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호

매보다 날카로운 비둘기 ‘경제대통령’으로 날다

재닛 옐런 美 연준 신임 의장 지명자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입력2013-11-19 15: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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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물가 안정을 중시하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보다 날카로운 예측 능력을 지닌 비둘기(경기 부양을 중시하는 디플레이션 파이터).’

    올해 세계경제의 가장 큰 이슈였던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 의장의 후임자 선정이 끝났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10월 9일 4년 임기의 연준 새 의장으로 재닛 옐런(67) 연준 부의장을 지명했다. 상원 인준이 끝난 후 내년 2월 1일 공식 취임하는 그는 1913년 설립돼 올해로 꼭 100주년을 맞는 미국 중앙은행의 첫 여성 의장이자 15번째 수장이다.

    연준 의장은 ‘경제대통령’으로 불린다. 슈퍼파워인 미국 경제를 주무르고 기축통화인 달러의 공급과 금리를 결정한다는 점, 세계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의 후폭풍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 버냉키 의장이 펼쳐온 양적완화 정책의 출구전략을 집행할 시점이 가까웠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버냉키 의장이 6월 19일 출구전략을 공식 언급한 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였고 이로 인해 주요 신흥국 경제가 타격을 입었다는 점은 연준 의장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경제가 한국은행보다 연준의 통화정책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옐런은 1979년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이 사임한 이후 35년 만에 등장한 민주당 출신 중앙은행 수장이다. 또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과 벤 버냉키 현 의장과 마찬가지로 유대인 후손이다. 세 번 연속 유대계 출신 연준 의장이 탄생했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옐런은 오바마 대통령이 염두에 둔 ‘1순위’가 아니었다. 오바마는 클린턴 2기 정권의 재무장관, 하버드대 총장을 역임해 정·관계 네트워크가 풍부하고 뚝심이 세기로 유명한 로런스 서머스를 노골적으로 선호했다. 서머스 전 장관은 2009~2010년 미국 대통령의 경제 과외교사 격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맡아 오바마와 개인적으로도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독선적인 성격에다 여성 비하 발언 등 잦은 설화로 구설에 오른 서머스 전 장관은 여론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자 과거 서머스와 한솥밥을 먹었던 미국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들과 수백 명의 경제학자가 옐런을 차기 의장으로 뽑아달라는 서한을 백악관에 보냈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도 옐런을 두둔하고 나섰다. 결국 서머스는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후보 지명을 스스로 고사했다.

    서머스 전 장관은 친삼촌과 외삼촌이 모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천재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 역시 불과 26세에 하버드대 교수가 됐고, ‘40세 이하의 젊은 경제학자에게 주는 노벨상’이라는 존 베이츠 클락 메달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경제학자다. 이런 서머스 대신 옐런이 차기 연준 의장으로 뽑힌 이유는 무엇일까. 옐런은 과연 7%가 넘는 실업률과 지지부진한 경기 회복으로 신음하는 미국 경제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침체기 정부 개입 중시

    재닛 옐런은 1946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유대인 이민자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늘 우등생이었고 브루클린 포트해밀턴 고교 시절에는 교지 ‘더 파일럿’의 편집장도 지냈다. 졸업 전 그는 교지와의 인터뷰에서 “인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대학에서 경제학, 수학, 인류학 중 하나를 전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약사 아버지를 둔 중산층 출신의 옐런은 아이비리그의 8개 사립대학 중에서도 부잣집 자녀가 많기로 유명한 로드아일랜드 주 브라운대로 진학했다. 이곳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예일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예일대에서 평생의 은사인 제임스 토빈 교수를 만난다. 198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빈 교수는 1960년대 초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경제자문을 맡았고, 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되는 세금인 ‘토빈세’의 주창자로 유명한 현대 경제학계의 거두.

    신케인스 학파의 핵심이던 토빈 교수는 시장 자체의 효율성을 강조한 통화주의 학파와 달리 경기침체 때 정부가 적극적인 정책 집행에 나서야 한다고 봤다. 이런 토빈의 영향으로 옐런 역시 정부 개입을 중시하고 특히 실업난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이는 ‘중앙은행의 존재 이유는 물가 안정이며, 통화정책 집행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중앙은행과 행정부는 굳이 가깝게 지낼 필요가 없다’고 믿는 상당수 중앙은행 관계자의 소신과는 차이가 있다.

    고용과 정부 개입 중시라는 성향은 역설적으로 옐런이 미국 중앙은행 사상 최초의 여성 수장으로 뽑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금융위기 이전 4~5%대이던 미국 실업률이 이후 7~8%대로 치솟으면서 실업난이 현재 미국 경제의 최대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금융위기 동안 사라진 일자리는 800만 개에 달한다. 금융위기 후 5년이 지났지만 이 가운데 겨우 절반 정도만이 되살아났다. 양도 모자라지만 일자리의 질은 더 문제다. 되살아난 일자리의 대부분은 판매직 등 저임금 저숙련 근로자를 위한 것이다.

    옐런은 2002년 토빈 교수가 사망하자 예일대 신문에 ‘그는 인류 복리를 개선하는 작업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려준 인물’이라는 취지의 글을 기고해 스승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연준에서 만난 평생 반려자

    옐런은 1971년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76년까지 하버드대 경제학과 조교수를 지냈다. 하버드에서 그가 가르친 학생 중 하나가 서머스 전 장관이다. 40년 후 스승과 제자가 연준 의장 자리를 놓고 경쟁할 것이라고는 두 사람을 포함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옐런은 1977년 연준 이코노미스트가 됐다. 그 무렵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다 역시 연준에서 일하던 남편 조지 애커로프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에 골인한다. 옐런보다 6세 연상으로 현재 UC버클리대 교수로 재직 중인 애커로프는 중고차 시장의 정보 불균형을 다룬 ‘레몬 이론’으로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석학이다.

    같은 유대계이며 결혼 당시 옐런보다 유명한 경제학자였던 애커로프는 소문난 애처가다. 그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후 소감문에서 “우리 부부는 성격 면에서도 완벽히 맞을 뿐 아니라 거시경제 현안에서도 의견이 완전히 일치한다”며 아내 사랑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결혼 후 영국 런던정경대(LSE) 교수가 된 그는 학교에 ‘부부 패키지’ 교수 자리를 제안해 아내의 취업을 도왔다. 이후에도 아내를 헌신적으로 지원했다. 그래서 결혼 초기만 해도 사람들은 옐런을 ‘유명 경제학자 애커로프의 아내’ 쯤으로만 생각했다.

    옐런 부부는 1981년 외아들 로버트를 얻는다. 그도 부모의 뒤를 이어 경제학을 전공했고 현재 영국 워릭대 경제학과 교수로 있다. 옐런 부부는 아들의 보모를 고용할 때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줬다. 높은 임금을 받아 기분이 좋아진 보모가 아이를 더 잘 봐줄 것이라는 ‘경제적 고려’에서였다.

    금슬 좋은 부부는 실업에 관한 공동 논문도 수차 집필했다. 1980년대 초엔 보모와의 임금 협상 경험을 토대로 ‘실업률이 치솟을 때 기업들은 왜 전반적인 급여 삭감 대신 인력 구조조정을 택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내놓기도 했다. 이들은 “보육의 질 저하를 우려한 부모들이 보모에게 시세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하듯, 기업들도 업무의 질 하락을 우려해 핵심 인력의 임금 삭감 대신 잉여 인력의 구조조정을 택한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의 이런 소신은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이 실업난을 호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옐런은 자신이 정책 당국자가 됐을 때도 이런 소신을 고수했다. 결국 그는 버냉키 의장과 손발을 맞춰 경제학 교과서에도 없는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기준금리가 낮아 더 이상 금리를 낮출 수 없을 때 중앙은행이 국채 매입 등으로 금융시장에 막대한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방법) 정책 집행을 주도했다.

    족집게 경제 전망으로 명성

    금융위기 후 신음하던 미국 경제는 양적완화로 일단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좀 무지막지한 방법이긴 해도 많은 돈이 한꺼번에 풀리면 신용도가 낮은 가계와 기업도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다. 당장 손에 쥔 돈이 없어도 이자 부담이 크지 않아 소비와 투자를 늘릴 여지가 생긴다. 금융위기의 예언자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조차 “양적완화는 ‘변칙적이고 미친’ 정책이지만 금융위기 때 연준의 대응은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비전통적 방법인 양적완화는 버냉키 의장처럼 대공황 전문가가 아닌 이상 후임자가 이를 차질 없이 수행하고 적절한 시점에서 거둬들이는 일이 쉽지 않다. 미국 경제학계와 금융시장이 차기 의장으로 옐런을 적극 지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양적완화에 부정적 견해를 종종 피력한 서머스 전 장관과 달리 오랫동안 버냉키와 손발을 맞춰온 옐런이 차기 수장이 돼야만 정책 집행에 연속성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옐런은 1994년 연준 이사가 됐다. 연준 이사는 연준 의장과 부의장을 포함해 7자리밖에 없는 미국 경제계의 핵심 요직이다. 그는 이후 승승장구한다. 연준 이사(1994~1997),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1997~1999),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2004~2010), 연준 부의장(2010~ )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연준의 속사정에 가장 정통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얻는다.

    ‘족집게 경제 전망’도 옐런의 위상과 유명세를 높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09~2012년 연준 주요 임원들의 경제 전망 발언과 그 정확도를 분석한 결과 옐런이 1점 만점에 0.52점을 받아 0.45점을 받은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 제임스 불라드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 총재 등이 받은 낮은 점수(각각 -0.01점, 0.00점)를 감안할 때 옐런이 내놓은 경제 전망의 정확도가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옐런은 올해 1월 공개된 2007년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1년에 8번 열리는 미국 기준금리 수준 결정 회의) 회의록에서도 “부동산 과열이 심각하지 않다”고 언급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에 맞서 “주택시장의 위험이 계속되고 있다”며 강력한 대응을 주문한 것으로 밝혀져 화제를 모았다. 미국 부동산시장의 과열 조짐을 과소평가해 2008년 금융위기의 선제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은 버냉키 의장의 전망과 대비된다. 덕분에 ‘준비된 연준 의장후보’ 옐런의 명성도 더 높아졌다.

    2007년 12월 FOMC 회의록에서도 옐런의 진가가 드러났다. 그는 대다수 연준 이사가 “미국 경제가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의미하는 경기침체(recession)에 진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과 달리 “경기침체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비관론을 주장했다. 불과 9개월 후인 2008년 9월 15일 자산 2000억 달러(약 220조 원)가 넘는 초대형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며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가 불거졌다.

    조용한 카리스마

    옐런은 미국 경제가 금융위기를 맞아 허우적대던 2009년 6월 말 “내년 하반기쯤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시에는 대세와 동떨어진 주장으로 비쳤지만, 결국 그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미국 주류 언론은 그를 ‘매보다 날카로운 예측 능력을 지닌 비둘기’라고 호평했다.

    옐런을 처음 본 사람들은 자그마한 키와 체구, 온화한 인상 때문에 그를 종종 동네 할머니로 착각한다. 연준이 매년 8월 와이오밍 주 잭슨홀에서 세계 중앙은행 관계자들을 불러모아 경제 전반 현안을 논의하는 ‘잭슨홀 회의’에서 옐런을 만나본 한 참가자는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비행기 옆자리에 수수한 옷차림, 낡은 조깅화를 신은 할머니가 큰 가방을 메고 앉았다. 그는 가방에서 두꺼운 자료 꾸러미를 꺼내 열심히 읽더니 곧 잠이 들었다. 세계경제의 운명을 결정짓는 사람치고는 너무나 평범하고 서민적이어서 신기했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옐런이 온화하고 조용한 카리스마와 남다른 명석함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다. 학창시절 친구들은 옐런을 “정말 똑똑하지만 이를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옐런을 아는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건 그가 특이할 정도로 상냥하고 품위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라고 호평했다.

    미국의 유명 이코노미스트인 케빈 해셋은 연준 의장 자리를 놓고 경합했던 서머스 전 장관과 옐런의 차이를 이렇게 비유했다.

    “만약 당신이 서머스 앞에서 실수로 틀린 말을 했다 치자. 그는 십중팔구 ‘대학은 나왔느냐’ ‘경제학 공부는 해봤느냐’는 식으로 면박을 줄 것이다. 하지만 옐런은 ‘당신의 방법 대신 이 방법을 써보면 어떨까요’라고 돌려 말할 것이다. 옐런은 열린 의사소통을 선호하고 합의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옐런의 이런 캐릭터는 금융시장과 경제학계에 ‘친(親)옐런-반(反)서머스’ 여론이 형성되게 했다. 많은 사람이 ‘연준 의장 서머스’를 반대한 것은 그가 재무장관 시절 금융규제 완화를 주도해 금융위기를 방조한 데다, 하버드대 총장 사임 후 여러 회사에서 고문 등으로 재직하며 지나치게 많은 보수를 받는 등 처신에 문제가 많다는 평가 때문이다.

    2001년 옐런의 남편 애커로프 교수와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서머스가 아니라 옐런이 연준을 이끌어야 하는 이유’라는 노골적인 제목의 글을 기고하며 옐런을 후원했다. 앨런 블라인더 전 연준 부의장, 크리스티나 로머 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등 미국의 저명 경제학자 350명도 오바마 대통령에게 ‘옐런을 신임 연준 의장으로 지명해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연준 의장을 지명할 때 경제학자 여럿이 단체행동에 나선 것, 두 후보에 대한 호불호가 이토록 차이가 난 것도 모두 처음이다.

    매보다 날카로운 비둘기 ‘경제대통령’으로 날다
    최우선 과제는 출구전략 연착륙

    각종 ‘최초’ 기록을 갈아치우며 연준 의장이 됐지만 옐런 앞에 놓인 과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큰 과제는 당연히 출구전략의 연착륙이다. 지난 몇 년간 저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에 길든 세계경제는 출구전략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경기침체 때문에 고수익을 찾아 신흥국으로 이동했던 유동자금이 버냉키 의장이 출구전략을 언급한 이후 신흥국을 빠져나오면서 터키, 인도네시아,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경제가 출렁이고 있다.

    하지만 약한 달러로 인한 물가상승 등 지나친 저금리 정책의 폐해를 생각하면 언제까지 양적완화 정책을 계속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출구전략을 서서히 집행하되 이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겨우 금융위기의 후폭풍을 벗어나려 하는 세계경제가 또다시 걷잡기 힘든 혼란과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이 어려운 과제가 옐런 앞에 높여있다.

    매파와 비둘기파가 공존하는 연준 내부를 잘 조율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의 멤버는 연준 의장과 부의장을 포함한 연준 이사진 7명에다 미국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 중 매년 돌아가면서 5명이 참가해 총 12명으로 구성된다. 문제는 2014년 새로 위원회 투표권을 행사할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 중 물가 안정을 중시하는 매파가 많다는 점. ‘슈퍼 매파’로 불리는 강경파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준 총재, 리처드 피셔 댈러스 연준 총재 등이 대표적이다. 옐런이 이 강경 매파들을 잘 다독이지 못하면 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정책 집행을 두고 연준 내부에서 격론이 벌어져 순조로운 정책 집행이 힘들어질 수 있다.

    공화당과 원만한 관계를 설정하는 과정도 험난하다.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의 유력한 공화당 후보인 랜드 폴 상원의원(켄터키 주)은 옐런의 인준을 보류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연준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법안 표결을 진행하지 않으면 옐런의 인준 절차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공화당이 실제 그의 인준을 거부할 확률은 낮다. 하지만 공화당에서 생성된 반대 기류가 4년 임기 내내 초짜 연준 의장 옐런과 그가 시도할 정책 집행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누구보다 많은 화제를 뿌리며 미국 중앙은행의 새 수장으로 뽑혔지만 누구보다 무겁고 힘든 과제를 맡은 차기 연준 의장. 옐런이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세계경제의 향방이 좌우될 것이다. 과연 옐런은 성공한 ‘경제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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