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왕세자’의 운명

삼성그룹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씨.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창업공신들의 반발이었다. 이맹희씨가 경영권을 물려받은 직후부터 불거진 이러한 반발은, 경영권을 잠시 맡아 그룹의 일시적인 위기를 잘 넘겨달라는 이병철 회장의 뜻을 이맹희씨가 잘못 읽었던 게 원인이었다. 그룹을 자신의 체제로 무리하게 재편하려 했던 것이 화근이 된 셈이다. 당시 이병철 회장이 장남에게 물려준 경영권은 대리경영을 통해 후계자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 절대적인 대권을 부여한 게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잠시 잊고 있었다. 결국 ‘한비 사건’으로 인해 장남과 차남이 실각하면서 삼남인 이건희씨가 삼성그룹의 후계자로 새롭게 등장했다.
셋째 아들의 후계자 등장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취약성은 이병철 회장에게 고민을 안겨주었다. 이병철 회장은 무엇보다 이맹희씨가 자신의 사후에 ‘삼성그룹의 장남’이라는 명분을 들고 다시 돌아올 가능성에 무척 신경을 썼다. 이 때문에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장남의 후계자 컴백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제거할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그를 사회적으로 완전히 격리해 재기 불능 상태로 만드는 계획까지 세웠다. 이후 이맹희씨는 산간벽지와 미국, 일본 등을 떠돌며 삼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으로 유랑생활을 해야 했다.
2001년 5월1일, 김정일 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아들과 두 명의 여성을 대동하고 도미니카공화국의 가짜 여권을 소지한 채 일본 나리타 공항으로 입국하려다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세계에 타전됐다. TV를 통해 공개된 김정남은 뚱뚱한 풍채에 거만한 표정을 지은 모습이었다.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었다”고 입국 사유를 밝힌 그는 67시간 만에 일본에서 추방되어 중국 베이징 공항에 내렸고, 이후 북한에 들어가지 못한 채 중국, 러시아, 홍콩, 마카오 등을 여행하며 낭인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김 위원장의 눈 밖에 나 후계자 자리에서 멀어졌다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과연 그게 전부였을까. 일본 밀입국 사건이 그를 후계자 신분에서 밀어낸 결정적인 계기였을까. 이는 단지 대외적인 명분이었을 뿐 이미 김정남은 후계자의 자리에서 멀어져 있었다고 보는 게 훨씬 설득력 있다.
김정남은 김정일 위원장이 아버지에게서 권력을 물려받았던 당시의 선례에 따라 1990년부터 ‘황태자’로서 후계수업을 착실하게 받아왔다. 김 위원장이 그를 당 회의실로 데려가 가운데 자리를 가리키며 “네가 커서 큰소리칠 자리다”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 김정남은 1990년 조선컴퓨터센터(KCC) 설립을 주도하는 등 IT 및 군사 분야에서 주요 직책을 맡았고, 김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탈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베이징에 비밀거점을 마련해놓고 탈북자들의 강제송환을 총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