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매체는 구어체와 문어체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최근에는 경어와 반말의 경계도 허물고 있다. 익명의 게시판에선 한국인들이 이런 차이를 무시할 때 얼마나 살벌한 언어를 남발하게 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독한 말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수위를 점점 높여간다. 이런 게시판 문화가 공공의 영역으로 넘어와 매스미디어의 언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게 오늘날의 상황이다.
특히 진영의식이 뚜렷한 매체는 증오의 언어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오마이뉴스나 딴지일보 같은 인터넷 미디어는 기자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하지만 모두가 기자가 된다는 것은 아무 글이나 기사가 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쳤다. 그럼에도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진영논리에 기댄 증오의 힘 덕분일 것이다. 이들은 2000년대 초 IT 붐이 가라앉으면서 침체를 겪다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 광우병 사태, 노 대통령 서거 등 정치 격변을 거치면서 되살아났다.
전통 언론들은 이런 변화에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종편은 달랐다. 개국 초 쓴맛을 보며 갈피를 못 잡는 것 같던 이들은 지난해 대통령선거를 거치며 자신들만의 특화된 시장을 발견해냈다. 선거 기간에 배출된 정치평론가들을 활용한 ‘정치 토크쇼’ 시장이었다. 정치평론가들은 각 정파를 대표해 대리전을 벌이는 검투사들이다. 종편 정치 토크쇼의 표현 강도는 공중파 방송에 비해 한층 수위가 높다. 시청률의 상승은 이를 은근히 즐기는 세태를 반영한다.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맥루한의 말처럼 막말 경향은 인터넷 미디어의 하드웨어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시민 전 장관은 인터넷을 잘 활용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센 말을 하기로 유명했다. 이것이 효과를 보자 너도나도 따라 하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확산은 이런 경향을 강화시켰다.
自淨 기능을 믿는다
2011년 서기호 판사는 페이스북에 ‘가카빅엿’이라는 독한 말을 남겼다. 그는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진보정당의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과거엔 권력자에게 아부 발언을 해야 출세했지만, 이제는 가상공간에서 질펀한 욕지거리를 내뱉어야 출세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 약간의 자정(自淨) 기능은 살아 있다. 나꼼수의 멤버 김용민 씨가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서 한 발언은 지난해 총선에서 야권 패배의 결정적 도화선이 됐다. 그는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을 강간해서 죽이자”는 말을 했다. 독해도 너무 독한 발언이었다. 지난해 대선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는 TV토론에서 “박근혜 떨어뜨리려 나왔다”고 말했다. 이 말도 마찬가지로 너무 셌다. 브라운관을 통해 유권자에게 생생히 전달된 뒤 유권자의 표심은 이 후보의 의도와는 반대로 흘러갔다.
언어 환경은 갈수록 경박해지고 있다. 게시판에서 뉴미디어로, 뉴미디어에서 기성 미디어로 오염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많은 사람이 독한 말로 인기를 누리고자 한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자. 독한 말은 주의를 끌기도 쉽지만 피로감도 쉽게 불러온다. 말로 흥한 자는 말로 망하게 마련이다. 우리 매스미디어에서 애드리브가 아닌 콘텐츠로, 독성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성으로 승부를 겨루는 말이 늘어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