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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크로스(CROSS) 인문학 ⑨

‘불안의 시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 장석주| 시인 kafkajs@hanmail.net

‘불안의 시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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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본능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에서 도피하려 하므로 도피행동을 활성화시키는 감정인 두려움, 즉 불안과 공포가 유발될 수밖에 없다.”(김태형, 앞의 책)

불분명한 불안과 공포

우리 마음 안에 도사린 우울감, 무력감, 허무감, 죄책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의 뿌리가 불안이라는 것은 드러났다. 문제는 불안이 줄지 않고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끊임없이 증폭되는 불안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불안이 ‘한국 사회 자체’라는 것은 알지만, 그 실체가 너무 크고 복잡함으로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 근원적 실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할 수도 없다. 불안은 어디에나 있고, 그것들은 퍼져나간다. 어디에 살든지, 불안을 피할 수는 없다. 사람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누구나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한국 사회는 그 정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단일체가 아니다. 그것은 모호하고 복합적인 괴물이다. 우리가 내면의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것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분명하고 불확정이고 불확실하다.

불안과 공포는 한 짝이다. 그것들은 하나만 오지 않고 언제나 한 쌍으로 온다. 불안이 만성화된 공포라면, 둘은 하나의 본질에 속하는 두 가지의 감정이다. 그렇다면 가장 무서울 때는 언제일까? 불안이건 공포건 간에 그 정체가 ‘불분명’하고, 그 위치가 ‘불확정’이고, 그 형태가 ‘불확실’할 때다. 분명히 있지만, 그 정체가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어떤 형태로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불안과 공포는 증폭된다. 왜? 그것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고, 그 대처할 수 없음은 직접적으로 생존을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모든 공포 영화의 공식은 이 원리를 충실하게 따른다.

“공포가 가장 무서울 때는 그것이 불분명할 때, 위치가 불확정할 때, 형태가 불확실할 때, 포작이 불가능할 때, 이리저리 유동하며, 종적도 원인도 불가해할 때다. 어떤 규칙성도 합리적 이유도 없는 공포, 그 낌새가 여기저기서 선뜻선뜻 나타나지만, 결코 통째로 드러나지는 않는 공포야말로 가장 무시무시하다. ‘공포’란 곧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위협의 정체를 모른다는 것, 그래서 그것에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에 달려들어 맞서 싸우려 해도, 싸워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지그문트 바우만, 앞의 책)



9가지 심리코드

‘불안의 시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경쟁사회가 낳은 스트레스가 불안을 키운다.

‘불안을 증폭시키는 9가지 심리코드’가 있다고 한다. 그 심리코드들은 이기심, 고독, 무력감, 의존심, 억압, 자기혐오, 쾌락, 도피, 분노다. 자, 불안을 낳고 그것을 키우는 9가지의 심리코드를 살펴보자. 첫째, 이기심. “이기심의 만연은 한국인들을 한편으로는 범죄자의 길로 떠밀고, 다른 편으로는 정신병동으로 밀어 넣는다.”(김태형, 앞의 책)

이 말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한국 사회에 이타주의자보다는 이기적인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다 범죄자가 되거나 미쳐서 정신병동으로 가지는 않지만, 이기심이 정신건강을 좀먹는다는 건 분명하다. 이기주의자들이 득세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이기주의자들의 사회에서 타자는 “온통 내 밥그릇을 빼앗으려는 적들”이다. 그래서 이기주의자가 많은 사회에서는 대인불신감과 사회불신감이 커진다.

둘째, 고독. 경제위기 이후 피도 눈물도 없는 무한경쟁의 원리가 퍼져나갔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누구나 자기가 경쟁에서 탈락할까, 불안해한다. 무한경쟁 사회는 내가 죽거나, 아니면 네가 죽거나의 사회다. 경쟁에서의 탈락은 곧 죽음이다. 그러니 경쟁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이런 경쟁사회가 낳은 스트레스가 불안을 키운다. 불안은 사회공동체를 파괴하고, 전체에서 떨어져 나온 개인은 하나의 파편으로 고립한다. 고독은 그 고립의 결과물이다. 우리 사회에 왜 그렇게 자살자가 많은가? 고립감과 고독 때문이다.

셋째, 무력감. 그것은 거듭되는 욕구의 좌절로 인해 생겨난 분노가 외부를 향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향할 때 생겨나는 부정적 감정이다. 나중에는 이 분노조차 고갈된다. 제 운명통제권이 ‘돈’이나 물질, 혹은 자기와 무관한 집단이나 권력에 넘어갔다고 느낄 때, 그래서 운명통제 욕구를 실현하지 못할 때 무력감은 더욱 커진다.

넷째, 의존심. 사람이 무기력할 때 제 생존을 누군가에게 의탁해 유지해야 한다. 그게 의존심이다. 대중이 고통과 좌절을 겪는 시기에 자기도 모르게 자기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존재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파시즘이 발호하기 좋은 사회적 조건이다.

다섯째, 억압. 한국 사회는 ‘억압 사회’다. 아직까지도 건재한 국가보안법이야말로 그 ‘억압’의 대표적 사례다.

여섯째, 자기혐오. 최근 우리 영화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지나치게 잔인한 폭력과 극단적인 가학으로 스크린이 벌건 피로 물들기 일쑤였다. 한 국내 영화잡지에 기고한 영화평론가 데릭 엘리도 한국 영화에 엄청나게 증가한 폭력에 주목한다. 영화에 묘사된 “극단적인 가학과 폭력은 심리적으로 위험하다”는 것과 함께 “이런 유의 극단적인 가학과 폭력 그리고 그에 따른 극심한 자기혐오는 다른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김태형, 앞의 책, 재인용)라고 적는다. 상대를 향한 가학적인 욕망과 극단적인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들에서 우리 안에 숨은 ‘극심한 자기혐오’를 집어낸다.

일곱째, 쾌락. 한국 사회를 점령한 병적인 성문화, 쾌락에 대한 지나친 집착, 끊이지 않는 정치인들의 성추문…, 이것들은 어떻게 불안과 연관되는 걸까? 심리학자는 우리 안의 결핍 욕구를 주목한다.

“결핍욕구 충족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결국 변태적으로 변해가는 것은 쾌감의 질과 양이 고정되어 있는 결핍욕구의 반복적인 충족에 만족할 수 없어서, 그들이 인위적으로 그 쾌감의 양을 증가시키려고 애쓰기 때문이다.”(김태형, 앞의 책)

지나친 쾌락의 추구, 문란한 성문화는 거기 빠진 사람들을 우울증, 절망감, 불만족으로 이끌고, 마침내 삶을 파괴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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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시인 kafka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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