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과의사들로 구성된 밴드 ‘자일리톨’.
1970년대 말 MBC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를 만들면서 이 대회들을 겨냥한 교내 밴드 동아리 결성이 급증했다. 전국의 수많은 직장인 밴드 주축 멤버가 40대인 것만 봐도 이들이 ‘대학가요제’와 ‘밴드’라는 문화세례를 받은 세대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멤버 가운데는 학창시절 취미로 악기를 다뤄본 경험이 있거나 밴드가 좋아 무작정 학원에 가서 악기를 익힌 사람들도 있다.
치과의사 밴드로 불리는 10년차 직장인 밴드 ‘자일리톨’은 이승택(47·키보드), 기세호(47·베이스), 신용준(46·보컬), 박규태(41·기타), 김영준(37·드럼)씨로 구성돼 있다. 2006년 뒤늦게 밴드에 합류한 김영준씨만 기업 CEO이고, 나머지 멤버는 모두 치과 원장이다. 이승택, 박규태 원장은 경희대 치대 밴드 ‘몰리스(어금니)’ 선후배 사이. 기세호 원장은 단국대 치대 밴드 ‘사랑니’에서 활동했다. 이들이 지금 밴드에서 연주하는 악기는 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맡았던 악기 그대로다. 밴드의 주요 레퍼토리도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 수상곡인 ‘그대로 그렇게(휘버스)’ ‘불놀이야(옥슨80)’ 등이다. 학창시절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사노라면(전인권)’, 원더풀 투나잇(비틀스) 같은 7080세대 추억이 담긴 노래를 즐겨 연주한다.
청춘으로의 회귀
‘자일리톨’ 밴드를 만든 건 10여 년 전 마포지역 의사들 송년모임을 앞두고서였다. 뭔가 특별한 송년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싶었던 기세호, 신용준 원장은 대학시절 동아리 경험을 살려 밴드를 급조해 서교호텔 연회장 무대에 올랐다. 그 뒤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노숙자쉼터 관계자가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무료진료봉사 활동을 하던 기 원장에게 “노숙자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해줄 수 있느냐”고 제안했다. 요청을 흔쾌히 수락한 기 원장은 급히 멤버들을 조직해 2001년 12월 쉼터에서 노숙자를 위한 첫 공연을 했다. 이후 지금까지 매년 노숙자쉼터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치과의사 밴드의 대명사처럼 널리 알려진 ‘자일리톨’이라는 이름은 얼결에 만들어졌다. 이승택 원장은 “밴드를 결성하고 일 년가량 이름도 없이 지냈다. 그런데 갑자기 외부 행사 스케줄이 잡히면서 급한 대로 ‘자일리톨’을 갖다 붙인 것이다. 마침 자일리톨 껌이 시중에 처음 시판되면서 대대적인 광고를 해서 치과의사들의 아이콘처럼 여겨질 때였다. 주위에서 어떻게 껌이 밴드 이름이냐는 놀림도 많이 받았다. 원래는 나중에 정식으로 밴드 명칭을 지을 때까지 임시로 사용하려 했는데, 많이 알려지는 바람에 다시 바꾸기 어려웠다”고 했다.
오는 11월 서울시 치과의사협회가 후원하는 공익적인 성격의 공연이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다. 이때 ‘자일리톨’을 포함해 치과의사 밴드 4팀이 무대에 선다. ‘자일리톨’ 밴드는 이를 위해 매주 한 번씩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연습실에 모여 두세 시간씩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레퍼토리에 신곡을 추가하기 위해 신중현의 ‘미인’을 맹연습 중이다.
영화 ‘와이키키브라더스’의 실제 모델인 기타 경력 35년의 기타리스트 최훈씨는 최근까지 ‘자일리톨’ 밴드에 음악적인 도움을 줬다. 스케줄이 비는 시간에 연습실을 찾아 전체적인 조화를 봐주고, 파트별로 어려운 부분의 연주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섬세하게 조언해줬다. 밴드 핸들러 역할이 끝난 지금도 그는 아마추어 밴드가 연주하기 어려운 곡을 멤버들 실력에 맞게 편곡해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좋은 무대가 있으면 공연에 합류해 함께 연주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