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미국 대통령선거는 공화당 미트 롬니 후보가 선거 막판 지지율을 끌어올리며 대역전극을 펼칠 뻔했지만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민주당)의 재선(再選) 성공으로 마무리됐다. 지지율은 51%대 48%로 초접전 양상이었지만 당선에 필요한 선거인단(270명) 수로는 332대 206의 ‘싱거운’ 게임이었다. 주별로 득표수가 한 표라도 많으면 해당지역 선거인단을 싹쓸이하는 승자독식 선거방식 때문이다.
두 번째 임기 4년을 보장받은 역대 미국 대통령은 대체로 역사에 오래 기록될 만한 자신만의 유산(legacy)을 남기기 위해 전력을 다해왔다. 오바마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다. 이미 아시아로의 복귀(pivot to Asia)를 선언한 오바마가 4년간 주목할 지역은 한반도가 포함된 동북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이다.
산적한 한미동맹 현안
이제 관심은 오바마 2기 행정부의 대(對)한반도 정책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여부다. 대다수 한반도 전문가는 2009년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한미관계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보고 있다. 또 중국의 급부상 속에 한국과의 안정적 동맹관계 유지가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하는 만큼 특별한 상황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현재의 정책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오바마 스스로 규정한 ‘린치핀(linchpin·수레나 자동차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으로 핵심이라는 뜻)’ 한미동맹, ‘코너스톤(cornerstone·주춧돌)’ 미일동맹의 확대 발전이 아시아 정책의 양대 원칙이 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2013년 새롭게 출발하는 한미 행정부에는 처리해야 할 양자 이슈가 산적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현안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협상으로 보인다. 2010년 이후 양국 대표들이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며 2년 넘게 지루한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진전은 더디다. 1974년 체결된 한미원자력협정에 따르면 양국은 평화적 목적으로 원자력 분야에서 협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한국은 미국 동의 없이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거나 제3국에 이전할 수 없다.
한국으로서는 대표적 ‘독소조항’인 농축·재처리 불가가 평화적 핵 이용의 권리를 제약하고 있으며 일본에는 허용하면서 한국은 차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핵확산 방지가 지상과제인 미국 역시 쉽게 양보할 수 없다는 태세다. 특히 미국 협상대표인 로버트 아인혼 국무부 군축·비확산담당 특보는 철두철미한 반(反)확산론자다. 설혹 자신을 설득한다 해도 ‘농축·재처리’라는 문구가 담긴 협정안이 미국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제로’라는 말도 자주 했다. 이명박(MB) 정부의 외교안보 핵심 당국자는 차기 정부가 어떤 성향을 띨지 모르지만 MB 정부와 결론을 내리는 것이 미국에도 유리할 것이라는 논리로 설득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하나의 난관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다. 심각한 재정적자 해결을 위해 향후 10년간 5000억 달러 규모의 국방비 감축을 선언한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한국의 방위비 분담 증액이 절실한 상황이다. 2014~2018년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한국의 분담비율을 현재 42%에서 50%까지 올리라고 요구할 것이라는 예상이 벌써부터 나온다. 2008년 한국의 분담금은 7415억원이었다.
2015년 12월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에 대한 협의도 관심사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은 전작권 전환 시기를 2012년 4월에서 한 차례 연기했다. 현재 한미 군사당국은 한미연합사(CFC)의 해체에 따른 전력공백 최소화를 위해 ‘미니연합사’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기구의 창설을 적극 검토 중이다.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핵심변수는 역시 북한이다. 2011년 말 김정일의 급사(急死)로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된 김정은의 정책노선과는 별도로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물론 한국 신행정부의 대북 접근법도 고려해야 하는 고차원 방정식이 성립될 가능성이 높다. 역대 한미 정부의 정책 협조에 가장 큰 갈등요인을 제공한 것도 바로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차와 북한에 대한 관여 정책의 실행 여부였다.
아직은 추측의 영역이지만 2기 오바마 행정부에서 좀 더 적극적인 대북정책이 나올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이 많다. 2009년 정권 출범 당시 북한 지도자와 직접 만나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했던 오바마였지만 북한이 2009년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2차 핵실험,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을 감행하자 ‘악행에 대한 보상은 없다’는 원칙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1994년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제네바 합의에 서명했지만 북한의 비밀 우라늄 농축계획에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은 쓰라린 경험이 있는 민주당 행정부는 “같은 말(same horse)을 두 번 사지 않겠다”며 북한을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결국 오바마 4년 임기 내내 좋게 말해 ‘전략적 인내’를 고수했고 한국과의 철저한 공조를 유지했지만 사실상 북한 핵문제 해결 및 관계 개선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세계평화에 기여했다는 ‘유산’을 남기려는 욕심이 있다면 북한에 관심을 기울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숱한 대통령이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단기적으로도 성과를 내기 어려운 중동평화협상보다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주도하는 편이 더 ‘쉬운 길’이라는 판단을 내린다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재임 중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처럼 보였던 조지 W 부시 전임 대통령도 집권 2기 북한과 적극적인 협상에 나섰다.
오바마 2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한반도 정책을 펼칠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라인’에 누가 배치될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4년 내내 미국의 얼굴로 대외정책을 총괄했던 외교사령탑 힐러리 클린턴의 퇴임이 기정사실화한 만큼 후임 국무장관이 누가 될지가 초미(焦眉)의 관심사다. 그의 퇴장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이른바 ‘힐러리 사단’의 동반사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 외교가에서는 국무부에서 한반도 정책을 실무적으로 총괄해온 커트 캠벨 동아태담당 차관보와 아인혼 특보의 교체를 확실시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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