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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장 ⑫

“자연 닮고자 했던 사랑방 주인의 마음으로 우리 가구 만듭니다”

전통 비례미와 사대부 정신 담는 小木匠 박명배

  • 한경심│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자연 닮고자 했던 사랑방 주인의 마음으로 우리 가구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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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닮고자 했던 사랑방 주인의 마음으로 우리 가구 만듭니다”

아래는 반닫이, 위는 책장인 느티나무 반닫이 장. 튼튼한 짜임새와 거멍쇠 장석으로 견고한 느낌을 준다.

“아마 요즘 공예과 교수나 학생들은 다들 제 손으로 작업할 거예요. 여성도 목공을 하는 시대니까요. 하지만 예전에는 교수나 전공자들은 디자인만 하고 작업은 공방에서 해주는 경우가 많았어요. 최 선생님 자신도 매년 작품을 만드셨고, 대학생들의 졸업 작품도 많이 들어와서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지요.”

혼자 하다 잘 안 되면 들고 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아예 처음부터 디자인만 던져주고 모두 공방에 맡기는 경우도 있었다. 이 공방은 서라벌예대 학생 작품만 받은 것이 아니라 홍익대, 서울대 미대 학생들의 작품도 받았는데, 학교마다 작품 경향이 조금씩 달랐다고 한다.

“순수 목공작품이 있는가 하면 유리나 창살, 염색한 천 등 다양한 재질을 덧붙여 조형 작품을 만드는 학생도 있었지요. 그래서 나무뿐 아니라 쇠도 다루고 조각에다 칠도 해야 했어요.”

‘손으로 만드는 것이면 뭐든 좋았다’는 어린 박명배는 공방의 막내였다. 공방에는 최 교수를 비롯해 훌륭한 사형(師兄)이 여럿 있었다. 서라벌예대 졸업생도 있었고, 솜씨 좋은 목수, 아이디어가 풍부한 사람까지. 막내인 박명배는 심부름을 도맡았고, 사형들이 맡은 작품을 거들면서 대학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어린 나이에 그렇게 많은 도안을 보고, 그리고, 또 도안대로 만들다보면 실력이 금세 늘지요. 그런데 가르치고 배우는 데는 공식이 없어요. 목공 기법도 목수라면 다 같은 기법을 쓰지 특별한 기술이 따로 있습니까. 다만 사형과 스승이 작품을 기획하고 완성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 보면서 그 가운데서 내 것을 찾아가는 거지요. 그러니 어느 선생에게 무엇을 배웠다는 ‘계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품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 어떤 철학을 세워나갈 것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에 따라 작품을 만드는 자세가 달라지니까요.”



이렇게 목공의 기본을 충실히 익힐 수 있었던 아틀리에는 1971년 최 교수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주로 서양 가구, 조형 작품 위주로 작업해왔던 그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과감하게 방향을 바꿔 전통 공예를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서양식 가구나 조형 작품을 다루는 현대 공예는 작가 기질이 강한 대학 출신이 많이 하니 제가 그 가운데서 빛을 발하기는 힘들죠. 그래서 전통 공예로 방향을 바꾸게 된 겁니다.”

그는 몇몇 전통 목수 밑에서 일하다 마침내 허기행 선생 아래에 들어가 전통 목공 기술을 익혔다. 우리 목공품은 못을 쓰지 않고 목재에 끌로 홈을 파고 서로 짜 맞추어 잇는다. 허 선생은 일제강점기 끌구멍 파기 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솜씨 좋은 목수였는데, 그는 70~80가지에 달하는 전통 짜맞춤(결구·結構) 방식을 허 선생에게서 배웠다.

사대부 정신 일깨운 최순우 선생

“자연 닮고자 했던 사랑방 주인의 마음으로 우리 가구 만듭니다”

전통 대패의 날을 가늠하는 박 명장. 그는 도구도 직접 만들고 매우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그래야 힘이 덜 들기 때문이다.

“목공의 기본은 알고 시작한 것이어서 별로 힘들지 않더군요. 물론 기술이라는 것이 배워서 금방 자기 것이 되는 게 아니라 결국 손으로 익혀야 하는 것이지만 몇 년 정도 하니 혼자 할 수 있겠더라고요.”

기술을 다 익힌 그는 이제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작은 가구점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던 그는 곧 자신의 공방을 냈다. 1981년, 그의 나이 서른 무렵 드디어 독립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안 돼 그의 인생에 큰 전기를 마련해준 인물을 만나게 된다. 바로 당시 국립 중앙박물관장이던 고(故) 최순우 선생이다.

그가 자신의 작품에서 사대부 정신을 추구하게 된 것도 최순우 선생을 만나고서다. 만약 최 선생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어쩌면 기술은 뛰어나지만 평범한 장인에 머물렀을는지도 모른다. 아니, 타고난 탐구심과 진취성으로 결국 비범한 명장이 되었겠지만, 전통 목공예의 철학을 정립하는 데 더 긴 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최순우 선생은 우리나라 미술사학의 기초를 다진 인물로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선생 등 현재 우리 미술사학계의 주역들을 키워낸 큰 스승이기도 하다. 이런 큰 인물을 무명의 목수가 어떻게 만났을까.

“인생에서 누구를 만나느냐 하는 것이 참 중요한데, 최 선생님을 만난 것을 보면 제가 정말 인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와 최 선생의 만남을 주선한 이는 그의 공방에서 단골로 가구를 맞추던 사람이었다. 중앙박물관 학예사인 그이는 젊은 목수 박명배의 솜씨가 마음에 들었던지 박물관장에게 ‘젊은 친구가 일을 열심히 잘하니, 귀엽게 봐주십사’ 하는 뜻에서 자리를 마련했다.

“물론 저는 최순우 선생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당시엔 몰랐죠. 그래도 중앙박물관장님을 뵈러 가는데 그냥 갈 수 없어 연상(硯箱·벼루 담는 상자)을 만들어 갖고 갔어요. 그런데 최 선생님은 마음에 안 드는지 한참 살펴보시다 여기저기 수정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자연 닮고자 했던 사랑방 주인의 마음으로 우리 가구 만듭니다”

책장과 느티나무 좌등. 상단과 하단에 머름간을 둔 책장은 비례미와 대칭미가 뛰어나다. 좌등은 울거미(테)를 만들고 10여 년에 걸쳐 지켜보며 조금씩 작업해서 완성한 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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