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면 외국에서도 여름 음악축제가 음악 팬들을 손짓한다. 클래식음악에만 한정한다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축제, 스위스 루체른축제, 독일 베를린 음악축제, 미국의 탱글우드축제, 프랑스 액상 프로방스축제, 영국의 프롬스가 단연 돋보인다.
특히 영국 공영방송 BBC의 여름 클래식음악축제인 ‘프롬스(Proms)’(7월15일~9월10일)는 그 취지가 흥미롭다. 서민들이 클래식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특징이다. 음악회가 열리는 로열 앨버트홀의 경우 한국으로 치면 VIP석이 들어선 1층이 모두 입석으로 티켓은 5파운드(9000원 정도)에 당일 콘서트홀에서 판매된다. 이 표를 사기 위해 연주회 몇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다. 물론 90파운드나 되는 비싼 좌석도 있다. 또 그란 티어 박스(Grand tier boxes)에는 개인 소유 자리들이 있어서 아예 티켓을 구입할 수 없는 좌석도 있다. 그럼에도 더 많은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향유하게 하겠다는 음악회의 취지는 살아 있다.
‘프롬스’는 ‘산책하다, 산책공간’을 뜻하는 ‘프로미나드(promenade)’에서 온 말이다. 영국의 지휘자 헨리 우드가 1895년 시작했는데, 1927년부터 BBC가 이를 맡아서 운영해오고 있다. 외관이나 실내가 고풍스럽고 연주인이라면 누구나 무대에 서고 싶어하는 로열 앨버트홀과 카도간홀에서 연주회가 열리고, 9월10일 마지막 날엔 하이드 파크의 야외 음악회와 로열 앨버트홀의 ‘프롬스의 마지막 밤’ 연주회가 대미를 장식한다.
올해 프롬스는 리스트, 브람스, 드뷔시, 바르톡, 브리지(Bridge), 로시니, 말러 등에 특히 주목하고, 할리우드 영화음악까지 다채로운 곡들을 준비했다. 연주자들의 면면도 흥미롭다.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 피아니스트 에마뉘엘 액스, 소프라노 수전 불록,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숑,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 메조 소프라노 사라 코놀리, 오르가니스트 데이비드 구디, 피아니스트 벤자민 그로수비너·마크 앙드레 해믈린·랑랑,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후드 등이 특별히 조명 받는다.
프롬스에 지휘자 정명훈이 피아노 연주자로 등장하는 것도 구경거리다. 정명훈은 7월18일 로열 앨버트홀에서 열리는 콘서트에서 프랑스 출신의 형제 연주자인 르노·고티에 카퓌숑과 함께 베토벤의 3중 협주곡을 연주한다. 정씨가 지휘자가 아니라 연주자로 무대에 서는, 흔치 않은 장면이다.
브람스의 이름으로
BBC 프롬스는 특히 브람스를 ‘복권’시키려는 듯 보인다. 연주회 안내 책자인 ‘BBC 프롬스 2011’에는 스티븐 존슨의 특별 기고글 ‘브람스로 돌아가라(Back to Brahms)’가 눈에 띈다. 존슨은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음악을 융합해 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브람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기가 식기 시작했다’며 ‘스리 B’(three B: 바흐, 베토벤, 브람스)의 한 명인 브람스를 새롭게 바라볼 때라고 썼다. 올해 프롬스는 ‘대학축전서곡’, 클라리넷4중주,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 교향곡 1~4번, 바이올린협주곡 등 10곡을 준비했다.
브람스뿐 아니라 제아무리 유명한 작곡가의 곡이라도 클래식 하면 졸리다는 사람이 많다. 클래식이 뭔가? 우리가 고전음악이란 뜻으로 쓰는 클래식은 사실 영어로는 ‘클래시컬(classical)’이다. 클래식(classic)의 원뜻은 ‘전범이 될 만한 고전, 전형, 고대 그리스로마와 관련된 문화’ 등이다. 이런 용어의 혼란만큼 클래식 음악도 혼란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처음 들을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가도 반복해서 듣다 보면 그 음색과 멜로디가 온몸을 휘감을 때가 있다. 어차피 혼돈이고, 쉽지 않은 세계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그곳이 곧 피안 같다.
클래식 음악에 좀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노력을 하려는 차원에서 기자는 엉뚱한 노력을 많이 한다. 6월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프라하 방송교향악단이 ‘차이코프스크 교향곡 5번’을 연주할 때의 일이다. 이 곡은 한국인에게 6번 ‘비창’만큼은 익숙하진 않지만, 한때 국내 인기가요의 몇 마디가 1악장, 4악장의 선율과 비슷해 친근감이 든다. 연주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한참 박수를 치면서 보니 주변이 휑한 느낌이 들었다. 1층에서 나 혼자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클래식 연주회장에서 기립박수를 잘 보내지 않는다. 클래식은 점잖기 때문에 경망스럽게 소리를 지르고 기립박수를 보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언젠가 지휘자 금난새씨는 음악 설명회에서 일부러 사람들에게 휘파람을 불게 하고, 앙코르를 외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연주 도중에는 남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유의하더라도 연주가 끝나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낼 필요가 있다. 연주자들은 그것을 먹고 사니까.

이런 촌극을 펼친 것은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을 사랑하면서부터였다. 언젠가 노르베르트 바스 전 주한 독일대사를 만나서 브람스의 성을 무례하게도 이름으로 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멋진 생각이다. 나의 성도 사실 스웨덴에선 이름으로 많이 쓴다”며 웃었다. 클래식음악이라는 바다를 내 안에 품으려면 뭐든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