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를 지키는 독도 경비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매일 아침 어김없이 태양은 솟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출에 열광한다. 새벽의 어둠을 뚫고 떠오르는 붉은 태양은 새 생명과 창조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 붉디붉은 태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속세의 온갖 번뇌를 잠재우기에 충분하다. 그러기에 일찍이 인류는 태양신까지 모시지 않았던가. 해마다 정월 초하루면 동해의 해맞이에 열광한다. 더구나 한반도의 동녘 끝에 위치한 독도에서의 새해 해맞이는 상상만 해도 가슴 뭉클한 장관일 것이다.
‘독도는 대한민국 정부 소유(관리청 : 국토교통부)의 국유지로서 천연기념물 336호(1982년 11월 문화재관리청)로 지정되어 있다. 주소는 우편번호 799-805,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분번 포함 101필지)이다. 동도와 서도 외에 89개의 부속도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면적은 18만7453㎡(동도 7만3297㎡, 서도 8만8639㎡)이다. 독도의 좌표는 동도 삼각점 기준으로 북위 37도 14분 22초, 동경 131도 52분 8초이며, 울릉도의 동남향 87.4㎞에 위치한다.’(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울릉도(독도로부터 87.4㎞에 위치)에서는 맑은 날이면 육안으로 독도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동도와 서도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바위섬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고 흰 물결이 일렁인다. 이는 독도를 관할하는 경찰청에서 그 물결의 형상에 따라 당일 독도의 바다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설치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독도의 일진을 살펴보는 하나의 징표인 셈이다.
독도 탐방은 한국인의 영원한 로망이다. 1년에 수만 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우리 땅 독도를 찾는다. 하지만 독도 방문은 생각만큼 그리 쉽지 않다. 우리 경찰위원회의 시찰도 만약 그다음 날로 잡았다면 비바람으로 인해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경찰위원회의 독도 시찰은 하늘이 내린, 아니 독도의 신이 안겨준 행운이었다. 독도를 관할하는 경북경찰청장도 취임 후 4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독도에 닿을 수 있었다고 하니 독도를 방문하려는 마음만은 한결같지만 정작 그 실현은 그리 녹록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지면이나 TV 화면으로만 보던 ‘한국령(韓國領)’ 글귀가 새겨진 비석을 어루만지는 순간 평생 잊을 수 없을 전율과 감회에 휩싸였다. 더욱이 독도를 지키다 순국한 이들의 묘비에 헌화할 때는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에 저절로 외경심이 발로했다. 이분들이야말로 우리나라를, 우리 땅을 지킨 고귀한 선열들이 아닌가. 필자는 경찰위원회 일행을 대표해 ‘독도수호 민족정기(獨島守護 民族精氣)’라는 글귀를 방명록에 남겼다. 독도를 찾아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일생일대의 영광인 터에 방명 휘호까지 남기니 새삼 우리 땅 독도의 소중함이 가슴 시리게 젖어왔다.
독도 경비는 경찰이 담당한다. 외적(外敵)의 침입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독도는 대한민국 국군이 지켜야 할 터인데, 왜 국군은 없고 경찰청 소속의 독도경비대가 지키고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국법질서의 기초는 국가 안전보장과 사회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통해 작동한다. 국가의 존립과 안전이 위태로울 때 국군은 국민과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한다. 국군은 적의 포위·공격과 같은 전시 또는 준전시 상태에서 국토방위의 신성한 책무를 진다.
헌법상 이와 같은 사태에 대비해 국가원수인 대통령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한다. 그것은 긴급명령과 계엄이다. 유사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긴급명령은 군이 투입되지 않아도 되지만 계엄에는 반드시 군이 투입돼야 한다. 평상시에 군이 국민 생활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래서도 안 된다. 군이 국민의 일상생활에 개입하는 정도는 그 사회의 불안정성과 후진성을 드러내는 징표다.
독도에 대해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지만 이는 허무맹랑하다는 게 역사적으로 입증돼 있다. 조선 초기 관찬서인 ‘세종실록’의 ‘지리지’(1454년)는 우산(독도)이 우리 땅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조선조 말 대한제국으로 이어지는 국가적 위기 상황인 1905년에 시네마현 고시로 독도(일본명 다케시마(竹島))를 일본 땅으로 편입하려 했다. 이는 그들이 우리 국권을 찬탈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야만적 불법행위에 불과하다. 일부 서양 국가에서 독도를 프랑스 포경선이 1849년에 발견한 ‘리앙쿠르 암초(Rochers Liancourt)’로 명명하는 것도 전혀 역사적 정당성이 없는 행태다.
광복 이후 지금까지 독도는 분쟁지역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대한국민의 주권이 살아 숨 쉬는 영토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적과의 분쟁지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평온하고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영토이기 때문에 독도는 국군이 아니라 경찰이 지키고 있다. 평화 시에 대한민국의 국법질서를 확립하고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의 안전을 수호하는 조직체는 바로 경찰이기 때문이다. 독도를 국군이 아니라 경찰이 지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이 분명하다.
10월 21일은 ‘경찰의 날’이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국민의 안녕과 사회 질서 유지에 헌신하는 13만 경찰 가족을 대표하는 경찰관들이 기념식에 참여했다. 그중에서 불과 일주일 전 독도에서 조우했던 젊은 경찰관을 다시 만나니 새삼 우리 땅을 지키는 독도경비대가 가까이 있음이 실감났다. 독도 경비대장과 경비대원들의 늠름한 모습을 통해 다시 한 번 경찰은 대한국민의 경찰임을 온 국민의 가슴속에 각인시킨다.
그런데 최근 외교부에서 독도 영상물을 제작하면서 일본의 영상물 일부를 무단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렇게 개념 없는 일탈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부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외교부는 독도를 다케시마(죽도)와 병기하도록 했다는 사실도 드러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겠다는 망상을 버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부가 취해야 할 국제법적인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국민의 법감정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처사다.
10월 25일은 제113회 ‘독도의 날’이었다. 고종황제가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칙령 제41호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독도의 날을 제정했다. 이날을 맞아 1919년 기미년 3·1 독립선언의 민족혼이 서려 있는 탑골공원에서는 흥사단 독도수호본부가 한국독도연구원·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와 함께 독도 수호를 다짐했다. 광화문광장에서는 독도지킴국민행동본부가 민족의 수호신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독도는 우리 땅 악수데이(Day)’ 행사를 열었다. 그 밖에도 대구 정화여고 여학생들의 ‘플래시몹’ 행사를 비롯해 전국에서 독도사랑 모임이 이어졌다. 국제적으로 한국령 독도를 알리기 위해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울릉도·독도 자연생태 학습탐사’를 비롯해 다채로운 행사가 이어졌다. 뜻을 같이하는 젊은 연예인들도 독도 사랑에 동참해 모금운동과 독도 노래를 울려 퍼지게 한다. 그런데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나의 독도, 오 대한민국’을 만들었는데 일부 아이돌 가수들이 일본 진출을 의식해 노래 부르기를 회피했다는 보도는 마음 한구석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
이제 독도는 외롭지 않다. 독도 수호를 위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경찰이 24시간 독도를 경비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슴 뿌듯하기 그지없다. 나아가 시민사회에서도 독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대구의 어느 식당 주인 아주머니는 고향에서 가져온 갖가지 밑반찬을 독도경비대에 제공했다. 이런 분들이 있기에 독도는 결코 외로운 섬이 아니라 민족혼을 일깨워주는 섬으로 국민의 가슴속에 터 잡아갈 것이다. 해 뜨는 독도에서 해 지는 백령도까지, 제주도 남단 마라도에서 북녘의 백두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혼령은 장구하게 펼쳐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