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호

교육공무원으로 변신한 ‘대치동 학원가 전설’ 이범

“입학사정관은 개천서 용 나는 길 막는 제도”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0-09-17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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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치동에서 100억 넘는 돈 벌었다
    • 정부가 사교육 메커니즘 몰라도 너무나 모른다
    • 박정희를 벤치마킹하라!
    • 엄마표 영어, 아빠표 영어
    • 수능시험이 사교육에 백전백패인 까닭
    교육공무원으로 변신한 ‘대치동 학원가 전설’ 이범
    그는 학원가에서 전설로 통했다.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봉급생활인은 상상도 못할 큰돈을 벌었다. 경기과학고·서울대를 졸업한 수재. 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과학사·과학철학을 공부했다. 1969년생.

    ▼ 전국의 과학고 정원이 통틀어 240명일 때 과학고에 들어갔다. 삶의 길이 어긋났단 생각 안 해봤나.

    “후회 안 한다. 박사 논문 못 쓴 건 아쉽지만.”

    ▼ 왜 학원 강사가 됐나.

    “학원에서 처음으로 강의한 때가 1995년이다. 박사과정을 밟을 땐데 돈이 필요해 과외 선생 자리를 알아봤다. 지인이 분당에서 학원 강의를 해보라고 권했다. 일주일에 이틀 학원에 나갔다. 아르바이트였다.”



    학원 강의로 삶의 행로가 바뀌었다. 1997년 분당에서 스타 강사로 떠올랐다. 대치동이 분당에서 뜬 이 샛별을 유혹했다. 1999년 여름, 그는 대치동에서 별 중의 별로 등극한다. 과학탐구영역 강사 랭킹 1위. ‘학원가 서태지’란 닉네임이 따라붙었다. 월 1000명이 강의를 들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 영역의 신으로 불렸다.

    그를 비롯한 대치동 스타들은 주입식 교육 달인으로 활약하면서 객관식 시험이 사교육에 얼마나 무력한지를 강의로 입증해냈다.

    대치동 스타들은 2000년 온라인 교육기업 메가스터디를 세운다. 그도 지분을 출자해 참여했다. 기획이사로 동참한 이 회사 주식이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메가스터디는 시가총액 1조원을 오르내린다. 코스닥 대장주.

    ▼ 학원 강사 일이 고되진 않았나.

    “일요일에도 서초·강남·분당·성남을 돌면서 12시간 동안 강의했다. 3시간 가르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 곧바로 수업했다. 체력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학원 강사로 성공하지 못한다.”

    ▼ 돈을 더 벌고자 몸을 혹사한 건가.

    “그건 아니다. 수입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돈에 무감각해진다. 내가 가르치는 방식이 옳다는 믿음이 있었다.”

    학원 강사 간 경쟁은 치열하다. 수요가 일정한 상황에서 누가 더 많은 학생을 유치하느냐를 겨루는 제로섬 게임. 학원 강사는 시험 점수를 올려주는 능력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학생을 몸 달게 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2003년 그는 메가스터디 주식을 팔아치우고 대치동을 홀연히 떠났다. 그러곤 사교육에 칼을 댄다. 교육평론가라는 직함으로 언론에 글을 쓰면서 사교육의 고약함을 고발했다. ‘굿바이 사교육’ ‘이범의 교육특강’ 같은 책도 펴냈다. 학원가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 대치동을 왜 떠났나.

    “메가스터디 내부에 분란이 있었다. 그게 계기였다. 괴로웠고, 회의가 밀려왔다. 말도 안 되는 교육제도 탓에 고생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분노도 치밀었다.”

    ▼ 수백억대 부자로 알려졌다.

    “100억원대다. 이런 얘기는 안 썼으면 좋겠다. 학원가 사람들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공교육 브레인

    그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취임과 함께 교육공무원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사교육 전설이 공교육 브레인으로 변신한 것. 명함에 서울시교육청 로고가 선명하다. 서울시교육감 정책보좌관 이범.

    ▼ 교육감비서실엔 어떻게 합류했나.

    “교육감선거 때 캠프에 참여했다. 비서실에서 일해달라는 제의를 받고 수락했다.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출퇴근 시간 없이 자유롭게 살던 사람이 잘하겠느냐는 걱정도 하더라. 잘 적응하고 있다.”

    그는 선거 공신인데다 핵심 참모다. 실세로도 불린다. 그가 품은 교육철학이 서울시 초·중·고 교육정책에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교육정책 브레인이던 이주호 장관의 견해가 정책으로 구현되고 있듯 그의 의견도 서울시민 일상에 개입하는 교육방안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는 어떤 철학을 갖고 있을까.

    ▼ 교육감에게 영향을 주는 핵심 참모 아닌가. 방향을 잘못 잡으면 미래 세대가 낭패 본다.

    “교육감 잘 뽑았단 평가가 나오게끔 하겠다. 곽노현 교육감은 자질, 능력이 대단하다. 보좌진이 우왕좌왕하면 명쾌하게 사안을 정리한다. 원칙주의자면서 낙관주의자다. 서울시 교육이 수장을 잘 만났다. 임기를 마칠 때쯤 진보 교육감 뽑길 잘했단 말이 회자돼야 한다.”

    그는 서울시교육청 계약직 4급 공무원. 일반 공무원 직급으론 7급에 해당한다. 1년 급여는 3500만원 수준. 그가 대치동을 떠나던 해 연봉은 18억원에 달했다. 온라인·오프라인 강의료, 교재판매 대금으로 거둔 수익이 그렇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다 교육청에 합류한 어떤 분은 월급이 반으로 줄었다. 영달하고자 비서실에 들어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다들 교육을 바꿔보겠단 신념으로 일한다.”

    그는 말본새가 반듯하다. 위트가 넘치고 논리가 정연하다. 독서의 넓이, 깊이가 언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신이 강해보이면서도 유연하다. 그는 자신을 좌파라고 규정하지만 좌·우파로 재단하기엔 스펙트럼이 넓다.

    ▼ 사교육으로 돈 벌고 사교육을 공격하는 건 이율배반 아닌가. 오렌지 좌파란 비판도 있던데.

    “내가 언제 사교육을 직접 공격했나. 그런 적 없다. 사교육이 덜 필요한 여건으로 제도를 바꾸자는 거다. 지금은 사교육을 받으면 수능 점수가 올라간다. 이런 상황에서 사교육을 어떻게 줄일 수 있나. 사교육하지 말라고 하는 건 언어도단이다. 사교육을 줄이는 방향으로 대학입시가 바뀌어야 한다.”

    ▼ 2001년 메가스터디 손주은 대표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코스닥 상장을 준비할 때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교육 폐해를 없애고자 인터넷 교육기업을 세웠다, 모든 학생이 저렴하게 대치동 강의를 듣는 구조다.

    “지금의 메가스터디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출범 의도는 좋았다. 메가스터디가 낸 첫 보도자료를 지금도 갖고 있다. 사교육비 절감, 교육 기회 균등을 위해 출범했다는 내용이다. 메가스터디는 사회에 기여했다. 3개월 수강료가 40만원 하던 시절인데 12만원을 받았다. 산간벽지에서도 손주은, 이범 강의를 듣게 된 것이다. 지금은 수강료가 꽤 올랐다. 메가스터디가 기여한 게 또 있다. 학교가 주입식 교육하는 게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 일깨운 것이다. 주입식 교육 달인은 대치동에 있다. 학교는 교사, 학생이 상호작용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자유주의 vs 사회주의

    학부모 교육욕은 엇갈린다. 자유주의 욕구, 사회주의 욕구가 중첩한다. 경쟁 완화를 바라면서도 내 자식만큼은 남다른 교육을 받길 원한다. 자식이 경쟁에서 앞자리에 서길 바라는 건 인지상정이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대표하는 자유주의 문제의식 핵은 교육 다양화다. 학생의 적성, 능력에 따라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자는 거다. 곽노현 교육감이 상징하는 사회주의 문제의식은 다양화를 거부하진 않지만 경쟁 완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

    교육공무원으로 변신한 ‘대치동 학원가 전설’ 이범

    그는 2003년 은퇴한 후 무료 온라인 강의를 시작했다.

    ▼ 교육을 좌·우파 잣대로 들여다보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 좌파 우파가 분명히 나뉜다. 자유주의 문제의식은 다양한 교육이 공교육 내에서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교육의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겉으로는 다양화를 표방하지만 실제론 일제고사 도입, 자율형사립고 확대, 수능 개편을 통해 교육을 거꾸로 획일화하고 있다. 수능 개편 구상에서도 국·영·수를 오히려 강화했다. 전공 적성에 상관없이 국·영·수에 몰빵하는 교육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 사회주의자는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가.

    “상대평가나 일제고사처럼 경쟁을 격화하는 제도를 일신하자는 거다.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이 자유주의적이지 않듯 노무현 정부 교육정책도 사회주의적이 아니었다. 특목고 급증을 방치했고 대학입시를 내신 상대평가 중심으로 개편하고자 했다. 내신 성적으로 신입생을 뽑으면 고등학교 교실이 전쟁터로 바뀐다. 대학입시 내신 비중을 높일 때마다 교실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노무현 정부가 그랬듯 진보진영은 내신으로 대학을 가는 제도를 선호한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내신 비중을 강화한 입시 제도를 경험한 학생에게 학교 분위기가 어땠는지 물어보라. 이과가 1개 반뿐인 여고에서 2등을 하면 1등급을 받지 못한다. 서울대 의대는 못 가는 거다. 친구를 죽여야 내가 사는 투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캐나다 스웨덴은 대학입시 없이 내신으로만 학생을 선발하지만 그런 국가들은 대학이 한국처럼 서열화해 있지 않고, 내신이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다.”

    ▼ 그래서 어떻게 바꾸자는 건가.

    “거칠게 말하면 유럽은 사회주의 요소가 강하고 미국은 자유주의 성향이 강하다. 영국 독일 프랑스 대학입시는 국가나 공인기관이 주관하는 서술형·논술형 시험이다. 지망하는 전공별로 시험과목이 나뉘어 있는데 고등학교에서 이 시험을 준비해준다. 공교육이 입시교육기관 기능을 하는 것이다. 미국은 정규수업 시간에 SAT(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집을 풀지 않는다. 학교는 체험 토론 실험으로 이뤄진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미국 대학은 학생을 선발할 때 SAT에 필적하는 비중으로 내신을 반영한다. 미국 학교 시험은 객관식이 아닌 서술형·논술형이다. 한국은 유럽식 미국식이 뒤섞였다. 한쪽으로 확실히 바꾸는 게 좋다.”

    ▼ 고등학교가 대학입시를 전문적으로 준비해줘야 하나, 아니면 미국처럼 정상적 교육을 해야 하나.

    “수학능력시험을 논술형·서술형으로 바꾸고 국·영·수 같은 공통필수 과목을 극소화해 대학 전공별로 다양한 시험과목을 지정하면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 대학입시에 필요한 과목을 선택해 공부하는 유럽식을 지지하는 쪽이다. 나라별로 제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유럽은 학교교육과 대학입시를 밀접하게 연계했다. 미국식으로 가더라도 지금보단 나을 거다. 미국 교육의 힘은 상당하다. 앞서 말했듯 미국은 학교 교육이 올바르다. 한국은 어떤가. 전교 석차를 매기는 상대평가다. 이 대목에서 딜레마에 갇힌다. 미국식 제도를 도입하려면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꿔야 한다.”

    미국 교육부는 3900억원을 들여 SAT를 비롯한 선다형 시험을 폐기하는 학력평가 개혁에 착수했다. 미국이 일제고사 형식의 선다형 시험(選多型試驗·multiple-choice test) 을 없애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선다형으로 대학입시를 치르는 나라는 한국 일본만 남는다.

    ▼ 수능을 논술형·서술형으로 치른다? 채점을 어떻게 하나.

    “우리가 입시문제를 객관식으로 출제하는 데 익숙해서 그렇지 충분히 도입할 수 있는 제도다. 독일, 프랑스, 영국이 하는데 우리라고 왜 못하나. 객관식 시험은 사교육에 백전백패다. 대치동이 수능을 정복해버리지 않았는가.”

    서울시교육청은 초·중·고 학교시험에서 서술형 문항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선다형 시험은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우고 창의성을 높이는 데 단점을 드러낸다. 장점도 적지 않다. 채점자 간 이견이 존재할 수 없어 공정하다. 미국에서 선다형시험이 발달한 데는 인종 계급이 아닌 학습 능력으로 우열을 평가하겠단 뜻도 영향을 끼쳤다. 종적·횡적으로 서로 다른 집단의 학력수준을 비교할 때도 선다형 시험이 유용하다.

    성적으로 학생 줄 세우는 핀란드

    교육공무원으로 변신한 ‘대치동 학원가 전설’ 이범
    인터뷰이(interviewee)가 인터뷰어(interviewer)에게 거꾸로 물었다.

    “성적표에 전교 석차를 표기하는 나라가 한국말고 또 있을 것 같나?”

    ▼ 일본이 그런 걸로 안다.

    “선진 국가 중 전교 석차 매기는 나라는 한국, 일본밖에 없다. 다른 선진국은 A B C D로 평점만 표기한다. 석차는 교육 획일화의 주범이다. A선생님이 1~2반, B선생님이 3~4반을 가르치면 A선생님이 1,2반, B선생님이 3,4반을 평가해야 옳지 않은가. 전교 석차를 매기려면 1~4반이 똑같은 시험을 봐야 한다. 한마디로 교사가 붕어빵 교육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환경에서 국사 시간에 난중일기를 읽고 토론할 수 있겠나. 붕어빵 시험에서 점수를 잘 받으면 그만인데 체험 탐구 발표수업이 이뤄지겠나.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교사는 자신이 가르친 아이만 평가해야 한다. 석차는 교육의 질을 나타내지도 못한다. 학교의 수준이 높건, 낮건 1등부터 꼴찌까지 석차만 매겨질 뿐이다.”

    서울에 터 잡은 명문여고가 최근 구설에 올랐다. 교내 수학경시대회에서 학교 간부 자녀에게 상을 주고자 성적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B양이 다수 서술형 문제에서 풀이 과정이 엉망이었는데 만점을 주거나 1점만 감점하는 데 그쳤다는 거다. 서술형·논술형 시험은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 “왜 저 녀석은 9등이고 나는 11등이냐”는 식으로 이견이 나오기 때문이다.

    “석차를 매기려면 서술형 문제를 도입할 수 없다. 정답이 존재하는, 겉모습만 논술형인 문제가 출제된다.”

    ▼ 절대평가를 도입하면 학생 대부분에게 A를 주는 내신 부풀리기가 성행하지 않겠는가.

    “내신 부풀리기는 딜레마다. 미국 교사는 학생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B를 A로 올려주지 않는다. 한국에선 온정주의가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성적을 잘 주지 않는 교사를 교장이 나무랄 것이다. 한국은 교권이 바로 서기 어려운 구조를 가졌다. 해결책은 딱 하나다. 대학입시 제도를 혁명 수준으로 바꾸는 거다.”

    인터뷰이가 질문을 또 던진다.

    “핀란드 고등학교가 학생을 어떻게 뽑는 줄 아나.”

    ▼ 모르겠다.

    “핀란드를 평준화 모범 국가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다. 핀란드 고등학교는 내신 성적 순서대로 줄을 세워 학생을 뽑는다. 학생이 고교를 선택하고 성적이 안 되면 탈락한다. 대학별 본고사가 존재하고 본고사를 대비하는 학원도 성업 중이다. 그런데도 한국처럼 온 나라가 교육 문제로 떠들썩하지 않다. 왜 그럴까.”

    ▼ 왜 그런가.

    그가 좌파로서의 진면목을 드러냈다.

    “한국보다 사회가 평등해서다. 직업·학력별 소득격차가 작다. 의사도 존경받고, 목수도 존중받는다. 검사, 판사가 되겠다는 강박이 없다. 국가 수준에서 경쟁을 완화해야 교육 경쟁도 준다. 한국 출산율이 세계 꼴찌 수준이다. 사교육비가 출산율 저하 주범 아닌가. 지금과 같은 경쟁 강도, 교육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출산 파업을 막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진보정당을 제외하곤 소득 재분배에 관심이 적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30년 후 좌파가 집권하건, 우파가 집권하건 경제 운용이 곤란해질 것이다. 출산율을 높이는 건 미래 대한민국을 위한 우리 세대 의무다.”

    ▼ 사회불평등이 심각하다고 보나.

    “심각하지 않다고 보나?”

    ▼ 양극화 추세가 우려는 되지만 심각하진 않다고 본다. 바로잡을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앞으로도 심각하지 않을 것 같나?”

    그는 질문이 많았다. 질문을 던져놓고 생각하게 한 뒤 자기 의견을 말한다. 퀴즈를 내는 식으로 화두를 꺼내놓는다. 학원가 경력 덕분인 듯도 하고, 이런 화법 덕에 학생을 몸 달게 한 듯도 하다.

    그는 개천에서 용 나는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흑인 밀집 지역 가봤나?”

    ▼ 가봤다.

    “히스패닉 인구가 많은 텍사스 주는 고등학교 자퇴율이 40%에 달한다. 저소득층이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을 포기해버린 것이다. 중산층 거주지와 저소득층 밀집지를 비교해보면 같은 나라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다. 한국에서도 사교육비 지출이 해마다 줄어드는 계층이 있다. 저소득층이 그렇다. 서울 ○○구, ○○구에 가보았나?

    ▼ 동네 분위기가 어떤지 안다.

    “서울대 들어가는 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부지기수다. 계층 이동 사다리가 붕괴하고 있다. 사교육 부추기는 입시 제도를 손보지 않고 한 세대가 더 흐르면 한국도 미국처럼 두 개 사회로 나뉠 것이다.”

    ▼ 미래를 극단적으로 보는 것 같다. 일부 진보진영의 대학평준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부작용이 있대서 경쟁과 대학입시를 통째로 거부해버리는 건 현실 정치 세력이 취해선 안 될 태도다. 연구중심대학을 30개가량 지정해서 서울대 수준에 오르게끔 집중 지원하는 방식은 고려해볼 만하다. 좋은 대학을 늘리는 식으로 상향 평준화하는 건 몰라도 일각에서 언급하는 대학평준화는 대안이라고 하기 어렵다.”

    No Child Left Behind

    그는 진보파 미국파 관료파라는 낱말을 썼다.

    진보파는 곽노현 교육감이 상징하는 세력을 가리킨다. 미국파는 이주호 장관이 대표하는 집단을 지칭하고, 관료파는 개혁에 둔감한 기존 교육계를 가리킨다. 관료파가 교육과정 편성권, 승진제도를 손에 쥐고 기득권을 지켜왔고, 미국파가 그것을 깨뜨리려고 한다는 거다. 그가 미국파로 지목한 인사는 이 장관, 정두언 한나라당 국회의원,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다.

    “미국파와는 경쟁관계면서 협력관계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미국파가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최근 1년 동안 미국파가 관료파에 포섭당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관료조직 힘을 결코 얕볼 수 없다. 미국파 대표선수가 차관에서 장관으로 승진했으니 관료파를 상대로 재공세에 나설지도 모르겠다. 시장주의자 눈엔 관료파가 곱게 보이지 않는다.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이 대목에서 그가 퀴즈를 낸다. 다음 중 자격증이 필요한 직책은? ①총장 ②시장 ③학장 ④사장 ⑤교장.

    총장 시장 학장 사장은 자격증이 필요 없다. 정답은 ⑤교장이다.

    “교장 승진제도가 학교 경쟁력을 말아먹고 있다. 관료주의를 해체하는 데 시장주의만큼 강력한 무기도 없다. 미국파는 실력을 갖추고 능력을 인정받으면 누구나 교장이 돼야 한다고 여긴다. 미국파가 입안한 교장공모제는 승진 경로를 거치지 않더라도 누구나 교장 직에 오를 수 있는 제도다. 그런데 관료파의 아성 격인 교총이 무자격 교장을 양산한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 경쟁관계면서 협력관계라고 칭한 이주호식 교육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공교육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마에스터고 특성화고 육성 정책도 옳은 방향이다. 곽노현 교육감도 지지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자율형사립고 확대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우리는 본다. 자사고는 국·영·수 중심 입시교육을 하는 곳이다. 고교 입시 경쟁을 부추기고 사교육 부담을 늘릴 소지가 크다. 나는 아무 데나 신자유주의란 단어를 붙이는 걸 싫어한다. 이 장관이 신자유주의자라고 하긴 어렵지만, 그의 손을 거쳐 나온 일제고사 정책, 수능개편안은 그 뿌리가 신자유주의에 닿아 있다. 일제고사가 뭔가. 경쟁을 부추겨 효율을 높이겠다는 발상에서 등장한 측정 도구 아닌가. 그것도 객관식 시험으로 뭘 하겠단 건지 모르겠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신자유주의에 근거해 교육개혁에 나섰다. 2002년 그가 서명한 아동낙오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ACT)이 대표선수 격이다. 이 법을 근거로 미국의 학생 교사 학교는 규격화한 시험을 통해 비교·평가받는다. 아동낙오방지법은 학력 저하를 막고자 고안한 것으로 학력을 실제로 신장했다는 옹호론과 학교 수업이 일제고사에 맞춰 이뤄지는 쪽으로 움직이면서 교육의 질을 오히려 떨어뜨렸다는 비판론이 엇갈린다.

    ▼ 나는 경쟁이 만드는 효율의 힘을 믿는 쪽이다. 일제고사가 왜 나쁜가. 학력을 비교해야 올바른 교육이 가능하지 않은가.

    “일제고사를 가장 신경 안 쓰는 곳이 서울 강남 학교다. 점수가 잘 나오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성적이 어중간한 학교는 황당한 일을 벌인다. 초등학생들을 저녁까지 붙잡아놓기도 한다.”

    ▼ 학부모가 자식이 다니는 학교 수준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전수평가 아닌 표집평가만 해도 된다. 전국 학생이 똑같은 객관식 문제를 푼다? 그건 난센스다.”

    ▼ 최저 학력 미달 학생을 가려내 공교육이 나머지 공부도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성적이 떨어지는 학교는 적극 지원하고.

    “일제고사 도입 취지는 그렇다. 그런데 지원이 아니라 벌을 준다. 교장부터 쫀다. 기초 학력 미달 학생 수를 줄이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기초 학력 미달 여부를 알아보는 간소화한 일제고사는 좋다고 본다. 기본 개념을 모르면 학년이 올라가서 적응할 수 없다. 의무교육 기간(9년)에는 학교가 그런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의 일제고사는 수능처럼 어려운 문제, 평범한 문제, 쉬운 문제가 섞여 있다. 최고 학력 경쟁을 시키는 구조다. 기초학력을 평가하는 간소화한 일제고사는 1시간만 봐도 된다. 그런 일제고사를 설계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공정한 사회

    외교통상부가 유명환 전 장관 딸을 특채한 일로 사회가 떠들썩했다. 이 사건으로 공무원 50%를 특채로 충원하기로 한 정부와 한나라당의 행정고시 개편안이 백지화했다. 21세기판 음서제가 될 수 있다는 비판에 굴복한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스펙을 잘 관리한 이들이 공무원으로 주로 임용되리라는 게 비판론자 주장이다. 관료의 폐쇄성 배타성 경직성은 행정고시 제도에서 비롯한다. 개편안은 행정고시 제도가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수립한 것이다.

    고려 광종 때(958년) 과거제를 도입했으니 시험으로 줄 세워 관료를 선발한 역사가 1000년이 넘는다. 시험 성적만으로 사람을 뽑는 건 확실히 공정하다. 그러나 공정은 효율을 담보하지 못할 때가 적지 않다. 효율은 다수에게 행복을 주지만 효율만을 강조하면 공정을 상실할 수 있다. 공정에 곁점을 찍을 것인지, 효율에 방점을 찍을 것인지는 옳음, 그름으로 가르기 어려운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때마침 이명박 정부는 공정한 사회를 화두로 꺼내놓았다. 장관 딸 특채 사건은 이명박 정부가 입안한 대학입시 제도 개선책의 상징 격인 입학사정관제로도 파장을 넓히고 있다.

    ▼ 입학사정관제를 어떻게 보나.

    “장점이 적지 않은 제도다. 우선 동아리 활동이 장려될 것이다. 국·영·수 중심 교육의 폐해를 줄이고 학생, 학부모가 적성,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끔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 환경에선 단점이 치명적이다. 학부모 처지에선 뭘 얼마만큼 하면 합격이 가능한지 가늠하지 못한다. 스펙을 쌓는 걸 도와주는 사교육과 컨설팅 서비스가 창궐할 것이다. 학생부 비교과 영역에 경시대회 입상 실적, 토익 토플 점수를 기록한다. 스펙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면접·토론 지도는 일대일로 이뤄지거나 한 명의 선생이 많아야 서너 명을 가르친다. 한국적 특수성을 고려할 때 사교육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 임기 막판에는 대학 신입생 100%가 입학사정관제로 입학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입학사정관제 위주로 입시를 개편하는 건 위험하다. 계층 이동 사다리가 약해진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워진다는 거다.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미국파의 소신과도 어긋난다. 정두언 의원과 친분이 있는데, 그가 외고를 폐지하자고 주장한 건 레토릭이 아닌 소신이다. 입학사정관제로는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미국파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정책 입안자가 사교육 메커니즘을 몰라도 너무나 모른다.”

    교육공무원으로 변신한 ‘대치동 학원가 전설’ 이범

    그는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100억 넘는 돈을 벌었다.

    ▼ 과거 학력고사처럼 일제고사를 본 뒤 그걸로 입시를 갈음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게 공정하지 않냐는 거다.

    “문제의식 자체엔 동의한다. 입시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다양화하면서도 간소화할 수 있다. 수능만으로 3분의 1, 내신만으로 3분의 1, 논술만으로 3분1을 뽑으면서 입학사정관제를 부분적으로 가미하는 식으로 제도를 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 공정에 대한 욕구가 효율, 그러니까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공정을 추구하다 하향 평준화할 수 있단 얘기다. 미국인은 입학사정관제를 신뢰하지 않는가. 우리라고 못할 게 없다.

    “미국인 상당수가 입학사정관제가 공정하지 않다고 여긴다. 미국에선 부모가 누군지도 본다. 성적 순으로 뽑으면 대학입시에서 아시아계가 가장 유리한데, 와스프(WASP·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가 입학사정관제 수혜자다. 미국 입학사정관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에서도 입학사정관 입맛에 맞춰 스펙을 관리해주는 사교육 시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입학사정관에게 제출하는 에세이를 대신 써주는 비즈니스도 있다. 한국처럼 입시 컨설팅, SAT 족집게 강의도 등장했다.”

    ▼ 대학입시 개혁, 개선은 교육감 권한 밖 일이다. 서울시교육청이 관할하는 초·중등 교육으로 화제를 돌려보자. 어떤 개혁,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나.

    “고등학교는 핀란드처럼 무학년 학점제로 가야 한다. 핀란드 고등학교는 대학처럼 학생이 시간표를 짠다. 미국도 그렇지만 학생이 교실을 옮겨 다니면서 원하는 과목을 듣는다. 자신이 입학하길 원하는 대학·전공이 요구하는 수업을 듣는 것이다. 대학처럼 강의가 없는 시간도 있다. 학년 구분 없이 75학점을 따면 졸업자격을 얻는 데, 45학점이 필수과목이고 30학점이 선택과목이다. 공부에 소질 있는 학생은 3년 과정을 2년 반 만에 마친다. 여유롭게 학교를 다니겠다고 마음먹은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4년 동안 다닌다. 핀란드 교사들은 학력 미달 학생에게 나머지 공부를 제공한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이웃학교에 자신이 원하는 강의가 있으면 그 학교에서 학점을 딸 수도 있어야 한다. 한국 고등학생이 미대에 진학하길 원하면 홍대 앞 미술학원부터 알아봐야 하는 게 현실이다. 공교육이 도대체 뭘 하고 있나. 예체능계를 지원하는 학생들도 학교에서 관련 과목 학점을 따는 형식으로 입시를 준비해야 한다. 과목 수를 줄이고 적성에 따라 수업을 듣게 해야 한다.”

    ▼ 자유주의자가 주장하는 문제의식과 맥이 닿는다. 당신이 미국파라고 규정한 이들도 찬성할 것 같다.

    “교과교실제가 일부 시작됐으나 어처구니없게도 학교에 교실이 부족하다. 교실마다 학생이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옮겨 다니면서 수업을 받나. 출산율 저하로 학생 수가 줄고 있다. 10년가량 지나면 교실 수에 여유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미국파는 학교 다양화를 추구하는데, 그것도 좋은 정책이지만 무학년 학점제를 도입하면 학교 안에서도 다양화를 도모할 수 있다.”

    ▼ 공교육이 사교육에 참패하지 않았나. 교사 자질은 충분한가.

    “교사 자질을 의심해선 안 된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교사는 엘리트 집단이다. 교사가 학원 강사보다 못해서 학생이 학원을 찾는 게 아니다. 학원 강사는 수업 구성을 마음대로 한다. 교재도 멋대로 고른다. 교사는 어떤가. 교과서 선택권, 부교재 선택권도 없다. 그저 붕어빵 교육을 해야 한다. 제도를 손질하면 학교도 학원처럼 수준별·맞춤형 교육을 할 수 있다. 관료파는 교사를 통제하고자 한다. 승진 제도로 선생님들을 옥죈다. 수업 잘 하는 교사가 대접받아야 한다. 미국파가 관료파의 폐해를 일신했으면 좋겠다. 이런 부분에선 시장주의자가 성공하길 갈망한다.”

    그가 손을 댄 정책이 하나둘씩 발표를 앞두고 있다. △선행학습 추방 캠페인 △영어교육 혁신 △과학 영재교육과 관련한 정책을 가다듬고 있다.

    교육공무원으로 변신한 ‘대치동 학원가 전설’ 이범
    ▼ 교육청 관료 처지에서 진보 교육감은 색다른 경험이다. 저항은 없나.

    “그런 거 없다. 영어교육 혁신을 예로 들어보자. 장학관들은 기존 영어교육 방식의 문제점을 꿰뚫고 있다. 현장에서 수십 년 영어를 가르친 분들이 모르는 게 뭐가 있겠나. 그분들이 교육감에게 보고한 것에 외부에서 들어온 나 같은 사람 아이디어가 가미되는 것이다. 사교육 선생 출신인 나는 장학관과 다른 시각에서 교육감을 도울 수 있다.”

    ▼ 선행학습 추방 캠페인은 어떤 정책인가.

    “사교육은 자기 주도 학습 능력과 창의력을 떨어뜨린다. 대치동식 교육은 수동적 반복학습을 통해 성적을 끌어올린다. 학생들은 같은 내용을 4차례 반복한다. 방학 때 학원에서 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먼저 익힌다. 학기가 시작하면 학교에서 같은 내용을 배우고, 학원에서 복습한다. 학원은 중간·기말고사를 앞두고 총정리를 해준다. 아무리 재미난 드라마도 같은 회를 네 번씩 봐봐라. 학생들이 수동적 반복을 통한 집중력 저하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예습 복습은 자기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 공부 기술, 그러니까 학습 능력은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다. 선행학습은 종합적 문제해결 능력을 떨어뜨린다. 공부 기술을 익히는 데 해가 된다는 얘기다. 교사는 학생이 선행학습 했다는 걸 전제로 가르친다. 일선 교사가 선행학습을 받지 않았다는 걸 전제로 가르칠 테니 학부모가 호응해달라는 게 선행학습 추방 캠페인의 골자다. 다음과 같은 요소가 선행학습 추방 캠페인에 포함된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수학·과학경시대회를 주관하는데 선행학습을 요구하는 문제가 출제된다. 지금은 입상하고 싶으면 학원을 다녀야 하는 구조다.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문제를 풀 수 있게끔 공교육이 지원해줘야 한다. 이를테면 교육감 주관으로 표준문제집을 배급하고 거기에 맞는 인터넷 강의를 제공하면 어떨까. 물리 경시대회에 관심 있는 학생은 학원에 가지 않고도 교육청이 제공하는 물리강의를 들으면서 경시대회를 준비할 수 있지 않겠나.”

    ▼ 영어교육 혁신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수업시간만으로 어떤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영어 수업시간 1~2시간 늘린다고 효과가 나타나는 게 아니다. 학습방법론을 바꿔야 하는 측면도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영어를 익히는 툴을 만들어야 한다. 방과 후 강의나 온라인을 이용해 영어를 재미있게 익히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 메가스터디 창업 멤버다. 인터넷 강의 전문가 아닌가. 잘할 것 같다.

    “강의만 말하는 게 아니다. 영어로 게임을 즐기거나 스토리북을 읽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학생이 인터넷에 접속해 과제를 수행하면 자동으로 교사에게 수행 여부를 전달하는 그런 시스템이다. 일부 콘텐츠는 숙제로 의무화하고, 일부는 골라서 수행하게 하려고 한다.”

    ▼ 과학 영재교육도 밑그림이 나왔나.

    “내가 사교육 과학 선생 출신 아닌가. 베테랑 장학관들이 못 보는 부분을 들여다보고 있다.”

    거대한 전환

    ▼ 아이는 몇 명인가.

    “넷이다. 아홉 살, 일곱 살, 네 살, 두 살.”

    ▼ 애국자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돈을 많이 벌어놓지 않았으면 어떻게 키웠을까 싶다.”

    ▼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나.

    “아홉 살 녀석이 구구단을 못 외워서 같이 외우고 있다. 엄마가 애 키우느라고 바빠서 엄마표 영어(어머니가 가르치는 영어)를 할 형편이 못한다. 아빠표 영어는 조금 한다.”

    ▼ 기부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안다.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 2007년 대선 때 대선후보 찬조연설을 했다. 정치할 생각인가.

    “소질에 안 맞는다. 돈이야 쓰면 되겠지만 아랫사람을 도구 부리듯 쓸 성격이 못된다. 줄 서는 일도 못한다. 정치할 생각 있었으면 벌써부터 했다. 2008년 총선 때 민주당에서 비례대표 제안이 들어왔다. 거절했다.”

    ▼ 정치를 하면 소신을 더 맘껏 펼칠 수 있지 않은가.

    “정치 안 해도 영향력 행사할 수 있다고 본다. 나한테 조언 구하는 한나라당 민주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이 있다.”

    그는 제도의 힘을 믿는 사람이었다. 제도학파 경제학에 경도된 듯도 보였다.

    ▼ 제도가 아니라 사람, 문화가 교육문제 본질이란 생각은 안 해봤나.

    “사람과 문화는 제도의 산물이다.”

    ▼ 교육문제는 혁명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보나, 점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보나.

    “제도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새로운 제도에 사람들이 점진적으로 적응해나가야 한다. 대선공약으로 혁명적 대학입시 개편 을 내걸고 당선된 뒤 한방에 바꿔야 한다. 2012년 대선 때 정치지형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복지와 교육이 핵심의제로 떠오르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다음 정권은 교육혁명으로 출산파업을 끝내야 한다.”

    그는 교육계 우파가 박정희를 벤치마킹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정희식 실용주의가 합리적 우파가 나아갈 길이라는 거다.

    “국가가 적극 개입해 사회를 발전시킨 것 아닌가. 박정희 유산은 신자유주의 이념과 경쟁 관계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아버지의 마지막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면서 복지를 대선 콘셉트로 내놓고 있지 않은가. 신자유주의자는 박정희 유산을 공유하기 어렵다. 시장논리에 매몰된 신자유주의자만 우파가 아니다. 박정희식 우파는 국가 개입을 옹호하는 부국강병론자다.”

    ▼ 박정희식 부국강병론에 동의하나.

    “반쯤은 동의한다. 좌파와 박정희식 우파는 대화가 가능하다.”

    그는 신자유주의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다. 자유주의 경제학을 공부한 이들에 대한 편견도 갖고 있다. 적어도 그의 손을 거친 서울시 교육정책에선 자유주의 냄새를 맡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일찍 폴라니를 읽은 세대다. 마르크스주의만 시장을 비판한 게 아니다. 폴라니는 시장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카를 폴라니(1886~1964)는 경제인류학 틀로 세상을 들여다본 오스트리아 출신 사상가.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태두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1899~1992)와 동시대를 살았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전세계적으로 그가 재조명받고 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와도 사고의 결이 다른 그는 하이에크를 비판하면서 카를 마르크스가 주장한 공산주의가 이뤄질 수 없는 유토피아인 것처럼 자유주의 경제학이 말하는 자기조정시장도 유토피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서울시 초·중등교육 정책 헤게모니는 선거를 통해 진보파가 획득했다. 진보파를 지지했건, 그렇지 않건, 곽노현 교육감이 임기를 마칠 때까진 자유주의보단 사회주의를 신뢰하는 이들이 수립한 정책에 따라 초·증·고생이 교육을 받는다.

    “곽노현을 성공한 교육감으로 만들겠다. 그래야만 뽑아놨더니 잘하네, 좌파에게 나랏일 맡겨볼 만하다고 사람들이 여기지 않겠는가.”

    잘하는지, 못 하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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