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이 말했듯, 비움은 끝이 아니다. ‘공(空)’은 ‘무(無)’나 ‘비존재(非存在)’와는 다르다.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한곳에 머무르지 않아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소마미술관은 아시아 작가 13명의 작품을 통해 ‘공’의 의미를 찾는다. 아시아 미술은 공간과 시간, 역사 속에서 나를 찾는 과정이므로 ‘공’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작가 중 한 명인 가오레이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벽에 뚫란 쪽창으로 목을 빼고 있는 기린의 다리에 사각형 철창이 묶여 있고, 그 안에는 표범이 들어앉았다. 가오레이의 특징은 삶과 죽음, 윤회를 표현하면서 현실과 가상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풍요로웠으며 개인주의, 합리주의를 자연스레 받아들인 바링허우(八零後·1980년대생) 세대인 작가는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세상에 반기를 든다. 팽팽하고도 은밀한 긴장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2007년부터 ‘깊이에의 강요(Der Zwang zur Tiefe)’라는 타이틀로 일관된 작업을 해온 홍승희는 수도꼭지라는 일상적 사물에 비현실적이며 작위적인 ‘깊이’를 부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결국 ‘깊이’란 사물에 대한 응시와 자기 성찰을 통해 진정으로 얻어지는 것인데, 작품에 작위적으로 ‘깊이’를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반문하는 것이다.
● 일시 | 12월 22일까지
● 장소 | 소마미술관(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424)
● 관람료 |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 문의 | 02-410-1330, www.somamuseum.org
1 권부문, On the clouds(Seoul-Paris), 2002
2 팡리쥔, 2005.6.4, 2005
3 홍승희, Der Zwang zur Tiefe, 2013
4 야나기 유키노리, Article 9,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