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호

유일무이 ‘팩트’로 똘똘 뭉쳐 외부 약자 철저 배척

일베, 오유, MLB파크, 디시… 여론 지형 바꾸는 온라인 커뮤니티

  • 김유림 기자 | rim@donga.com

    입력2013-11-21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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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40대 남자 직장인, 모바일로 수시 커뮤니티 접속”
    • 가장 정치적인 커뮤니티 MLB파크, 디시는 오타쿠 놀이터
    • 일베 주요 키워드 : 자기비하, 약자 혐오
    • 소속감과 동질감으로 무조건 수용, “정교한 공작이라면 넘어갈 수도…”
    유일무이 ‘팩트’로 똘똘 뭉쳐 외부 약자 철저 배척
    ‘오늘의 유머.’ ‘최불암 시리즈’같이 오래된 유머를 실은 유머집을 떠오르게 하는 이 이름이, 2012년 대선부터 지금까지 가장 큰 논란의 중심에 섰다. 6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대선을 전후해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오늘의 유머’(오유) 등 인터넷 사이트에 수백 개의 아이디를 동원해 1900여 건의 정치·대선 관여 게시 글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8월 22일 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국정원 직원들은 오유뿐 아니라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디시인사이드’(디시) ‘뽐뿌’ ‘보배드림’ ‘SLR클럽’ ‘82쿡’ ‘네이버 카페 레몬테라스’ 등 대형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정황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파악됐다”고 주장했고, 11월 4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모 국정원 직원은 “임신, 출산, 육아 관련 커뮤니티인 네이버 카페 ‘맘스홀릭’을 주로 담당했다”고 밝혔다.

    유머(오유, 일베, 디시), 디지털카메라 등 전자기기(SLR클럽, 클리앙), 게임(루리웹닷컴), 육아 및 살림(레몬테라스, 82쿡, 맘스홀릭), 스포츠(MLB파크), 가격비교(뽐뿌) 등 정치와 관계없는 취미 사이트에서 국정원은 왜 그토록 대대적인 ‘공작’을 펼쳤을까. 국정원의 여론 조작 대상이었던 방문자 수 상위 12개 사이트와 다음, 네이버, 언론사 사이트 등과 연계된 커뮤니티 4곳, 그리고 네이버와 다음 카페 4곳을 심층 분석했다. 이를 통해 이들 인터넷 커뮤니티가 우리나라 여론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파악했다.

    30대, 남자, 모바일

    “자게이(인터넷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은어)는 누구나 평등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오늘날 온라인 커뮤니티를 지배하는 정신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기원은 1990년대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등 PC통신 동호회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웹에서 모이는 문화가 형성되면서 짧은 기간 수천 개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졌다. 시간이 지나며 커뮤니티는 소멸과 생성, 분화를 거쳐 현재 모습으로 발전했다.

    이들 커뮤니티는 PC보다 모바일을 통해 접속하는 사람이 많다. 랭키닷컴이 지난 10월 기준으로 이들 커뮤니티의 월간 방문자 수를 조사했는데, 뽐뿌(36위), 디시(66위), 보배드림(99위) 순이었다. 포털사이트와 연계된 사이트 중 월간 방문자가 100만 이상인 사이트는 MLB파크(127만), SLR클럽(367만), 네이트판(114만), 다음 미즈넷(114만) 등이었고, 논란의 중심인 오유(197위)와 일베(172위)의 방문자 수는 100만 명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모바일 웹에서는 완전히 달랐다. 일베는 전체 모바일 웹 중 방문자 수 상위 9위를 차지했고, 디시(10위), 뽐뿌(12위), 오유(13위), SLR클럽(21위) 등이 최상위권에 들었다.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 대부분이 PC가 아닌 모바일을 이용한다는 것이고, 모바일 시장이 커질수록 온라인 커뮤니티 영향력도 확대될 것임을 짐작게 한다. 실제 2010년 10월과 비교하면 한 달 방문자 수가 MLB파크는 약 4배, 오유는 1.5배 늘어났다.

    온라인 커뮤니티 주 이용자는 30~40대 남성이었다. 각 사이트의 방문자 성별과 나이를 조사하니 대부분 남성이 과반이었다. 특히 보배드림(84%), SLR클럽(81%), 루리웹(75%) 등 중고차나 전자제품, 게임 중심 사이트의 남성 이용자가 많았고 일베(83%) 역시 남성과 여성이 8:2 수준으로 남성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커뮤니티의 이용자는 30대가 가장 많았고 40대가 그 뒤를 이었다. 한편 다음 아고라의 경우 50대 이상 이용자가 22%, 40대 이상 이용자가 30%로, 다른 커뮤니티에 비해 이용자 연령층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바쁜 생활에 치이는 직장인들에게 온라인 커뮤니티는 업무시간에도 즐길 수 있는 ‘사적 공간’이다. 취업 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81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 사용 실태’에 대해 설문한 결과 66.3%에 달하는 직장인이 현재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고, 직장인 대부분이 업무 도중 틈틈이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들이 많이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1위는 25.7%(복수 응답)로 오유가 차지했고 2위는 일베(20%)였다.

    MLB파크 “박근혜 책임져야”

    이들 커뮤니티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갈까. 소셜 미디어 분석업체 트리움에 의뢰해 10월 한 달간 각 사이트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50개 글과 댓글을 분석했다. 추천 상위 50개 글과 댓글에 공통적으로 언급된 키워드와 그 관계를 파악해, 연결성을 찾으면 결국 커뮤니티를 지배하는 의견을 알아낼 수 있다.

    정치적인 이야기가 가장 많이 오가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MLB파크’였다. 본래 메이저리그 등 국내외 야구 정보를 주고받는 사이트인 MLB파크는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를 시작하는 등 다소 진보성향이 강한 사이트로 평가된다. 특히 이 사이트의 자유게시판인 ‘불판’에서는 정치적 토론이 활발히 이뤄진다. 지난해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가 ‘회원 인증’을 한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MLB파크에서 가장 많은 연결망(반복적으로 언급)을 가진 단어는 ‘새누리당’ ‘사실’ ‘후보’ ‘대통령’ ‘책임’ 등으로 나왔다. 이는 MLB파크에서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한 게 사실이라면 당시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근혜에게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라는 주장에 많은 회원이 동조했음을 의미한다.

    한편 2000년대 인터넷 커뮤니티의 ‘르네상스’를 이끌었고, 일베의 산파 구실을 한 디시의 경우 지난해 ‘일베’ 분리 이후 정치색을 쫙 빼고 ‘순수 오타쿠(특정 취향을 강하게 가진 팬) 천국’으로 회복됐다. 디시를 분석하니 몇몇 해외 스타 이름과 함께 ‘조공’(스타에게 선물을 하는 것을 빗대는 말) ‘총알’(조공을 위해 돈을 모으는 것) ‘배송’ ‘행복’ ‘내한’ 등의 키워드가 연결망 중심에 위치했다. 한때는 가장 진보적이고 정치적이던 디시가 드라마, 영화, 연예인 등에 대한 ‘갤러리’ 중심의 동호회로 돌아온 것. 디시 김유식 사장은 “일베가 생기면서 디시에 있었던 문제아들이 사라졌다. 이제 청정 공간이 됐고 공개된 장소에서 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커뮤니티로 변모했다”고 밝혔다.

    한편 디지털카메라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커뮤니티였던 SLR클럽에는 ‘결혼’ ‘아내’ ‘아침상’ 등 일상과 관련된 키워드가 관계망 중심에 자리했다. 대다수 커뮤니티는 본연의 역할보다 상호작용의 광장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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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이들 커뮤니티에는 초기 관심분야 외에도 소소한 일상생활이나 정치, 경제, 사회 등 이슈에 대한 토론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4월 발간한 보고서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사회관계 형성 메커니즘 비교’를 통해 “인터넷 커뮤니티는 익명으로 운영되고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동등한 교류를 해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다. 연대의식과 동질성을 얻은 경우 SNS, 메신저, 전화, 나아가 오프라인에서도 관계를 맺는다”고 밝혔다. 이제 커뮤니티는 몇몇 마니아의 공간이 아니라 일상의 공간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광우병 촛불시위’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오프라인과 결합해 여론을 주도하는 최고의 장으로 성장하는 계기였다.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사건을 겪으면서 이전에는 주로 좌파 위주였던 온라인 여론이 우파 쪽으로 몰려가면서 점차 의견이 다양해 지고 폭이 넓어졌다.

    일베의 확산성

    일베는 2010년 개설돼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머 사이트로 성장했다. 일베는 본래 디시인사이드의 19금 유머 자료를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점차 방문자 수가 늘어나면서, 일베에서 화제가 되면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되는 식으로 커뮤니티 여론을 이끌고 있다. 한 아이돌 가수가 일베 용어인 ‘민주화’(획일화를 추구한다는 의미의 은어)라는 말을 방송에서 썼다가 구설에 오르거나, 일베가 만든 신조어와 유머 코드가 젊은이들에게 무비판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통해 일베가 많은 네티즌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일베 이용자들은 ‘일부심’(일베 자부심의 준말)을 느끼며 더욱 자극적이고 효과적으로 넷심(net心)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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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베는 일부 ‘일베충’이 모여 만든 쓰레기장인가, 아니면 혹자의 말대로 별다른 이념적 성향 없이 단순한 재미를 추구하며 사고를 저지르는 존재인가. 분석 결과, 일베를 구성하는 주요 키워드는 ‘자기비하’와 ‘약자 혐오’였다.

    일베는 진보적인 오유와 비교해 ‘보수화한 사이트’라고 통상 언급된다. 하지만 분석 결과 일베에서는 정치적 이야기에 대한 담론은 거의 없었다. 일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중심에 있는 키워드는 ‘X발’ ‘새X’ 등 욕설이었다. 이는 일베 이용자들의 지지를 받는 거의 모든 글에 이 욕설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일베 회원들은 일종의 레토릭으로 욕설을 쓴다. 본인과 일베 회원들에 대한 자조적 욕설이 일베의 정체성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일베는 스스로를 패배자로 설정해 욕설을 주고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외부의 적을 찾는다. 올 5월 일베 추천 상위 100개 글을 분석했을 때 등장한 주요 키워드 중 하나인 ‘무시’는 ‘김치녀’(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말) ‘노동자’ ‘외국인’ ‘전라도’ ‘조선족’ 등과 엮여 나타났다. 이종대 트리움 이사는 “마치 독일 나치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들을 열패자로 인식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유대인, 집시 등을 공격했듯 일베 역시 같은 성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편 일베는 고(故)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인격 모독 수준의 비판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회원들은 두 전 대통령과 관련해 ‘인드라’ ‘아수라’ ‘제석천’ 등 불교에서 죽음을 나타내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이사는 “두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러한 불교 용어를 쓰는 것은, 자신들의 수준 높음을 드러내며 분노의 대상에 대해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 공격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때 일베 회원들 사이에서는 ‘인증 놀이’가 인기를 끌었다. 명문대 학생증, 내로라하는 대기업 사원증, 법원공무원증 등을 사진 찍어 사이트에 올리는 것이다. 책 ‘일베의 사상’을 쓴 박가분 씨는 “자신을 일베충이라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은 흑인 스스로가 ‘깜둥이(nigger)’라고 부르는 감수성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일베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은 ‘팩트(fact)’다. 이들에게 팩트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무기이자 신념이다.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주장이나 혐오 문화를 단도직입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상대방 주장의 논리적 허점이나 공백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주장을 내세운다. 상대방이 내세운 주장의 근거 중 하나라도 틀리면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통해 감성 팔이(감성에 호소하는 것)한다”며 비판한다. 다양한 사실과 의견이 있음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취사선택해 ‘그것만이 팩트’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네티즌은 정의의 사도?

    최근 사회적으로 화제가 된 ‘사법연수원 불륜 사건’을 보면 커뮤니티의 거대한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8월 모 일간지에 ‘로스쿨 여학생 A가 결혼과정에서 시부모의 무리한 혼수 요구 때문에 7월 말 자살했다’는 기사가 나고, 사망한 A의 어머니가 사위 B와 상간녀 C를 규탄하는 피켓시위를 시작하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각종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피켓시위 사실이 알려지고 네티즌들은 B와 C의 이름, 사진, 전화번호 등 신상정보를 경쟁적으로 파헤쳐 커뮤니티 회원들과 공유했다. 이때 B와 C가 A 사망 후에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 여자 가방, 화장품 등을 거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고인의 물품을 판매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네티즌들은 사법연수원 및 B와 C가 시보를 한 법무법인에 계속해서 전화해 항의했고 방송사 고발 프로그램에 제보하거나 청와대 등에 민원을 넣었다. 자발적으로 A 어머니의 일인시위를 돕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9월 사법연수원 측은 B와 C에게 각각 파면과 정직 3개월의 처벌을 내렸다. 이어 네티즌들은 C가 사법시험 합격 후 불법과외를 한 정황을 찾아내 사법연수원에 고발했고, C는 추가로 감봉 3개월을 받았다. 이 밖에도 ‘라면 상무 사건’ ‘지향이 사건’ ‘프라임 베이커리 회장 폭행 사건’ 등 다양한 사건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제기돼 논란의 중심이 됐고 실제 법 집행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제기된 공분이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지만, 커뮤니티에서 잘못된 정보가 공유되면서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4월 경남 창원의 한 어린이집에서 생후 6개월 남아가 뇌사 상태에 빠져 숨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한동안 다수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아이의 할머니가 아이를 떨어뜨린 후 보험금을 받기 위해 어린이집에 맡겼다’는 글이 떠돌았다. 아이 어머니는 경찰에 명예훼손으로 신고했고 글을 퍼 나른 주부와 어린이집 원장 등이 무더기로 입건됐다. 최초 유포자는 찾지 못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허위 글을 게시한 이유에 대해 “원장과 교사가 억울한 것 같아서” “자녀를 둔 엄마 입장에서 화가 나서” “다른 사람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라고 밝혔다.

    디지털 시민성 길러야

    이 밖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초등 남학생이 휴게소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머리가 박박 깎인 채 납치될 뻔했다’는 둥 ‘조선족이 장기를 적출하려고 납치극을 벌여 경찰차 12대가 출동해 납치범들과 추격전을 벌였다’는 둥 괴담이 끊이지 않는다. 대부분 정확한 지역을 명시하고 있어 실제 사건으로 오해하기 쉽다.

    왜 수많은 괴담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확대 재생산될까. 한 심리학과 교수는 “이야기를 지어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에서 만족감과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보를 비판 없이 퍼 나르는 사람들 역시 남보다 자신이 정보를 빨리, 많이 알고 있다는 걸 과시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네이버 카페 ‘레몬테라스’에서 활동하는 한 네티즌은 “익명으로 활동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 소속감을 느끼고 이용자 간의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에 어떤 언론 창구보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신뢰한다. 또한 언론이 왜곡됐다는 얘기를 많이 듣기 때문에 커뮤니티에서 접하는 정보는 여과되지 않은 진실의 정보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국정원의 커뮤니티 여론 조작은 효과가 있었을까. 8월 국정원 댓글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디시 김유식 대표는 “내가 국정원 직원이라면 ‘오유’에는 댓글을 달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혀 화제가 됐다. 오유의 이용자 20%가 투표권이 없는 젊은층이고, 본래부터 좌로 편향된 사이트라 의식을 바꾸는 데 효과가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또한 김 대표는 “디시의 경우 정치공작을 재빠르게 분석해 조회수가 3이 되기 전에 지워버리기 때문에 국정원 공작에 노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동아일보가 R·R과 11월 초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4%가 “국정원의 댓글-트위터 공작이 대선 승패에 영향을 못 미쳤을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만약 여론을 장악하기 위해 IP를 교란하는 등 더욱 정교한 방법으로 접근한다면 온라인 커뮤니티로서도 막을 방법이 없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온갖 괴담이나 일베 회원들의 정제되지 않은 글이 다른 커뮤니티에 확산되는 것을 막을 길은 현실적으로 없다. 일베 하나를 폐쇄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박종호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이 문제의 해답을 ‘디지털 시민성’에서 찾았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삶의 중요한 축이 되면서 우리는 ‘디지털 시민’이 됐으니, 그 안에 규범을 만들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학생들에게 컴퓨터 사용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컴퓨터를 통해 어떻게 의사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것인지 가르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온라인 커뮤니티들 역시 디지털 사회의 공론장으로서 역할을 고민하고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한에서 자정 작용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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