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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 캡슐에 넣으면 신약? 국민 건강 위험하다!”

천연물신약 백지화 투쟁 안재규 대한한의사 비대위원장

  • 최영철│ftdog@donga.com

“한약, 캡슐에 넣으면 신약? 국민 건강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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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풀풀 나는 고시 변경

▼ ‘식약청에 속았다’는 표현을 썼는데.

“천연물신약에 대한 정의가 처음 법적으로(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법) 규정된 2000년 즈음에는 아스피린이나 탁솔 같은 천연물 성분 추출 신약만 천연물신약으로 인정됐는데요. 이게 고시가 자꾸 개정되면서 2008년 이후에는 한약재 통추출물과 한약 복합 처방 추출물까지 천연물신약의 정의에 포함됩니다. 그러다 2012년 현재에는 한의사들이 처방하고 있는 십전대보탕까지 추출하는 물질(용매)을 슬쩍 바꾸면 천연물신약으로 개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정작 한방 처방과 한방 재료를 쓰는 데도 한의사들은 그 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돼 있었던 겁니다. 한약의 과학화, 세계화를 위해 개발한다는 정부의 말에 깜빡 속은 것이지요.”

정부는 2001년 천연물신약 연구기반 구축 및 개발을 독려하기 위해 ‘천연물신약연구개발촉진계획’을 수립했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는 1, 2차 계획을, 2008년부터는 2, 3차 계획을, 2012년부터는 3차 계획을 수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천연물신약에 대한 정의가 개정되면서 식약청 고시에 의해 천연물 성분 추출약에 한약재 통추출물, 한약 복합 처방 추출물이 하나씩 추가됐고 2012년에 이르러서는 여기에 한약 처방 용매변경 추출물까지 포함됐다.

2008년부터는 천연물신약 허가 기준에서 전통 한의서와 한방의료기관 임상경험을 근거로 독성검사와 임상시험 일부가 면제된다. 국내 각 제약사는 이때부터 천연물신약 개발을 들어가 2011년까지 6개 경구용 천연물신약이 무더기로 허가받았으며 현재 60~70여 개 제품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 식약청이 법상 정의를 계속 바꾼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천연물신약 개발 계획은 2000년대 초반 국가 차세대 성장동력 개발 차원에서 시작된 겁니다. 국가 주도형 사업이었죠.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법이 그때 제정됐습니다. 앞에도 얘기했다시피 애초에는 아스피린이나 탁솔같이 특정 성분을 추출해 신약을 만드는 것이었죠. 그런데 초기에 1600억 원 이상의 막대한 국가 예산이 투입되고도 아무런 성과가 없자 단일 성분, 단일 본초를 넘어 기성 한약 처방의 추출물까지 신약으로 규정해버린 거죠. 한국의 제약 기술 수준으로는 단일 성분 신약을 만드는 게 상당히 어렵거든요. 지난 10여 년 동안 총 9000억 원의 연구비가 투입됩니다. 결국 성과가 안 나오니까 고시를 조금씩 변경해주면서 천연물신약의 범주를 넓게 해준 겁니다. 연구와 성과를 내기 쉽게요. 그게 우리의 판단입니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부

“한약, 캡슐에 넣으면 신약? 국민 건강 위험하다!”

대한한의사협회 내 허준 동상 옆에 선 안재규 위원장.

▼ 식약청은 당초 천연물신약이 신판 한약제제라는 걸 몰랐을까요?

“당연히 알았죠. 이번 식약청 국감에서 모 의원이 식약청에 신약 리스트를 제출하라고 했는데 천연물신약은 모두 빠져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식약청도 현재의 천연물신약이 자료제출의약품, 즉 일반적인 신약 개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이를 숨기려 한 거죠. 식약청은 이에 대해 국내에서 새로 정의한 ‘신약’ 개념이라고 변명을 하는 상황입니다.”

▼ 식약청이 2008년부터 고시를 통해 천연물신약 허가기준에서 독성검사와 일부 임상시험을 면제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왜 그런 건지는 저희도 모르겠습니다만, 식약청은 ‘기성 한의서 수재(收載)와 한의사 사용경험’을 근거로 일부 독성검사와 임상시험을 면제했다고 합니다. 결국 천연물신약이 한약제제란 걸 인정한 셈이지요. 얼마 전 식약청이 천연물신약도 ‘독성검사와 임상시험을 한다’고 주장하며 모티리톤정을 예로 들어 저희 주장에 대해 반박한 적이 있는데요. 실제로는 8가지 독성 검사 중에서 단 2가지의 독성검사만을 거치고 3가지 임상시험 중에서 한 가지 임상시험만을 시행한 겁니다. 이렇게 형식적 수준의 독성검사와 임상시험을 거치는 이유조차 역시나 한의사들이 오랜 기간 써왔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게 어떻게 신약이 됩니까.”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는 한의사 비대위의 이런 주장에 대해 “천연물신약은 말 그대로 자연의 식물, 광물 등 천연물에서 약효 성분을 취해 만든 약물로, 소위 음양오행 같은 한방 이론에 따라 지었다는 한약과는 완전히 다른 약물”이라며 “한의사들의 주장대로라면 지구상의 모든 천연성분 추출 신약은 모두 한의사만이 쓸 수 있는 한약이 된다”고 반박했다.

의협은 한의사 비대위가 천연물신약 관련 집회를 이어나가자 11월 7일 한방대책특별위원회 명의의 성명을 통해 “한의사들의 주장 뒤에는 의사들만 사용할 수 있는 현대 의약품을 쓰고자 하는 음모가 숨어 있다. 사정당국은 불법으로 천연물신약을 공급하고 사용하는 한의사를 강력하게 처벌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안 위원장은 “의협이 천연물신약이 개발된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결코 현대 의약품 운운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양의사들은 식약청이 기존 한의서와 한의사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천연물신약의 독성검사와 임상시험을 일부 면제한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의사가 모든 약을 다 쓰겠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아스피린 탁솔을 쓰겠다고 한 적도 없죠. 천연물신약은 한약을 현대적으로 개발한 의약품인 신(新)한약제제라고 주장하는 것뿐입니다.”

한편 한의협과 의협이 지난 6월 보건복지부에 의뢰한 천연물신약 처방권에 대한 유권해석도 5개월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더욱이 일반 한의사들은 천연물신약에 대한 처방권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천연물신약 정책 자체의 폐기를 요구하고 있지만 식약청과 보건복지부는 한의사 비대위의 잇따른 집회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며 각 제약사들은 의사와 한의사의 눈치를 보며 “허가에는 독성검사 조항이 없다 해도 각 회사 자체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다. 임상시험도 충분히 할 만큼 했다”라는 판에 박힌 말만 되뇌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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