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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와온 바다의 꿈

  • 곽재구│ 시인·순천대 문예창작과 교수 timeroad99@hanmail.net

와온 바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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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서 둘의 생활은 풍족한 편이 아니었다. 시골 마을의 조그만 도서관에서 사서 일을 하는 것이 부부의 소득원이었고 여러 가구가 함께 생활하는 연립주택에 산다고 했다. 딸의 한국행을 위한 비행기표 값을 모으기 위해서도 여러 해의 내핍생활이 필요했다는 것을 나는 동행한 한국인 친구로부터 들었다. 난 이들과 함께 순천만과 여수 바다 이곳저곳을 함께 둘러보았다. 이 여행은 한국의 기성세대로서 왜 한국의 아이가 네덜란드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야만 했는지 하는 부끄러움과 감사의 마음이 담긴 것이었다. 동행하는 동안 앤은 내게 딸아이를 생각하며 쓴 시를 환한 웃음과 함께 읽어주었고 딕은 와온 바다에서의 우리의 만남을 추억하는 즉흥곡을 음식점의 낡은 피아노 앞에서 연주해주었다.

딕과 앤에게는 한국인 딸 말고도 아프리카에서 입양한 아이가 하나 더 있었다. 자신들의 삶도 넉넉지 않은 형편에 두 아이의 입양은 내게 놀라움이었다. 짧은 여행 중에 나는 그들에게 기어코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너희들의 삶이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않다는 것을 한국인 친구로부터 들었다. 그런데도 두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 지내는 것은 우리가 매일 시를 읽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과 같다. 시를 읽는 동안 우리는 행복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동안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큰 기쁨과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의 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좋은 일을 돈이 없다고 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돈이 부족하다고 시를 쓰지 않고 같은 이유로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면 인생은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딕과 앤이 떠나던 날 나는 환하게 핀 와온 마을의 오동나무 꽃가지를 듬뿍 안겨 주었다.

와온 바다에 머무는 동안 부끄러워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한 적도 있고 부끄러움 속에서도 몇 줄의 시를 쓴 적도 있다. 분명한 것은 와온 바다가 지닌 촉촉하고 따스한 이데올로기 곁에 내가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臥溫, 따뜻하게 누워 있는 바다. 누가 처음 이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또한 이곳 바다에 펼쳐진 저녁노을의 향연과 달빛의 축제를 보았음이 틀림없다. 깊게 엎드려 널을 밀고 가며 조개를 캐던 아낙들의 굽은 등을 따스하게 지켜보았음이 틀림없다.

와온 바다의 꿈
郭在九

1954년 전남 광주 출생



광주제일고 졸, 전남대 국어국문학 학사, 숭실대 대학원 국어국문학 석사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사평역에서’ 당선, 문단 등단

1986년부터 계간지 ‘시와 사람’ 편집위원

시집‘한국의 연인들’‘서울 세노야’‘참 맑은 물살’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등 다수


누군들 생의 와온을 꿈꾸지 않으랴. 새해에 나는 일하는 이들이 좀 더 대접받는 세상으로 인간의 시간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으면 싶다. 일하지 않고, 가능한 적게 일하고 많은 돈을 얻으려는 생각이 인간으로서 최고의 수치(羞恥)임을 모두가 깨우쳤으면 싶다. 1%의 사람들을 위해 99%의 사람들이 절망하기보다는 99%의 사람들을 위해 능력 있는 1%의 사람들이 헌신하는 모습을 꿈꾸고 싶다. 많이 가졌다고 부유한 것이 아니라 적게 가졌어도 그것을 진실로 유익하게 사용하는 것이 진짜 아름다움임을 지구별 위의 모든 인간이 따뜻하게 가슴에 새겼으면 싶다.

신동아 201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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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시인·순천대 문예창작과 교수 timeroad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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