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과 앤에게는 한국인 딸 말고도 아프리카에서 입양한 아이가 하나 더 있었다. 자신들의 삶도 넉넉지 않은 형편에 두 아이의 입양은 내게 놀라움이었다. 짧은 여행 중에 나는 그들에게 기어코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너희들의 삶이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않다는 것을 한국인 친구로부터 들었다. 그런데도 두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 지내는 것은 우리가 매일 시를 읽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과 같다. 시를 읽는 동안 우리는 행복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동안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큰 기쁨과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의 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좋은 일을 돈이 없다고 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돈이 부족하다고 시를 쓰지 않고 같은 이유로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면 인생은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딕과 앤이 떠나던 날 나는 환하게 핀 와온 마을의 오동나무 꽃가지를 듬뿍 안겨 주었다.
와온 바다에 머무는 동안 부끄러워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한 적도 있고 부끄러움 속에서도 몇 줄의 시를 쓴 적도 있다. 분명한 것은 와온 바다가 지닌 촉촉하고 따스한 이데올로기 곁에 내가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臥溫, 따뜻하게 누워 있는 바다. 누가 처음 이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또한 이곳 바다에 펼쳐진 저녁노을의 향연과 달빛의 축제를 보았음이 틀림없다. 깊게 엎드려 널을 밀고 가며 조개를 캐던 아낙들의 굽은 등을 따스하게 지켜보았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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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생의 와온을 꿈꾸지 않으랴. 새해에 나는 일하는 이들이 좀 더 대접받는 세상으로 인간의 시간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으면 싶다. 일하지 않고, 가능한 적게 일하고 많은 돈을 얻으려는 생각이 인간으로서 최고의 수치(羞恥)임을 모두가 깨우쳤으면 싶다. 1%의 사람들을 위해 99%의 사람들이 절망하기보다는 99%의 사람들을 위해 능력 있는 1%의 사람들이 헌신하는 모습을 꿈꾸고 싶다. 많이 가졌다고 부유한 것이 아니라 적게 가졌어도 그것을 진실로 유익하게 사용하는 것이 진짜 아름다움임을 지구별 위의 모든 인간이 따뜻하게 가슴에 새겼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