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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픽션에 놀아난 내가 안 미친 게 용하다”

‘저축은행 비리’ 무죄판결 이철규 前 경기경찰청장 6시간 격정토로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검찰 픽션에 놀아난 내가 안 미친 게 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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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별장 사건 헛소문

▼ 지난 20개월 동안 어떤 심정이었나.

“한 개인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올봄에 있었던 원주 별장 사건과 관련해 날 두고 헛소문을 퍼뜨린 진원이 어디인가. 기자들이 내게 소문의 진위를 물어왔는데 경찰청이 아닌 검찰청 출입기자들이었다. 검사가 기자실에 가서 ‘강원도에 유명한 이 아무개도 접대받았다는데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하면, 말이 질문이지 소문 퍼뜨리라는 것 아닌가. 인터넷 유포자를 상대로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고소했다. 경찰에서 신원 추적이 가능한 유포자들을 조사했다. 우여곡절 끝에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는데, 3개월이 넘도록 기소를 안 한다. 1300만 도민의 치안을 책임지던 사람이 양아치 같은 업자에게 성 접대를 받았고 동영상에 찍혔다는 소문을 낸 것은 치명적인 명예훼손이 아닌가. 내가 미치지 않고 살아 있는 게 용하다.”

▼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무척 힘들었을 것 같은데.

“사실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될 때까지 재판 결과를 의심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있지도 않은 일로 구속돼 시달리다 나오고, 법정에 피고인 신분으로 가서…아, 누구한테 심판을 받는다는 게, 더욱이 검찰의 손에 그런 처분을 받는다는 게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법원에 대한 신뢰는 있다. 검찰이 만들어놓은 시나리오는 거리낄 게 없어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근데 무죄가 확정된 날 너무 비참했다. 내가 20개월 동안 무엇을 위해 고통을 겪으면서 지내왔나, 내게 남은 게 뭔가 싶더라. 지인들이 축하해주며 ‘기쁘지 않으냐?’고 하더라. 이런 픽션에 놀아났는데 뭐가 기쁜가. 참으로 참담할 뿐이었다.”



▼ 법정에서 보인 눈물이 참담함의 발로였나.

“1심 선고공판 때 눈물이 핑 돌았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읽어 내려간 1분 30초 동안은 머리카락이 곤두섰는데, 반전이 있었다. 검찰의 공소사실이 왜 신빙성이 없는지 조목조목 지적해주는데, 정말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짚어가면서 재판을 심도 있게 하더라.”

그가 누명을 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1년 안산경찰서장으로 재직할 때에도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돼 2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이하 안산 사건). 안산 사건은 1998년 그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경찰 수사권 독립을 위해 힘쓴 게 발단이 됐다고 알려졌다.

이번 사건으로 그가 구속 기소됐을 때 경찰은 물론 법조계에서도 검찰의 표적수사라는 말이 돌았다. 2011년 검경 수사권 조정 당시 그가 전면에서 큰목소리를 낸 게 화근이었다는 얘기였다. 그때 경찰 측 핵심인사로 활약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묻자 그는 “경찰 핵심간부로서 소명을 다했을 뿐”이라며 모처럼 미간을 활짝 폈다.

아내의 원망

▼ 검찰 수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뭐라고 보나.

“수사를 하면서 악을 척결하겠다는 의욕이 강하다보면 무리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기소권을 가진 검사가 경찰 수사를 지휘해왔다. 그런데 일부는 스타 검사를 꿈꾼다. 기소권과 수사권, 수사지휘권을 다 갖고 있으니까 가능하다. 기소권과 수사권 결합이 낳은 폐해다. 하지만 수사하는 사람과 공소하는 사람이 다르면 더러운 거래를 할 수 없다. 검찰이 제일저축은행 부실의 사실상 주범인 유 회장 아들을 기소하거나 수사하지 않은 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쥐고 있기에 가능했다. 이런 폐단을 막으려고 공소권, 수사권, 재판권을 각각 분리한 나라가 많다. 그래야 억울한 피해자가 안 생긴다.”

▼ 사건 피의자인 유 회장과 박종기 전 시장, 박영헌 씨와 어떤 관계인가.

“유 회장과는 30년을 알고 지냈지만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이가 아니다. 예식장, 행사장 같은 데서 잠깐 보거나 경찰병원에 업무 보러 갈 때 한 번씩 들르는 정도였다. 5~6년 사이에 만난 게 모두 10번이 안 된다. 그런데 어떻게 만날 돈 주고받고 하나. 박영헌이라는 사람은 5~6년 전 처음 봤고 개인적으로 만나는 관계도 아니다. 박종기 전 시장은 중학교 7~8년 선배라서 부지기수로 봤다. 내게 화환 보낸 증거, 모임 같은 데서 함께 찍은 사진이 여러 장 있는데도 법정에선 날 모른다고 하더라. 나와 친한 데도 직접 말하지 않고, 굳이 나와 일면식이 없던 김모 부시장과 박영헌을 보내 자신에 대한 수사 무마를 청탁하고 돈을 줬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으니까 거짓말을 할 수밖에.”

▼ 가족은 뭐라던가.

“아이들은 다 커서 그런지 날 위로해주더라. 괜찮다, 힘내라고. 하지만 아내에게선 원망을 부지기수로 들었다. ‘경찰이 당신 아니면 안되나, 수사권이 뭔데 미쳐서 잠도 못 자고 난리치나, 예전에도 그것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나, 내 말을 안 듣더니 결국 봐라….’ (2011년 검경 수사권 조정 건으로) 내가 집에서까지 수사권 확보하겠다고 의원들에게 전화해 설득했으니까 아내 눈에는 정상으로 안 보였을 거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이, 지난해 4월 경찰청 지휘부 회의에서 (조현오) 청장이, 날 두고 한 얘기는 아니겠지만, ‘양아치 같은 사람들과 어울려서 문제를 일으키고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말했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그 기사를 보고 아내가 펑펑 울었다. ‘당신이 그 청장의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실언 건을 수습해보겠다고 밤잠을 설쳤는데, 그걸 다 봐온 사람이 이럴 수 있느냐’면서. 나도 (기사를) 봤는데 (마음이) 몹시 아팠다.”

▼ 조 전 청장과는 지금도 연락하나.

“지난주 면회했다. 힘 내시라는 얘기 외에 달리 할 말이 없더라. 그분도 열심히 했다. 경찰 조직을 위해 열심히 일한 건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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