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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절집 숲에서 놀다 ⑤

유별난 백양사 봄 숲

  • 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유별난 백양사 봄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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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특성으로 매년 수많은 열매를 맺는 다산성(多産性)을 생각할 수 있다. 농경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 활동은 식량생산이었다. 옛사람들은 끊임없이 열매를 맺는 나무의 생산력을 무심히 보아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나무의 재생성(再生性)도 무시할 수 없다. 나무는 예부터 무성번식(無性繁殖)을 통해 줄기나 뿌리나 가지의 조각에서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를 재생해낼 수 있는 생명체로 인식됐다.

장구한 수명, 거대한 덩치, 우주의 리듬 재현, 다산성, 재생성 등은 다른 생명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나무 고유의 특성이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문화권에서 나무숭배 의식이나 풍습이 전해오는 것도 나무의 이런 특성 때문일 것이다. 부처가 룸비니 숲의 사라수 아래에서 태어나고,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치고, 사라수 아래에서 열반을 한 사연도 나무를 신성하게 여긴 고대 인류의 나무숭배 의식을 종교에 접목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고승대덕의 지팡이 설화에서 유래한 절집의 나무 역시 외래 종교인 불교가 신성한 나무를 숭배하던 이 땅의 토착 신앙을 포용한 흔적인 셈이다.

애민(愛民)의 정성으로 키운 비자나무 숲

백양사의 자랑거리 중 비자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그 다음으로 아기단풍, 고불매(古佛梅), 이팝나무, 갈참나무 등이 이어질 수 있다. 백양사의 비자나무는 한두 그루씩 단목으로 존재하지 않고, 50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어 이채롭다. 들머리 입구에서도 제법 큰 비자나무들이 모여 있는 작은 숲을 볼 수 있지만, 제대로 된 비자나무 숲의 형태는 천진암 부근이나 약사암(금강암)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천진암 부근의 비자나무 숲에는 목책으로 산책로와 함께 멋진 휴식공간도 마련해놓아 비자나무 숲의 향취를 느긋하게 즐기기 좋다.

비자나무는 원래 추위에 약해서 제주도나 온난한 해안지방에서만 생육한다. 백양사의 비자나무는 내륙 쪽에서 그리고 위도상으로 가장 북쪽(북한계)에서 자라는 생육 특성 때문에 천연기념물(153호)로 지정되었지만, 오늘날은 더 북쪽인 내장산에서도 비자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백양사의 비자나무는 백양사의 3창에 공헌한 각진 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내장산이나 백양사 일대는 비자나무의 천연 자생지라기보다는 사람의 힘으로 전래된 생육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비자나무는 호남지방 해안가의 여러 사찰에서도 자라고 있다. 천연기념물 239호로 지정된 고흥 금탑사의 비자림, 100년생 이상의 비자나무 230여 그루로 산림욕장을 운영하고 있는 장흥 보림사의 비자림, 고창 선운사의 비자나무, 영광 불갑사의 비자나무, 진도 구암사 터의 비자나무, 강진 백련사의 비자나무 등이 그 예다.



절집과 비자나무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절집과 비자나무의 관계는 먼저 비자나무의 효용 가치에서 찾을 수 있다. 비자나무 열매(榧子라 부른다)는 오래전부터 구충제로 널리 쓰였다. 백양사의 경우, 1970년대만 해도 주변 농민들에게 비자 채취를 개방했고, 농민들은 비자 구충제 판매로 농가소득에 보탬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오늘까지 전해온다. 고려사에는 문종 7년에 탐라국에서 조정에 비자를 바쳤다는 기록이 나오고,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는 경상도 동래현과 전라도 나주목, 진도(해진군), 제주목의 토공(土貢)으로 비자나무의 열매와 판재가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다산 정약용이 남긴 한시(漢詩)에는 비자를 채취해 관가에 공납해야 했던 강진 백련사의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미루어 짐작건대, 조선 조정에서는 구충제를 확보하고자 각 사찰에 비자나무를 키우게 하고, 그 흔적들이 호남 해안가 사찰의 비자나무로 남아 있는 것이다. 결국 절집에서 키워낸 비자가 기생충으로 횟배를 앓던 민초들의 고통을 구제해준 셈이다.

‘동의보감’에는 비자 열매의 약성(藥性)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비실(榧實)은 3시충을 없애고 촌백충증도 치료한다. 늘 7개씩 껍질을 버리고 먹는데 오랫동안 먹으면 충이 저절로 나온다. 600g만 먹으면 충이 완전히 없어진다. 비자(榧子)의 성질은 평(平)하고 맛이 달며(甘) 독이 없다. 5가지 치질을 치료하고 3충과 귀주를 없애며 음식을 소화시킨다. 일명 옥비(玉榧)라고도 하며 지방 사람들은 적과(赤果)라고 부른다. 껍질을 까 버리고 알을 먹는다. 촌백충증 환자에게 하루에 7개씩 7일 동안 먹이면 촌백충은 녹아서 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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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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