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호

외로운 남자의 유년 풍경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입력2012-01-19 16: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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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운 남자의 유년 풍경

    ‘외로운 남자’<br>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이재룡 옮김, 문학동네, 173쪽, 8500원

    완만한 구릉의 언덕길을 오르자 성당 첨탑이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마을 진입로에 들어서니 20~30호의 집이 성당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프랑스의 여느 시골마을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이곳은 프랑스 북서부 라발 인근의 라 샤펠 앙트네즈. 비가 한 번 뿌리고 간 덕에 사방은 정갈하고 구름 사이로 파란빛이 막 펼쳐지고 있었다. 구릉과 구릉 사이 초원에는 희고, 노랗고, 검은 얼룩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고, 마을 안 도로에는 인적이 없었다.

    이상하다. 마치 세계의 한 부분이 갑자기 심연 속으로 허물어져 들어간 듯했다. 지난 인생, 고색창연한 성당. 군중은 무엇이 되었을까? 모든 것은 허물어졌다. 아마도 어딘가에 있겠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이재룡 옮김, 문학동네, ‘외로운 남자’ 중에서

    마을 입구 면사무소(mairie)를 지나 성당에 다다랐다. 멀리서 볼 때와 달리 성당의 위세가 드높았다. 길을 따라 늘어선 집들의 창문은 닫혀 있고, 집과 집을 연결하는 검은 전선줄만 창공에 생생했다. 평일, 아침나절의 적요. 신비로운 침묵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듯한 기묘한 착각이 일었다. 성당에서 길을 따라 몇 발자국 걸어 내려가자 길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왼편 길로는 마을이 이어지는 듯했고, 오른편 길로는 집 한 채를 끝으로 마을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 집 옆으로 작은 다리가 보였고, 그 아래로 철길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추모비가 성당 앞에 앙증맞게 세워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탑신에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었다. ‘1914년에서 1918년 목숨을 잃은 우리의 자식들을 추모함.’ 추모문 아래 전쟁에 나가 숨진 이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1914년에서 1918년’에 다시 눈길이 닿았다. 내가 지금 이곳, 관광객은 물론 주민조차 눈에 띄지 않는 한적한 시골 마을 길 한복판에 서 있는 이유는 바로 그 기간 중에 이곳에 머물렀던 한 이방인 소년의 족적을 밟기 위해서였다. 삼거리에는 마을을 알리는 중요한 것들, 그러니까 열대여섯 개의 안내 및 방향 표지가 집중적으로 모여 있었다. 표지물 중에 지금껏 가슴에 품고 이 마을을 향해 달려온 이름을 발견했다. 이오네스코.

    태어나 몇 개월이 안 되어 나는 세상에 익숙해졌다. 스스로를 인식하고 타인을 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와 장난감 곰이 있었고, 그것들보다 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등 거의 모든 것이 있었다. 나의 발가락, 하늘의 일부분, 이런저런 물건들, … 나는 그러한 것들을 발견(강조-필자)하고 놀랐던 무수한 순간들을 기억한다. 산책을 나갔을 때, 가끔 풍경이 변해 있는 걸 발견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양호했으며 세계는 그 장소에 있었다. -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박형섭 옮김, 새물결, ‘발견-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이오네스코는 프랑스 명, 원래 루마니아 명은 이오네스쿠. 그는 그러니까 루마니아인이었다. 그런 그가 20세기 프랑스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부조리극작가가 된 것은 어머니가 프랑스인이기 때문. 그리고 훗날 아버지(의 나라)와 결별하고 프랑스로 귀화했기 때문.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의 나라는 나치 치하가 됐고, 아버지는 나치 세력의 막강한 일원(총감)이 됐던 것. 이런 생의 이력으로 그는 한 살 때부터 여러 차례 프랑스에 체류했고, 유년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아홉 살 전후를 이 작고 소박한 성당 마을에서 보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이 시기 그의 부모는 이혼했고, 어머니는 아이 둘을 이끌고 파리의 여인숙을 전전했다. 1917년 어린 소년 이오네스코는 지인의 소개로 라 샤펠 앙트네즈의 한 농가에 위탁아로 맡겨졌다. 이곳에서 그는 또래 아이들처럼 학교를 다니고 언덕을 뛰어다니며 평온한 전원생활을 체험했다.



    네 살에 나는 죽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절망하여 큰 소리로 울었다. 그 이후 언젠가 어머니를 잃게 된다는 것,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했다. … 나는 어머니에게 매달렸다. … 그러고 나니 어머니의 슬픔이 보였고, 불행한 소녀와 같은 그녀의 얼굴, 그녀의 흐느낌, 그녀의 고독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폭력이 있었다. 전쟁이 있었다. 적의 비행기, 곰팡내 나는 지하실, 학교, 시골의 전원이 있었다. - ‘발견-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삼거리에서 ‘C. A. T. 이오네스코’라 씌어있는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은 왼쪽, 그대로 따라가보았다. 마을 중간 완만하게 시작되는 구릉 오른편 3층 건물 외벽에 ‘C. A. T. Foyer Ionesco’란 글자가 보였다. 입구에 라벤더가 군락을 이루며 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이 몇몇이 순진한 표정으로 뒤돌아보며 느릿느릿 건물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은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곳이었고, 나는 보라색 라벤더 꽃무더기를 손바닥으로 한번 스윽 훑고는 다시 길로 나섰다. 라벤더 향이 물결처럼 퍼졌다. 차를 돌려 지나온 길을 돌아나가려니 바로 코앞에 이오네스코가 단층짜리 건물 입구 외벽에 초상화로 그려져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외젠 이오네스코 학교’라고 쓰여 있었다.

    외로운 유배자의 어린 시절

    학교를 지나 삼거리에 이르러 다리 쪽으로 향했다. 철길이 지나는 작은 마을, 그 어디쯤에 간이역이 있을 것이고, 그 역을 통해 이오네스코는 파리로, 또 루마니아로 갔을 것이었다. 다리를 건너자 왼편으로 급격하게 구릉의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검푸른 숲 사이로 눈부시게 빛나는 녹지가 펼쳐져 있었고, 얼룩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이오네스코의 산문에서 봄직한 정경에 저절로 발길이 그쪽으로 옮겨졌다. 몇 걸음 걷지 않아 ‘moulin(방앗간)’이라고 적힌 작은 푯말과 마주쳤다.

    농장으로 가려면 그 언덕을 내려가야만 했다. 왼쪽과 오른쪽에 움푹 파인 길은 초원의 가장자리를 에워싸고 있는 생울타리를 향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생울타리를 기어오르는 것, 생울타리의 구멍을 통과하는 것, … 그것은 우리를 경이롭게 만드는 발견이요, 탐험이었다. 공간은 광활했고, 풍경들은 2㎞ 정도 사방으로 펼쳐져 끝없이 다양한 모습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 또 다른 물가에, 또 다른 고장에 갔었고, 옆 마을에까지 나아갔으며 결국 그것은 다른 대륙으로 이어졌다. - ‘발견-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어린 이오네스코가 살았던 방앗간(제분소)은 부속 건물(창고)만 마당 한편에 남아 있을 뿐 본채는 레스토랑으로 변해 있었다. 주인의 허락도 없이 장작더미가 쌓여 있는 창고와 하늘로 뻗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냇가, 그리고 그 위에 눈부시게 펼쳐진 구릉의 초원을 완상하고 서 있자니 본채에서 주인이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에게서 세상을 등지고 사는 한 외로운 남자의 인상을 엿보았다면 나의 지나친 감상이었을까. 나는 꺼내지도 않고 가방 속에 묻어둔 ‘외로운 남자’의 칼 같은 첫 문장을 떠올렸다.

    나이 서른다섯 살이면 인생 경주에서 물러나야 한다. 인생이 경주라면 말이다. - ‘외로운 남자’ 중에서

    이 소설이 쓰인 것은 1973년. 이오네스코 나이 64세 때였다. 1950년 부조리연극을 대표하는 ‘대머리 여가수’의 대성공 이후 20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21세기 독자라면 이 첫 문장을 보고 당장 소설을 덮어버릴지도 모른다. 엄혹한 현실의 정글에서 서른다섯이면 막 자리를 잡고 의욕적으로 인생을 운용해보려는 나이. 그런데 인생 경주에서 물러나야 한다니, 이오네스코는 무엇을 믿고 이런 첫 문장을 제시한 것일까?

    직장 일이 나는 신물이 났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였으니 이른 편도 아니었다. 예기치 못했던 유산을 물려받지 않았더라면 난 권태와 우울증으로 죽고 말았으리라. 아주 드문 일이지만 가끔 이런 횡재를 안겨다주는 먼 친척이 있는 법이다. - ‘외로운 남자’ 중에서

    오호라, 인생 최대의 횡재. 프랑스인들이 현실의 막다른 궁지에서 찾는다는 ‘미국 삼촌’(생각지도 않았던 친척이 미국에서 벼락부자가 되어 나타나 상속자가 없어 유산을 나에게 물려준다는 속담)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그것을 가정하고 읽어본다면, 그럭저럭, 서너 시간, 나를 작가에게 맡기고, 환상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이오네스코는 죽기 전 단 한 편의 소설을 쓰고자 했던 것일까. 이오네스코의 말년 작업은 파편화된 유년기를 추적하고 성찰한 자전적 에세이와 스케치. ‘외로운 남자’는 이 모든 자전적 삽화와 회상을 허구적으로 재구성한 자전적 소설인 셈. 노작가의 조율에 의해 20세기 이름을 날렸던 소설 주인공들(대부분 그들은 서른다섯 살 무렵 세상에서 물러나거나 제외되었다)이, 숨바꼭질하듯, 익명의 화자에 얹혀 출몰하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톡톡하다.

    이제는 멈춰버린 방앗간에서 언덕으로 올라오자 막 기차가 마을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기차 꼬리를 스치듯 다리를 건너 성당을 향해 걸어갔다. 다리를 건너는 중에, 문득, 뒤통수를 치듯,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이곳은 어린 이오네스코의 유배지나 마찬가지였다. 세상에서 스스로 자신을 유폐시킨 서른다섯 살 사내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아 그가 복원하고자 한 것은, 유년기에 멈추어버린 생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끼워 맞춰 한 편의 그림으로 완성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것은 소설만이 유일하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 것이 아니었을까. 기차 꼬리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기차나 나나 갈 길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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