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가족의 일상은 이렇다. 오전 7시20분쯤 일어나 아이들을 깨워 토스트와 과일, 시리얼을 먹이고 학교 갈 준비를 한다. 봄이 된 이후로 스코틀랜드의 낮이 부쩍 길어져 7시만 지나면 온통 환하다. 8시10분이면 희찬이가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선다. 보통 영국의 초등학생들은 집 근처 학교에 다니지만, 희찬이는 외국인 특별학교에 다니는 터라 매일 아침 글래스고 시의회에서 무료로 보내주는 미니버스를 타고 학교에 간다. 희찬이가 학교에 간 뒤에 희원이를 씻기고 옷을 입혀서 차에 태워 유치원으로 향한다. 언덕배기에 있는 유치원 마당에는 비 오는 날이면 가끔 커다란 개구리들이 앉아 있어 나를 혼비백산하게 만든다. 희원이를 유치원에 데려다놓고 다시 집에 와 차를 주차장에 두고, 나는 걸어서 연구실로 향한다. 500년이 넘은 글래스고대학에는 주차장 공간이 충분치가 않아서 나는 늘 20분쯤 걸어서 학교에 간다. 비가 오거나 거센 바람이 부는 날이면 20분의 등굣길이 그야말로 악전고투지만,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날에는 무척 즐겁다. 맑은 하늘에는 예쁜 구름이 가볍게 흘러가고 길가에 수선화와 이름 모를 들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한들거린다. 연구실 문을 밀고 들어서면 드디어 내 자리로 왔다는 충족감이 살며시 나를 감싼다.
봄바람이 분다
학교만 아니라 오래된 도시 글래스고 시내는 대부분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 한국에 비해 대중교통이 그리 잘되어 있는 편도 아니고 결정적으로 교통비가 비싸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20~30분 거리는 으레 걸어 다닌다. 나 역시 웬만한 거리는 걷는 게 일상이 됐다. 운동화를 신고 걸어 다니다보니 한국에서 나를 괴롭히던 요통도 사라졌다.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정형외과 신세를 졌고, 의사로부터 “빨리 디스크 수술하는 게 그나마 고생 덜하는 길”이라는 말도 듣곤 했는데 말이다.
오후 4시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데리고 집 근처 클라이드 강변으로 산책을 가거나, 이웃동네 놀이터에 갈 때도 당연히 걸어간다. 놀이터에 있으면서 비슷한 처지의 주부들이나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할머니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곳에서는 좀체 보기 어려운 동양인 아줌마가 신기해서인지, 스코틀랜드 아줌마와 할머니들은 내 이야기를 고개 끄덕이며 열심히 들어준다. 소리 없이 내리는 부슬비를 맞으면서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 마트에서 다음날 먹을 우유와 식빵을 사거나 공립도서관에 들러 한두 권의 책을 빌린다. 어느새 하늘을 가득 물들인 주홍빛 노을을 바라보며 아이들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 소박한 생활이 나는 정말로 좋다. 더구나 그 춥던 겨울도 지나가고 봄바람이 부는데 더 이상 무얼 바랄까 싶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는 자의든 타의든 짊어져야 하는 짐이 많았다. 꽤 오랫동안 여러 직장에서 여러 직책으로 얽혀 있었고, 아이들의 엄마 노릇, 글 쓰는 일, 크고 작은 집안일이 끝이 없었다. 희찬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학부형 노릇이 예상외로 큰 부담이었다. 학부모 모임이나 친구 생일 파티, 학교 운동회, 학원 보내기 등 무슨 일이 그렇게나 많은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엄마는 아이 매니저로 전락한다는 말이 절로 실감났다.
그 모든 부담에서 멀리, 아주 멀리 떨어진 지금은 그저 내 공부와 두 아이에게만 집중하면 되는 단순한 생활의 연속이다. 희찬이의 학교생활도 단순하기는 마찬가지다. 잉글랜드와 달리 스코틀랜드의 초등학교에는 시험이 없다(잉글랜드 초등학생은 6학년이 되면 전국 일제고사를 치른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초등학교 일제고사를 시행하지 않는다. 요즘 잉글랜드의 학부모들은 스코틀랜드처럼 일제고사를 폐지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아이의 시험 성적이 얼마나 엄마를 옥죄는지, 여기에 와서 새삼 실감했다. 아이가 시험을 치지 않으니 시험성적표가 있을 리 없고, 성적 때문에 부모가 속 끓일 일도 없는 것이다. 학교 선생님과의 정기적인 면담 때는 아이가 학교에서 누구와 친한지, 무얼 잘하고 어디에 소질이 있는지, 학교 급식은 어떤 걸 잘 먹는지, 축구를 좋아하는지 아니면 럭비를 좋아하는지 같은 이야기를 주로 나눈다.
“필립이라고 불러라”
이곳에서의 삶이 만족스러운 또 하나의 이유는 너나 할 것 없이 나를 온전히 나로 봐준다는 점이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나를 내 영문이름인 ‘위니(Winnie)’라고 부른다. ‘선생님’이나 ‘기자님’ ‘희찬이 엄마’ ‘올케’ ‘언니’ ‘선배’라고 부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지도교수는 물론이고 연구실 동료나 아랫집 존 할아버지, 희원이의 친구 엄마 모두 나를 ‘위니’라고 부른다. 나보다 열 살 위든, 열 살 아래든, 남자든 여자든 간에, 나를 부르는 호칭은 다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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