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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덕치주의 理想 뒤엎은 정치사상사의 혁명

  • 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덕치주의 理想 뒤엎은 정치사상사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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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에 관한 가장 큰 아이러니는 그의 처세를 보면 ‘마키아벨리스트’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는 점이다. 물론 마키아벨리에게 공직추방이라는 불행이 덮치지 않았던들 ‘군주론’은 햇빛을 보지 못했을 게 틀림없다. 단테에게 추방이 없었더라면 ‘신곡’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사마천이 궁형을 받지 않았으면 ‘사기’가 쓰이지 못했을 것이며,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하지 않았으면 ‘목민심서’ 같은 대작을 쓰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가정과 맥을 같이한다. 마키아벨리는‘피렌체 서기관’에 불과했지만, 스스로 역사가·희극작가·비극작가라고 했을 만큼 문재(文才)가 탁월했다. 그가 쓴 희곡 ‘만드라골라’는 당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보다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글로벌 경쟁시대의 교과서

‘군주론’만큼 이해보다 오해를 더 많이 받은 책도 드물다. 500여 년 동안 마키아벨리파와 반(反)마키아벨리파 사이에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책은 추앙받는 한편, 수없이 해석되고, 반박을 받으면서 역사를 바꿨다. 그 과정에서 수난도 숱하게 겪었다. 교황 바오로(파울루스) 5세는 1559년 ‘군주론’을 포함해 마키아벨리의 모든 저작을 금서로 지정한다. 선량한 기독교도에게 해로운 요설(饒舌)이라는 이유에서다. 바티칸이 이 책을 금지한 진짜 이유는 치밀하게 서술된 지배자의 어두운 이면과 실체가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정신적 지배계층인 교황과 성직자들의 권위를 위협하는 혁명적인 사상이기 때문이다. 모든 금서가 그러하듯 금서조치는 도리어 ‘군주론’과 마키아벨리의 성가를 드높여주었다.

계몽군주로 유명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마키아벨리는 틀렸다. 국가보다는 국민의 행복이 중요하다”며 스스로 ‘반(反)마키아벨리론’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즉위 20년이 지나 경험이 쌓이자 “마키아벨리가 옳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대 영국 극장의 무대에서는 ‘마키아벨리주의자’를 그 간계를 당할 수 없는 악당의 총합으로 그렸다. 비판론자들은 ‘군주론’에 담긴 사상을 ‘권력 확대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술’로 해석하고,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정치용어까지 만들어 붙였다. 이들은 무솔리니·히틀러·스탈린·카스트로·레닌 같은 독재자가 ‘군주론’의 광적인 애독자였으며, 나폴레옹이 이 책을 침대 옆에 놓고 잤다는 소문을 한층 부풀려 부정적인 이미지로 윤색하기도 했다.

18세기 무렵부터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은 편이다. 계몽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군주론은 공화파의 보전(寶典)”이라고 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양면의 거울로 삼아 군주를 가르치는 체하면서 인민에게 중대한 교훈을 주려 했다고 본 것이다. 독일 역사학자 프리드리히 마이네케는 마키아벨리가 국가이성의 본질을 최초로 발견한 인물이라고 호평했다. 이탈리아 공산당 창립멤버인 안토니오 그람시는 수감생활 도중 ‘군주론’에서 사회주의 정당이 가져야 할 모습을 발견하고 ‘마키아벨리에 관한 주석’을 남겼다. “성경 대신 ‘군주론’을 품고 다닌다”는 비판을 받았던 프랑스의 리슐리외 추기경은 마키아벨리가 강조한 국가이성을 왕국의 통치이념으로 확립하려 했다.



‘군주론’은 오늘날에 와서 국제정치와 기업경영에 활용되는 경향이 짙어졌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외교정책에서 ‘군주론’의 현실주의 정치노선을 철저히 추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자신의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 개념을 ‘군주론’ 가운데 사랑과 두려움의 프레임으로 설명한다. ‘군주론’은 선거에서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국내 정치 영역보다, 기업이나 조직의 경영에서 유행처럼 응용되곤 한다. 경제·경영 영역은 군주적 냉혹함을 미덕으로 삼아 펼치는 글로벌 무한 경쟁시대이기 때문인 듯하다. 그뿐만 아니라 긍정적·부정적 평가가 엇갈리는 논란 속에서 인간관계 처세서로도 부쩍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신동아 201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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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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