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잃어버린 근대를 찾아서

조선은 하루아침에 허물어지지 않았다

1920년대 서울

  • 박윤석│unomonoo@gmail.com

조선은 하루아침에 허물어지지 않았다

5/12
조선 반도에 부는 대공황의 태풍

그나마 1년 전보다는 고생이 덜하다. 1월1일자의 경우 작년에 32면을 발행한 것에 비하면 지면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경기 불황으로 신문용지 경비를 아껴야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광고가 예전만치 들어오질 않는다고 한다. 두 달 전 발생한 미국주식시장의 붕괴를 시작으로 미국 대공황의 허리케인은 태평양을 건너 일본을 거쳐 조선반도에 태풍으로 변하여 불어닥치는데 불과 며칠도 걸리지 않았다. 오늘 밤은 다들 밤늦게까지 편집국 책상에 저마다 코를 박고서 가뜩이나 부족한 전기를 축내고 있을 게 불 보듯 환하다. 신문의 지면은 두 달 전 대공황 발생 직전에 8면으로 확장되었다. 4년 만의 큰 변화였다.

이 노인이 그 한규설인가. 한눈에도 시력은 쇠약해졌고 피부는 윤택을 잃은 지 오래돼 보인다. 1856년 음력 2월생이니 만 74세를 바라본다. 어딘지 사람을 위압하는 듯한 풍모가 아직 남아 있다. 그는 1876년 일본에 개항하던 해 약관(弱冠) 20세로 무과(武科)에 급제했다. 이후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를 비롯한 군 고위직과 우포도대장(右捕盜大將)을 비롯한 치안책임자를 30대 초반까지 역임했다. 전라좌수사는 일찍이 이순신(李舜臣)이 임진왜란 전해에 46세의 나이로 맡은 자리다. 한규설은 이후 형조판서(刑曹判書)와 한성판윤(漢城判尹) 법부대신(法部大臣) 등 요직을 여러 차례씩 돌아가며 지냈다. 그가 국정 최고위직인 참정대신 자리에 오른 것은 을사조약 두 달 전, 만 50세를 앞둔 때였다.

그는 을사년 그날 이후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신문기자의 면회를 허락할 리는 더욱 없을 것이라 한다. 궁리 끝에 그와 교분이 두터운 유진태(兪鎭泰)를 통하여 미리 명함을 전달해두었다가 연말연시 인사를 빙자해 오늘 그의 집을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유진태는 1920년 발족한 조선교육회를 10년째 운영해왔다. 한림이 기자로 재직한 기간과 거의 일치한다. 이상재(李商在)를 회장으로 하여 출범할 때부터 중간에 조선교육협회로 개칭한 이후까지 줄곧 이사장 역할을 수행해왔다. 사람들은 그를 조선교육회의 집지킴이라 부른다. 한림의 고향 마을에서 지킴이는 담벼락이나 굴뚝에 은둔해 사는 구렁이를 뜻한다. 잡귀나 잡것으로부터 집을 지켜준다고 여긴다.

한민족의 교육은 한민족의 손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취지의 이 민족교육운동 단체에 한규설은 고문으로 이름을 걸어두고 최소한 두 차례 크게 재산을 기부했다. 1922년 그가 사는 장교정(長橋町)에서 길 건너 수표정(水標町)에 있는 시가 3만원가량의 350평짜리 가옥 한 채를 회관 건물로 쓰라고 내놓았다. 작년 1928년에는 벼 수백 석을 거둬들이는 2만원 상당의 토지를 기부했다. 조선교육회가 발족할 때 그 발기인 명단 맨 처음에 한규설이 있었다.



25년간의 칩거

유진태는 지금 경찰에 붙들려 있다. 광주학생사건을 기화로 신간회(新幹會)가 벌이려고 한 이른바 ‘민중대회’가 발각되면서 12월13일 오전부터 관련자들에 대한 일제검거가 이루어졌다. 이상난동으로 전국적으로 폭우가 내리기 시작한 날이었다. 그날 석간신문의 사회면 머리기사는 이러했다.

13일 이른 아침부터 경기도경찰부와 종로경찰서는 가일층 긴장되어 경찰수뇌자의 밀의(密議)가 분분하더니 경찰부 유치장과 종로경찰서 유치장에 검속(檢束)되어 있는 사람을 전부 용산경찰서 동대문경찰서 등의 유치장으로 옮긴 후 오전 11시경에 형사대가 일제히 시내 각 방면으로 출동하여 각 방면 인물의 검거에 착수하였다. 잡힌 사람을 보면 신간회 집행위원장 허헌(許憲)씨를 비롯하여 조선교육협회 유진태(兪鎭泰)씨 천도교 이종린(李鍾麟)씨 불교 한용운(韓龍雲)씨 근우회(槿友會) 정칠성(丁七星)씨 기타 30여 명에 달한다.

11월3일에 발생한 광주학생사건의 여파가 12월 들어서면서 경성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늦가을에 열흘 간격으로 발생한 뉴욕발 대공황과 광주발 학생사건이 겨울비의 홍수 속에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12일 경기도 경찰부 수사계 미와(三輪) 주임은 오전 8시경부터 오토바이를 달려 다나카(田中) 부장 외에 몇몇 고관(高官)을 방문하고 어떤 중대사건에 대한 양해를 구한 것 같았는데 10시경 종로경찰서에 그가 나타나자 경찰 내 공기는 돌연 긴장하는 한편 전 직원에게 비상출동 준비를 지시하면서 시내 요소와 각 사상단체에 정사복경찰을 배치하고 엄중 경계하는 한편 낮 12시경에 이르자 신간회 대표 홍명희(洪命憙)씨 등을 호출하여 시국에 대한 간담(懇談)적 경고를 했다 한다.

5/12
박윤석│unomonoo@gmail.com
연재

잃어버린 근대를 찾아서

더보기
목록 닫기

조선은 하루아침에 허물어지지 않았다

댓글 창 닫기

2023/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