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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근 기자의 세상 속으로 풍덩~ ⑤

말기 암 병동의 목련꽃 흩날리는 오후

다섯 번째 르포 : 삶과 죽음의 의미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말기 암 병동의 목련꽃 흩날리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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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하거나 분노하거나

말기 암 병동의 목련꽃 흩날리는 오후
나무에 목을 걸고 죽은 꽃을 본다. 목련이 꽃잎을 바람에 내놓는다. 오후 햇살이 기도실을 비춘다. 초로의 여인이 다 큰 딸을 안고 기도한다.

이 병동은 수술로는 암세포를 죽이지 못하는 이가 모인 곳. “암은 소리 없이 온다”고 원장은 말했다.

햇살이 건물 깊숙이 들어온다. 병동의 오후는 나른하다. 휴게실 소파에선 남자 셋이 맨발로 잔다. 병구완만큼 고된 일도 없을 것이다.

목사가 왼손을 환자 어깨에 포갠다. 환자가 기도를 끝내고 눈을 뜬다. 복도 의자에서 일어나 말초정맥용 수액을 건 폴대를 밀면서 병실로 걸어간다. 배에 물이 괴는 병증(病症) 탓에 똑바로 걷지 못한다. 5년 전 눈 안쪽에 생긴 암이 혈액에 올라타 간으로 전이했다. 간암 말기(末期)다.



목사는 이 병동에서 원목으로 수고한다. “활기찬 완벽주의자”라고 목사가 환자를 소개한다. 60대 아주머니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강원도 정선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농사일 하면서 살았다. 농협에서 주는 농가주부상을 받을 만큼 삶이 활발했다.

목사는 미국 병원에서 6년간 암환자를 돕다가 이 병동으로 옮겨왔다. 목사는 언니와 오빠를 잃은 뒤 방황했다. 목사의 언니는 목사가 대학교 2학년 때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했다. 오빠는 언니의 주검을 집에서 목격한 후 우울증에 걸려 7년간 투병하다가 죽었다.

삶은 무엇인가, 죽음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절망과 우울이 밀려왔다. 후회와 회한도 일었다.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신학을 공부하면서 마음을 달랬다. 믿음을 통해 치유했다고 목사는 말했다.

암을 인정한 이는 평화롭다. 암을 거부한 이는 분노한다. 눈을 부릅뜬 채 목숨 줄을 놓거나 마음을 돌보지 못해 극단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두 달 전에도 50대 남자가 외박 나갔다가 산에서 목을 맸다.

사람은 죽는 걸 안다. 숨이 가쁘고, 맥이 느려진다. 죽음을 수용(受容)한 이는 삶을 포기(抛棄)한 이보다 여명(餘命)이 길거나 편안하다. 행복하게 죽는다. 정선 아주머니는 수용적이라고 목사는 말했다. 죽을 때도 행복과 불행이 나뉜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나이가 드는 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줄어드는 과정이다. 성격이 완고하거나 자아가 강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이보다 죽음을 수용하지 못한다. 내세를 믿지 않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이보다 죽음을 더 두려워한다.

목사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인간 본성입니다. 목사나 스님도 마찬가지죠. 신을 뒤늦게 찾는 사람이 적지 않아요. 흙으로 돌아가면서 창조주를 찾는 거죠. 마지막 호흡을 토하면서 임종 세례를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분노를 나타내면서 죽는 이도 적지 않고요”라고 말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사랑을 갈구한다. 소외당하는 걸 참지 못한다. 부귀영화(富貴榮華)도 소용없다. 돈이나 물건에 대한 욕심이 준다. 가족에 짐이 된다는 자괴에 시달린다. 오감을 열고 사물을 본다. 선한 일을 하고자 한다.

죽음을 예비한 사람은 부정·분노·협상·우울·순응을 거친다. “잘못 진단했을 거다” “믿지 않는다”고 여기는 게 부정.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나만…”이라면서 분노하다가 한계에 다다르면 협상한다. 협상을 마무리하면 우울함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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