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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의 ‘해적 이야기’

귀족층 비호 아래 노예무역으로 활개

로마시대의 해적

  • 김석균│해양경찰청장 sukkyoon2001@yahoo.co.kr

귀족층 비호 아래 노예무역으로 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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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적 소탕으로 국민적 영웅이 된 폼페이우스, 해적에 잡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카이사르. 로마의 대권을 놓고 벌어진 두 사람의 운명적 대결의 고리가 해적이었다고 하면 비약일까. 로마를 이끈 영웅들과 지중해를 주름잡던 해적의 흥미진진한 인연.
귀족층 비호 아래 노예무역으로 활개

로미시대 지중해에서 활약한 갤리선.

로마의 역사는 바구니에 담겨 테베레 강물에 버려진 로물루스·레무스 쌍둥이 형제를 어미 늑대가 젖을 먹여 키우는 것을 발견한 양치기가 데려가 키웠다는 전설에서 시작한다. 양치기의 손에 자란 로물루스·레무스 형제는 곧 주변 양치기들의 우두머리가 됐고 점차 세력권을 넓혀 그곳을 통치하던 왕국을 쓰러뜨린다. 두 형제는 테베레 강 하구에서 점령한 지역을 분할해 통치했으나 형제 사이는 나빠졌고 기원전 753년 형 로물루스가 동생 레무스를 죽이고 오늘날의 로마를 건국했다. ‘로마’라는 국호는 건국자 로물루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조그만 부족국가에 불과하던 로마는 점차 세력을 넓혀 이탈리아 반도의 부족국가들을 점령했고 마침내 기원전 270년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게 된다. 로마를 비롯한 아테네· 페르시아 등 고대 지중해 연안 도시국가들은 세력권을 넓혀가면서 주변 국가들과 교역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해양으로 본격 진출하게 된다.

기원전 8세기부터 그리스 반도, 펠로폰네소스 반도, 소아시아 해안을 중심으로 지중해와 에게 해에서 다양한 해양교역 네트워크가 형성돼 밀 등의 곡물 교역이 이뤄졌다. 해양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해양교역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도시국가들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고 종국에는 전쟁으로 이어졌다. 아테네와 페르시아, 아테네와 스파르타, 로마와 카르타고의 포에니 전쟁 등이 해양 패권을 둘러싼 고대 도시국가들의 대표적 전쟁이다.

도시국가들의 해양 패권 전쟁

로마가 대제국으로 발전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오늘날 튀니지 만에 자리 잡고 있던 해양 도시국가 카르타고와 지중해 패권을 놓고 세 차례 맞붙은 포에니 전쟁에서의 승리였다. 1차 전쟁(기원전 264∼241)은 서부 지중해 패권을 놓고 시칠리아와 싸웠으며 로마의 승리로 시칠리아가 로마의 속령이 됐다. 2차 전쟁(기원전 218∼201)에서 로마는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진격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에 의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으나 로마의 영웅 스키피오가 전장을 아프리카로 옮기는 탁월한 전략을 구사해 자마에서 카르타고를 격파했다.



전투 코끼리와 대군을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반도로 진격한 한니발 군대는 16년간 로마와 여러 차례 전투를 벌이며 로마를 괴롭혔다. 풍전등화의 로마는 스키피오의 전략에 따라 지중해를 건너 카르타고를 치는 역공을 감행했다. 본국의 안전이 위협받게 된 상황에서 한니발은 군대를 퇴각시키지 않을 수 없었고 전장은 아프리카로 옮겨졌다. 기원전 202년 북부 아프리카 평원 자마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한니발 군은 스키피오가 지휘하는 로마군에 대패했다. 이 공로로 스키피오(大스키피오)는 원로원으로부터 ‘아프리카누스’라는 칭호를 받았다. 카르타고는 이 패전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줬다. 로마는 해양국가 카르타고로부터 지중해 서부의 제해권과 이권을 넘겨받았다.

3차 전쟁(기원전 149∼146)에서는 로마의 원정군이 카르타고를 괴멸해 카르타고는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됐다.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부(富)와 해운력을 키운 카르타고는 누미디아에서 일어난 반란을 계기로 기원전 149년 로마에 대항했다. 로마군에 맞서 카르타고는 여자들이 머리카락을 잘라 활시위로 쓸 만큼 3년간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3차 포에니 전쟁에 참여한 아들 스키피오(小스키피오)에게 정복됐다. 카르타고를 정복한 스키피오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이고 그 자리에 소금을 뿌려 생명이 자라지 못하도록 할 만큼 도시를 철저하게 파괴했다.

로마의 엄청난 공세에도 집요하게 저항하던 카르타고가 마침내 함락되던 날 스키피오는 카르타고 시내의 뒷산에 올랐다. 그리고 700년 동안 영화를 누린 도시가 검은 연기에 휩싸여 불타오르는 것을 보면서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옆에 있던 역사가 폴리비오스가 의아해하며 “승리했는데 왜 눈물을 흘리느냐”고 물었다. 스키피오는 한숨을 지으며 “언젠가 로마도 저 아래 불타고 있는 카르타고와 같은 운명이 될 것 같은 비애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키피오는 어떤 국가도 흥하면 쇠락의 길을 거쳐 결국 이름만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흥망성쇠의 이치에 앞으로 로마에 닥쳐올 운명을 대입해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로마가 지중해를 내해로 만들고 대제국으로 거침없이 성장해가는 시기였지만, 스키피오는 수백 년 뒤 야만족의 침입 앞에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로마 제국의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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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균│해양경찰청장 sukkyoon2001@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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