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근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2007년 영화 ‘이대근, 이댁은’의 한 장면.
짙은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에 곰처럼 두터운 가슴. 아직 애송이 티를 벗지는 못했지만 싱싱하다. 청년은 그를 눈여겨보던 건달 이대엽에 의해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자신이 왜 거리로 쫓겨나 이 수표교 다리까지 왔는지. 청년 김두한의 아버지는 청산리 대첩의 명장. 그는 바로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와 불행의 근원이 일본 제국주의라는 것을 안 청년 김두한은 서서히 변화한다. “나는 수표교 다리 밑의 거지새끼가 아니라 장군의 아들이다.”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김두한은 과묵해지고, 매사에 신중해진다. 청년 김두한의 가슴속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새겨진다. 비록 거지새끼지만, 아버지가 그랬듯 뭔가를 해야 한다고. 그래서 그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일본인 야쿠자들로부터 방패막이 될 것을 결심한다. 일본인 야쿠자와 일전을 치르면서 그의 싸움 실력이 보통이 아니란 것이 알려지고. 청년 김두한은 신마적과 종로를 놓고 패권을 다투는 우두머리가 된다. 하지만 검은 그림자가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한다. 일본 고등계 형사의 독사 같은 눈길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일본인 야쿠자가 보낸 자객에 의해 수표교 다리 밑 생활 때부터 죽마고우였던 친구가 죽자 김두한의 분노는 폭발한다. 호랑이 같은 두 눈이 붉어지고, 훤한 이마에 핏줄이 곤두선다. 새로 단장한 하얀 양복을 입고 일본 야쿠자와 대결하기 위해 종로 거리를 걷는 김두한. 이쯤에서 영화를 보던 나는 두 손을 들어 박수를 쳤다.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생이던 나는 영화를 보며 주인공이 악당에게 이기거나 뭔가 큰 결심을 위해 일어설 때 관객이 박수 치는 것을 아주 창피한 행동이라 깔보고 있었다. 게다가 유치한 한국 액션 영화를 보고 박수를 치다니. 당시 한국 영화를 보던 관객의 최고 쿨한 행동은 끝나기 10분 전쯤 “알았어. 라스트는 안 봐도 뻔하다고!”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벌떡 일어나 극장 문을 박차고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 내가 청년 김두한이 일본인 악당과 대결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데 박수를 치다니. 이런 귀신이 곡할 노릇이 있나! 영화가 끝난 뒤 극장 문을 열고 나서면서 내가 외친 탄성은 “우와 재미있다!”였다. 이렇게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해서 한국 액션 영화를 본 경우가 그때까지 거의 없었다. ‘실록 김두한’은 ‘황야의 7인’이나 알랭 들롱의 프렌치 누아르, 이소룡과 왕우의 홍콩 액션 영화만큼의 몰입도가 있었다.
영웅의 탄생
당시 나는 한국 액션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에게 몰입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할리우드 영화나 홍콩 영화와 비교할 때 몰입을 방해하는, 부족하고 민망한 장면이 끊임없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최고의 한국 액션 영화 중 하나였던 챠리 셸 주연의 태권도 영화들 역시 어디지 모르게 엉성하고, 홍콩 영화에서 본 듯한 줄거리가 나와 김이 새고, 더구나 주인공의 카리스마가 나를 압도하지는 않았지만 발차기가 좀 남다르게 멋있으니, 하며 보았다. 그런데 처음 본 저 배우. 이대근에게 나는 완전히 몰입했고, 영화 처음에는 애송이 같고 뭔가 불만족스럽던 그에게 점점 압도당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이야기가 홍콩 영화나 할리우드 영화를 흉내 낸 것이 아니라 뭔가 새로웠다. 물론 ‘실록 김두한’이 대단히 잘 만든 걸작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복수가 주된 골격인 당시의 한국 액션 영화와는 달랐다. 주인공이 쏟아내는 격한 감정에 동화될 수 있는 독특하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