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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프리카(Chinafrica)와 미국의 조바심, 그리고 타산적 상호의존성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차이나프리카(Chinafrica)와 미국의 조바심, 그리고 타산적 상호의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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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프리카(Chinafrica)와 미국의 조바심, 그리고 타산적 상호의존성
중국의 특별경제구역…새로운 일자리 창출

무역 부문 외에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문제 삼는 것은 중국의 고수요 에너지 부문 투자다.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먼저 석유 탐사를 실시한 국가는 1995년 수단이었다. 수단은 석유 매장량이 67억 배럴에 달하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 3위의 석유 부국. 그러나 빈약한 자본과 기술, 내전 등으로 인해 1998년까지는 석유 수입국이었다. 중국은 수단 진출 이후 2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석유 시추시설과 원유 정제 플랜트, 송유관 등을 건설했고, 수단 정부의 석유개발 사업을 지원했다. 중국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1999년 8월 30일 수단은 역사상 처음으로 석유를 수출했다. 현재는 자체적으로 석유 개발, 석유·가스 정제플랜트, 운송 시설, 판매망을 구축했다. 석유와 별개로 중국은 학교, 에이즈(AIDS), 말라리아 치료를 위한 병원 신축 등을 도왔다.

반면 미국 정유회사 셰브런(Chevron)은 수단에서 1974~92년 18년간 석유를 생산했지만, 수단 정부나 국민의 삶에 영향을 줄 만한 기여를 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 다른 미국 기업 마라톤 석유회사(Marathon Oil Corporation)도 1980~85년 수단에서 석유를 생산했고, 캐나다 최대 석유회사 탈리스만 에너지(Talisman Energy) 등 많은 서방 기업이 석유 생산에 참여했지만, 셰브런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국적 기업 쉘(Royal Dutch Shell plc)도 나이지리아에서 50년간 석유를 생산했지만, 나이지리아는 여전히 석유를 수입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변변한 석유 시추, 생산시설을 갖추지 못해 지금도 자원 생산국으로 남아있다. 비단 수단과 나이지리아에서만 발견되는 사례가 아니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지금도 벌어지는 상황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영국의 협조 아래 신식민주의를 앞세워 서아프리카의 천연자원 확보에 열을 올린 나라는 미국이었다.

따라서 미 국무부 조니 카슨 차관보와 클린턴 국무장관의 중국 비판 발언은 미국 등 서방 국가에 더 걸맞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발언에 담긴 실제 의미는 ‘미국이 2000년대 들어 중국에 비해 아프리카 진출이 많이 뒤처졌다’는 초조함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미국은 물론 유럽, 인도, 일본 등도 중국의 대규모 아프리카 투자에 자극받아 ‘아프리카 이니셔티브’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중국과 아프리카는 이념으로 시작된 특수 관계



현재 중국과 아프리카의 관계가 단기간의 ‘에너지 확보를 위한 원조 정책(aid-for-energy strategy)’과 경제협력, 그리고 ‘자원과 현금의 교환’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떠한 국가도 따라 할 수 없는 노력을 수십 년간 지속한 결과였다.

김동환 국제전략자원연구원(IISR) 원장(국제정치학 박사)은 “오늘날 양측(중국과 아프리카)의 결속은 1955년 순수한 ‘이념’ 목적으로 시작돼 중국의 경제적 희생, 아프리카 식민지 각국의 무장독립운동 지원, 인적 네트워크 축적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빚어낸 ‘냉전의 산물’”이라고 규정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 중국 경제성장에 동반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냉전 기간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proletarian internationalism)’에 과도하게 집착해 미국, 소련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대아프리카 정책을 펼친다. “제국주의 체제로부터 사회적 ·민족적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인민들을 전면적·연대적으로 지원한다”는 실천 강령. 이러한 정책은 ‘이념적 경제관계’라는, 기존의 경제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난 기이한 국제관계를 탄생시켰다. 말 그대로 경제관계의 핵심(이윤추구)보다 ‘이념’이 앞선다는 뜻. 결국 ‘냉전의 산물’은 옳든 그르든 간에 손해를 보더라도 이념을 위해 투자한 결과물이다. 실제 중국의 대아프리카 무역에서는 오로지 중국의 일방적인 희생이 수십 년간 지속됐다. 중국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입각해, 무역·차관·무상원조·투자 등 각종 경제적 ‘지원 패키지’를 제공하면서 ‘이타주의적 형태’를 수십 년간 유지했다. 예를 들어 중국은 1962년 이후부터 탕가니카(현재의 탄자니아) 면화 총 생산량의 42%를, 아프리카 커피 생산량의 20% 이상을 사들였다. 당시 중국은 세계 3위(세계 시장의 9%)의 면화 생산 대국으로, 이미 자국 면화가 남아돌았지만 사들인 것이다. 문화혁명기 커피는 ‘부르주아의 기호품’으로 배격받아 구경하기도 어려웠지만, 이때도 커피를 수입했다. 1960년대 담배 재배면적과 생산량(매년 평균 2250억 개비)에서 세계 최대를 자랑했던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담배를 사들인 것도 ‘이념’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교역 형태는 오직 냉전 중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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