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호

문선명 死後 요동치는 통일교

文 총재 4남·7남도 실각 수행비서가 실력자 부상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3-04-19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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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직·돈 장악했던 4남, 통일재단 이사장서 해임
    • 통일교 이끌던 7남, 미국총회장에서도 쫓겨나
    • ‘모든 제도 위에 있는 자’가 된 文 총재 수행비서
    • 통일교 측 “한학자 총재가 친정(親政)하고 있다”
    문선명 死後 요동치는 통일교

    2012년 9월 6일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조문객들이 9월 3일 타계한 문선명 총재 초상화 앞에서 조문하고 있다.

    지난해 9월 3일 ‘논란의 지도자’가 타계했다. 1920년 평북 정주군에서 태어난 문선명 총재는 2009년 출간한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의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이름 석 자만 말해도 세상이 와글와글 시끄러워지는 문제 인물입니다. 돈도 명예도 탐하지 않고 오직 평화만을 얘기하며 살아왔을 뿐인데 세상은 내 이름자 앞에 수많은 별명을 덧붙이고 거부하고 돌을 던졌습니다.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알아보지 않고 그저 반대부터 했습니다.”

    교리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는데도 통일교는 20세기 한국에서 탄생한 종교 중 가장 성공했다. 통일교는 종교이면서 기업이다. ‘하나의 국가’라는 평가도 있다.

    교육, 언론, 학술, 스포츠, 예술 등에서 다채로운 활동을 벌이면서 이단(異端) 시비를 줄이고 영향력을 키웠다. 세계일보, 용평리조트, 성남일화천마축구단, 선원건설, 세일여행사 등이 속한 통일그룹을 운영한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타임스, 일본 일간지 세카이닛포, 유니버설발레단, 리틀엔젤스예술단이 통일교 계열이다. 선문대, 청심국제중고교, 선화예술중고교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통일그룹 자산은 1조7361억 원(2009년 기준) 규모다.

    ‘포스트 문선명’ 시대를 맞은 통일교가 요동치고 있다. 후계 구도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문 총재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통일교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또다시 달라질 것이다.



    조직·돈 장악했던 4남 낙마

    3월 24일 문국진(43)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유지재단(이하 통일재단) 이사장 겸 통일그룹 회장이 해임됐다. 통일재단은 통일그룹 13개 계열사를 총괄하고, 교회 자산을 관리하는 곳. 7남 문형진(34) 통일교 세계회장도 실권을 잃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통일교는 문 총재 사후 부인 한학자(70) 총재를 중심으로 4남 국진 씨가 재단과 그룹, 7남 형진 씨가 종교 분야를 책임지는 것으로 후계 구도를 정리했다. 4남, 7남은 이른바 ‘왕자의 난’의 승자로 불렸다. 통일교의 공식 후계자는 7남이지만, 자산·조직을 관리하는 실력자는 4남이었다.

    장남 격인 3남 현진(44·GPF 의장) 씨는 NGO를 이끌면서 ‘종교의 틀을 벗어난 평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통일교의 현 교권과 결별하고 독자노선을 걷고 있는 것. 장남, 차남은 1984년, 2008년 각각 별세했다. 3남을 따르는 통일교 신도수도 적지 않다. 특히 교육 수준이 높은 엘리트들이 3남을 지지하는 예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3남은 통일교가 1977년 세운 국제조직 UCI의 자산을 토대로 활동한다. 통일그룹처럼 UCI도 기업군을 거느린다. UCI는 미국의 대형 수산물 유통업체인 트루월드 수산, 항공사인 워싱턴타임스항공(WTA), 일성건설 등을 소유하고 있다. UCI는 지난해 10월 서울 반포동 센트럴시티와 JW메리어트 호텔의 운영권을 1조250억 원에 신세계에 매각했다.

    통일교에서는 2010년부터 ‘왕자의 난’이라고 불린 사건이 벌어졌다. 그 중심에는 3남 문현진 의장, 4남 문국진 전 통일재단 이사장, 7남 문형진(33) 세계회장이 서 있었다. 4남, 7남은 종교로서의 통일교(Unification Church)를 강조한 반면 3남은 종교의 틀을 벗어난 통일운동(Unification Movement)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설파했다. 2011년 4월 4남과 3남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각각 이렇게 말했다.

    “형은 창시자의 뜻을 거스른 사탄이자 타락한 천사장이다. 후계자 문제는 마무리됐다. 누구도 재론할 수 없다. 후계 다툼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 문선명 총재께서 통일교의 상속자, 대신자로 문형진 세계회장을 결정해주셨다. 전 세계 통일교인은 이 결정과 관련해 문 세계회장을 환영하며, 존경하고 있다. 그 부분은 총재님 양위의 절대적 고유 권한으로 후계 문제는 종결됐다.”(4남 문국진 전 이사장)

    “동생이 어떻게 행동하든 형으로서 품위를 지키겠다. 지위나 권력, 돈의 힘으로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자산에 대한 소유권이 분명한 회사와 달리 종교와 같은 신앙의 세계에서 신도를 소유할 수 있다고 보나? 사람을 소유할 수 있다고 보나? 아니다. 물질적 자산을 소유하는 회사와는 다르다. 누가 후계자 이슈를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이 중요한 사안이라고 보지 않는다.”(3남 문현진 의장)

    2010년 6월 5일 문 총재는 부인의 도움을 받아 7남 문형진 회장을 후계자로 지명하는 선포문을 작성했다. 문 총재가 작성한 문건의 내용은 이렇다.

    “만왕의 왕은 한 분 하나님, 참부모님도 한 분 부모, 만 세대의 백성도 한 혈통의 국민이요, 한 천국의 자녀이다. 천주평화통일본부도 절대 유일의 본부다. 그 대신자, 상속자는 문형진이다. 그 외 사람은 이단자며 폭파자다. 이상 내용은 참부모님의 선포문이다.”

    문선명 死後 요동치는 통일교

    2월 17일 경기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열린 ‘2013 천지인참부모 천주 축복식’에서 주례를 맡은 한학자 통일교 총재가 성수 의식을 하고 있다.



    소송 패배 책임 물어 해임

    4남 문국진 전 이사장 측은 7남 문형진 세계회장을 ‘상속자’ ‘대신자’로 지목한 이 선포문을 통일그룹 홈페이지에 올렸다. 4남은 3남이 확보한 재산을 되찾겠다면서 한국과 미국에서 소송을 벌였다. 가장 유명한 게 ‘여의도 땅’을 둘러싼 송사(訟事)다. 통일교 재단은 이 소송 1, 2심에서 패소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신도가 문 전 이사장 퇴진 운동에 나섰다. 김동운 전 통일중공업 대표이사가 대표 격이었다.

    “신도들의 신앙이 흔들리고 있다. 젊은 신도들이 새로 생겨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법정 소송으로 교회 헌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문제의 본질이 문국진 이사장의 파행적 재단 운영에 있다고 본다. 헌금을 낭비하면서 국내외에서 무모한 소송을 벌이고 있지 않나. 여의도 땅 소송에서 패배하면 피해가 막대하다. 공사 지연에 대한 배상액이 천문학적 액수가 될 수 있다. 신도가 재단이사장을 향해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오죽했으면 들고 일어났겠는가.”(김동운 전 대표)

    통일재단은 “문국진 이사장이 여의도 땅 소송 패배 책임으로 해임됐다”고 밝혔다.

    통일그룹 회장 겸 통일재단 이사장에는 박노희(72) 유니버설문화재단 부이사장이 선임됐다. 박 신임 회장은 문 총재 부부의 측근인 박보희(83)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의 동생이다. 미국총회장을 지낸 양창식(59) 씨가 한국회장으로 와 문형진 세계회장이 하던 일을 맡았다. 세계 각국의 통일교로 나가는 공문은 문형진 세계회장이 아닌 양 한국회장의 이름으로 발송된다.

    양 회장 취임 이후 교회의 비전, 형식 등이 문형진 세계회장 취임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양 회장은 2010년 초 문 세계회장이 ‘통일교’로 바꿨던 공식 명칭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되돌렸다. 한학자 총재가 “가정연합을 창시한 1997년 정신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회장은 미국에서 초(超)종교활동을 하면서 종교 간 화합을 이끄는 데 앞장섰다고 한다. 양 회장 취임 이후 통일교는 국가, 사회, 타 종교와의 소통을 강화해 생활종교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노선은 3남 현진 씨가 그간 주장해온 것과 유사하다.

    문형진 세계회장은 지난해 9월 미국으로 돌아가 미국총회장을 맡았으나, 2월 14일 미국 통일교 이사회의 표결에 의해 미국총회장에서 해임됐다. 세계회장이라는 명목상의 직함만 갖고 있을 뿐 교권 실무와 관련한 권한을 잃은 것. 대신자, 상속자로 지목돼 통일교를 이끌다가 실각(失脚)한 것이다. 그는 2월 24일 미국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참어머니(한 총재)께서는 저희들에게 미국교회를 책임지는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해임 사유에 대한 어떤 설명과 안내도 없이 해임 지시를 받고 조금 놀랐습니다. 이번 사임 요구는 참아버님(문 총재) 성화 이후 세 번째였습니다. 사실 이러한 결정에 상처 입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항상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요컨대 통일교의 2세 후계 구도(종교-문형진, 기업-문국진)가 ‘없던 일’이 돼버렸거나 보류된 것이다. 그렇다고 박 신임 이사장, 양 한국회장이 실세인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은 실무형 인사일 뿐 ‘포스트 문선명’ 시대의 실력자는 아니라는 게 통일교 안팎의 대체적 시각이다.

    실세가 된 ‘문고리 권력’

    문 총재의 두 아들이 핵심 포스트에서 쫓겨난 현재의 통일교는 “한 총재의 친정(親政) 체제”(안호열 통일그룹 대외협력실장)다. 한 총재 외에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는 김효남 씨가 있다. 통일교에선 문선명 총재의 어머니 김경계 씨를 충모(忠母), 한 총재의 어머니 홍순애 씨를 대모(大母)라고 부른다. 김 씨는 홍씨의 영(靈)이 재림했다는 인물이다. 통일교는 세계와 영계가 통한다고 믿는다. 김 씨는 ‘훈모’라고 불린다. 한 총재가 김 씨를 지극하게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통일교 인사는 “문 총재님이 성화하신 후 훈모님의 영향력이 커졌다”고 말했다. 김 씨는 경기 청평군 통일교 본부에서 통일교의 헌금원 중 하나인 조상해원식(일종의 제사)을 주도한다.

    한 총재가 4남 문국진 전 이사장에게 사임을 처음 요구한 것은 문 총재 타계 직후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이사장은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버텼다. 지난해 10월 통일재단 공식 페이스북에 영어로 게재된 글에는 당시 사정이 이렇게 적혀 있다.

    “국진님(문 전 이사장)이 참어머님(한 총재)에게 이사회 투표를 통해 물러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새로운 지도자들에게 재단을 넘기겠다는 참어머님의 명령에 따르겠다고 했다. 사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사회가 결정하면 저항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진님은 미국으로 돌아가게끔 일주일 내에 이러한 절차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국진님은 8년 동안의 지원과 협조에 감사하다면서 교회의 산하 조직이 발전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문 전 이사장의 요구로 지난해 10월 23일 이사회가 열렸으나 예상과 달리 문 전 이사장은 해임되지 않았다. 10월 27일 세계일보 회장에 취임하는 등 오히려 활동 반경을 넓혔다. 통일그룹의 경영성과에 대한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문 전 이사장은 이사회 개최 직전 퇴진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한 총재도 당장은 밀어붙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모자 간의 이 같은 갈등 소식은 신도들에게 전해졌으며 4남에 대한 퇴진 압박은 계속됐다. 문 전 이사장은 올해 2월 통일교의 자금줄인 일본교회와 관련한 권한, 지위를 박탈당했다. ‘문국진 인맥’으로 불리는 이들이 인사조치되기도 했다. 통일교 관계자는 “문국진 전 이사장, 문형진 세계회장과 관련한 안 좋은 얘기가 한 총재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겠느냐”면서 “문 총재의 연명치료 중단 여부와 관련한 의혹이 나돌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7남 문형진 세계회장은 지난해 9월 미국으로 돌아가 미국교회만 책임지게 됐다가 앞서 언급했듯 미국총회장직에서 해임됐다. 문 세계회장이 맡기에 앞서 미국총회장이었던 문 총재의 딸 문인진 씨는 신도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 해임됐다. 이런저런 이유로 문 총재 자녀들이 핵심 포스트에서 모두 밀려난 것이다.

    문선명 死後 요동치는 통일교
    이 과정에서 문 총재의 보좌관이던 김효율(가정연합선교회재단 부이사장) 씨가 실세로 떠올랐다. 통일교 인사들은 그를 ‘피터 킴’이라는 미국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김 씨는 40년 동안 문 총재를 지근거리에서 ‘모셨다’. 문 총재 가족의 집사 임무를 맡은 적도 있다. 수행비서를 하면서 문 총재의 ‘귀’ 구실을 했다. 그렇다보니 통일교 내부의 권력구조 및 핵심 인사의 특징을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김 씨는 올해 초 ‘모든 제도 위에 있는 이’(한학자 총재의 표현)로 떠올랐다. 김 씨와 동향인 호남 인맥의 영향력도 커졌다. 일각에선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 황선조 선문대 총장, 송용철 일본총회장, 김석병 통일교 역사편찬위원장, 안호열 통일그룹 대외협력실장 등을 ‘김효율 그룹’으로 부른다. 한 통일교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비유하건대 왕자의 난이 아니라 환관의 난이었던 것 같다. 자녀들이 모두 떠나면서 수행비서이던 김효율 씨가 조직, 자금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력자가 됐다. ‘모든 제도 위에 있는 자’로 호칭됐다. 돌이켜 보니 언론이 왕자의 난이라고 이름붙인 사건과 각종 소송의 중심에는 항상 김 씨가 있었다. 김 씨는 오랫동안 문 총재의 귀와 입 구실을 했다. 옳은 비유는 아니겠지만 환관이 전횡하던 중국 후한시대가 떠오른다. 왕조에 비유하면 김 씨는 세자를 쫓아내고 막내왕자를 후계자로 세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런데 종교를 맡은 7남, 기업을 맡은 4남이 밀려났다. 자녀들이 떠난 자리를 ‘문고리 권력’이 차지한 형국이다.”

    사임 압박에 끝까지 버틴 4남

    김 씨는 후계자로 유력하던 3남이 낙마할 때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7남을 상속자, 대신자로 선포한 2010년 6월 5일 선포문이 작성되기 나흘 전 김 씨가 한 간부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e메일을 보냈다.

    “TF(문 총재)의 서명이 포함된 강력한 명령서를 전 세계에 보내려고 준비했으나 양 회장이 여수까지 갔다가 빈손으로 올라왔습니다. 시간을 좀 갖고 며칠 내로 그 명령서를 확보하겠습니다.”

    7남을 상속자, 대신자로 지목한 선포문이 나온 직후 김 씨는 남미 지역의 간부에게 또 다른 e메일을 보냈다.

    “이번에 TF께서 직접 휘호하여 보내주신 선포문은 지도자들과 식구들에게 먹혀들어가는지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 선포문에 문현진 이름 석 자를 새겨 넣지 않았다는 겁니다. 추후 필요하면 다시 한 번 이름을 박아 넣어 최후통첩을 할 수도 있겠지요.”

    ‘시사저널’에 따르면 김 씨는 2010년 2월 개최된 세계지도자회의에서 ‘현진 씨가 문 총재의 권위를 무시하고 후계 자리를 넘보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수행비서가 총재의 3남을 비난한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법률담당인 박진용 변호사는 같은 날 ‘현진 씨가 지배하는 워싱턴타임스항공이 한학자 여사를 고소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른바 ‘왕자의 난’ 프레임은 김 씨, 박 변호사의 발언을 계기로 통일교 전반으로 비화하기 시작했다.

    문 총재 타계 직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4남 문 전 이사장과 7남 문 세계회장이 김 씨에게 통일교 섭리와 관련해 유언을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자식이 말씀을 들으면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문 총재는 대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4남, 7남은 ‘O’ ‘X’식으로라도 듣고자 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녹음 기록에 따르면 김 씨는 문 총재 타계 직후 그간의 일을 설명하면서 신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통일교 측 “분란 없었다”

    “어제인지, 그제인지 잘 기억이 안 납니다만 새벽에 미스터 김 하고 부르는 겁니다. ‘아버님 좀 보러가게 해주세요.’ 그래서 부랴부랴 모시고 내려갔습니다. 동영상을 찍으면서 아버지 귀에 몇 가지 질문을 해서 답을 받아내라는 겁니다. 섭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답을 아버님께 듣고 싶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형진님, 국진님도 충분히 한국말 잘하시는데 왜 나한테 시킵니까? 사양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국진님 말씀이 ‘객관성이 필요하다. 우리 자식 중에 누가 질문하면 자식이기 때문에 그런 대답을 했다고 할 수 있지 않으냐’면서 미스터 김이 물어보라고 했어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그날은 아버님이 전혀 대답도 안 하시고 반응도 안 보이셨습니다. 무슨 질문인지는 제가 말씀은 안 드리겠습니다만, 그분들이 뭘 기대했느냐면, ‘이거는 예스, 이거는 노’ 이렇게라도 답을 듣고 싶어 하신 겁니다.”

    통일교의 한 관계자는 “4남, 7남이 묻고자 한 것은 교권(敎權)과 관련된 것일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 씨가 당시의 일을 공개하면서 결과적으로 4남, 7남의 입지에 상처를 줬다는 것이다.

    김 씨는 문 전 이사장이 해임되는 과정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4남의 통역이자 통일그룹 대외협력실장이던 티머시 엘더 씨는 3월 23일 페이스북에서 “문 이사장은 뉴욕의 호텔에서 이사회를 열자고 했으나 이사회 개최를 요청한 이사 4명이 나타나지 않아 정족수에 미달했다. 4명의 이사는 청평에서 밤 12시에 회의를 따로 열어 문 이사장을 해임했다”고 밝혔다. 4남이 해임 직전까지 김 씨를 포함한 통일재단 이사들과 힘겨루기를 한 것이다.

    통일재단 이사는 7명이었다. 당사자인 문 전 이사장을 포함해 문형진(7남), 안진선 이사는 해임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평에서 해임을 의결한 이들은 김효율, 유정옥, 석국징, 이동한 이사다. “뉴욕에서 이사회가 열렸다면 이탈표가 나와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다”고 통일교 관계자는 말했다.

    요컨대 통일교는 문 총재의 부인 한 총재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김효율 그룹’으로 불리는 이들의 힘이 강해졌다. 한 총재는 올해 1월 7일 ‘2013년 섭리기관 활동보고 및 신년하례회’ 때 “김효율은 특별하다. 모든 제도 위에 있다”고 선언했다. 또 “2세를 많이 길러봤는데, 2세는 아직도 시간을 둬야 될 것 같아요. 길러야 될 것 같아요. 우리 집의 아들딸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이제는 내가 앞장설 거예요”라고 말했다.

    안호열 통일그룹 대외협력실장은 “한 총재가 친정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문 전 이사장은 물러났지만, 문 세계회장은 한국 교회를 떠났을 뿐 세계회장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 문 전 이사장 해임엔 여의도 땅 소송 1, 2심에서 패배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김효율 선교회 부이사장이 실력자라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 한 총재 중심으로 교회가 안정돼 있다. 분란이 있는 듯 보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후계 구도가 요동치면서 통일교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통일교는 20세기 한국에서 발원한 종교 중 가장 성공했다. ‘포스트 문선명’ 시대에도 통일교가 그런 교세를 유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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