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호

고급 운송수단이라고? 근로여건은 막노동꾼만도 못한데…

대중교통 사각지대에 갇힌 택시 24시

  • 김지영 기자│kjy@donga.com

    입력2011-11-22 16: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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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택시기사들이 뿔났다. 하루 12시간을 일하고도 사납금을 채우지 못하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으로 살아가야 하는 탓이다.
    • 이들의 울분을 받아주는 곳도 없다. 회사는 불법 사납금제로 잇속 챙기기에 바쁘고, 이를 감시하고 질책해야 할 공무원은 책임을 미루기에 바쁘다. 결국 죽어나는 건 기사뿐.
    • 이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야간근무에 동행해 9시간 동안 체감한 택시기사의 애환과 수도권 민심을 전한다.
    고급 운송수단이라고? 근로여건은 막노동꾼만도 못한데…
    11월3일 오후 5시30분,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 앞에서 기자를 태우고 출발한 택시는 한동안 빈차 표지등을 켜지 않고 달렸다. 합승은 불법이라 다른 이를 태우기가 껄끄러웠나보다. 택시기사 황달수(24)씨는 “취재차 동승 중이지 손님이 아니지 않으냐”는 기자의 말을 듣고서야 표지등을 켰다.

    그는 2년 전 평생 직업을 꿈꾸며 택시운전을 시작했다. 다니던 중소기업이 갑자기 어려워지면서 권고사직을 당한 게 계기였다.

    “회사택시를 3년 동안 무사고로 운전하면 개인택시를 몰 수 있어요. 개인택시 영업은 70대에도 할 수 있고 수입도 좀 더 나으니까 그거 보고 하는 거예요.”

    황씨는 사납금으로 운영되는 택시운수회사에 다닌다. 사납금은 회사가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과 차량, 연료 일부를 대주는 조건으로 기사에게서 거둬들이는 돈이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액수가 정해져 있다. 택시기사는 사납금과 함께 더 들어간 연료비를 회사에 입금하고 나머지 수입을 갖는다. 중견 택시기사들은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대기업 부장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벌이가 쏠쏠했다”고 입을 모은다. 그 당시에는 하루 연료비가 1만원이 채 들지 않을 만큼 LPG 가격이 저렴했고 사납금도 5만원 안팎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납금과 LPG 가격 모두 2배 이상 뛰었다. 버스와 지하철 환승이 자유로워지면서 택시가 설 자리마저 좁아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개인택시 영업도 예전과 같지 않다. 회사택시보다 월평균 50만원 정도 더 벌지만 수리비 등 감가상각비를 감안하면 개인택시가 더 나을 것도 없다는 것이다.

    기사 잡는 ‘사납금제’



    동승 취재를 하며 황씨와 대화를 나눴다.

    ▼ 사납금이 얼마인가요.

    “회사와 차종에 따라 달라요. 저희 회사에서는 EF소나타를 몰면 10만8000원, NF소나타를 몰면 11만1000원을 주야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받아요. 야간에는 주간보다 1만~2만원을 더 받는 회사도 있고요.”

    ▼ 2교대 근무인가요.

    “네. 오전·오후 3~6시에 회사 차고지에서 교대하는데 오늘은 오후 5시에 교대했으니 새벽 5시까지 일하면 돼요. 내내 야간근무만 하는 건 아니에요. 이번 주는 야간, 다음 주는 주간, 이런 식이죠. 일요일에는 그나마 쉬게 해주지만 주마다 생체리듬이 바뀌니까 월요일이 가장 힘들어요.”

    ▼ 주간보다 야간 근무가 더 힘들지 않은가요.

    “한밤중이 되면 잠이 쏟아지니까 아무래도 힘들죠. 그럴때는 껌을 씹거나 스트레칭을 해요. 다른 기사들은 담배로 졸음을 쫓는다고 하더라고요. 집에 거의 녹초가 돼서 들어가는데 금방 잠이 안 와요. 밥 차려 먹고 오전 7시까지 TV를 보다 자는데 밖이 환해서 깊은 잠을 잘 수도 없고요. 그러다 오후 3시에 일어나 출근 전에 식사를 하고 나와요.”

    그는 출근해도 바로 차를 빼지 않고 안전 여부를 꼼꼼히 점검한다. 폐차를 한 달 앞둔 차량이라 더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지난달에 폐차하기로 했는데 회사에서 한 달 더 타라고 한다”며 “폐차 시기가 1년도 안 남은 차를 받은 게 벌써 세 번째”라고 했다.

    “이번에 폐차해도 새 차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임원에게 밉보이면 새 차를 안 주더라고요. 어용노조라 기사들이 힘든 일을 당해도 회사 편을 들어요. 그러니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어요. 기사들끼리 친목 도모 차원에서 술을 마셔도 무슨 작당을 하고 있다고 일러바친다니까요. 그래서 회사 근처에선 술도 못 마셔요. 이 차의 히터가 제대로 작동이 안 돼서 고쳐달라고 해도 곧 폐차할 거니까 그냥 타래요.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승객이 춥다고 하면 뭐라고 하냐고요.”

    ▼ 회사에서 대주는 연료로 12시간 주행이 가능한가요.

    “부족하죠. 보통 250~300㎞를 달리거든요. 회사에서 LPG 25ℓ를 지원해주는데 주간에는 30~35ℓ, 야간에는 45~50ℓ가 들어가요. 시내 주행이 많으면 50ℓ정도 들고, 장거리 손님이 많을 땐 더 들죠. 더 들어간 가스는 기사 부담이에요. 정부에서 ℓ당 220여 원의 유류비를 보조해줘도 매일 1만~2만원이 더 들어가죠.”

    ▼ 회사에서 월급을 얼마나 받나요.

    “근무기간이 1년이 안 되면 보너스를 안 줘요. 기본급 99만원에서 세금 공제하면 실 수령액은 80만~90만원이에요. 전 2년차니까 107만원을 가져가요. 사납금을 다 채웠을 때요.”

    ▼ 사납금을 못 채우면 불이익을 당하나요.

    “채우지 못한 만큼 월급에서 까요. 급여명세서에 가불금으로 처리되거든요. 처음엔 지리를 몰라 사납금을 채우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지금은 노하우가 생겨 가불 처리되게 놔두진 않죠. 예를 들어 토요일 낮에 결혼식 있으면 모자란 만큼 내 돈으로 사납금을 맞추고 야간에 더 악착같이 뛰어서 벌충하거든요.”

    전액관리제 도입한 택시회사 10% 미만

    ▼ 사납금 내고 집에는 얼마나 갖다주나요.

    “주간근무 때는 1만~2만원, 야간근무 때는 4만~5만원을 갖다줘요. 손님이 어디서 많이 타는지, 어느 시간대에 많은지를 알면 한 달에 150만원은 벌더라고요. 딱 한 번 250만원까지 벌어봤는데 그 정도 벌려면 식사도 생리현상도 제때 해결할 수 없어요. 하지만 사납금을 못 채우거나 회사가 임금을 부당하게 깎아 60만~70만원을 버는 사람도 적지 않아요. 하루 12시간을 꼬박 일해도 처우는 막노동꾼만도 못하죠.”

    그의 말은 엄살이 아니다. 지난해 10월까지 서울 강동구에 있는 D택시회사에 다닌 이관수씨는 “사납금을 다 채워도 회사에서는 70여만원밖에 주지 않았다. 벌이가 괜찮은 달에도 월수입이 80만~90만원 수준이었다. 2009년 12월에는 교통사고를 당해 21일밖에 일하지 못했더니 198만원을 입금하고도 급여로 22만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D사는 사납금을 받지 못하는 일요일에는 도급 방식으로 택시를 1만9000원에 빌려준다고 한다. 문제는 기사가 일요일에 차량을 빌리든 안 빌리든 4주치 차량 대여료가 ‘기타공제’ 명목으로 급여에서 공제된다는 점이다. 이씨는 D사가 전액관리제 시행 법규를 위반하고 임금과 부가가치세 환급금 등을 부당하게 착취하는 행위에 대해 서울시에 진정을 냈다. 하지만 문제가 시정되기는커녕 도리어 그가 쫓겨났다. 그는 “민원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회사에서 200만~300만원을 주겠다고 제의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문제 있는 기사로 낙인찍혀 다른 회사에서는 받아주지도 않았다. 4개월 전 경비원으로 취직했는데 택시를 몰 때보다 월급도 더 많고 몸과 마음도 훨씬 편하다”고 털어놨다.

    이쯤에서 ‘전액관리제’가 뭔지 살펴보자. 전액관리제는 기사가 번 돈을 회사에 몽땅 입금하고 회사는 그 대가로 납입 총액의 50% 이상을 급여로 지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회사는 이밖에도 연료비 전액과 차량수리, 사고처리까지 지원한다. 수입이 늘어나는 만큼 세금과 4대 보험료도 많이 내야 하지만 그만큼 더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 한 주 근무일수는 대체로 5일을 기본으로 한다.

    현행법에서는 택시회사의 운영방식으로 전액관리제만을 허용하고 있다. 전액관리제는 택시업계에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사납금제의 병폐를 없애고 근로자의 처우를 개선하려고 1997년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시내 250여 개 택시운수회사 가운데 전액관리제를 실시하는 회사는 10% 미만이다. 전액관리제 실시는 선택조항이나 권고조항이 아니다. 법으로 정해 무조건 따르도록 한 강제조항이다. 그런데도 진전이 없는 건 왜일까.

    “전국 택시운수회사의 90% 이상이 사납금제로 운영돼요. 전액관리제를 실시하면 회사는 모든 운영을 투명하게 해야 하고 수익이 줄어드니까 위법인 줄 알면서도 사납금제도를 버리지 못하는 거죠. 사납금제를 유지하면 기사가 나가서 열심히 하든 안 하든, 경기가 좋든 나쁘든 매일 같은 금액이 들어오니까 회사로선 손해날 게 없거든요. 대신 기사는 자기희생을 감수해야 하죠. 몸이 아파도 손님이 없어도 어떻게든 사납금을 맞춰야 하니까요.”

    사납금을 채우려면 목 좋은 곳을 많이 알아둬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택시는 버스나 지하철과 달리 승객을 찾아다녀야 한다. 대부분의 승객이 정류장을 이용하지 않고 도로변에서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기 때문이다.

    “주간에는 주로 직장인이 많은 여의도나 시청 근처 파이낸스빌딩, 강남파이낸스센터 앞에 서 있어요. 업무상 멀리 가는 분이 많거든요. 밤 9시가 넘으면 술집 밀집지역으로 가요. 강남역과 종로 일대, 여의도, 영등포, 홍대 앞, 신사역이 그런 곳이죠.”

    그와 함께한 9시간 동안 차에 오른 승객은 모두 10명. 도로가 붐비는 퇴근시간대에 탄 승객은 서로 다른 양상을 보였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담담하게 기다리거나, 아니면 길이 막히는데도 빨리 가자고 막무가내로 보채거나. 승객 일부는 취재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택시 안 청문회’의 도마에 오른 건 서울시장 보궐선거 얘기, 정부의 부동산 대책, 수도권 지하철 문제, 청년실업, 저축은행 부실 문제 등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이었다.

    “택시 안에도 CCTV 필요”

    황씨는 어떤 손님을 만나든 평상심을 잃지 않았다. 도로변에서 손 흔드는 사람을 지나쳤을 때도 미련을 갖지 않았다.

    “어느 택시를 타느냐는 승객 마음이에요. 내가 지나쳤다면 그분은 내 인연이 아닌 거죠. 요즘은 세상이 하도 험하니까 기사의 외모를 살펴보고 타는 승객도 적지 않아요. 인상이 험상궂으면 아무래도 꺼려지겠죠.”

    ▼ 인상이 험악한 손님을 만나면 어떤가요.

    “무섭죠. 한번은 여의도에서 덩치가 산만한 운동선수 4명을 태웠어요. 경기도 부천시로 가자는 걸 안 된다고 했죠. 서울 택시는 서울 이외의 지역에 대해선 승차를 거부할 수 있거든요. 그럼 오류역까지 가자고 하더니 뒤에서 육두문자를 퍼붓더라고요. 그래도 대꾸 안 하고 운전만 했죠. 앞에 탄 승객이 부천 가자고 얼렀지만 거절하고 내려줬어요.”

    ▼ 어떤 승객이 가장 불편한가요.

    고급 운송수단이라고? 근로여건은 막노동꾼만도 못한데…

    택시기사는 승객을 찾아다녀야 한다.

    “술 취해서 주무시는 손님이죠. 목적지까지 갔는데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특히 여자 손님이 그러면 정말 난처해요. 남자 같으면 흔들어보기도 하는데 여자 손님은 조심스럽잖아요. 선배들의 조언대로 가까운 맥도날드 가게 앞에 차를 대놓고 112에 신고하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더라고요. 경찰서까지 가면 경찰이 귀찮아하는데 112를 통하면 사고접수를 처리해야 하니까 경찰이 5분이면 와요.”

    그는 아직 승객에게 험한 꼴을 당해본 적은 없다고 했지만 다른 기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폭언은 물론 폭행을 하는 승객도 간간이 만난다고 했다. 또 택시라는 은밀한 공간을 이용해 기사가 승객을 추행하는 일도 있지만 반대로 기사에게 먼저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꽃뱀’도 있다고 한다. 업계 일각에서는 택시 내부의 CCTV 설치 의무화를 주장한다. 황씨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일부 개인택시기사는 내부에 CCTV를 설치하고 다녀요. 분쟁의 소지가 될 만한 일이 자주 발생하니까요. 아무리 친절하게 해도 무시하고 욕하고 괴롭히는 손님, 차비 안 내는 손님을 만나면 저도 CCTV의 필요성을 느끼죠. 그런 손님이 한 달에 한두 번은 타거든요. 성깔 있는 기사는 경찰 불러 해결하지만 전 그냥 넘어가는 편이에요. 야간에 많이 벌어야 하니 빨리 잊어버려야죠. 속이 상하지만 열심히 뛰어서 새로운 손님을 받는 게 속이 편하니까요.”

    ▼ 승객들이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이번 보궐선거를 앞두고는 대부분이 박원순 시장을 뽑는다고 하더라고요. 손님들은 정치나 경제 이야기를 많이 해요. 체감경기가 안 좋으니까요. 예전에는 새벽 2시까지도 손님이 꽤 많았는데 요즘은 1시가 넘으면 손님이 거의 없어요. 경제가 어려워서 술 드시는 분도 줄어든 거죠.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대통령이 욕을 많이 먹어요. 자기 고집이 너무 세고 서민 생각 안 한다고요.”

    ▼ 민망한 행동을 하는 승객이 있나요.

    “많죠. 젊은 커플은 키스는 보통이에요. 빨리 모텔로 가자고 난리를 치죠. 중년남자들은 젊은 아가씨에게 ‘자기야’라고 하면서도 애정행각을 벌이진 않아요. 점잖게 앉아서 호텔로 가자고 하죠(웃음).”

    ▼ 택시 안은 금연구역인데 흡연하는 승객이 있나요.

    “술 드신 손님이 간혹 피우기도 하는데 그럴 땐 차문을 다 열어놓고 환기시켜요. 택시 안에서 금연하는 건 바람직한데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게 문제예요.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달라고 하면 고급 교통수단이라 안 된다고 하면서 금연에 대해선 공공장소라는 이유를 적용하거든요.”

    서울에만 6만5000대, 택시의 희망

    택시가 법이 인정하는 대중교통이 아니라는 건 다소 의외다. 택시는 지하철이나 버스가 미치지 못하는 교통 소외지역이나 거동이 불편한 이들의 발이 돼주고 있지 않은가. 대중교통의 사각지대에 갇혀 최저임금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택시기사들은 택시가 하루빨리 대중교통수단으로 인정받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되면 택시기사도 월급여로 300만원을 받는 버스기사처럼 주 5일 근무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에서다.

    “예전에는 버스기사들이 택시회사에 줄을 섰는데 지금은 정반대가 됐어요. 버스기사가 월급도 훨씬 많이 받고 덜 힘드니까요. 택시는 26일을 근무하고 근속기간이 1년이 안 되면 휴가도 안 줘요. 저희 회사만 해도 1년차 기사 중에 60대 이상이 70%가 넘어요. 이분들은 1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니 회사 말을 잘 듣거든요. 1년 지나면 연 15일을 쉴 수 있지만 병가 내면 근무로 인정을 안 해요. 사납금을 입금 안 하면 무단결근으로 처리하고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도 생돈 입금하고 가요. 무단결근 세 번 하면 바로 잘리니까요.”

    자정 무렵,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에 승객을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대리기사들을 태우는 택시를 봤다. 황씨는 “서울까지 택시가 빈 차로 가야 하니 대리기사에게 한 사람당 3000원씩 받고 같이 나오는 것”이라며 “대리기사가 많아져 택시 영업이 더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서울을 벗어나면 대리기사가 모이는 집합 장소가 있어요. 대리기사가 워낙 많다보니 대리기사를 태우러 다니는 셔틀버스도 생겼어요. 셔틀버스보다는 택시가 편하니까 저런 식으로 짝을 이뤄 잡아타는 일이 흔하죠.”

    그는 밤 9시가 되면 주차장이 넓은 기사식당을 찾아가 저녁식사를 한다. 식사 전후에는 반드시 화장실에 들른다. 주행 도중 볼일이 급할 땐 가까운 주유소를 이용한다. 언제 탈지 모르는 승객이 먼 거리를 가자고 할 때를 대비해서다. 전국 각지에는 그처럼 사납금을 채우려고 불철주야 달리는 택시기사가 무수히 많다. 서울에는 매일 5만대의 택시가 돌아다닌다. 개인택시 4만5000대는 사흘에 하루를 쉰다. 그러나 회사택시 2만대는 쉴 새가 없다. ‘사납금’의 덫에 걸린 기사들은 ‘가불’ 신세를 면하려고 때로 승차거부나 불친절을 범하기도 하고 도박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전액관리제 정착이 절실한 이유다.

    이들은 내년부터 전액관리제의 전면 시행을 강력히 추진하기로 한 서울시의 방침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시 관계자는 “기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지만 사납금제가 쉽사리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사측과 노측이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투명한 전액관리제가 정착될 수 있도록 처벌규정 강화 등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황씨는 “전액관리제를 도입하면 노사상생의 길이 열리고 승객들도 한결 친절하고 안전한 택시를 타게 될 것”이라며 “전액관리제가 실효를 거두려면 누구보다 사업주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어느덧 새벽 2시가 넘었다. 황씨와 헤어질 시간이다. 그는 싸늘한 밤공기를 마시며 세 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히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폐차 직전의 택시를 끌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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