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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재구성 | 이한영(김정일 처조카) 피살사건

누가 북한 소행이라 단정할 수 있나?

L기자의 취재노트 비밀해제!

  • 이창무│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형사사법학 jbalanced@gmail.com

누가 북한 소행이라 단정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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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지난 2월 이후 갑자기 유명해지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얼굴이 알려지면서 북한의 보복 위험이 커져 생활이 불안해졌다. 외동딸(7)은 초등학교 취학통지서를 받아놓고도 아직 학교에도 못가고 있는 형편이다. 이 씨는 ‘먹고살기 위해’ 요즘은 신문, 잡지와의 인터뷰는 물론 TV 출연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6월 초 MBC TV에 출연한 데 이어 SBS TV의 ‘이주일 쇼’에 출연했다. ‘이주일 쇼’에서는 자신이 북한에서 겪었던 일과 이모부인 김정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다시 한 번 얼굴을 성형수술해 잠적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동아일보 1996년 6월 23일자).

이 씨 피살 사건이 터지자 경찰은 곧바로 사건 발생지역을 관할하는 분당경찰서에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관할 경찰서장이 수사본부장을 맡는 게 보통인데,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경기지방경찰청장을 수사본부장에 임명했다.

경기청장이 직접 수사 지휘

자연스럽게 북한이 범행을 했을 소지가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우선 이 씨 피살 사건 발생 이틀 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망명 사실이 밝혀졌다. 정부는 당시 중국 베이징 한국대사관에 도피해 있던 황 씨를 한국으로 입국시키는 문제와 관련해 평양과 첨예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북한은 황 씨의 즉각 송환을 요구하는 한편 망명자에 대한 철저한 보복을 다짐했다. 이 씨가 ‘대동강 로열패밀리…’를 발간해 김정일과 북한 고위층의 실상을 폭로하면서 북한의 공적(公敵) 1호와 다를 바 없게 됐다는 점에서 이 씨가 피살되자 누구나 ‘북한의 보복 범행이구나!’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덧붙여 이 씨가 총격을 받은 직후 ‘간첩’이라고 외쳤다는 목격자 진술이 나오고, 현장에서 북한 공작원이 주로 쓰는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의 탄피가 발견된 점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심증을 굳혔다. 그러나 단순히 북한 공작조의 ‘보복 테러’로 추정되던 사건이 북한 소행으로 공식화한 계기는 1997년 10월 이른바 ‘부부간첩단 사건’의 범인들이 잡히면서다.



부부간첩단 사건은 남파된 부부공작조 최정남(당시 35세)과 강연정(당시 28세)이 ‘전국연합’ 산하조직 간부를 포섭해 북한으로 데려가려다 붙잡힌 사건이다. 이후 조사과정에서 이들은 “이 씨 살해범이 북한 사회문화부 소속 전문 테러 요원인 최순호와 신원 미상의 20대 남자 등 2명으로 구성된 특수 공작조였다”고 진술했다. 부부간첩단은 이어 이 씨를 살해하고 돌아온 암살범들이 북한 당국으로부터 영웅 칭호를 받고 재(再)남파를 위해 성형수술까지 받았다고 밝혔다. 이를 토대로 안기부는 1997년 11월 19일 이 씨가 북한 대남공작부 소속 테러 전문요원에 의해 사살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이 씨 피살과 관련해 경찰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사실은 범인들이 이 씨의 주소를 입수한 경로를 밝혀낸 게 전부다. 범인들이 심부름센터에 돈을 주고 주소를 알아냈다는 것. 이에 따라 1997년 5월 이 씨의 개인 정보를 외부로 유출한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과 경사 한 명이 공공기관 개인정보법 위반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또 이 경찰관을 통해 이 씨의 주소를 알아낸 후 돈을 받고 용의자들에게 정보를 넘겨준 심부름센터 대표 등 2명에게는 신용정보 이용 및 보호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경찰은 안기부가 북한 공작원 소행으로 공식 발표하자 곧 특별수사본부를 해체했다. 경찰은 1000여 건에 달하는 제보, 사건 현장 증거물(머리카락 8개, 탄피), 목격자 및 이 씨 주변 인물 9000명의 행적, 이 씨 전화 통화내역 3000여 건 등에 대한 확인 작업과 탐문 수사를 벌였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경찰은 또 용의자들이 심부름센터에 돈을 보낼 때 쓴 은행 입금 원표에 묻은 지문과 사건 발생 전후 출입국자 지문을 전부 대조했다. 입금 원표에 쓰인 용의자 필적과 유사한 160여 명의 필적도 일일이 대조했다.

그럼에도 범인의 윤곽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북한 공작원들의 범행이어서 지문이나 필적 대조가 소용없었다는 설명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사건 초기부터 북한 소행이 아닐 수 있다는 추측과 분석 또한 적지 않았다. 이 씨가 한동안 러시아 인사들과 사업을 벌였고 크고 작은 여러 분쟁과 갈등이 있었다는 이유로 러시아 마피아, 또는 국내 폭력 조직 관여설 등 다양한 의문이 제기됐다.

‘스모킹 건’은 없었다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우선 범행 수법이 지나치게 어수룩하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이 씨는 두 차례 총격을 받고도 죽지 않고 10일이나 살아 있었다. 암살 테러를 위해 고도로 훈련된 정예요원 2명이 불과 몇 m 거리에서 암살 대상을 즉사시키지 못했다는 점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웃들이 알아차릴 정도로 심한 말다툼을 벌이고 거기에 격투까지 벌어졌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사실 북한 공작원이라면 조용하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고 빠져나갔어야 할 것이다. 체포 가능성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시간을 지체하다가 행여 아파트 경비원이나 이후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면 일이 복잡해진다. 이래저래 암살 전문가 솜씨치고는 어설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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