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농협을 농업인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연간 1조1203억원 농업·농촌 직접 지원

  • 한상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10-04-28 19: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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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배구조 개선, 인사혁신, 조직 슬림화…강도 높은 자율개혁 추진
    • 구조개편에 들어갈 정부지원금은 ‘농촌의 미래에 대한 투자’
    • 농협구조 개편으로 유통비용 20% 절감, 보험료 대폭 인하
    • 산지유통혁신112, 농기계은행, 친환경 ‘아침마루’…농협 바꿀 대표상품
    • “회장직 걸고 관행적인 부조리 척결…반드시 책임 묻겠다”
    “농협을 농업인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농협을 농업인들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지난해 1월, 최원병(64) 농협 회장은 ‘농협 개혁방안’을 발표하며 국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전임 회장이 연루된 정치사건으로 농협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차가울 때였다. 최 회장이 발표한 개혁방안 내용은 찬 시선만큼이나 파격적이었다. 우선 지배구조 개선을 포함한 시스템 일대 혁신 방안이 눈길을 끌었다. 최 회장은 “고강도 구조조정을 추진한 뒤 그 성과를 농업인들에게 돌려주겠다”고 개혁방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취임 2년차를 맞았던 최 회장은 이날 회장 임기 단임제까지 내걸었다. 1회 연임이 가능토록 한 정부안보다도 파격적인 내용, 농협 안팎에서 뜯어말렸지만 최 회장은 의지를 꺾지 않았다. “당신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듣지 않았다.

    회장 연임에 따른 조직의 파행운영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고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인사추천위원회 설치·운영 방안도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앙회장이 임원을 직접 선임해온 그간의 방식이 아닌, 인사추천위원회가 객관적인 평가기준에 따라 전무이사와 농업경제, 축산경제, 신용 등 대표이사 후보자를 추천하는 방식이 도입된 것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준비돼왔지만 실천되지 않았던,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분리해 2개의 지주회사로 개편하는 계획도 개혁방안에 있었다. 지역농협에 지원되는 무이자 자금 7조원가량을 농산물 생산·유통에 활용함으로써 농업인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볼 수 있게 한다는 구상도 포함됐다. 워낙 파격적인 내용이 많아서일까. 본부 조직 슬림화, 강력한 구조조정 같은 계획은 눈길도 끌지 못했다.



    개혁방안이 나온 이후 농협을 비판하던 곱지 않은 시선은 싹 사라졌다. 조직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다시 해보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 모든 개혁의 중심에 최원병 회장이 있었다.

    농협개혁이 화두

    최 회장은 2007년 12월 농협회장에 취임했다. 자산규모 271조원(2009년 말 기준)이 넘는 농협의 회장이 됐지만 그는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두문불출했다. 농협 주변에서는 “개혁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지역농협을 다니며 의견을 듣고 있다. 내부적인 반대와 관행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라는 소문만 들려왔다.

    최 회장은 취임 초기부터 ‘농협의 개혁’을 화두로 내세웠다. 이런저런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렸던 전직 회장들의 전력이 이유가 됐겠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농업문제를 고민해온 농업지도자인 최 회장의 오래된 구상이기도 했다.

    취임 첫해인 2008년 최 회장은 ‘투명경영’을 유난히 강조했다. 인사청탁을 근절하고 사소한 금품수수나 향응접대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적발시에는 그에 상응하는 징계와 불이익을 당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데 주력했다. 특히 그가 역점을 둔 것은 농협조직의 골격을 시대적 요구에 걸맞게 조정하는 것이었다. 이는 곧 농협의 주인이자 이용자인 농업인의 요구에 부응하고 국가경제에서 농협이 차지하는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큰 틀에서 조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사실 최 회장이 취임할 당시 많은 사람은 그를 행운아라고 불렀다. 이명박 대통령의 고교 동문이라는 점을 의식한 말이었다. 대통령과의 인연이 선거 결과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그의 이력을 꼼꼼히 살펴본 사람이라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최 회장은 1986년부터 21년간 지역농협(경주 안강농협) 조합장을 맡았다. 또 4번에 걸쳐 민선 경북도의원과 도의회 의장을 지냈다. 조합장 시절에는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조합장 시절 그가 론칭한 찰토마토는 지금도 전국적인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4월12일 서울 중구에 있는 농협중앙회에서 최 회장을 만났다.

    ▼ 농협 회장에 취임하신 이후 언론과 인터뷰를 별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제가 취임할 당시 농협은 전임 회장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로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있었고 농협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할 말은 많았지만 무슨 말을 해도 변명이 될 상황이었죠. 그래서 농협이 변하고 있다는 걸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고 할 말이 있으면 그때 가서 해야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행동으로 보여주겠다”

    “농협을 농업인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지난해 1월7일 농협중앙회에서 최원병 회장이 농협개혁방안을 발표했다.

    최 회장이 직접 밝힌 인생철학은 초심(初心), 겸손(謙遜) 그리고 초연(超然)이다. 최 회장은 이 좌우명을 조직운영에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고 매사 겸손하며 사리사욕에 초연한 자세를 가지고 조직을 이끌어나가려고 노력합니다. ‘문제도 현장에 있고 답도 현장에 있다’는 게 조합장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자 습관입니다. 농업인과 국민에게 사랑받는 농협다운 농협을 만들기 위해 농업인과 고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기 무섭게 그의 입에서는 농업현황과 관련된 각종 수치가 쏟아져 나왔다. 쌀 시세가 어떤지, 강화지역에서 발생한 구제역 상황이 어떤지와 같은 얘기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와는 달리, 농촌 상황을 마치 현미경 보듯 속속들이 전하는 그의 달변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인터뷰는 생각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최 회장은 인터뷰 전날에도 경남지역 농작물 작황을 둘러보고 왔다고 했다. 주로 이런 얘기가 오갔다.

    ▼ 어제도 지역농협에 다녀오셨다고요.

    “경남지역에 다녀왔습니다. 가보니까 과일이 좋지 않더라고요. 제 고향(경주) 특산물인 찰토마토, 단감, 부추도 요즘 안 좋습니다. 복숭아, 자두 같은 것들도 상황이 안 좋아요. 보리도 안 좋고.”

    ▼ 전국의 작물 상황을 다 알고 계시네요.

    “농협회장이 그런 걸 모르면 안 되죠. 지난해 토마토 같은 것은 가격이 맞지 않아 다 뽑아내기도 했습니다. 요즘 농산물 문제를 제기하기가 좀 그렇습니다만, 앞으로 농산물 관련 문제가 분명히 이슈가 될 겁니다. 강화도에서 발생한 구제역도 고민스럽지만, 가장 큰 문제는 쌀값입니다. 조곡 기준으로 (80kg 한 가마에) 14만원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농업인들의 생활이 걱정입니다. 가을 추수철 시세보다 더 내려가고 있어요.”

    ▼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풍년이 되면 풍년 됐다고 웃다가 팔 때 되면 울상인 게 농민들의 삶입니다. 쌀은 더 심하죠. 지난해 정부 예측보다 풍년이 더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북지원 쌀이 줄어든 영향도 있죠. 정부가 나서서 쌀값을 안정시켜야 하는데 정부도 사실 고민이 많을 겁니다. 기후변화로 인해서 모든 작물이 형편없습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약 30%밖에 생산이 안 되고 있어요. 투자비를 생각하면 농업인들은 엄청난 적자를 보게 됩니다. 재해지역 선포 같은 대책을 정부가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도 아닌 사람의 문제

    최 회장은 취임 초기부터 지역농협을 수시로 방문하며 스킨십을 강화했다. 농협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농협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해왔다.

    ▼ 지역을 많이 다니시는 걸로 압니다.

    “시간만 나면 조합장들을 만나러 다닙니다. 현지 상황을 보러 다니죠. 2년 동안 정말 많이 다녔어요. 전임 회장들이 4년 동안 다닐 걸 이미 다 다녔습니다. 조합장들 하고 공식적으로 만나는 자리만 1년에 2~3번입니다. (예전에는) 대표나 상무를 보내서 보고했는데 지금은 제가 직접 다닙니다. 그랬더니 농협중앙회에 대한 이해도 빨라지고 참여율도 높아졌어요.”

    ▼ 농협개혁방안에서 밝힌 회장 단임제, 간선제 등은 사실 현직 회장으로서 결정하기 쉽지 않은 것인데요.

    “개인적으로는 단임제가 꼭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책임경영이란 측면에서 보면 비효율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연임한 이전 회장들이 계속 문제가 됐으니 한번 바꿔보자는 겁니다. 국민이 ‘오래 하니까 사고가 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런 불신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바꿔보자는 거예요. 사실 죄를 짓고 안 짓고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고 사람의 문제라고 봅니다. 일단 해보고 단임제가 또 문제가 되면 다시 연임제를 할 수도 있다, 전 그런 생각입니다. 그래서 제안을 한 것이죠.”

    최 회장이 취임한 이후 농협은 ‘농협을 농업인에게 돌려주자’는 목표를 세우고 엄청난 금액을 농업인에게 지원해왔다. 지난해에도 1조1203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농업인 및 농업·농촌 지원 사업에 썼다. 농촌 인재육성을 위한 장학사업에도 총력을 다했다. 올해 말 준공을 앞두고 있는 NH장학관도 그러한 노력의 산물이다.(박스기사 참조) 산지유통혁신 112운동, 농기계은행사업, 친환경농산물 브랜드 사업 등도 마찬가지다.

    먼저, ‘산지유통혁신 112운동’(이하 112운동)은 산지에서 개별 농협 및 개별 농업인들이 시장과 거래하다보니 교섭력이 떨어져 농산물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소비자 또한 비싼 값에 농산물을 사야 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시작됐다. 112운동은 ‘1조합 1품목 공선출하회(출하계약에 의해 공동선별·공동계산을 의무적으로 실천하는 회원제 조직)와 1시·군 1연합사업단을 2년 이내에 육성해 농협이 농산물 산지유통혁신을 주도케 하는 운동’이다. 이와 관련, 최 회장은 “농업인은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고 농산물 산지유통만큼은 농협이 반드시 책임지겠다는 겁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2008년 10월부터 시작된 농기계은행사업은 농업인들 사이에서는 ‘농협 히트상품’으로 불린다. 농협이 각 농가의 농기계를 구입해 농업인들에게 임대하거나 직접 농작업을 대행해주는 이 사업은 고가의 농기계 운영으로 부채 문제에 시달리던 농업인들에게 단비와 같은 역할을 했다. 특히 농촌의 고령화로 인한 일손부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농협은 이 사업을 실시한 지 1년여 만에 중고 농기계 1만6000대(약 3000억원)를 매입해 농가부채를 줄이는 데 일조했으며 전국 논 면적의 4%인 3만4000ha에 농작업을 대행해 농가의 영농비용 절감에도 크게 기여했다. 농협은 2012년까지 5년간 농기계은행사업에 총 1조원의 자체자금을 투입해 농가부채 5000억원을 경감시키고 농작업 대행을 통해서는 1조7000억원의 생산비를 절감하는 등 총 2조2000억원대의 기대효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친환경 농산물 사업도 농협의 주력 사업 중 하나다.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증대되고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이 화두가 되면서 친환경농산물의 생산량은 전체 농업생산량의 15%에 육박하고 있다. 농협이 취급하는 친환경농산물 규모도 2008년 9241억원, 2009년에는 9603억원으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농협은 친환경농산물 생산자를 조직화해 (사)전국친환경농업협의회를 출범해 출하량을 규모화하고, 농협의 대표브랜드인 ‘아침마루’를 중심으로 다양한 소비촉진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아침마루’ 브랜드로 생산되는 농산물은 총 60여 품목에 달한다. 이와는 별도로 축산경제부문에서도 브랜드화가 한창이다. 2008년 11월 출시된 농협안심한우를 시작으로 목우촌육우(2008년 12월), 안심포크(2009년 3월), 안심계란(2009년 11월) 등이 시리즈로 출시되어 소비자의 입맛을 자극하고 있다.

    사업구조개편 과감히 시도

    요즘 농협이 안고 있는 최대 현안은 사업구조 개편이다.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해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분리해 각각 지주회사 체제로 만드는 것이 골자를 이룬다. 1990년대 농산물 시장개방 등이 가져온 농업과 농촌의 경제침체, 2008년 불어닥친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중앙회 경제·신용사업의 위기가 구조개편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실제로 2007년 1조2000억원이 넘던 농협의 당기순이익은 2008년엔 2400억원대로 떨어졌고 지난해에도 4450억원 정도에 머물렀다. 지금 상태로는 지속적인 성장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 숫자로 확인된 셈이다.

    특유의 돌파력

    그러나 이미 수년 전부터 제기되어온 신용·경제사업 분리 개편안은 허공에만 머물러왔다. 50년 이어온 사업의 구조를 개편한다는 것은 보통 결심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구조개편에 들어갈 재원확보 방안 등이 마련되지 못하면서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 그러나 최 회장이 들어선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농협 주변에서는 “최 회장 특유의 돌파력이 힘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많다. 최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부의 결정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농협이 앞장서서 정부에 방안을 제시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모습을 드러낸 농협중앙회의 사업구조개편안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 농협의 사업구조개편, 즉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분리 문제는 상당히 오랜 기간 많은 논의가 있어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농협이 이번에 본격적으로 사업구조개편을 추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맞습니다.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정부 눈치 보느라 늦어지고 계획이 자꾸 수정되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지 말자는 겁니다. 농협이 먼저 계획을 세우고 정부를 설득하면 됩니다. 농촌의 문제, 농업인의 문제는 농협이 제일 잘 압니다. 그리고 우리가 나서서 계획을 수립하고 안을 내야 농업인들에게 더 큰 혜택을 줄 수 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농협은 농업·농촌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1960년대에는 부족한 비료와 농약의 공급을 통해 식량증산을 이루었고 70년대에는 상호금융을 도입해 농촌에 만연하던 고리채를 해소했으며 80년대에는 연쇄점 사업을 활성화해 농촌물가를 안정시켰습니다. 90년대에도 미곡종합처리장(RPC) 등을 도입해 우리나라 양곡유통체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어요. 이제 새로운 시대에 맞게 농업과 농협을 혁신해야 한다는 겁니다.”

    ▼ 숙원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칼을 뺀 거네요. 정부의 도움이 절실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자본금 부분은 정부가 농업인을 돕는 차원에서 해결해줘야 합니다. 지원이 아닌 농업에 대한 투자라는 생각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농촌이 제대로 서야 국가나 정부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농업인을 위한 사업을 정부가 모두 직접 할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 농협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중앙회 중심의 정부 지원 필요

    ▼ 구체적으로 정부가 어떻게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농협은 일반 회사와 다릅니다. 협동조합의 공동발전이 가장 중요한 목표죠. 이를 위해서는 협동조합인 중앙회가 앞으로 만들어지는 지주회사의 지배권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의 지원금이 중앙회를 통해 지주회사에 지원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현재 정부는 지원할 수 있다는 정도의 문구만 넣자는 입장인데 그것으로는 안 됩니다. 지원방식, 대상, 시기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합니다.”

    ▼ 농협이 준비하는 구조개편이 마무리되면 어떤 것이 달라지나요.

    “일단 금융서비스가 확 달라집니다. 우리가 달라지면 금융시장 전체가 달라질 겁니다. 유통부분에서도 혁신이 일어날 겁니다. 우선 유통비용이 절감됩니다. 20% 이상 절감됩니다. 10%는 농민에게, 10%는 소비자 혜택으로 갑니다. 유통마진이 현재 백화점 같은 곳은 35~40%라고 한다면 우리는 20% 아래로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농산물 가격도 지금과는 달라질 겁니다. 농협이 하면 달라집니다. 솔직히 유통사업에서는 어느 정도 적자가 날 수도 있습니다. 농협이 적자가 나도 그만큼 농민과 소비자에게 혜택이 가는 것이니 관계없어요. 그래서 추진하자고 했습니다. 지켜보세요. 우리 농협이 아니면 못하는 일들입니다. 당장 돈을 못 벌어도 농업인을 위한 사업을 농협이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농업인 지원·사회공헌 사업

    “농협을 농업인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NH장학관-조감도

    지난해 농협이 농업인 및 농업·농촌에 지원한 돈이 총 1조1203억원에 달한다. 중앙회가 직접 지원한 금액이 2907억원, 지역농협이 영농자재 무상지원 및 안전농축산물 생산·유통지원 등으로 지원한 예산이 8204억원이다. 농협복지재단도 장학생 지원 등에 92억원을 썼다. 농협은 2010년에는 이 지원금액을 1조2903억원선으로 늘린다는 야심 찬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중앙회가 조합의 육성을 위해 지원한 금액도 규모가 만만치 않다. 우선 경제사업 활성화 및 유통활성화, 합병지원 등을 통해 1122억원의 수혜를 안겨줬다. 그 외에도 농축산물 생산·유통 활성화, 교육 및 홍보에 939억원의 예산을 편성, 지원했다. 또한 비료 및 사료, 원제농약 등의 가격을 인하함으로써 연간 3886억원가량의 농가경영비 부담을 경감시켰다.

    최 회장 취임 이후 급증한 사회공헌 활동도 눈길을 끈다. 농협은 우선 농촌 인재육성을 위한 장학사업에 많은 자금을 지원했다. 2009년에는 4만9207명에게 총 344억원을 지원했으며 올해에도 5만1785명에게 404억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올 11월 준공을 앞두고 있는 NH장학관(서울 강북구 우이동)도 농협이 이뤄낸 성과 중 하나다. 서울에서 공부하는 농업인 자녀들의 주거생활 안정을 위해 설립되는 NH장학관에는 500명가량의 학생이 생활하게 된다. 총 사업비 411억원이 소요될 이 시설은 내년 2월 입주가 시작된다. 이 외에도 농협은 셋째아이 이상을 출산한 농촌가정에 출산축하금 100만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농업인을 위한 무료의료지원사업을 전국에서 펼치고 있다. 이를 통해 2009년에만 2만명 이상이 의료지원 혜택을 입었다.


    농협보험, 일단 해보자

    언제나 문제는 ‘돈’이다. 우선 구조개편에 소요되는 자금을 마련하는 문제가 가장 큰 숙제다. 정부도 농협도 그것이 고민이다. 농협 측은 “부족자본의 내부 조달을 위해 최대한 자구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그러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성공적인 사업구조 개편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구조개편 문제와 함께 요즘 농협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농협보험회사를 설립하는 문제다. 농협은 이미 공제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50년간 보험상품을 취급해왔다. 이것을 신용사업 분리에 발맞춰 정식 보험회사를 설립해 전문화를 꾀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은 사업부문 중 하나로 되어 있는 것을 보험전문사로 분리해 특화시킨다는 것. 그러나 기존 보험업체들은 농협에 대한 특혜라며 반발하고 있다. 일반 보험사들은 농협이 일부 보험 상품만 취급하는 금융기관대리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 회장은 보험 문제는 국익과도 관련이 있는 중요한 문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 보험들을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많은 돈이 외국 보험사를 통해 빠져나가고 있습니까. 열심히 수출해서 번 외화가 이렇게 빠져나가고 있어요. 그것만 막아도 국가적으로는 큰 혜택입니다. 국익 차원에서 말이죠. 국내 보험시장을 크게 흔들지 않으면서 동시에 국민이 큰 혜택을 보게 할 수 있습니다.”

    ▼ 그렇지만 기존 보험사들의 반발이 아주 심한데요. 입법과정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아무래도 이해관계가 있는 문제다 보니 그렇습니다. 농기계 종합보험이나 농업인 안전보험 같은 것을 기존 보험사들이 할 수 있겠어요? 그러면 그동안 이런 식의 농촌보험은 누가 다 했습니까. 우리 농협보험이 해온 겁니다. 돈이 안 되는 일이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기에 농협이 해왔어요. 그러면 농협에 대해 지금보다는 수월하게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죠. 농협을 시중은행처럼 취급하면 곤란합니다. 예전에 농촌에 가면 이자가 5부, 1할 이랬습니다. 그런 걸 모두 해결한 게 농협입니다. 그런데 그런 건 칭찬하지 않고 이제 와서 농협을 은행으로 분류해놓고 자기들 기준대로 농협에 제한을 두는 것은 안 될 말입니다.”

    ▼ 일정이 계속 늦어지고 있는데요.

    “(보험사 설립문제가) 3월말까지 끝났으면 좋았죠. 저희는 현재 120명 규모의 TF팀을 꾸려 놓고 모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이 자꾸 늦어지면서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인력이 제대로 일을 못하는 것만으로도 큰 피해입니다. 늦어도 4월 말까지는 정부와 국회가 농협 사업구조개편을 마무리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일단 해보고 문제가 생기면 또 해결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보험회사 눈치 보고 농협 눈치 보고 그러는데, 제발 그러지 말고 농촌을 생각해 달라는 겁니다.”

    보험료 대폭 인하

    ▼ 농협보험회사가 설립되면 가장 먼저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국민이 내는 보험료를 연간 수조원 정도 절약할 수 있습니다. 현재도 농협이 판매하는 보험상품이 많이 쌉니다. 더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소비자에게 엄청난 이득이죠. 농협이 시작하면 다른 보험사들도 따라올 겁니다. 분명히 국민경제에 도움이 됩니다.”

    현재 농협의 신용사업부문 중 중앙회의 은행부문은 국내 은행권 4위 규모를 자랑한다. 지역농협을 포함하면 금융기관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농협 측은 “지난 한 해에만 농어촌구조개선, 축산발전기금 등 정책자금 지원금액에만 23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농협의 신용사업에서 눈에 띄는 것은 금융소외지역에 대한 양질의 금융서비스 제공이다. 농협은 농촌지역에 총 점포의 43%를 설치해놓고 있다. 일반 시중은행들(11~16%)과는 큰 차이가 있다. 농협 측은 “순수 민족은행으로서 공익적 금융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이유를 소개했다. 농협 신용부문은 서민경제 활성화에도 적극 지원하고 있는데,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총 5659억원을 서민경제 활성화를 위해 저신용자, 생계형 무등록사업자들에게 지원했다. 현재 농협의 신용사업 부문은 보험과 카드를 내부 겸영하는 동시에 증권, 선물 등 4개 금융계열사(NH증권, NH-CA자산운용, NH선물, NH캐피탈)로 구성된 은행자회사 방식의 종합금융체제를 갖추고 있다.

    ‘농협’ 브랜드 훼손 용서 못해

    “농협을 농업인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지난해 6월8일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농협법 개정 공포안에 서명했다. 왼쪽부터 정정길 대통령실장, 최계조 부산대저농협조합장, 최원병 농협중앙회장, 장태평 농수산식품부 장관, 정재돈 농업개혁위원대표, 강성채 전남순천농협조합장,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최 회장이 취임 이후 드라이브를 걸었던 농협개혁의 주 내용 중 하나는 부정부패 일소였다. 오랜 시간 관행으로 자리 잡은 선거 부조리를 해결하는 문제에 대해 최 회장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강조했다.

    ▼ 농협 내 각종 부조리에 대한 척결 의지를 밝혀 오셨는데….

    “이유를 불문하고 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지원을 중단합니다. 선거뿐 아니라 관리 부실 등의 사고가 나도 마찬가집니다. 농협이라는 브랜드에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되면 용서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는 겁니다. 솔직히 돈을 유포한 사람도 잘못이지만 돈을 받은 사람들도 문제입니다. 돈을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 관행적인 부조리가 많이 사라졌나요.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 명절 때 회장부터 상무, 부서장까지 선물 돌리던 관행도 이제 없습니다. 일부 여건이 열악한 직원들 중에 문제가 발생하곤 하지만 그 문제도 거의 해결 단계에 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잘못된 관행에 물들지 않고도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인사규정을 만들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농협은 2009년 1월부터 조합선거 전담기구인 ‘조합선거관리사무국’을 설치하고 공명선거 결의대회 및 후보자 간담회 개최, 공명선거 문자메시지 및 당부서한 발송, 신고포상금제 실시, 현장지도 등 유관기관과의 공조하에 각종 계도 및 홍보활동을 강화해왔다. 2010년 1월에는 조합장 선거 과열과 부정선거 방지를 위해 대대적인 공명선거 광고 및 캠페인을 실시해 조합원들의 의식 제고를 촉구한 바 있다. 조합 선거제도 개선을 위한 방안이 담긴 농협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 학계, 농민단체, 조합장 등이 참여하는 ‘조합 공명선거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외부의 다양한 의견을 겸허히 수용, 조합 공명선거를 위한 각종 제도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세계 속의 농협

    최 회장은 2008년에 이어 최근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이사에 재선되는 영광을 누렸다. 세계 300대 협동조합 순위에서 4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우리 농협의 위상이 반영된 결과였다. 현재 농협은 ICA 회원국 사이에서 ‘가장 닮고 싶은 협동조합 모델’로 꼽혀 매년 30여 개국에서 500명 이상이 방문할 정도로 세계 속 위상을 키우고 있다. 농협은 1995년부터 협동조합의 유엔이라고 불리는 ICA의 이사기관도 맡고 있다. 최 회장은 ICA 이사 재선과 관련, “세계적인 위상만큼 국내에서 농협이 대접을 못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농협인임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게 만드는 게 회장인 제 역할이다”고 말했다.

    퇴임한 뒤 박수를 받으며 고향에 돌아가는 농협회장이 되고 싶다는 그는 앞으로의 욕심,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농협의 오랜 관행, 부조리를 모두 종결짓고 정부가 약속한 대로 자본금 받아서 농협이 탄탄대로를 갈 수 있게 만들어놓는다면, 농협의 선진화를 이룰 기틀만 만들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그것만 된다면 후회 없이 언제라도 농협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만 벌이고 책임을 지지 않는 회장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문화가정 지원사업

    농협은 급증하는 농촌 결혼이민 여성을 위해 이들의 모국 방문을 지원하거나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07년 시작된 이민여성 모국 방문 사업은 2007년 763명(195개 가정)이 모국 방문 혜택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08년에는 100개 가정 394명, 지난해에도 153개 가정 588명이 수혜자가 되었다. 이들에게는 왕복항공권과 체재비가 지원됐다. 농협 측은 “지원 사업이 알려지면서 많은 농촌가정에서 신청하고 있다. 요즘은 경쟁률도 아주 높다”고 밝혔다.

    농협은 현재 결혼이민여성들을 위한 여성대학도 운영하고 있어 농업인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민여성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한 교육·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여성대학에는 2008년 276명, 2009년에는 422명이 참가해 수료했다. 농협은 그 외에도 이민여성들의 한글개명(改名) 사업도 벌이고 있어 지난해에만 266명에게 도움을 줬다. 농협은 이들에게 한글개명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전액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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