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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기자의 건강萬事

‘진드기 감염병’이 ‘괴질’로 둔갑한 까닭

무지, 무책임한 정부·언론 합작품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진드기 감염병’이 ‘괴질’로 둔갑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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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독감 포함)로 죽는 사람은 1년에 얼마나 될까. 고작 감기 따위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겠나 싶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의학계의 보고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만 매년 2000여 명이 감기로 인해 사망한다. 독감 예방백신이 개발돼 있는데도 그렇다. 폐렴으로 죽는 사람은 3000여 명에 달한다. 그런데 현대의학으로 밝혀진 페렴의 원인 세균과 바이러스는 50%밖에 안 된다. 감기와 폐렴은 아직 의학계가 정복하지 못한 정체 모를 ‘괴질’인 셈이다.

우리 국민은 지난 3월 이후 ‘살인진드기’가 옮긴다는 또 하나의 정체 모를 괴질 공포에 시달려왔다. 지난 1월 일본에서 살인진드기에 물린 환자가 사망했다는 첫 보도 이후 3월 들어 5명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나라에도 살인진드기가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됐다. 일부 언론도 ‘살인진드기 피해, 국내도 안심 못한다’며 공포감을 야기했다.

5월 2일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가 괴질 바이러스를 보유한 살인진드기가 우리나라에도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고 발표하자 우려는 기정사실화했고 국민의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지난해 8월 원인불명의 열성질환으로 사망한 60대 여성 환자의 혈액을 다시 분석해보니 살인진드기에 물려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5월 21일)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그 후 일주일 사이에 사망자가 4명으로 늘자 사회 전체가 괴질 공포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국민을 공포에 빠지게 한 정 중심에는 언론과 정부의 무지, 불성실, 무책임이 자리 잡고 있다.

‘진드기 감염병’이 ‘괴질’로 둔갑한 까닭

살인진드기로 잘못 알려진 작은소참진드기. 감염병을 일으키는 진짜 ‘살인자’는 숙주 동물이다.

무지는 공포를 낳는다

괴질 공포는 5월 말 들어 질본이 언론에 ‘살인진드기’란 말 대신 ‘야생진드기’로 써달라고 부탁하고, 치사율이 당초 발표보다 훨씬 낮다는 게 확인되면서 잦아들기 시작했다. 바로 이 부분에 지난 몇달 동안 우리 국민을 괴질 공포로 몰아넣은 첫 번째 무지가 숨어 있다. 언론이 호들갑을 떤 ‘살인진드기’는 실상을 알고 보면 전혀 ‘살인자’가 아니다.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는 진드기 자체가 아니라 진드기의 혈액 속에 든 중증 열성 혈소판감소 증후군(SFTS) 바이러스다. 그리고 SFTS 바이러스는 야생동물이나 가축 등 숙주의 몸속에서 옮겨온 것일 뿐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진짜 살인자는 바이러스를 품고 있었던 숙주인 셈이다. 유행성출혈열을 쥐들이 옮긴 것과 마찬가지다.



언론은 살인진드기로 알려진 ‘작은소참진드기’가 국내에도 있는 것 아니냐,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큰일이라며 연일 보도 경쟁을 벌였다. 감염병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코웃음을 칠 일이었다. 작은소참진드기는 1897년 선교사들에 의해 한반도 전체에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1968년에 이르러서는 정식으로 학계에 보고된, 지금도 전국의 산과 숲에 널리 분포해 있는 아주 흔한 진드기의 일종이다. 평균 2mm 크기의 흡혈 진드기로서 숙주는 사람, 소, 말, 개, 토끼, 조류, 야생동물이다.

동식물도감이나 백과사전을 잠깐만 펼쳐봐도,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잠시만 뒤져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지만, 언론은 앞뒤 재지 않고 이 진드기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괴물인 것처럼 보도했다. 더욱이 ‘살인진드기’라는 말을 쓴 건 우리 언론이 처음이 아니었다. 연원을 추적해보니 일본 언론이 쓴 용어를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언론의 또 다른 무지는 정부의 섣부르고 무책임한 발표에서 비롯됐다. 질본은 올해 1월 일본에서 SFTS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고 국내 감염의 우려가 제기되자 2월 14일 ‘중증 열성 혈소판 감소 증후군 개요’라는 자료를 발표하면서 SFTS에 대해 ‘2009년 중국에서 처음 발견됐고 중국 산둥반도를 포함한 중부 및 동북부 지역에서 170여 건이 발병했다. 치료제는 없고 증상별로 대처하는 대증요법밖에 치료법이 없으며, 치명률이 12~30%에 이른다’라고 밝혔다.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써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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