있었다. 운이 없는 것일까, 세상이 나쁜 것일까? 자성과 자제를 잃은 무위도식의 나날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날도 골패노름을 하다가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26세의 그는 이미 세 아이의 아버지였다. 평화롭게 잠든 아이들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스쳤다. 자신이 그동안 너무 허송세월을 했다는 자책이 컸다. ‘뜻을 세워야 한다. 독립운동도 좋고 관리가 되어도 좋고 사업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을 빈곤에서 구하는 일이 시급하다.’ 호암은 사업에 인생을 걸어보자고 결심한다. 훗날 호암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억척스러운 사업가

‘어떠한 인생에도 낭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실업자가 10년 동안 무엇 하나 하는 일이 없이 낚시로 소일했다고 하자. 그 10년이 낭비였는지 아닌지 그것은 10년 후에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낚시를 하면서 반드시 무엇인가 느낀 것이 있을 것이다. 실업자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견뎌나가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내면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헛되게 세월을 보낸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헛되게 세월을 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 훗날 소중한 체험으로 살려 가느냐에 있다.’(호암 평전 ‘인생은 흐르는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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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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