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예계 생리 몰라 신인시절 “뻣뻣하다” 오해
- “자연미인? 의술의 힘 빌린 곳 있다”
- “첫 영화로 신인여우상 휩쓸어 연기 쉽게 봤다”
- “주다혜 때문에 욕먹는 수애, 안쓰러웠다”
- 부산 사업가 남편은 배우 아내 ‘외조의 왕’
- 초콜릿, 과자 달고 살아…“먹기 위해 운동한다”
김성령은 지난해 최대 화제작 ‘추적자’에 이어 4월 초 종영한 ‘야왕’에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극중 배역은 10대에 낳은 아들을 아버지 호적에 올려 동생처럼 키우는, 재벌그룹 총수의 장녀 백도경. 여주인공 주다혜(수애 분)가 끊임없는 악행을 저지르며 미움을 사는 동안 그는 애끓는 모성애로 시청자의 공감을 끌어냈다.
늘씬하고 고운 미모도 화제다. 최근 한 온라인 리서치기관의 설문조사에서 김성령은 ‘20대보다 아름다운 40대 최고 여배우’ 1위에 올랐다. 고소영, 이영애, 전인화, 고현정, 김남주 등이 뒤를 이었다. 안방극장의 ‘대세’로 급부상한 그를 4월 10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까칠하고 차가워 보이는 백도경과 달리 그는 웃음이 많았다. 생글생글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치아가 그의 이목구비처럼 가지런했고, 목소리는 청아하면서도 경쾌했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피하지 않고 거침없는 ‘직구’로 화답했다.
‘야왕’의 최대 수혜자
▼ ‘야왕’ 끝나고 어떻게 지냈나.
“남편이 있는 부산에도 다녀오고 패션 화보도 찍고 단독 진행을 맡은 토크쇼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온스타일에서 방영되는 ‘김성령의 우먼쇼’라는 토크쇼인데 예전부터 MC 제의가 들어왔다. 처음엔 배우 이미지에 해가 될까 싶어 망설였는데, 여자로서 장점을 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어서 진행을 맡기로 했다. 덕분에 요즘 여자들이 뭘 좋아하는지, 살림과 육아로 바쁜 주부들은 어떻게 자기관리를 하는지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 단독 MC는 처음인가.
“1988년 미스코리아 진이 되고 나서 ‘연예가중계’ MC를 했다. 1990년대 중반엔 이계진 선배님과 ‘명사가요초대석’이라는 음악 프로를 공동 진행한 적도 있다. 혼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건 처음이라 부담된다. 그래도 게스트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분위기를 가끔 띄워주면 보는 이들도 유쾌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엔 말 많은 진행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라디오 프로그램도 말을 아끼고 노래 위주로 방송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나도 라디오 들을 때 DJ가 말이 많으면 듣기 불편하더라.”
▼ ‘야왕’의 최대 수혜자가 아닐까.
“그런 말 자주 듣는다. 주인공 주다혜가 하도 못되게 굴어서 내가 맡은 백도경이 도리어 시청자에게 더 호감을 얻은 것 같다. 주인공도 아닌데 사랑을 받아 민망하지만 기분은 좋다.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이 그렇게 많은 관심을 받을 줄 몰랐다. 운이 좋았다.”
▼ 상대적으로 수애 씨는 욕을 많이 먹어 힘들었겠다.
“수애가 그만큼 연기를 잘했다는 얘기다. 주다혜 캐릭터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 옆에서 보기 안쓰러웠다. 자신조차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를 연기하느라 스트레스가 심했을 거다. 배우한테는 이미지가 무척 중요한데 아무리 연기라도 나쁜 인상을 주는 게 썩 내키진 않았을 거다. 더구나 아직 솔로 아닌가. 30대 미혼 여배우의 포지션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 주다혜가 악녀 캐릭터인 줄 알고 출연했을 것 아닌가.
“악녀라 해도 시청자가 주다혜의 악행이 거듭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게 묘사해줄 것으로 믿고 출연했을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방송이 나간 뒤 시청자의 반응이나 제작 여건에 따라 내용 설정이 바뀌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제작진도 주다혜가 악해질수록 시청률이 높아져 수위조절이 쉽지 않았을 거고. 그 때문에 초반에는 (수애가) 제작진과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나중엔 잘 따랐다. 나 같으면 그러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끝까지 배역에 최선을 다하는 걸 보면서 후배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야왕’이 끝나 아쉽나.
“시원섭섭하다. 매회 ‘쪽대본’이 나와서 생방송이나 다름없을 만큼 정신없이 촬영했다. 시간을 아끼려고 한 장소에서 여러 신을 몰아 찍었다. 앞뒤 상황을 모르고 촬영해 한 번은 백도훈(정윤호 분)이 꽃뱀한테 걸려든 대본을 보고 생뚱맞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9살 연하 권상우, 편했다”
‘야왕’은 주다혜가 계부를 죽이고 자신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준 남편 하류를 배신한 뒤에도 악행을 멈추지 않아 방영 내내 ‘막장 드라마’라는 비난에 시달렸다. 마지막회에서는 악녀 주다혜를 미화하는 데 치중해 억지스러워 보인다는 혹평이 쇄도했다. 내용의 선정성이나 완성도에 비해 시청률은 높았다. 최종회 시청률은 20%를 넘겼다.
▼ 인기 비결이 뭐였을까.
“막장 드라마라는 비난은 그리 염두에 두지 않았다. 시청자들은 그렇게 욕하면서도 궁금해서 계속 보지 않나. 막판 시청률이 20%를 넘은 것도 그런 효과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하류가 차재웅 검사가 되기 전까지가 좋았다. 아내의 배신에도 아빠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큰 공감을 얻었다. 그런데 하류가 검사가 된 후 통쾌한 복수도 못하고 다혜와의 관계설정도 어정쩡해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시청자들도 그 부분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 같다.”
▼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추적자’에서 연기한 서지수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이후엔 화려한 캐릭터 제의만 들어왔다. 한 작품을 골라 준비하던 중 제작이 무산됐다. 그 드라마 때문에 살도 뺐는데…. 그 무렵 ‘야왕’ 백도경 역이 들어왔다. 백도경도 서지수 같은 재벌 딸이지만 캐릭터가 달라 마음에 들었다.”
▼ 어떻게 다른가.
“서지수는 안하무인에 자기가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캐릭터다. 반면에 백도경은 지적이고 현명하다. 무엇보다 자기 생활에 질서가 있다. 겉모습은 차가워 보여도 속은 여리고, 자식에 대한 모성애도 강한 여자다.”
▼ 둘 중 어느 쪽이 더 자신과 닮았나.
“백도경이다. 나 역시 무질서한 걸 싫어한다. 혈액형이 A형이라 소심하고 일할 땐 완벽주의에 가깝다. 책상이 비뚤어진 것도 못 본다. 줄이 맞아야 한다. 대신 잔머리 굴리진 않는다. 솔직하다. 그런 면을 보고 털털하다고들 한다. 백도경처럼 똑똑하진 않지만(웃음).”
▼ 9살 연하인 권상우 씨와 러브라인이 부담스럽지 않았나.
“편했다. 둘 다 결혼하고 자식 키우는 부모라 함께 있을 땐 아이들 얘기를 많이 했다. 나는 나이 차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는데 주위에서 많이들 부러워했다. 손을 잡거나 포옹하는 신을 보고 친구들이 ‘좋겠다’고 놀리곤 했다. 연기할 땐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돼 권상우 씨를 때릴 뻔했다. 하류가 차재웅 검사로 둔갑한 이유를 ‘주다혜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고 털어놓았을 때 배신감이 들어 따귀라도 때려주고 싶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 남편이 질투하진 않던가.
“질투는커녕 드라마가 잘돼서 나보다 더 좋아한다. ‘야왕’이 방영될 때 ‘힐링캠프’에 출연했는데 남편의 영상편지가 TV에 나와 자기도 되게 유명해졌다고 신나하더라. 택시 기사가 차를 세우고 알은 체를 했다고…. 사람들이 알아본다고 요즘 부쩍 외모에 신경을 쓴다(웃음).”
▼ 출연 제의가 많이 들어온다던데.
“드라마보다 예능 프로에서 많이 찾는다. ‘힐링캠프’에서 꾸밈없고 소탈한 모습을 좋게 봤다는 사람이 많더라. 뒤늦게 많은 사랑을 받아 기쁘다. 데뷔 후 꾸준히 연기를 해왔지만 지금처럼 큰 관심을 받은 적이 없다. 이 기세를 몰아 주연배우로 거듭나면 좋겠다. 주연으로서 작품 흥행에 대한 부담과 책임감을 느껴보고 싶다(웃음).”
▼ 주연보다 조연이 롱런하기엔 좋지 않나.
“그건 맞다. 주연은 작품이 안 되면 찾는 이도 줄고 오래 쉬어야 하지만, 조연은 존재감을 살리기만 해도 여기저기서 쓰려고 한다. 장혁도 롤모델이 성동일 씨라고 하더라. 성동일 씨는 어떤 작품을 하든지 존재감을 발휘하는 대기만성형 조연 아닌가.”
워킹맘으로 사는 법
김성령은 1996년 부산에서 건축 관련 사업을 하는 이기수(48) 씨와 결혼해 아들만 둘을 낳았다. 두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 3학년이다. 김성령은 아이들과 서울 여의도에서, 남편은 부산에서 살고 있다.
▼ 남편이 옆에 없어서 허전하겠다.
“무슨 소리? 편하다(웃음).”
▼ 자주 오나.
“예전에는 주말마다 남편이 서울로 올라왔는데 요즘은 내가 부산으로 내려간다. 아이들은 방학 때도 과외하느라 시간 내기가 힘들어 대개 나 혼자 간다.”
▼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건 아이들 교육 때문에?
“서울이 교육환경이 좋고, 표준말도 익힐 수 있지 않나. 남편은 아이들이 사투리를 안 썼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강남에서 살길 바랐는데 내가 고집해서 줄곧 여의도에서 살았다. 나한테는 강남보다 여의도가 잘 맞는 것 같다.”
▼ 외모는 강남 스타일인데.
“보기와 다르다. 평소에는 화장도 안 한다. 남편이 ‘제발 무릎 나온 바지 좀 입지 말라’고 타박할 정도다(웃음).”
▼ 남편이 잘해주나.
“내가 배우생활 하는 걸 좋아한다. 같이 다닐 때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는 걸 즐긴다. 날 안 쳐다보면 ‘왜 안 보는 거지?’ 하면서 두리번거린다. 재미있고 속 깊은 사람이다. 내가 주부이기보다는 배우로서 원 없이 연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어떤 면에 끌려 결혼했나.
“친구 소개로 알게 됐는데 연애는 5개월밖에 안 했다. 남편도 남편이지만 어머니가 날 첫눈에 맘에 들어 하셨다. 어르신들이 좋아하니 일사천리로 결혼까지 갔다. 나는 서른, 남편은 서른둘이었다. 그때만 해도 둘 다 결혼이 늦은 편이었다.”
▼ 애교가 많을 것 같다.
“별로 없다. 가족들 앞에서는 목소리가 달라진다고 하더라. 오죽하면 우리 아이들이 ‘방송에 나올 때처럼 상냥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하겠나.”
▼ 아이들도 엄마가 배우인 걸 좋아하나.
“아직은 좋아하는 것 같다. 아이들도 남편처럼 남의 시선 받는 것을 좋아한다. 두 아이 모두 활동적이고 끼가 많다. 남편이 스포츠광이라 아이들한테 운동을 많이 가르쳤는데 그 영향이 큰 것 같다.”
▼ 나중에 배우를 하겠다면 어쩌겠나.
“연기가 만만한 일은 아니지만 아이가 원한다면 기꺼이 허락할 거다. 뭐를 하든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한다. 그래야 행복할 것 같다.”
▼ 집에서는 어떤 엄마인가.
“여느 주부들처럼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진 못한다. 딱 한 번이지만, 김밥을 못 싸줘서 사가라고 한 적도 있다. 그렇다고 무심한 엄마는 아니다. 쉴 때는 될 수 있으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밤샘 촬영하고 새벽 4시에 들어가도 아침은 아이들과 같이 먹으려 하고. 집안일을 해주시는 아주머니가 ‘더 자라’고 하는데도 그때가 되면 눈이 떠진다.”
▼ 결혼과 육아가 연기에 도움이 되나.
“많이 된다. 예전에는 이해되지 않던 상황들을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받아들인다. 포용력이 생긴 것 같다. 배우에게는 어떤 경험이든 연기의 밑천이 된다.”
‘연예인 될 운명’
1988년 미스코리아 진 타이틀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때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연예계 등용문이었다.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정상급 스타가 된 이가 적잖다. 고현정, 장윤정, 이승연이 대표적이다. 김성령은 ‘연예가중계’ MC로 연예계에 첫발을 들였다.
▼ 원래 꿈이 연예인이었나.
“연예인보다는 방송 진행자가 되고 싶었다. 미스코리아 진이 되면 가장 잘나가는 쇼 프로그램 MC 자리를 꿰찰 수 있었는데, ‘연예가중계’ MC를 하고 싶어서 다른 출연 제의를 모두 고사했다. 기다리면 기회가 올 거라고 믿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연예가중계’에서 MC 제의가 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연기를 잘할 자신도 없고, 탤런트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자체가 쑥스러워서 표현하지 못했다. 연예인이 된 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 엄마가 점을 보신 적이 있는데 세 딸 중 둘째가 배우가 된다고 했다더라. 교회 권사님이었는데 점을 보셨다(웃음).”
▼ 신통하다.
“어릴 땐 엄마한테 점쟁이 말을 전해 듣고 언짢은 생각이 앞섰다. 배우를 딴따라로 천대하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래서 배우는 공부 못하는 사람이 하는 일인 줄 알았다. 선생님 같은 지적인 직업이 아니라 왜 하필 배우인지 창피하고 속상했다.”
▼ 미스코리아대회엔 어쩌다 나갔나.
“2년제 대학(인하공전 전자계산학과)을 졸업하고 백수로 지낼 때 미용실 원장의 권유로 나갔다. 원장선생님은 1987년에 나가길 바랐는데 망설이다가 이듬해 출전했다. 만일 1987년에 나갔으면 진이 안 됐을 거다. 1987년 진이 장윤정 씨다.”
그 무렵 미스코리아로 선발된 장윤정, 고현정, 이승연은 왕성한 방송활동에 힘입어 데뷔하자마자 스타가 됐다. 김성령은 그들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연예활동을 활발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 일부러 연예활동을 꺼린 건가.
“그렇진 않다. 1988년 2월에 전년도 미스코리아 진 장윤정 씨가 미스유니버스대회에서 2등을 했다. 미스코리아가 세계미인대회에서 넘버3에 든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장윤정 씨가 그해 미스코리아 진인 나보다 더 주목을 받았다. 더욱이 방송활동을 하는 미스코리아 중에는 엄마가 매니저로 나서 적극 지원해 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우리 엄마는 조용한 성격이라 내가 다 알아서 했다. PD와 기자도 직접 상대했는데, 그때는 연예계 생리를 잘 몰라서 인터뷰 제의가 들어와도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고 여건이 안 맞으면 거절했다. 신인이 그렇게 뻣뻣하게 굴다보니 본의 아니게 오해를 살 때가 있었다.”
주연과 조연 사이
▼ 예전에 임예진 씨한테 인사를 안 해 ‘찍혔다’는 소문도 있었다.
“일부러 안 한 건 아니다. 방송국 분위기를 몰라 실수한 거다. 미스코리아 되고 나서 얼마 후 방송국에 갔다가 임예진 선배님을 봤다. 선배님은 날 모를 텐데 인사를 하는 게 맞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배우도 아닌 내가 인사를 하면 오히려 ‘오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지나쳤는데 나중에 뜻밖의 얘기가 돌았다. 내가 인사를 안 해서 ‘임예진 선배님이 벼르고 있다’는…. 그제야 주위 사람들이 ‘방송국에선 누구를 만나든 인사를 잘해야 한다’고 조언을 했다. 하늘 같은 선배에게 큰 결례를 범한 거였다.”
▼ 임예진 씨가 후배들에게 무섭게 하나.
“잘해주신다. 화통하고 뒤끝 없는 분이라서 나에 대한 오해도 금방 푸셨다. 이후에는 인사를 잘했으니까(웃음). 최근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도 선배님 실명을 나도 모르게 말하는 바람에 방송 보고 언짢아 하실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일 없었다. 얼마 전 방송국에서 우연히 선배님을 만나 인사를 드렸더니 편하게 받아주셨다(웃음).”
연기 데뷔작은 영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강우석 감독)다. 이 영화로 1991년 국내 영화제 신인여우상을 휩쓸었다. 그때부터 연기 욕심이 발동했느냐고 묻자 김성령은 손사래를 쳤다.
“그때는 연기를 쉽게 봤다. 처음 주인공을 맡은 영화로 큰 상을 여러 개 받으니 내가 연기를 잘하는 줄 알았다. 그런 환상이 깨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연기자가 잘되려면 작품 운도 따라야 한다는 사실도 곧 깨달았다.”
▼ ‘깨달음’의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배우 3년차에 KBS ‘청춘극장’(1993)이라는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맡았다. 시청자 반응이 꽤 좋았는데, 남자주인공을 연기하던 변영훈 씨가 영화촬영 중 헬기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떴다. 그 바람에 제작진이 변영훈 씨와 비슷하게 생긴 배우를 급히 구해 드라마를 이어갔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후로 주인공 자리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드라마나 영화는 작가와 감독, 배우가 함께 만들어가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스타를 많이 쓴다고 좋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작품이 잘되려면 현장 분위기와 팀워크도 좋아야 하고 운도 따라야 한다. 20년 넘게 연기하면서 터득한 진리다.”
▼ 배우생활 하면서 다시 대학(경희대)에 들어가 연극영화학을 전공했던데.
“연기를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었다. 마침 경희대에서 연예인 입학을 권장해 그 학교를 택했다. 고3 수험생처럼 열심히 공부해 전액장학금을 받았다. 흐뭇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소맥’ 즐기는 분위기파
▼ 그런데 대학원(한국외대 경영대학원)에선 왜 마케팅을 공부했나.
“좀 색다른 공부를 해보고 싶어 마케팅학을 선택했는데 배우길 잘했다. 마케팅을 공부하면서 배우한테는 연기를 잘하는 것만큼이나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배우는 자신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연기의 생명력과 인지도가 달라진다.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이미지 메이킹에 실패하면 좋은 배우로 사랑받기 힘들다. 그런 것을 알게 되니 연기생활을 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명성황후’ ‘일지매’ ‘뉴하트’ ‘미남이시네요’ 등 지금까지 그가 출연한 드라마는 대부분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작품 보는 안목이 남다른 것 같다고 하자 그는 나름의 비법을 공개했다.
“캐릭터도 보지만 내용이 흥미롭고 마음에 와 닿는지도 중요하게 여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작품이 잘되면 배 아플 텐데 잘된 게 별로 없다. 그럴 땐 ‘내가 안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보다 ‘그런 작품을 나한테 하라고 했단 말이야?’ 하면서 웃어넘긴다.”
▼ 친하게 지내는 연예인은 많나.
“결혼 전에는 연예인 친구가 거의 없었다. 주로 미스코리아 친구들과 어울렸다. 결혼한 뒤에는 낯을 덜 가려서 그런지 작품을 함께한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명성황후’에서 만난 최명길 선배와 동갑내기 심혜진, 방은희 씨가 그런 경우다. 평소 마음 터놓고 지내는 ‘절친’들이다. 모임도 자주 갖는다. 언제든 함께할 수 있는 이들이 있어서 든든하다.”
▼ 방송에서 춤을 꽤 잘 추던데 술자리도 즐기나.
“술자리는 좋아하는데 술을 많이는 못한다. 주로 ‘소맥’을 마시는데,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는 주량이 소주 반 병 정도다. 제일 많이 마셔본 건 소주 1병. 많이 마시면 잔다. 고약한 술버릇은 없다.”
▼ 연기생활에 회의가 든 적은 없나.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는데 제작이 무산되거나 노력한 만큼 인정받지 못할 때는 속상하지만 배우가 된 걸 후회한 적은 없다. 여자가 하기에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여배우를 남자배우와 차별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위상이 달라졌다.”
▼ 연기가 천직인 것 같나.
“천직인 것 같다. 촬영장에 있으면 흥이 난다. 연기를 좋아하고 즐긴다. 가면 갈수록 연기가 어렵지만 그래서 이 일이 더 재미있다. 나이 들수록 연기를 잘하고 싶은 욕심이 더 생긴다.”
▼ 언제부터 그런 욕심이 생겼나.
“결혼하고 나서 ‘대왕의 길’(1998)이라는 사극에 출연했다. 창경궁인가 창덕궁에서 제작발표회를 열었는데 기자들이 혜경궁 홍씨 역을 맡은 홍리나 씨한테 몰렸다. 리나도 나도 조연이었고 인지도도 비슷한 줄 알았는데 어느 기자가 내게 와서 묻더라. 어떤 역을 맡은 누구냐고. 충격이었다. 나름 꾸준히 연기생활을 했는데 존재감이 별로 없구나, 미스코리아 진이라는 자부심이 컸는데 쉽게 잊힐 수 있구나…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부터 배우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 같다. 아이들에게도 내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
뮤지컬 도전하고 싶어
데뷔 후 25년이 흘렀다. 그간 드라마 34편, 영화 11편을 찍었다. 최근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10년 만에 CF도 2편 찍었다.
▼ 돈은 많이 벌었나.
“못 벌었다. 이제 좀 벌어보려고 한다(웃음). 재테크 한답시고 상가와 아파트를 샀다가 손해만 봤다. 상가는 세가 안나가서 골칫거리가 됐고, 아파트는 가격이 떨어져 밑지고 팔았다. (배우 생활로) 남은 게 없다. 진행비로 다 썼다. 재테크에 재주가 없다. 남편은 그쪽에 소질이 있다.”
▼ 수입은 누가 관리하나.
“각자 관리한다. 그게 편하다. 남편이 주는 생활비는 한계가 있다. 생계를 위해 연기생활을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벌어서 쓰고 싶은 데 쓸 수 있으니 좋다. 남편은 내가 얼마 버는지 모른다. 관심도 없었는데 최근 CF 두 편 찍은 걸 알고는 얼마 받았느냐고 넌지시 물어보더라. 안 가르쳐줬다, 하하.”
▼ 부와 명예 중 하나를 고르라면.
“명예만 있고 돈이 없으면 검은 유혹이 끊이지 않을 것 같다. 돈과 명예 모두 갖고 싶지만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돈이 좋겠다.”
▼ 고운 외모는 타고난 건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퍼스널 트레이닝과 피부 마사지를 꾸준히 받고 있다. 집에 있을 때도 스트레칭을 즐긴다. 아름다움을 지키려면 부지런해야 하는데 나도 그리 부지런하진 않다. 매주 한 번은 마사지 받아야지, 하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로 미룰 때가 많다. 사실 운동 열심히 하는 건 먹기 위해서다. 초콜릿과 과자를 입에 달고 산다.”
▼ 목주름이 거의 없다. 의술의 힘인가.
“집안 내력이다. 언니나 엄마도 목주름이 잘 안 생기는 체질이다. 의술의 힘은 다른 데 썼다. 눈을 집었고, 보톡스 주사도 맞았다. 나이 드니 얼굴 주름지는 건 막을 방법이 없더라. 티가 잘 안 나는 건 과하게 하지 않아서다.”
▼ 나이 듦에 대한 생각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에 공감한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열정이나 의욕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겉모습의 노화 때문에 감정이나 감각까지 뒤떨어진다고 보는 게 서글프다. 젊어서 좋은 것도 있지만 나이 들어서 좋은 것도 있다. 나이를 먹으면 어떤 일이 닥치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세상을 보는 시선도 관대해진다. 그건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닌 것 같다. 모진 세월을 견뎌낸 대가다.”
▼ 40대가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맞는 말이다. 젊어선 몰랐는데 지나온 인생이 얼굴에 나타나더라. 얼마 전 강원래 씨가 지하철역에서 팬이 사인해달라는 걸 못해줬다며 트위터에 사과 글을 올렸다. 장애인용 계단을 오르던 터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마음에 걸려 글을 올린 거다. 함께 올린 사진 속에서 강원래 씨가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선해 보였다.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면서도 그렇게 흐뭇해했으면 좋겠다.”
20대에는 한국 최고의 미녀로 인정받고, 30대엔 남편과 두 아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단란한 가정의 안주인이 됐으며, 40대엔 중년 여배우의 선두주자가 된 김성령. 그에게도 아직 못다 이룬 꿈이 있을까. 인터뷰를 끝내고 “죽기 전에 꼭 이루고픈 버킷리스트가 있느냐”고 묻자 그가 한참을 생각한 끝에 입을 연다.
“뮤지컬에 도전하는 것. 노래는 정말 못하지만 춤추는 걸 좋아한다. 뮤지컬 배우라고 다 노래 잘해야 한다는 법이 있나. 음치지만 진정성을 가지고 연기할 자신이 있다. 대사 없이 비트, 스텝, 리듬만으로 무대를 이끄는 넌버벌(Nonverbal) 공연도 있다던데, 기회만 주어진다면 꼭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