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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범죄자는 우리 주위에 있다. 처벌보다 중요한 건 사전에 막아내는 일”

‘국내 1호’ 범죄심리학자 강덕지 국과수 범죄심리과장

  • 박은경│신동아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범죄자는 우리 주위에 있다. 처벌보다 중요한 건 사전에 막아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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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덕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범죄심리과장은 1981년 국과수에 입사한 뒤 30년간 우리나라의 범죄심리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다.
  • 1999년 국내 최초로 최면수사를 도입했고, 2000년 국과수가 범죄행동분석팀을 조직했을 때 첫 팀장을 맡기도 했다.
  • 2011년 12월 정년퇴임을 앞둔 그를 만나 최근 잔혹 범죄가 늘어나는 이유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에 대해 들었다.
“범죄자는 우리 주위에 있다. 처벌보다 중요한 건 사전에 막아내는 일”
“그래 뭔 얘기가 듣고 싶어 왔소?”

차를 받아 든 기자가 미처 입을 떼기도 전 까칠함이 묻어나는 말이 속사포로 이어졌다.

“기자들 말이요, 큰 사건 터지면 열이면 열이 와서 하는 얘기가 ‘뭐 재미난 얘기 없냐?’ 이래요. 범죄 피해로 돌아가신 분이 있고 중상으로 병원에 누워있는 분도 있고 유가족도 있단 말이요. 범인은 감방 가서 수형생활 중이고. 어느 구석을 들여다봐도 범죄사건 중에 우리가 즐길 만한 내용이 없어요. 그래서 내가 ‘당신 가족이 당했다고 생각해봐라. 그 따위 재미난 얘기 찾겠느냐’고 그러지.”

만만찮은 인터뷰가 될 것임을 예감하고 마음을 다잡는 순간 쐐기를 박는 말이 돌아왔다.

“박 기자도 재미난 얘깃거리나 찾으러 온 거면 그냥 차나 한잔 마시고 돌아가세요.”



2011년 12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 정년퇴임을 앞둔 강덕지 범죄심리과장을 인터뷰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10대들이 저지르는 강력범죄를 비롯해 연쇄살인과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범죄’ 등 잔혹하고 흉포한 사건이 최근 두드러지게 많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범행 동기와 범죄자의 심리는 무엇인지, 우리 사회가 나날이 늘어가는 강력범죄를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등에 대한 의문을 풀고 싶다고. 우리나라 최초의 범죄심리학자로 지금까지 1000여 명의 범죄자를 만나온 강 과장이라면 해답을 알고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퇴임 직전 서둘러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를 조목조목 밝히자 비로소 그의 표정과 말투가 누그러졌다.

“범죄자는 따로 있다”

▼ 일하면서 기자들한테 많이 시달리셨나봅니다.

“범죄 기사는 정말 조심해서 써야 해요. 물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잖아요. 기사를 보고 반성하는 사람도 있지만 세세한 사건 기사를 보고 범죄 수법 같은 걸 자기 지식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다고요. 범죄에 취약한 성향의 사람들이 그렇죠. 언제든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학습된 정보를 바탕으로 범행을 저지른다고. 옛말에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라’고 했잖아요. 범죄가 좋은 일도 아니고 그걸 시시콜콜 국민에게 알려주는 게 뭐 그리 좋겠어요. 난 범죄 사건에 대해 국민이 지나치게 자세한 부분까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 ‘범죄에 취약한 성향’이 따로 있나요?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쉽게 범죄로 빠져드는 타고난 기질이 있어요. 과학적인 근거가 없어서 아직 학설로까지 정립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첫눈에 딱 보면 알 수 있지요. 소름이 쫙 끼쳐요. 여자 여럿을 죽인 친구가 있는데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졌어요. 이 친구는 강간한 뒤 사정하고 마지막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는데, 그 단계를 하나하나 마치면서 성취감을 얻는다는 거예요. 대화 도중에 ‘(목을 조를 때) 손끝에 전해지는 짜릿한 느낌, 전율감’이러면서 몸을 막 떨어요. 눈빛과 표정이 순간적으로 확 변하고. 이런 부류의 사람을 만나면 ‘아, 이건 살면서 환경을 잘못 만나 빚어진 일이 아니구나’하는 느낌이 딱 오지요. 인간의 다양함이랄까 복잡함이랄까, 그런 걸 느낄 수 있는 사건이었죠.”

▼ 그런 범죄자가 갖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나요?

“굉장히 침착하고 냉랭하고 차갑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후에도 양심의 가책이나 죄의식 같은 게 없어요. 신체는 대체로 왜소한 편이죠. 몇 년 전 강화도 해병대 초소에서 경계병을 차로 치고 총기와 실탄을 탈취한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 친구를 만났더니 ‘2002년 월드컵 때 사람들이 붉은 옷을 입고 미친 듯이 응원한 거 진짜냐? 어떻게 그렇게 흥분되고 좋을 수 있냐’고 물어요. 감정이 굳고 차가워서 웬만해선 즐거움을 못 느끼는 거지.”

▼ 타고난 어떤 기질이 있다 해도 그런 사람들이 모두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죠?

“흔히 점을 보면 무당이나 연예인, 범죄자와 형사가 비슷하게 나와요. 공통된 기질을 타고나도 대부분은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지. 심리학적으로 인격장애는 경계성, 히스테리성, 분열성, 편집성 등으로 구별돼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도 그중 하나죠.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가진 범죄자는 보통 2~3가지 복합적인 인격장애를 안고 있어요. 그런 범죄자는 반사회적인 성격일 뿐 아니라 아주 냉정하고 자기만 알아요. 그런데 군인이나 경찰 등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냉정하고 딱 부러지는 기질이 없으면 안 됩니다. 정 많고 마음이 흐물흐물하면 조직을 강력하게 통솔할 수 없지. 이렇게 유사한 기질을 타고나도 좋은 일을 하는 쪽으로 기질이 발현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쁜 길로 빠지는 사람도 있는 거지요. 그래서 사회적인 환경이 중요한 겁니다.”

범죄자를 만드는 환경

▼ 환경이 중요하다는 건 언뜻 범죄자들의 자기합리화처럼 비치기도 합니다.

“대구 사과가 왜 유명해요? 똑같은 종자라도 대구의 풍토와 기온에서 자라면 맛있어지기 때문 아닙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과거의 범죄사건은 동기가 단순하고 분명했지요. ‘배가 고파서 도둑질했다’ ‘유흥비가 필요해서 강도질했다’ ‘순간적으로 욱해서 사람을 찔렀다’…. 요즘처럼 범죄 동기가 뚜렷하지 않고 복잡한 사건이 별로 없었지. 요즘 강력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건 우리 사회가 복잡해지고 정신적으로 황폐해졌기 때문이에요. 지금의 사회 풍토가 범죄를 부채질하는 측면이 있다고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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