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가 일자리 줄인다고?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민과의 대화’에서 “IT가 일자리를 줄인다”는 둥 엉뚱한 발언을 쏟아냈다. 애플의 아이폰 도입 충격을 겪은 후 월드베스트소프트웨어(WBS) 등 소프트웨어 연구개발(R·D)사업을 시행하는 등 노력했지만 임기 내내 IT를 홀대한다는 평가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IT 업무의 다부처 분산은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돼 미래부 설립의 원인을 제공했다.
이처럼 역대 정권은 모두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는 총론에 동의하며 소프트웨어산업 육성 의지를 보였지만 성과는 없었다. 창조경제를 모토로 미래부를 신설한 박근혜 정부는 소프트웨어산업 육성의 ‘디테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새 정부의 성공 여부가 걸린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박 대통령이 왜 창조경제를 추구하면서 그 성장동력으로 소프트웨어산업을 꼽았는지 짚어보자. 이는 소프트웨어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효율성을 제고하는 혁신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를 장착하면 제품이 똑똑해진다.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면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 노동생산성이 높아진다. 또 인터넷은 소통방식을 혁신한다. 이런 소프트웨어를 통해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고, 상품과 서비스의 경쟁력이 높아진다. 자연히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소프트웨어산업은 그 자체로 커다란 시장이다.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는 2011년 기준 1조1000달러로 반도체 시장의 3.5배, 휴대전화 시장의 4.5배에 달한다. 그러나 더욱 큰 가치는, 다양한 산업에 응용돼 고부가가치를 이루는 도구산업이란 데 있다. 미국 시애틀의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엔 ‘우리에게 1달러를 투자하면 8달러를 돌려드립니다’라고 쓰여 있다. 1달러의 소프트웨어 투자가 8달러의 경제활성화 효과를 낸다는 뜻이다. 소프트웨어 제품에 1원을 투자할 때 한국 경제가 13.28원을 창출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소프트웨어산업은 고용창출 효과도 크다. 2007년 기준 소프트웨어의 부가가치율은 28.7%로 자동차(20.6%), 컴퓨터 하드웨어(11.5%)보다 월등히 높다. 고용유발계수(매출 10억 원당 고용창출효과)를 보면 2011년 기준 소프트웨어가 14.6으로 제조업의 1.6배다.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는 산업의 간접고용 효과는 직접고용 효과의 1.14배에 달한다고 보고됐다.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혁신으로 시장을 석권한 사례를 보자.
2007년 휴대전화 사업에 진출한 애플은 4년 후인 2011년 이 시장에서 발생한 총이익의 75%를 가져간다. 지난 10여 년 간 줄곧 수위를 지키던 핀란드의 노키아는 적자를 봤다. 어떻게 컴퓨터회사 애플이 통신기기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을까. 애플이 휴대전화를 통신기기라기보다는 컴퓨터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이동하며 사용하는 컴퓨터다. 전 세계 고객들이 아이폰을 선택한 것은 ‘기기’보다 ‘소프트웨어’가 좋아서다.
‘3D 프린터’ 시대
소프트웨어 기술을 갖춘 회사가 전혀 새로운 시장에 진입해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시장을 장악하는 현상에 대해 미국 언론은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치우고 있다(Software is eating the World)’라는 표현을 썼다. 이런 현상은 휴대전화 시장에서뿐 아니라 모든 산업과 시장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검색엔진 구글은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 즉 무인자동차를 상용화 수준으로 개발 중이다. 비행기 제조에도 이미 오래전부터 컴퓨터와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 비중은 계속 높아져서이제 항공기 기능의 대부분이 소프트웨어에 의해 구현된다. 최신 기종인 F35 전투기에는 2400만 줄의 소스코드가 사용됐다고 한다.
영화 ‘아바타’는 3만5000대의 컴퓨터를 동원해 외계 세상을 정교하게 표현해냈다. 이제 가전회사의 경쟁력은 소프트웨어가 결정한다. 냉장고가 스스로 남은 식재료를 파악해 요리법을 알려주는 때가 올 것이다. 사람들은 독감에 걸리면 ‘발열’ ‘콧물’ 등 특정 단어로 인터넷 검색을 한다. 이런 특정 검색어의 빈도를 분석하면 독감 창궐 여부를 법정 진료기관보다 2~3주 빨리 예측해 대비할 수 있다.
최근에는 3D 프린터가 등장했다. 컴퓨터상에서 소프트웨어로 제작한 3차원 모델을 물질로 찍어내는 기계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3D 프린터는 거의 모든 제조방법을 바꿀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듯이 이는 제조업 혁명을 가져올 것이다. 공장에서 제조한 물건을 소비자에게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가 일어나는 곳에서 물건을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물류, 저장, 통관 등의 절차가 필요 없게 된다. 이미 공구, 신발 등은 소비자가 직접 디자인해 찍어내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3D 프린터로 총을 제작해 발사까지 가능하다는 게 알려져 논란을 일으켰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은 한마디로 열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9개국 중 14위에 그친다. 시장규모도 20조 원 수준으로 작아서 전(全)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에 불과하고 성장률은 1% 안팎이다. 그나마도 글로벌 기업이 소프트웨어 패키지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산업에서 1인당 부가가치는 6100만 원으로 전체 산업 평균 6800만 원보다 낮다(2006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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