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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논단

국민행복기금 ‘국민불행기금’ 될라

모럴 해저드, 형평성 훼손, 부실화 우려

  • 차은영│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echah@ewha.ac.kr

국민행복기금 ‘국민불행기금’ 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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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도덕적 해이 문제부터 따져보자. 모든 경제활동에는 비용이 발생한다. 그 비용은 누군가는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얻은 이익에 대해 나 대신 다른 사람이 지불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발생한 이익에 상응하는 비용을 내가 지불하는 경우는 있지만, 분명한 점은 누구든 발생한 경제적 활동에 대해 그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한 개인에게는 공짜가 있을 수 있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뜻이다. 빚이란 기본적으로 채무자와 채권자의 관계다. 빚은 진 사람이 갚는 것이 경제의 대원칙이다. 빚은 내가 지고 국가가 갚아주는 유토피아 사회가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이 빚을 내는 게 합리적인 행동이 될 것이다.

국민행복기금이 대통령 공약으로 나온 지 6개월여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연체율이 높아지고 상환 포기자가 속출하는 현실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대부업체들은 국민행복기금을 빌미로 오히려 추가 대출을 부추기고 있다. 지금 고금리로 대출받아도 추후에 저금리로 전환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미 여러 금융기관에 채무를 갖고 있는 다중 채무자들에게는 추가대출 서류를 내밀면서 국민행복기금만 출범하면 마치 빚이 모두 탕감될 것처럼 감언이설로 사인을 종용하기도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처지의 장기 연체자와 다중 채무자들에게 대출 조건의 자세한 내용은 들리지 않는다. 정부가 유례없는 규모로 빚을 탕감해준다는데 누가 스스로 빚을 줄이려 할 것인가. 어떻게든 버티면서 탕감받으려는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런 도덕적 해이를 차단하기 위해 “지원은 1회에 한하고 은닉재산이 발견될 경우 채무조정을 무효로 하며, 해당 재산을 압류해 빚을 갚는 데 사용하겠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지는 의문이다. 2002년 개인 워크아웃 제도가 처음 시행됐을 때를 떠올려보면 답이 나온다. 카드 연체율이 겉잡을 수 없이 급등해 ‘카드대란’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만이 문제가 아니다. 빚은 채무자의 상환능력 범위 내에서 빌리고 빌려줘야 하는데, 소득수준을 상회하는 대출이 이뤄졌다면 금융기관과 채무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대부업체는 통상 6개월 이상 된 연체 채권은 아예 회수를 포기하거나 추심업체로 넘기는데, 국민행복기금으로 인해 가만히 있어도 이런 악성 연체 채권을 정부가 해결해 주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가 부실채권을 대신 갚아주는데 과연 대부업체들이 대출심사를 깐깐하게 할 이유가 있을까.



기존의 서민금융 프로그램이 실질적으로 효과가 없어서 더 강력한 행복기금이 출범했지만 역설적으로 왜 그 프로그램들이 실패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1회에 한하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차단된다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묻지마 빚 대신 갚아주기’ 공약이 난무하는 한 도덕적 해이는 근절되지 않는다. 빚은 안 갚아도 되고 대출은 막 해줘도 손해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한 가계부채 문제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통합 순기능? 분열 역기능!

둘째는 형평성의 문제다.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빈곤층이나 대출조차 신청하기 어려운 극빈층 등 약 412만 저소득층 가구에는 국민행복기금이 빛 좋은 개살구가 될 공산이 크다. 현대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금융대출을 받은 가구는 156만 가구인데, 이 중 최근 1년간 연체 사실이 없는 106만 가구는 연체가 없어서 국민행복기금의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대출받은 적 없는 255만 가구 역시 사실 빚이 필요하지만 소득이나 신용등급이 낮고 재무 상태가 부실해 자격미달로 대출을 거절당한 극빈층에 해당한다.

그런데 국민행복기금은 결과적으로 이들보다 오히려 사정이 나은 계층에게 혜택을 주는 모순을 초래하는 셈이다. 매월 평균 4만7000명의 채무 불이행자가 새로 발생하는 현실에서 특정 시기 이전의 연체자로 한정 지을 경우 역차별 논쟁을 막을 수 없다.

신용회복위원회 개인 워크아웃 프로그램의 경우 원금 평균 감면율은 30%를 넘기 어렵다. 그런데 국민행복기금이 설립되고 조건 없이 원금 50%를 감면해준다는 소식에 그동안 힘들게 밤낮으로 뛰면서 열심히 빚을 갚으려 노력하던 사람들은 허탈감에 빠질 수밖에 없고, 자기 빚을 갚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억울함에 분통이 터지게 된다. 그뿐인가. 6개월 미만의 단기 연체자들과 1억 원 이상 채무자들도 어떤 형태로든 빚 탕감을 요구할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정부는 멀지 않은 장래에 ‘6개월’과 ‘1억 원’이라는 기준의 근거가 무엇인지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지도 모른다. 부동산시장이 당장 회복되지 않는다면 이른바 ‘하우스푸어’들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생계형 대출보다 주택 관련 대출은 규모가 훨씬 크다. 집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 우선순위가 밀려 당장은 잠자코 있지만, 이것도 정부가 해결해달라고 우기지 말란 법이 없다. 이러다간 사회적 통합의 순기능보다 분열의 역기능이 커질 수 있다.

다음은 재원의 문제다. 기금의 재원 가운데 바로 투입할 수 있는 현금은 5000억 원 정도. 채무조정 신청이 급증하고 연체가 늘면 기금이 부실화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재정 투입은 없다”고 하지만 최악의 경우 세금으로 빚을 탕감해주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 국민행복기금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신용회복기금, 희망모아 등의 채무조정 프로그램 연체채권 회수율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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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영│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echah@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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