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봉을 한 달 남짓 앞둔 9월28일, 그녀를 인터뷰하기에 앞서 이정향 감독을 먼저 만났다. ‘미술관 옆 동물원’과 ‘집으로’에 이어 이번에도 직접 시나리오를 쓴 이 감독은 “감독 데뷔 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용서도 때론 죄가 된다’는 한 칼럼 문구를 보고 용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영화를 통해 남의 상처를 두고 함부로 용서를 말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용서를 아름다운 미덕으로 여기지만 그 때문에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용서를 강요받는 경우가 많아요. 섣부른 용서는 자기 자신을 더 힘들게 하고, 주위에까지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영화 ‘오늘’이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소박한 위로가 됐으면 해요.”
시나리오는 2005년부터 본격적인 조사와 검증, 집필 과정을 거쳐 2010년 여름에야 완성됐고, 영화 촬영은 그해 12월부터 4개월여 동안 진행됐다. 촬영 후까지 여운이 남을 정도로 송혜교는 주인공 다혜에게 흠뻑 빠져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인간의 심리를 헤집는 섬세한 내면 연기에 도전해서일까. 그녀는 전보다 살도 빠지고 한결 성숙해 보였다.
영화 ‘오늘’과의 인연
▼ 왜 ‘오늘’을 선택했나요?
“배우이자 팬으로서 전적으로 감독님에 대한 호감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다작을 하시는 분도 아니고, 오랜만에 선보이는 영화잖아요. 여자 감독님이니 여자 캐릭터를 잘 표현해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처음 뵌 건 2009년인데 그때는 일 얘기는 안 하고 서로 살아온 날들과 자기 스타일에 대한 얘기만 했어요. 그러다 지난해 5월경 홍콩에 있을 때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바로 전화해서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셨어요. 감독님은 어려운 캐릭터여서 안 한다고 할 줄 아셨대요. 감독님이 만들어준 다혜가 기대된다고 말씀드렸더니 감독님도 제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며 손을 잡아주셨죠.”
▼ 다혜에게서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저랑 비슷한 면이 무척 많았어요. 지금까지 한 모든 캐릭터가 제 모습을 조금씩 가지고 있지만 다혜 캐릭터는 제 성격을 아주 많이 닮았어요.”
이정향 감독도 송혜교를 처음 만났을 때 둘이 참 많이 닮았더라고 말했다. 그래서 송혜교에게 다혜와 혜교를 합친 ‘다혜교’라는 별명을 붙여줬다고 한다.
“단적인 예로 전 싫어도 싫다는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에요. 지금은 그마나 나아졌지만 이상한 상황에 몰려도 나만 참으면 되지 하며 감정을 억눌러요. 그게 쌓이고 쌓여 언젠가는 터져요. 사람 많을 때가 아니라 혼자 있을 때요. 다혜도 그런 캐릭터예요. 서로 닮아서 다혜에게 다가가기가 쉬웠어요.”
▼ 작품 준비를 어떻게 했나요? 이 감독은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다고 하던데….
“감독님이 저에게도 그 책들을 주면서 시간 날 때 가볍게 보라고 하셨어요. 미리 다 알고 촬영에 임하는 게 방해가 될 수도 있다면서요. 다혜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다가 살인사건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용서가 잘못됐음을 뒤늦게 조금씩 깨달아가거든요. 중국 촬영 때문에 감독님과 떨어져 있을 때는 ‘다혜의 일기’를 썼어요.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보고 느낀 감정을 일기처럼 기록해보라고 하셨거든요. 다혜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 만일 자신이 다혜의 상황에 놓인다면 소년을 용서했을 것 같나요?
“전 쉽게 용서가 안 될 것 같아요. 다혜도 약혼자를 잃고 괴로워서 자살까지 하려고 했던 걸 보면 100%의 용서가 아니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나중에 진실을 알고 화가 났겠죠. 다만 가해자가 어리고 고의가 아니었다고 생각해 자기만 용서하면 모든 게 편해질 줄 안 거죠.”
▼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어떤 작품을 하든지 연기가 쉬운 적은 없어요. 이 작품도 매 순간 힘들었지만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는 재미가 있었어요. 감독님과의 작업도 좋았고요. 너무 추워서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어요. 겨울에 크랭크인했거든요. 대사도 입이 얼어서 잘 안 될 때가 있었어요. 그 때문에 좀 고생했지, 다른 건 그다지 힘들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