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클럽 내부
#2 나이수 씨는 지난 1월부터 골프 강습을 받기 시작했다. 6개월치 강습료 80만 원을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그런데 며칠 뒤 허리를 다쳐 더 이상 강습을 받기 어려워졌다. 나 씨는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골프 강습장 주인은 “양도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대신 “이용정지 신청을 한 뒤 나중에 다시 이용하라”고 했다.
#3 장타만 씨는 2010년 3월 모 골프장의 회원권을 회원권거래소에서 구입했다. 이 회원권은 2007년 3월 최초 분양된 것으로 입회비 예치기간은 5년이었다. 올 3월 장 씨는 사업이 어려워지자 골프장 측에 “입회비 예치기간 5년이 지났으니 입회비를 반환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골프장 측은 장 씨가 회원권을 인수한 2010년 3월부터 계산하면 5년이 지나지 않았으므로 입회비를 반환해줄 수 없다고 했다.
작심삼일, 이사, 전보, 부상…
실제로 있었던 사례들이다.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몸짱 되기’를 목표로 정하고 호기롭게 헬스클럽이나 골프연습장 이용권을 끊는다. ‘6개월 이상 장기로 이용권을 구입하는 것이 한 달치씩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상술에 넘어가 장기 이용계약을 맺기도 한다.
처음의 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나기도 하고 장기 이용기간 중 발생할 수 있는 이사, 전보발령, 부상 등 다양한 문제가 생긴다. 이러면 중도해지를 요구하게 된다. 그런데 스포츠시설 업주가 턱없이 높은 위약금을 요구하거나 이상한 법을 들어 환불을 거부하는 사례가 많아 원성이 높다.
한국소비자원이 2010년부터 2012년 4월까지 대전·충청지역의 헬스·피트니스, 요가, 골프연습장 등 스포츠시설 피해구제 사례 120건을 분석했더니 계약 해제 및 해지 관련 분쟁이 86건으로 전체의 71.6%를 차지했다.
이러한 분쟁을 예방하려면 계약을 해지할 경우에 대비해 환불금 산정기준이 어떤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계약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계약서 검토라는 게 말이 쉽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운동을 해야 하는데 약관이 부당하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조언이다. 그렇다면 불리한 내용의 약관으로 계약을 이미 체결한 경우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는지를 알아둬야 한다.
계약의 상대방이 미리 작성해둔 계약서 양식에 이용기간, 요금, 서명 등 필수적인 사항만 기재해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그 계약서는 ‘약관’이라고 한다. 스포츠시설 이용계약서는 모두 약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상당수의 스포츠센터 약관은 중도해지 시 위약금을 30% 이상으로 정해놓는다. 법을 잘 모르는 소비자는 본인이 그 계약서에 도장을 찍거나 사인을 한 이상 꼼짝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상대방인 스포츠센터가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것이 약관이므로 고객에게 불리한 내용이 있을 개연성이 커 고객에게 현저하게 불리한 약관 조항은 약관규제법에 의해 무효가 되도록 하고 있다.
현행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소비자의 사정으로 중도해지할 경우 “취소일까지의 이용일수에 해당하는 금액 및 총 이용금액의 10%를 공제한 후 환급”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약관은 무시하라
이에 따르면 이몸장 씨의 경우 총 이용금액이 55만 원이었으므로 그 10%인 5만5000원이 위약금의 상한이 된다. 상한을 초과하는 위약금 규정이 약관에 있다면 그 약관은 무효이기 때문에 따를 필요가 없다.
이몸장 씨처럼 1년 장기 계약을 체결해 회비를 할인받았을 때 ‘이용일수에 해당하는 금액’은 정상요금을 기준으로 하는 것일까, 할인된 요금을 기준으로 하는 것일까. 대다수 스포츠센터는 1년 장기 계약을 해놓고 3개월 만에 해지하는 경우 3개월 또는 1개월 계약 시의 요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씨에게도 1개월 이용료인 9만 원씩 3개월치 27만 원을 공제하겠다고 했다.
장기 계약을 할 경우 이용료를 할인해 주는 제도는 할인을 미끼로 장기 고객을 확보하고 중도 포기할 경우 그 이익을 챙길 수도 있어 스포츠시설 업주에게는 아주 훌륭한 마케팅 수법이다. 위약금을 높이고 공제할 이용대금도 정상요금을 기준으로 해놓음으로써 중도 해지할 엄두를 못 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편법이 인정된다면 모든 스포츠시설 업주는 고객의 중도해지권을 보장하고 있는 각종 법률 조항을 비켜갈 수 있다.
중도해지를 힘들게 하는 약관 역시 무효로 봐야 한다. 따라서 이몸장 씨의 경우 1년 요금을 기준으로 이미 사용한 3개월치 요금인 16만5000원만 공제하면 된다. 한국소비자원의 분쟁해결 사례에 따르면 중도 해지 시 1일 이용료를 기준으로 이용료를 공제하는 약관은 소비자에게 불리한 규정이므로 무효라고 판단하고 있다.
법률에 의하면 스포츠시설 이용계약과 같은 것은 ‘계속적 거래’라고 한다. 계속적 거래는 계약이 해지된 날부터 3영업일 이내에 환불해줘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업주는 3영업일 다음 날부터 환불해준 날까지 연 24%의 지연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나이수 씨는 골프연습장 장기 이용계약을 체결한 후 이용할 수 없는 사정이 생기자 제3자에게 양도하는 방법을 택하려 했지만 골프연습장 업주는 이를 거절했다. 헬스클럽이나 골프연습장 측과 이용계약을 체결한 경우 법률적으로 고객은 그 스포츠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채권을 가진 것이고, 스포츠시설 측은 고객에게 시설을 이용하도록 할 채무를 지는 것이다. 채권은 몇몇 예외적 채권을 제외하고는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다. 스포츠시설 이용 채권 역시 양도할 수 있는 채권에 속한다. 채권을 양도할 때 양도인과 양수인이 양수도계약을 체결하고 양도인이 채무자인 스포츠시설 측에 그 양도사실을 통지만 하면 된다.
물론 당사자 간 합의로 채권양도를 금지하는 계약을 할 수는 있지만 약관조항에서 고객의 채권 양도권을 박탈하는 것은 체육시설의 설치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19조 위반으로 무효다. 체육시설법 제19조는 “회원이 그 자격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려는 경우에는 양수하려는 자가 회원의 자격제한 기준에 해당하는 경우 외에는 이를 제한하여서는 아니되며”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나이수 씨는 골프연습장 이용 권리를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고 골프연습장 측은 그 양도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만 그 골프연습장 측이 회원자격에 관한 특별한 제한을 두고 있고, 이용권을 양수받은 사람이 그 자격요건에 맞지 않는 경우 회원권 양도·양수가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못된 상술 바로잡아야
호텔 헬스클럽 같은 곳은 입회보증금을 받기도 한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호텔 헬스클럽이 회원권을 양수한 사람에게 회원자격을 부여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입회보증금은 양수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장타만 씨와 골프장 측은 골프장 회원권 입회보증금 예치기간을 두고 다투고 있다. 장씨는 양도받은 골프장 회원권의 입회보증금 예치기간이 5년이고 양도받을 당시 3년이 지나 있었기 때문에 2년만 지나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골프장 측은 장씨가 양도받은 시점부터 다시 5년이 경과해야 돌려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와 같은 사건이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실제로 있었다. 법원은 양도 시점부터 예치기간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원 회원권자가 최초 가입한 시점부터 예치기간이 시작되므로 골프장 측은 입회금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스포츠센터가 중도해지 때 터무니없이 높은 위약금을 뗀다. 이용자들은 억울해하면서도 대응방법을 잘 몰라 결국 스포츠센터 조처에 따르게 된다. 이젠 이런 횡포와 못된 상술을 바로잡아야 한다. 한국소비자원 등 관계기관에 전화 한 통만 해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